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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 연안국 여행기 (2006년 5월 22일 - 6월 2일)
비내리는 인천공항, 노랑풍선 일행은 지중해 연안국(스페인-포루투칼-모로코)관광을 위해 네덜란드 항공기(KLM)에 몸을 실었다. 복잡한 일상의 멍애를 뿌연 안개속에 내 던지고 미지를 향한 부푼 설레임으로 들끓었다. 힘찬 굉음을 시작으로 창공을 가로 질러 고비사막, 시베리아벌판, 북유럽을 지나 11시간만에 경유지인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스치폴(Schipol) 공항에 도착했다. 바람타고 도는 하얀풍차, 자연을 품고 사는 양떼들, 형형의 아름다움을 뽐내는 꽃들, 사통오달하는 수로들이 이국의 정담을 보여 주는 듯했다. 훌쩍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이 든다. 자연을 지배하는 아니 자연을 리모델링하는 인간의 손길이 가깝게 다가온다. 우리나라와 7시간이 늦은 시간차, 저녁 9시가 다 되가는데도 낮과 같다. 비행기를 갈아타고 3시간여만에 포로투칼 수도인 리스본에 도착하여 숙소로 향했다.
◎ 5월 23일(화) 1일차 - 포루투칼(코임브라, 파티마 성당)
▶ 포루투칼 개황 봉디야(안녕하세요). 포루트칼은 1천만명의 인구를 가진 한반도와 비슷한 면적을 가진 1,200km의 해안선을 가진 해양국가이다. 이베리아반도의 서쪽에 자리잡은 이 나라는 인구의 35%가 서비스업에 종사하며 자연의 아름다움을 가진 관광자원국가로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900년의 역사를 가진 수도 리스본이 있으며, 영국인이 가장 살고 싶어 하는 나라중의 하나이다. 이나라는 B.C 10세기부터 이베르족, 튀니지아인, 로마인, 7세기 모로코 지배, 16세기 스페인 지배 등 이민족의 침입이 잦아 숙명적으로 국민정서에 ‘한(恨)’이 깔려있다. 특히 인접국가인 스페인이 1580년부터 1640년까지 포루투칼을 합병통치함으로써 지배와 피지배자와의 묘한 국민감정이 서려있다. 마치 우리나라와 일본과의 관계 처럼 말이다. 그래서 포루투칼인들의 노래 ‘파두(Fado)’는 운명, 숙명, 사랑을 노래하는 한이 담겨있으며 마치 우리나라의 트로트와 같다. 포루투칼은 스페인과 비교할 수 없는 나름대로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스페인 국민이 정열적이고 활발하고 외향적 이라면 포루투칼인은 조용하고 내향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다. 이나라는 작지만 브라질, 모잠비크, 앙골라, 동티모르 등 한때 세계를 제패했던 제국으로 세계에 영향력이 있으며, 포루투칼어는 세계에서 6번째로 많은 인구가 사용하고 있다. 이나라는 삼복더위나 눈이 오지 않아 휴양지로 적합하고, 2차세계대전시 참전하지 않아 유러귀족들이 피만을 많이 왔으며 지금도 유럽의 유명인사들의 별장들이 많다. 광물질은 유럽에서 3번째로 많이 생산되고, 특산품으로 와인, 커피, 코르크 등이 있다. 거리를 지날 때 쉽게 눈에 띄는 코르크는 세계 최대의 생산국이며 과일과 생선값이 아주 싼 편이다. 1910년 공화정이 선포되고 1928년 살라자르 재무장관이 1974년 쿠데타가 일어나기 까지40년동안 독재정치를 하는 동안 이나라의 발전이 타 유럽국가에 비해 늦어지게 되었다. 위정자들은 우민정치로 3F 정책(축구:Football, 종교: Fatima, 파두:Fado)을 썼다고 한다. 미국과의 관계는 우호적이며 아쏘르섬에는 미군 공군기지가 있다. 이나라 학생들은 여름방학 3개월, 겨울방학 1개월로 교육수준이 낮은 편이고, IT산업은 우리나라의 90년대의 수준이다. 국민성향도 논리적이고 과학적이라기 보다는 서정적이고 로맨틱하다.
▶ 산타클라라 성당, 코임브라대학, 파티마 대성당 홀리데인 호텔을 떠나 처음 관광지로 도착한 곳은 산타클라라 성당이다. 언덕에 자리잡은 이 성당은 이사벨왕비의 시신이 안치된 곳이다. 이사벨왕비는 가난한 시민을 위해 직접 빵을 만들어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어느날 왕이 이사벨 왕비가 들고 있는 바구니에 무엇이 들어느냐고 묻자 거짓으로 ‘장미’가 있다고 했다. 나중에 바구니에 들어있던 빵이 장미로 변했다고 한다. 후에 이사벨 왕비는 평생 동안 밖을 나가지 않고 성당내에 쇠창살속에 살았으며 장미의 기적을 이룬 그녀는 성녀가 되었다고 한다. 작은 쇠창살문을 통해 영성체를 받은 이사벨 왕비의 모습이 그려진다. 10세기 초부터 200년여년간 포루투칼의 수도였던 코임브라는 몬데고 강을 끼고 있는 고도로서, 1290년 코임브라대학을 창설한 이후, 현재는 대학도시로서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 코임브라대학내에 왕궁이 있는데 이는 1500년대에 기증한 것으로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으로 자부심이 대단하다. 지금도 논문을 테스트하는 강당, 도서관을 둘러 보고 테라스에 올라 도시전경을 한 눈에 볼 수 있었다. 역사가 숨쉬는 대학로를 걸어 포루투칼의 최초왕인 알퐁테 알리크의 묘가 있는 산타크르즈 성당에 들렀다. 이곳 성당 바닥에는 숫자가 표시된 묘가 있는데 이는 성당에 돈을 기부를 한 사람이나 귀족들이 묻혔다고 한다. 1917년 5월 13일, 성모마리아님이 발현했다고 해서 유명한 파티마 성당을 찾았다. 루시아(10세), 그녀의 사촌인 프란시스코(9세)와 히야신타(7세) 세명의 목동들은 평소대로 묵주기도를 마치고 돌로 집짖기 놀이를 하던 중 참남무위인 현재의 성모님 발현 소 성당이 있는 자리에 태양보다 더 눈부신 여인이 하얀 묵주를 들고 걸고 서 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후 6월, 7월, 9월, 10월 등 매월 13일 5번 나타나셨다. 10월 13일에는 7만명이 운집한 가운데 ‘태양의 춤’이라는 기적을 보여 주셨고, 그곳에 성당을 지을 것을 요구하셨다고 한다. 1928년 기초공사가 시작된 대성전은 1953년 축성되었으며 매년 5월 13일과 10월 13일에는 30- 40만의 신자들이 운집한다고 한다. 성모님이 발현 장소에도 미사를 드리고 있으며, 자신의 구원을 비는 촛불을 던지는 곳도 한편에 자리잡고 있다. 파티마의 기적, 90년전에 발현한 성모님을 그려본다.
