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함과 꿈이 많던 학창시절, 그 시절은 누구에게나 아름다운 순간입니다. 그래서 많은 친구들이 관심을 가지고 재미있어 하시네요. 못다 올린 옛 사진 몇 장과 그에 얽힌 사연들을 올립니다. 그냥 웃으며 옛날로 돌아가 봅시다.....

누군지 잘 몰라... 본인도 잘몰라 화제가 되었던 선글라스 아가씨....

원본이다. 옛날 고물 카메라는 까딱 잘못하면 광선이 들어 사진을 망치곤 했다. 촬영 상태가 영 안 좋아 Shin에게 돌려주지 못했던 것 같은데... 이렇게 사십 몇 년이 흐르자 포토삽의 도움으로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지기님 수고한다고 신경 좀 썼어이~~~ 근데 신경을 너무 많이 써서 좀 헷갈린 듯~~~

보관 상태가 좋은 것 같지만 사실은 아래 사진처럼 사오십년 보관하다보면 손상이 많다. 포토샵 덕분에 손쉽게 복원이 가능하다. 포토삽, 정말 좋은 프로그램이다. 수많은 컴퓨터 프로그램들이 우리의 상상과 꿈을 현실로 만들어주지만, 그 중에 하나를 꼽으라면 주저 없이 포토샵을 택하고 싶다. 우리의 감성을 채워주기 때문이다.....

다정한 친구사이 같지만 동갑내기 누이 !!! 물론 태어나서 오빠소리 들어본 적 없지만..... 그래도 동갑내기 누이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내 친구들 나에게 잘해 주었다. 그거 생각하면 한 턱 내도 안 아까운데. 근데 그 땐 참 날씬했어이~~~ 물론 지금도 날씬해지는 중이겠지만....(진짜로 그렇게 믿고 있음).

어~느날 여고시절 ~~ 학교 뒤 바닷가인 듯, 누가 멋을 부린다고 앵글을 돌려서 찍었다. 원래대로 수평으로 맞추다 보니 이렇게.....그래도 운치가 있는 것 같다. 역시 여고생은 교복을 입어야 꿈과 낭만을 간직한 것처럼 보인다.
사진 올렸다고 오라버니 하시는 일에 뭐라 하지 마라~~~ (꼽거든 두 달 먼저 태어나시던가....)

그 시절 등산갈 때는 당연히 일본군이 쓰던 “항고“를 가지고 가서 밥도 짓고 찌개도 끓여 먹었다. 태요가 항고를 세 개 씩이나 막대기에 걸치고 밑에서 나무로 불을 피워 요리하고 있다. 무얼 그리 많이 만들어 먹었는지.... 용진각 계곡의 어느 동굴 앞이다.

고교 시절에는 지금보다 술을 적게 드셔서 그런지 얼굴이 참 깨끗하네요 ~~~~

Young Shin, 써놓고 보니 정말 그럴 듯 하네.... 젊은 시절 신, 입에 큼직한 과자를 물고 당당하게 포즈를 취한다. 언제나 명랑한 “빨간머리 앤“ 같은 소녀였다. 옆에 있는 풍란은 언제나 조용한 모습이다. 이번 산행에서 잠깐 소식 들었는데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너무나 조용해서 앞에서 어떻게 어필할 기회조차 없었다....ㅎㅎㅎ 잘 지내고 계시죠?

둘이 한창 좋아 연애하던 시절, 지금이나 그 때나 둘이서 잘 붙어 다녔다. 다른 점이 있다면 당시에는 여럿이 있을 때는 사진에서처럼 은근 슬쩍 떨어진다는 점이다. 그래도 친구들은 모르는 척, 관심 없는 척 배려해주었다. 두 사람 아는지 모르겠다... 그 두 사람이 누구냐고? 그런말씀 하시면 우리동창 아니다.