◎ 5월 24일(수) 2일차 - 포루투칼(까보다로까, 지옥의 문, 벨렘탑)
포루투칼에서 수탉은 행운을 상징하는 동물이다. 어느 수도사를 좋아하는 여관주인집 딸이 있었는데, 수도사가 반응이 없자 꾀를 낸다. 수도사가 자신의 물건을 훔쳐갔다고 누명을 씌우고 결국 수도사는 법정에 서게 된다. 법정에서 자신을 결백을 주장하며, 스프속에 닭이 나오면 자신을 믿어 달라고 했더니 그속에서 진짜 수탉이 나왔다고 한다. 이 말을 들은 일행은 상점에서 행운의 동물인 수탉이 그려진 코르크 받침대와 키체인 등을 많이 구입했다. 유럽의 서쪽, 땅끝 마을인 우리나라의 해남같은 까보다로까(CABODA ROCA), 대서양의 끝이 보인다. 지구는 둥글다. 수없는 파도가 수억번을 치고 넘어져 늘어선 수평선, 한번에 그은 획처럼 너무나 부드러운 선이다. 파두가 파도를 탄다. 까보다로까에서 바라본 대서양을 배경으로 한 풍경은 한폭의 그림이다. 빨간등대, 십자가탑, 선인장 들녘, 이름모를 잡초들의 잔치, 올리브나무와 야자수들의 늘어진 풍경들이 너무 아름답다. 제주도의 주상절리 같은 지옥의 문을 보고, 보라색의 아름다움을 주는 자카란타의 가로수의 길을 따라간다. 인도항로를 발견한 바스코다가마의 출항지에 벨렘탑을 보고, 로시오광장을 지나, 코멕시오 광장에 가서 아우구스트거리를 걸었다. 이곳에 사람들은 관광객이 70%를 차지하고 있으며 가죽, 의류제품 등이 주류를 이루는 상가들이 많다. 찬란한 해양국가의 역사가 서려있는 곳곳의 건물에는 그 기록들이 보이는 듯하다. 일정에 ?m기는 일행은 포루투칼 역사의 놀라운 업적을 감상할 겨룰도 없이 다음 목적지인 스페인의 세비야로 다시 바쁜 길에 올랐다. 고속도로상에는 빨강, 하얀 유도화가 눈낄을 끌었다. 해바라기 대평원이 펼쳐진 길따라 파두를 들으며 유럽속으로 깊이 들어간다. 6시간만에 세비야 근교인 아랍풍의 SOLUCAR 호텔에서 여정을 풀었다. 밤하늘의 북두칠성 건너편 북극성을 보며 가족을 그려봤다. ◎ 5월 25일(목) 3일차 - 스페인(세비야), 모로코(탕헤르)
▶ 스페인 개황 꼬모스 따스(안녕하세요). 스페인은 4,200만의 인구를 가진 50만 4천 평방km의 면적(남한의 5배정도)을 가진 투우, 축구, 관광의 나라로 남부는 농업지대, 북부는 산림지대로 구성되었다. 남부는 올리브와 밀밭이 온 대지를 덮을 정도로 많다. 올리브는 약 1억 8천만 그루가 된다. 태양을 팔아먹고 사는 나라라고 불리우며, 북유럽인들이 1년동안 번 돈을 휴가기간 동안 이곳에 와서 다 쓰고 간다고 한다. 이나라는 세계 1위의 관광국으로 GNP는 24,000불이다. 스페인은 굴뚝없는 산업, 즉 관광수입으로 년간 55조원을 벌어 드리고 있다. 이것은 세계에서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날씨가 좋기 때문이다. 스페인은 인종차별이 없는 나라로 미국 다음으로 이민자가 많다. 그런 만큼 불법 이민자 문제도 많다고 한다. 스페인은 1492년도가 매우 중요하다. 크리스토퍼 콜롬부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해(1492년 10월 12일)로서 스페인 곳곳에 동상이 많이 세워졌다. 콜롬부스의 신대륙 발견과정과 이사벨 여왕과의 관계 등을 다룬 ‘1492’란 제목의 영화도 만들어졌다. 스페인은 지방색이 강하다. 특히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 프로축구팀을 놓고 전쟁중이다. 스페인 국가대표 축구팀보다 소속 프로축구팀 응원에 더 열기가 대단하다고 한다. 즉 우리나라 경상도와 전라도의 지방색 보다도 더 심하며, 바르셀로나는 피지배의식을 갖고 있으며 독립을 원하고 있다. 스페인은 유럽의 장수국에 속한다. 첫째, 인간이 살기에 가장 적합한 600-800미터 고지에 살고 둘째, 태양의 나라로 낙천적이며 셋째, 하루 1가지 일을 하며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넷째, 좋은 신선한 음식을 먹기 때문이라고 한다.
▶ 세비야(황금탑, 스페인광장, 세비야 대성당), 모로코 탕헤르 세비야는 안달루시아 지방의 주도로 스페인에서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발렌시아에 이어 4번째로 인구 70만을 가진 항구도시이다. 스페인어로 세빌리아로 불리는 이곳은 세빌리아의 이발사와 카르맨 작품의 배경이 된 도시이다. 1929년과 1992년에 EXPO가 개최 되었으며, ?賦捻館봉? 신대륙 발견 500주년을 기념하여 EXPO 및 바르셀로나에서 올림픽이 개최되었다. 세비야에 도착하여 처음 간 곳은 황금탑이다. 황금탑은 아랍인들이 711년부터 750년을 지배하면서 금과 은 향신료 등을 보관했던 창고로 1220년 과달키비르강 옆에 세워졌다. 이곳은 포루투칼인인 마젤란이 세계일주를 위해 출발한 곳이며 그는 필리핀에서 전사했고, 엘카스 선장이 실제 세계일주를 했다. 스페인광장은 1929년 완공 되었으며, 엑스포가 열렸던 곳으로 현대 관공서로 사용하고 있고, 이곳에는 당시 스페인 52개의 도시를 타일로 만들어 놓았다. 특히 바르셀로나 도시는 콜롬부스가 이사벨여왕을 알현하는 장면이 묘사되었다. 이곳에서는 세비야 출신의 멋진 모델을 만났는데 함께 찍은 사진이 참 멋있다. 감사한 뜻으로 우리 돈 ‘천원권’을 선물로 주다. 엑스포 광장 건너편에 마리아루이사 공원, 무리조 공원을 들러보고 산타끄루스(십자가) 광장을 지나 유태인의 거리에 들렀다. 유태인들이 사는 곳은 대부분 당시 지배자의 곁에서 아첨하는 생활을 했다. 711년부터 1492년까지 아랍인 지배할 당시 아랍궁전 붙어 살면서 고리대금업을 하면서 살았다. 그래서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 미로같은 마을을 형성에서 거주했다. 이들은 1248년 카톨릭 국가가 들어서면서 추방당했다. 이곳에는 키스의 거리, 바람둥이 ‘돈죠바니’ 책을 쓴 신부님의 집도 둘러봤다. 어쨌든 시류에 편승하는 유태인들의 숨결을 거리에서 느꼈다. 세비야 성당은 세계 3대(베드로, 세인트폴, 세비야) 성당중의 하나이다. 이 성당은 14세기부터 15세기에 건설되었으며 탑, 정원, 사원으로 구성되었으며, 면적이 제일 큰 성당으로 기네스북에 올랐다. 예수님의 생애를 조각한 병풍제단은 금으로 도금된 것으로 역시 제일 크다고 한다. 이곳에는 콜롬부스와 1248년 안달루시아를 정복한 알퐁소 10세의 아들인 페르난도 3세의 관이 안치되었다. 세비야 성당을 보고 작은 입이 크게 벌어진다. 몇십분 동안 탑을 올라서면 세비야 전경을 볼 수 있다. 성당 내부의 곳곳은 구약과 신약의 내용들이 그림과 조각으로 그려져 있다. 그 웅장하고 성스러운 건물은 지구가 사라지지 않는 한 영원할 것 같다. 스페인 사람들(학교, 은행, 관공서 등)의 일과는 보통 아침 8시 시작하여 2시에 끝난다. 상점은 아침 10시부터 오후 2시까지 열고 2시부터 5시까지는 점심과 휴식을 하며 5시부터 8시까지 다시 상점을 연다. 세비야 대성당을 보고 일행은 모로코를 가기 위해 ‘연금술사’의 배경이 된 항구도시 타니파(TANIFA)로 향했다. 이동중에 보이는 대평원에는 양떼들, 소떼들, 말들을 볼 수 있고 해바라기, 밀밭이 많다. 투우경기에 참가하는 소들은 보통 5년후 600KG 될 때 투우장으로 간다고 한다. 이곳에 자라는 소는 투우에 많이 쓰이고 말들은 경주말로는 최상품이라고 한다. 타니파에서는 멀리 북아프리카 땅이 보인다. 지블롤타 해협은 스페인과 아프리카땅이 불과 14KM의 사이를 두고 있다. 타니파에서 모로코 탕헤르(TANGER)까지 쾌속정으로 1시간 정도이다. 탕게르는 150만의 인구를 가진 유럽으로 가는 관문이다. 일행은 탕헤르의 쉘란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지나는 행인들은 낯선 동양인들의 모습을 눈여겨 보왔다. 탕헤르 해변가에서 ... 바람이 몹시 세차게 분다. 야자수가 휘어져 흐느적 거린다. 모래가 날린다. 백색 갈매기가 연처럼 떠있다. 행인을 ?m는 사이키가 도시를 가르고, 이방인의 눈에는 모든 것이 새롭다. 예사롭지 않게 보는 사람들, 동양인이에 대한 호기심이 역력하다. 지구촌을 다니면서 느끼는 것은 생활문화가 다를 뿐 인간의 삶은 같다는 것이다.