그냥 평범한 산행 사진이 아니고 40년전 빈잔과 둘이서 30일간의 배낭여행 출정식이다. 지금은 철거된 관덕정 앞 분수대에서 우헌과 다른 제주시 친구 둘이서 배웅을 해 주었다.
큼직한 배낭 속에는 한 달간 먹을 쌀, 냉국에 쓸 마른 톳, 양파, 된장 1통, 샘표간장병에 넣은 재래식 간장 1병, 통마늘 몇 접, 빈잔 이모가 싸준 멸치 도시락통 1개, 텐트, 담요 2장, 약간의 옷가지, 빨래비누 하나와 세면도구, 구급약(?)으로 피엠과 아까징기 각 1병, 연료통(샘표간장 병) 그리고 양철 석유곤로 1개가 들어 있다. 당시 석유버너가 7~8천원 했으니 쳐다볼 엄두도 못 내고 궁리 끝에 400원짜리 양철 곤로를 사서 가지고 다녔다. 부피는 크지만 매우 가볍고 실용적이다. 그래도 양철 곤로 들고 다니며 여행하는 사람은 우리 말고는 평생 본적이 없다. 모자는? 당연히 가장 값싼 패랭이를 사서 썼다.
부산으로 가서 서울거쳐 목포로 약 20일 동안 돌아다니고 왔다. 1인당 8천원~1만원 정도로..... 당시 쌀 한가마니 가격이었다. 왕복 뱃삯 3,000원 정도를 빼면 6천원 내외, 정말로 교통비도 안 되는데, 출발시에는 한 달 동안 걸어서 서울을 갔다 오기로 했으니 교통비 없음, 잠은 텐트에서 자니 숙박비 없음, 쌀과 냉국 재료를 전부 준비했으니 식비 없음. 오직 담배 값, 밥 짓는 세기지름 값, 유적지 입장료 정도만 생각하니 그 정도로 충분할 것 같았다. 물론 시골에서 고생하시는 부모님께는 말도 못하고 몇 달 동안 알바하고 용돈 절약해서 어찌어찌 경비를 마련했다.
부산에 도착 후 무거운 배낭매고 그 무더위 속에 하루 30 km 정도 걷고 나니 완전 녹초, 다음날부터 완행열차 타고 다녔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던가.... 촌놈들 계산만 그럴 듯 했지 말도 안 되는 경비에 터무니 없는 계획이었다. 그러니 가는 곳 마다 아는 사람, 모르는 사람 신세를 질 수 밖에 없었다. 특히 서울에 있던 고향친구들의 환대와 도움은 정말 잊을 수 없다.
지금까지 오만데 다 돌아 다녀 봐도 그런 감동을 주는 여행은 없었다. 그래도 그 꿈을 한시도 버린 적 없다. 우리들의 역마살은 아직 끝난 게 아니다....!
첫댓글 창남아 ~깍궁 ~^^너랑 찍은 이쁜 여자친구는 정자니?~ 김순정 닮았어?? 알사탕 입에문 영신이와 경자, 그외 여자애들 하나도 모르겠다~~어디 소풍가서에서 찍은거같아~~ 길현이와, 창남이 그 옛날에도 참 멋진 사나이였네~~ 그때의 도전과 용기가 지금껏 살아오면서 인생에 큰 지침이 되지 않았을까~ 사십년의 긴 기억을~ 하나하나 더듬으며 생생하고 유머스럽게사진과 글로 올려준 창남이에게 무안한 고마움을 보내~~^^ 덕택에 오늘은 나도 어린 여학생으로 기분up~^^
순신아 ~ 나눈에는 영신이 담배 문것같에~~~ㅋ ㅋ ㅋ
~ 포토삽 하느라 수고했네~^^ 이제보니 알만해~~ 그래도 기억은 가물가물~~
관덕정앞 멋쟁이 웅매들 사이에 조매는 누구세여?????
ㅎㅎ..양철곤로는 아이다..싼 국산버너였지..생각나는가?? 어느역인가에서 찌개 끊이다 엎허진거 태연히 다시담아 끊여먹었지 맛이 기똥차부렀지....철로변 걸으며 개구리잡아 먹고 단백질보충,,,,,아!!옛~~날이여!!
~ 진짜, 개구리도 먹어본거야~~ㅋ 대단해 그, 어린 나의에~~
고기가 들어간 반찬은 멸치 한 마리도 사먹지 못했네.... 담배도 둘이 합의해야 한개비 가지고 번갈아 나눠 피고, 개구리는 참 지천으로 널려 있었다. 잔뜩 잡아서 저녁에 구워 먹었는데 정말 그 맛 끝내준다. 그리고 매우 고단백이고...그래도 우리에게 잡아먹힌 개구리 생각하면 정말 짠~ 하다....
1973년 지금부터 40년 전 이야기다. 이 글 보고 나도 앨범 찾아봤다. 여기 내가 들어간 사진은 모두 있었고, 여기 올리지 않은 사진도 몇 장 있더라. 옛 추억을 더듬게 해줘서 고맙네. 해암....
~ 나도 시간내서 옥탑방에 쌓아둔 앨범한번 찿아봐야겠다~~^^ 어제 영희가 풍란만나러 오면서 구겨지고 빛바랜사진 몇장 들고 왔드라~~ 잠깐 이지만 추억에 젖어 ~ 애기 꽃을 피우며 지난 학창시절을 되돌아봤어~ 모두들 입가에 아련한 미소가 ~ 한참동안 정지된 시간속에 머물고 있었지~~^^
첫째 사진이 순신이가 맞구나, 창남이랑 찍은 예쁜 여햑생은 순신의 생각 맞따나 순정이로 생각했어, 근데 창남이가 애월고에는 왜 끼어있지. 역시 시간이 멈춘 것 같애.
요요야 창남이랑 찍은사진은 창남이 누나 정자네~~
누이 덕분에.... 이제라도 한턱 솨야 하는데....
우헌~~ 왜 무거운짐은 창남이남 책임져야돼~~어린때부터 무거운짐만 지고다녀서 키가못컷네~~ㅎ ㅎ ㅎ
우헌은 사진마다 항상 빈몸으로 간들간들~~~ㅋ ㅋ ㅋ 그래서 키만큰것같에~~~지금이라도 보상해줘~~^^ ^^
철친! 왜 나만 갖고 그래? 그 때 나는 안 갔단말야....흑흑. 가고 싶어도 못 갔단 말야.... 내가 같이 갔으면 무거운것은 내가 졌지..... 너 눈에는 창남이만 불쌍허게 보염지!
관덕정에서 찍은 것 중 병훈이와 승주사이에 있는 녀석은 누구야?
대봉이......
그렇구나, 아무도 모르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