◎ 5월 26일(금) 4일차 - 모로코
▶ 모로코 개황 쌀람(안녕하세요). 모로코는 북부아프리카에 위치하고 있으며, 71만 평방KM의 면적과 2,600만 인구를 가진 나라로 GNP는 우리나라의 10분의 1인 1,400불이다. 그러나 아프리카에서는 상대적으로 잘 사는 나라로 국민들은 유럽으로 가는 것이 희망이다. 그래서 목숨을 걸고 관광버스의 밑에 붙어서 스페인으로 가려고 한다. 문맹률은 60%이며, 국민들은 수니파로 종교적 규율이 느슨한 편이다. 모로코는 스페인과 프랑스의 지배를 받았으며, 프랑스는 제1의 항구도시로 카사블랑카를 건설했다. 인구는 대부분 북부에 집중되었으며, 서부사하라는 사막지대이다. 809년에 이드리스 왕조가 모로코 페스에 최초 도시를 건설하고 모로코를 지배했으며 11세기에는 알제리까지 지배했으나 15-16세기 스페인, 포루투칼의 지배를 받는다. 17-18세기에는 영국, 프랑스의 지배를 받았으며 1956년 모하메드 5세가 독립을 선언하고 입헌군주제를 선포한다. 그를 이어 하산2세가 61년부터 99년까지 왕으로 있다가 현재의 국왕인 모하메드 6세가 왕위를 이어받았다. 이슬람교를 믿은 사람들은 5대의무를 지켜한다. 첫째, 알라가 유일신이고 둘째, 하루 5번 예배를 하고 셋째, 평생 한번은 메카를 방문하며 넷째, 라마단을 지키며 다섯째, 수입의 40분의 1를 자선하는 일이다.
▶ 페스, 라바트 북부 아프리카 탕헤르에서 1박하고, 모로코의 고대도시인 페스로 향했다. 모로코의 고속도로와 국도를 지날 때 전경은 마치 옛날 한국의 농촌풍경을 보는 듯했다. 당나귀에 짐을 싣고, 양떼를 몰고, 밀밭에서 추수를 하는 등 열심히 일하는 농부들의 모습이 평화로왔다. 그들이 아무리 열심히 최선을 다한 들 우리와 같겠는가. 굳이 우리와 같을 필요도 없을 것이다. 어쩌면 경쟁없이 배부르고 땀흘리며 사는 것이 행복할 것이다. 그들에게 큰 불만이 없다. 일이 잘되도 못되도 ‘인샬라’ 바로 알라의 뜻이니까. 마을에서 제일 높은 건물은 사원이다. 사원에는 교회의 십자가처럼 상징물이 있다. 초생달과 별은 마호메트가 예언을 받을 것을 상징하고, 3개원은 알라신, 마호메트, 코란을 5개원은 5대의무를 뜻한다. 탕헤르 출발하여 4시간 30분만에 페스에 도착했다. 점심은 전통음식인 구스꾸스를 먹었다. 닭고기를 당근, 호박, 배추 등을 토기에 넣고 찐음식이다. 여기에 민트차 한잔은 베리굿이다. 페스는 모로코의 2대 산맥인 아트라스 산맥과 리프산맥이 만나는 곳이며 비옥한 땅으로 고대 로마인들이 이곳에서 농업을 경영하기도 했던 곳이다. 페스는 UNESCO가 도시 전체를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할 정도로 고대문화유적이 그대로 보존됐다. 페스에는 300개구역으로 나누었으며 300개 사원이 있고, 세계에서 가장 많은 골목길인 미로가 있다. 고대도시 메디나에는 9,500개의 미로가 있으며 외부인 잘 못 들어왔다간 길을 헤 맬 수 밖에 없다. 미로에는 나무막대로 통행제한을 하는데 이것은 당나귀의 짐 높이를 재기 위한 것이다. 숨막힐 듯한 이곳 골목길에 50만명이 거주하고 있다. 고대부터 지금까지 같은 방식으로 염색을 하는 공장이 봤다. 냄새를 코를 찔러 입장할 때 민트 잎을 코에 대고 갔다. 페스에서 2시간 30분만에 모로코의 현재 수도인 라바트에 도착했다. 이곳에는 공무원, 군인, 대사관 직원 등 엘리트를 주로 살며, 대서양을 낀 도시로 이슬람국가의 왕족들의 별장들도 다수 있다. 모하메드 6세 현 국왕의 왕궁을 지나오는데 각 초소에는 특수부대원, 경찰, 안기부 직원 등 약 7-8명이 경비를 하고 있었다. 대서양이 바라다 보이는 미완성 사원에 자리잡은 모하메드 5세 국왕과 하산 2세와 동생이 안치된 묘소를 둘러봤다. 이어서 다음 목적지인 카사블랑카로 향했다. 오늘 하루는 탕헤르, 페스, 라바트를 거처 카사블랑카까지 약 9시간을 버스로 이동했다. 여행중 가장 긴 버스이동이다.
◎ 5월 27일(토) 5일차 -모로코(카사블랑카),페리호,스페인(그라나다)
카사블랑카의 워싱턴호텔에서 1박을 하고 시내전경을 둘러봤다. 카사블랑카는 550만 인구를 가진 모로코의 최대도시로 15세기 이 도시를 건설한 포르투칼인이 붙인 이름으로 하얀집이란 뜻이다. 영화 ‘카사블랑카’로 유명세를 타는 이도시는 일행에게도 많은 기대를 주었지만, 막상 와서보니 영화에서 봤던 ‘릭카페’도 없고 아랍의 일반 도시와 다를 바 없었다. 단, 하이야트호텔에서는 당시 영화를 연상케하는 카페와 음악도 들려준다고 한다. 버스로 이동중에 이 추억의 영화를 감상했다. 이영화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제2차대전 중 나치스의 구두발 소리로 드높은 불란서령 모로코를 무대로 사랑하지만 서로를 위해 헤어져야만 하는 연인의 가슴 아픈 스토리를 그린 명작 애정 영화. 험프리 보가트의 남성적 매력과 잉그리드 버그만의 아름다움, 그리고 두 사람이 작별하는 카사브랑카 공항의 마지막 장면이나 술집 손님들이 불란서 국가 "라 마르세이에즈"를 합창하는 장면 등 이야기, 연출, 연기 모두가 훌륭하고 감동적인 영화로 평가받으면서 수 많은 아류작을 낳기도 한 헐리우드 최고의 애정 영화로 꼽는 명작이다. 아카데미-작품, 감독, 각색의 3개 부문을 수상했다. 카사블랑카에는 세계에서 메카 다음으로 큰 이슬람 사원인 하산2세가 모스크가 있다. 1992년에 완공된 이 사원은 탑 높이가 200미터이며 대서양을 끼고 동쪽을 바라 보고 있다. 10만여명이 동시에 예배를 볼 수 있고, 5천명이 동시에 샤워를 할 수 있는 시설이 있다. 이사원은 국민들이 낸 성금으로 건축되었다고 한다. 카사블랑카 도시를 한바퀴 돌고 스페인의 그라나다를 가기 위해 먼저 탕헤르 항구로 이동했다. 점심식사 시간에는 가장 인상 깊었던 한국식 도시락을 먹었다. 한국인이 직접 만든 음식으로 오랜만에 김치, 오이소박이 등을 먹고 나니 생기가 도는 듯 했다. 항구에 도착하니 파도가 심하여 쾌속정이 1시간 늦게 출발했다. 일행은 모로코를 올때 아주 편하게 왔기 때문에 파도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왠 일 일까. 출발한지 약 40여분이나 지났을까. 갑자기 배가 흔들거리가 시작했다. 배멀리 경험이 있던 나는 바짝 긴장이 되었다. 자리에 꼼짝 못하고 승무원이 준 얼음주머니를 목에 대고 배의 안전과 빨리 도착하길 간절히 바랬다. 일행 대부분은 혼줄이 났고, 몇몇분은 여행을 잘 못왔다며 후회도 하고 각기 별생각을 다했다고 한다. 타이타닉이 아니길 다행이다. 다시 버스를 타고 스페인 코스타 델 솔(태양의 해변) 해변가에 위치한 서머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호텔에 도착하여 짐을 옮기려는데 음악이 들여 카페에 들어가 보니 스페인 노부부들이 살사춤을 추고 있었다. 한 할머니께서 자꾸 불러서 함께 춤을 추었다. 이해변은 약 300km이며 골프장만도 30여개가 있다. 오늘 장거리 버스이동과 멀미로 바로 잠을 청했다.
◎ 5월 28일 (일요일) 6일차 - 스페인 꼬르도바, 그라나다
이동전에 호텔주면 동네 한바퀴를 돌았다. 이른 아침인데도 태양이 빛난다. 집집마다 향기로운 꽃들이 넉넉한 아침을 맞고 있다. 일행은 코스타 델 솔 해변가에 와서 전형적인 지중해 휴양지를 둘러봤다. 바람 한점 없고 파도도 잔잔하고 태양이 작열하고 모래는 솜털같고, 물도 차갑지 않은 아름다운 해변이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며칠이라도 이런 곳에서 쉬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다. 어떤 여성 휴양객은 상체를 홀딱 벗고 천연스럽게 태양을 맞고 있었다. 참 자연스럽다. 누가 보든 말든 관심을 두지 않는다. 이곳에는 수백억원을 호가하는 요트들이 정박해 있다. 이곳 사람들이 희망이 있다면 좋은 개인보트를 하나 갖는 것인데 유지비가 비싸서 보통사람은 주어도 관리를 못한다고 한다. 2천년이 넘는 역사를 간직한 꼬르도바에 도착했다. 이 도시는 인구 30만의 구도시로 페르키아인이 건설하고 로마인과 이슬람인들의 영향을 받은 도시이다. 수세기에 걸쳐 흘러온 다양한 문화를 볼 수 있다. 로마시대 건설된 성안쪽에는 유태인거리를 걷다가 네로황제의 스승인 스토아 철학자인 세네카의 동상을 만났다. 1일을 3등분해서 일하고, 자고, 노는 것을 최초로 등분한 사람인 백마이모이데시의 동상 앞에서는 그 발등을 만지며 무병을 기원하기도 했다. 꽃의 거리를 지나 꼬르도바 대성당에 도착했다. 이성당은 8,9,10세기에 걸쳐 건설되었으며, 지진이 일어나도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흰 돌과 붉은 돌을 섞어가며 완충의 효과를 냈다. 이 성당에는 1,013개의 돌기둥이 있어 마치 기둥의 숲을 이루는 것 같았다. 16세기에 카톨릭인 아랍성전을 없애고 새로 지웠지만 무너졌다고 한다. 카를로스 5세 황제는 꼬르도바성당을 보고 “어느 마을에나 있는 성당하나 지으려, 이 사원을 없앴는가”라며 극찬을 했다고 한다. UNESCO에서 세계유산으로 지정한 건물로 최고로 그 가치를 인정하고 있다. 꼬르도바를 돌아 인구 40만의 그라나다로 행했다. 이도시는 5만명이 학생으로 대학도시이다. 시에라네바다 산맥을 끼고 대분지에 부채살처럼 퍼져있는 아름다운 도시이다. 스페인에서 그라나다와 마드리드 물이 제일 좋다고 한다. 오늘 저녁의 하이라이트는 플라밍고(Flamenco)춤을 관람이다. 그라나다에는 3개의 플라밍고 공연장이 있는데 우리는 알함브라 궁전이 보이고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곳에 위치한 공연장을 찾았다. 관람석은 100석인데 시간이 되자 빈자리가 없었다. 플라밍고는 집시들의 한, 마치 우리민족의 한 같은 것이 서려 있는 춤이다. 네모난 북, 피리, 기타를 치는 악사와 창을 하는 가수 그리고 춤추는 연기자로 구성된다. 손벽을 치고, 양다리로 힘차게 땅을 구르는 구둣소리, 절도있는 동작, 응시한 눈, 휘돌아 감는 치맛바람, 신들린 것처럼 사시나무 떠는 것처럼 끊어지는 율동은 전율을 느끼게 한다. 몸속에서 베어나는 열정과 새어나오는 땀방울은 관람객을 쏙 빠져들게 만든다. 특히 안달루시아 플라밍고 경연대회에서 1등을 한 16세의 아리따운 여배우의 춤은 아직도 눈에 아른 거린다. 그 눈과 몸의 율동 그리고 피를 역류케하는 힘찬 힐소리...끊어질 듯 다시 이어지는 정열의 동작에서 경외감까지 느껴진다.
◎ 5월 29일(월) 7일차 - 스페인, 그라나다 알함브라궁전
안달루시아 지방의 그라나다는 분지로 마치 과일이 입을 버린 모양으로 ‘석류’라는 뜻을 갖고 있다. 역사적으로 이사벨여왕이 그라나다를 정복함으로 스페인을 완전 통일하게 된다. 바로 이곳에 그 유명한 알함브라 궁전이 위치하고 있다. 이곳에 오기 전까지는 알함브라 궁전은 중동의 아랍국가에 있는 것으로 알았다. 아사리에왕조가 꼬르도바에서 ?m겨나 1238년부터 궁전을 짖기 시작하여 15세기에 완성된 이 궁전은 하루 7,500명의 관광객만이 입장할 수 있고, 사전 예약 없이는 볼 수 없다. 1492년 1월 2일 알함브라 궁전의 주인 왑딜왕이 이사벨여왕에게 무릎을 꿇고, 시에라네바다 산맥을 넘으며 알함브라 궁전을 더 이상 볼 수 없어 눈물을 흘렸다고 한 이 아름다운 궁전을 보는 것은 이 여행의 백미이다. 이 궁전의 특색은 지진을 대비하기 위해 대리석 사이에 납을 사용한 점, 화재를 대비하여 불을 사용하지 못하고 난방을 위해 뜨거운 물이 흐르도록 한 점, 고지대에 위치한 이 궁전에 수압을 이용한 분수대 및 수로를 둔 점, 우상숭배를 하지 않기 위해 벽문양을 조각한 점, 유럽에 스페인에만 있는 아랍양식, 종류석 모양의 건축양식 등이다. 대사의 방, 아라야네스트 뜰(만물은 물에서 시작된다고 한다. 그래서 인지 연못을 만들어 거울처럼 비치게 했다), 사자의 뜰, 쌍둥이방, 사우나시설, 까를로스 5세 왕의 방, 후안나 여왕의 방 등을 둘러봤다. 알함브라 궁전은 나사리엣 궁전, 카를로스 5세 궁전, 알카사바 성, 신의정원으로 구성됐다. 알카사바 성에 올라서니 멀리 이사벨여왕이 묻혔다는 그라나다 성당과 과거 집시들이 모여 살았다는 동굴도 보였다. 이 궁전이 너무나 아름다워 워싱턴 워빙(Washington Irving)이란 작가가 이곳에 기거하며서 ‘알람브라 추억’이란 책을 집필했다고 한다. 중식후에 그라나다 대학생 합창단(Tuna)이 부르는 ‘알함브라 궁전’,‘메사메무쵸’, ‘그라나다’ 곡을 들으며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로 향했다. 마드리드로 향하는 고속도로 주면은 온통 올리브나무로 숲을 이루었다.
◎ 5월 30일(화) 8일차 - 스페인 똘레도, 마드리드
마드리드 시내에서 약 40분 거리에 위치한 홀리데인 호텔을 떠나 오전에는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똘레도 구도시를 찾았다. 똘레도는 3면이 강으로 둘러쌓인 천년요새지이다. 똘레도 대성당은 고딕양식을 갖춘 최고의 성당으로 바티칸 성당보다 더 훌륭하다는 평을 듣고 있다. 1226년부터 1498년까지 272년동안 지어진 건물로 스페인에서 2번째 큰 성당으로 본성당의 역할을 하고 있다. 성경내용을 조각한 작품, 그림등으로 장식된 이 성당은 정말 탄식이 절로 나온다. 17세기에 만들어진 파이프 오르간과 날쌘돌이 별명의 루카스화가가 양손으로 그린 천정벽화 앞에서도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천정에서 모자가 걸린 곳을 볼 수 있는데 아래에는 대주교의 무덤이 있다고 한다. 똘레도에는 엘그레꼬라는 화가가 유명하다. 그리스출신의 엘그레꼬는 한평생 똘레도에 살았는데 ‘오르가즈백작의 매장’이란 작품이 유명하다. 오르가즈 백작은 14세기 재무장관으로 믿음이 성스러웠다고 한다. 산또또메성당에서 엘그레꼬화가에게 이작품을 의뢰했는데 처음에는 약속한 값을 주지 않자 소송을 걸었다고 한다. 이 작품의 상부는 천상의 세계, 하부는 백작의 안치를 하는 그림으로 14세기 배경에 자신을 포함해서 16세기 사람의 생각을 표현해서 넣은 점이 특이하다. 검은옷에 흰옷을 투명하게 비추게 그린 점을 인정받아 나중에 제 값을 받았다고 한다. 오는 길에 탤런트 이영애가 CF를 찍었다는 다리를 지나 스페인 전통음식인 ‘파에야’를 먹는 식당으로 이동했다. 스페인광장에는 1928년 세르반테스 서거 300주년을 기념하여 만들어진 세르반테스, 돈키호테, 판쵸 동상이 있다. 주변에는 1954년 완공된 28층 건물, 1957년에 완공된 32층의 건물이 수십년이 지났지만 현대적인 감각을 보여주고 있다. 이 광장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스페인 왕궁으로 향했다. 이 왕궁은 단일건물로는 베르사이유 궁전보다 더 좋으며, 2,800여개의 방을 가졌다. 1738년부터 1764년까지 26년간 지어졌다. 루이14세의 손자인 펠리페5세부터 짖기 시작했는데, 부르봉왕조에 비해 너무 보잘것 없었고 목조 건물이 불에 타 다시 짖기 시작하여 마드리드 아버지라 불리는 카를로스3세가 완공했다. 각방은 색의 특징을 나타내고 있는데 핑크색방, 파란색 방, 회색방 등이 있고 대사의 방, 카를로스3세방, 도자기방, 만찬의 방 등이 특색있게 꾸며져 있다. 카를로스 4세 국왕은 정치는 제대로 하지 않고, 사냥만 즐겼다고 한다. 그래서 마이사루이사 왕비가 통치를 하게 되는데 나중에 고도히라는 경비대장과 눈이 맞아 염문을 뿌렸다는데 그러그러한 방도 있었다. 순금으로된 500KG의 샹제리도 있고, 기네스북에 오른 세계에서 가장 긴 식탁도 있다. 멕시코, 페루 필리핀 등 세계를 한 때 제패했던 왕국답게 궁실마다 호화찬란하게 꾸며 놓았다. 왕궁을 보고 레알마드리드팀이 우승하면 축제를 여는 시벨레스 광장, 콜롬부스광장, 영점지대, 시청을 지나 한식당으로 이동했다. 일행은 식후 홀리데인호텔로 이동했으나, 나는 마드리드 시내에 남아 백화점과 영점지대가 있는 SOL에 가서 아이스크림과 맥주 한잔을 하고, 지하철과 시외버스를 타고 안전하게 호텔로 귀가했다.
◎ 5월 31일(수) 9일차 - 스페인 바르셀로나
아침을 먹고 바로 마드리드 공항으로 이동했다. 국내선을 타고 1시간30분만에 까딸루니아 주도인 바르셀로나에 도착했다. 인구 178만의 바르셀로나는 스페인의 제 2도시로 우리나라 부산이라고 할 수 있다. 1856년 바둑판처럼 설계된 이도시는 공원이 적어 가로수가 많은 편이다. 이 도시는 유럽사람이 제일 좋아하는 도시중의 하나이며 상공업도시로 전유럽과 연결되고 캐나다 퀘백, 영국의 아이랜드처럼 자치독립을 원하고 있다. 한때 마드리드가 이곳을 지배했기 때문에 우리나라 전라도, 경상도 보다 더한 지역감정이 있다. 특히 이런한 감정?? 축구경기에서 폭발한다고 한다. 바르셀로나에 도착하여 국립박물관이 위치한 곳에 올라 시내 전경을 바라보고,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이 개최된 경기장을 찾았다. 몬주익 언덕을 오를 때는 당시 마라톤 금메달을 딴 황영조의 선수의 드라마틱한 숨결을 느낄 수 있었다. 몬주익 경기장 입구 건너편에는 황영조 조각상이 있었다. 그 옆에는 ‘역사와 예술의 나라 스페인, 찬란한 고도 바르셀로나 이곳에 동방의 아침의 나라 대한민국과 그 힘찬 빛이 같이 어리어 일어나라. 이 뜨거운 우정 만방에 영원하라’라고 새겨진 경기도가 기증한 자매결연 기념비가 있다. 바르셀로나는 한마디로 가우디 건축가 도시라고 할 수 있다. 곳곳에 명걸작품인 가우디 건축물을 볼 수 있었다. 바르셀로나 하면 황영조와 가우디이다. 가우디는 1852년에 출생하여 바르셀로나 근교에 독신으로 74세까지 살았으며 1926년에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가우디는 대자연에 착안하여 자유분망하게 건축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나무형상, 인체모양, 잎새모양, 꽃, 자연현상, 버섯, 소라, 벌집, 달팽이, 옹이, 미생물 등 자연현상을 비대칭, 곡선형식으로 건축하는 독특한 양식을 뽑낸다. 그래서 많은 건축학도들이 이곳에 찾아와 가우디를 배운다고 한다. 가우디의 걸작인 ‘사그라다 패밀리아’성당을 보면 우선 입이 벌어진다. 이것이 돌로 만든 건축물인지 나무소재로 만든 조각상인지 알 수 없다. 이것은 신이 아니면 만들 수 없는 것이 아닐까. 이 성당은 가난한 성도들 위해 21가족이 모여 1882년부터 짖기 시작했다. 가우디는 31세부터 16년동안 이 성당내에서 거주하면서 직접 자기손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구약과 신약의 성서내용을 묘사한 작품 하나하나에는 성스러움이 서려있다. 또한 인체공학적, 영구적, 역사적 사실, 기하학적인, 신비세계가 담겨져 있다. 정문에 옥수수모양의 탑은 종소리가 멀리 퍼지도록 설계된 것이다. 내부에 들어가면 나무뿌리, 가지가 연상되는 기둥은 나중에 완성되면 자연 숲이 된다고 하니 기대가 된다. 이성당은 년간 250만명이 관람하고 있으며, 관람중에도 공사는 계속되고 있다. 약 200년간에 걸쳐 이성당은 완성되며 현재 124년동안 건축중에 있다. 가우디의 또하나의 걸작은 구엘공원이다. 구엘공원은 1986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으며, 가우디의 전위작품이다. 돌폐품을 모아 만든 산책로, 돌기둥은 쓰러질 듯하면서 튼튼해 보이고, 투박하면서도 은근한 매력을 끈다. 가우디의 장난스럽고, 인간상상을 초월하는 양식, 돌을 손으로 주무르듯 만든 것을 보면 그가 얼마나 천재성이 있는지 알 수 있다. 구엘공원에서 가우디에 흠뻑 졌었다. 자연 흐름대로, 자연과 함께는 바로 요즘 말하는 친환경적 건축이다. 구엘공원 광장에서 인체공학적으로 만든 긴의자에 앉아 지중해를 바라보노라면 시간을 잊는다. 바르셀로나는 가우디이다. 일행은 1900년 초반에 조성된 바르셀로나의 람블라스 거리를 끝으로 공식적인 여행을 마쳤다.
◎ 6월 1일(목) 10일차 -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인천공항
지중해 해변가에 위치한 아쿠아 호텔의 전경은 아름다웠다. 이제 몇시간이면 이곳을 떠난다. 나는 이곳을 떠난다는 아쉬움에 식사를 일찍 마치고 해변가 ?m아갔다. 길게 늘어선 수평선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내마음을 두고 이곳에 가는 것이 아니라 내마음에 지중해를 담아간다. 바르셀로나 공항에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으로 가기 위해 공항을 가는데 고속도로가 차로 꽉 막혀 겨우 출발 1시간전에 도착해 일행은 하나같이 허겁지겁했다. 이곳에서도 한국인들의 급한 성격은 못 말렸다. 가이드보다 항상 앞장 서려는 부지런한 모습말이다. 3시간만에 소폴치 공항에 도착하여 면세점에서 선물을 골랐다. 여행을 시작한지 어제 같은데 벌써 귀국길이라니 참 아쉽다. 짜여진 일정에 맞추다 보니 미련도 있어지만 짧은 시간에 많은 것을 구경하고 느꼈다. 나는 여행중에 가이드의 설명에 주목하고 메모했다. 여행지의 역사를 배우고 문화를 체험하려 무진 애를 썼다. 그냥 편히 지나가도 될 것, 나의 여행습관 때문이지 이번에도 이렇게 나의 행적을 기록에 옮긴다. 여행이란 무엇일까. 일상을 탈출해서 무심으로 가는 것이다. 미지세계에 대한 감동속으로 빠져드는 것이다. 나를 잊고 새로움을 접하는 것이다. 아니 나를 다시 새롭게 찾는 것이다. 여행은 또다른 여행을 위한 준비 여행이다. 여행은 무한한 호기심을 자아낸다. 여행은 쇼핑이다. 여행은 시간을 버리고 얻는 기쁨이다. 여행은 설레임이다. 여행은 계획한 것을 확인 하는 것이다. 여행은 재충전이다. 여행은 필수는 아니지만 행복을 위한 선택이다. 소피아로렌이 주연했던 영화 ‘선플라워’에서 보았던 그런 해바라기 벌판, 고속도로변에 끝없이 펼쳐진 흰색, 빨강의 유도화의 꽃길, 향기 그윽한 오렌지 가로수길, 보라색 빛의 자카란타의 가로수가 눈에 그려진다. 스페인광장에서 촬영하면서 만난 미모의 모델, 플라밍코 춤을 추는 정열의 여인, 대평원에 올리브나무, 코르크 나무, 들판을 유유자적하는 소와 양떼들이 다가온다. 초인이 아니면 만들 수 없는, 신의 경지에서 이루어낸 불후의 명작인 대성당들, 그 웅장하고 인간을 압도하는 건축물에 그시대의 명인들이 스쳐간다. 작열하는 태양빛, 여유가 넘치는 거리, 고대와 현대가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는 지중해 낙원이 파노라마처럼 너울댄다. 아! 포루투칼 아! 모로코 아! 스페인 지중해 연안국의 여행은 평생 잊지 못할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기약없는 어떤 날 다시 찾고 싶은 내가슴이 머무른 아름다운 추억들이여 !!! 2006년 6월 9일 지중해 여행을 마치고 강요식 씀 지중해여! 하늘과 바다가 하나되고 그사이에 낀 흰구름 파도는 끝없이 말하고 노래하고 춤을 춘다 부서지는 물보라 하얀 속옷을 드러내고 사라진다 멀리 떠가는 배는 바다를 날아가고 지중해는 바람없이 잠을 자고 있다 출렁이는 파도는 높고 낮은 음자리로 지도를 그린다 물머금은 모래는 바삭바삭 소리내며 큰 숨을 들이쉰다 아 지중해여 천연의 낙원 내가슴에 품어 하나가 되고싶다 아 지중해여 네가 쏟아내는 짠 냄새 그 짜림함이 콧끝에 상큼하게 스친다 내가 파도라면 오늘도 내일도 변함없이 자연이 되고 싶다 쓸고 말아 다시 쓸고 다시 감아 더 높이 더 낮게 숨없는 생명소리 지중해 너를 두고 간다 아니 너를 품고 간다 내 다시 이곳에 땅을 딛지 못해도 청정한 그 자태 그 넉넉함을 잊지 않으리. 지중해여.
첫댓글 소중한여행 인생에 큰도움이됬으면 하는바램이외다... 큰일을하면서도 항상 소박한 카페에들러 나의예기를 친구들께 전해주는 칭구 .. 모든걸잊고 따끈한 차 한잔하며 잠시 쉬어 가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