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본격적인 여행의 시작이다. 채 3시간이나 잤으려나? 여행의 시작은 아침 식사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남은 여행의 음식도 "이 정도는 되려니..." 생각하였다. 호텔의 아침 식사는 서안 시내의 호텔이어서 그런지 괜찮았다.
우리가 묵은 서안광성대주점(호텔)
첫 코스는 병마용갱 박물관이었다. 개인적으로 세 번째, 연구소에서도 두 번째이지만 명색이 『사기』를 주제로 내건 여행이니만큼 빼놓을 수가 없는 코스였다. 지난 2005년의 여행과 유일하게 겹치는 코스였다.
이곳은 진병마용1호갱대청이다. 전체 병마용갱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큰 곳이다. 진나라의 군대 편제를 잘 보여주는 곳이다.
입장하기 전에 심가이드가 병마용갱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다. 이때만 해도 관람객이 많지 않았는데 설명이 좀 길어지는 바람에 어느덧 관람객이 내부를 꽉 채웠다. 그러나 중국의 인해전술로 애를 먹은 곳은 전 일정을 통하여 이곳 뿐이었다.
1호갱의 전경. 세 번째 와서 그런지 감흥이 전보다는 못하였지만 그래도 볼 때마다 참 대단한 곳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게 만든다. 6국 통일 후 넘치는 힘을 전부 이곳에 쏟은 것이나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진용(秦俑)이 아주 위엄있는 진용(陣容)을 보이고 있다. 이곳은 약 3m 정도의 깊이로 참호를 파서 양옆에 나무 시렁을 설치한 후 그 위쪽을 살짝 가리고 흙으로 덮어서 마감을 하였다. 왼쪽 아래 편에 나무가 보이고 오른쪽의 움푹한 홈은 그 나무를 얹었던 표시이다.
진용의 얼굴은 동일한 것이 하나도 없다. 심지어 헤어스타일도 같은 것이 하나도 없다. 지금은 빈 손이지만 제작 당시는 실제 무기가 손에 들려 있었다고 한다. 원래 채색된 형태였지만 발굴 당시 공기에 노출되면서 색이 모두 사라졌다고 한다.
제작 방식은 몸통을 따로 만들고 손과 머리는 나중에 결합시켰다고 한다. 내부는 비었는데 그래야 굽는 과정에서 균열이 생기지 않고 더 단단해진다고 한다.
정리를 포기한 것인지 안한 것인지 뒤쪽으로 가면 아직도 이런 모양으로 방치된 모습도 볼 수가 있다. 아직까지 전체의 몇 분의 1밖에 발굴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처음 올 때나 지금이나 별반 달라진 것이 없어서 발굴을 계속하고 있는 것인지나 모르겠다.
병마용은 등신비율로 제작이 되었는데 가장 작은 것은 170cm 대이고 큰 것은 190cm가 넘는 것도 있다. 상한선은 진시황의 신장에 맞추어졌다고 한다. 진시황은 9척 장신으로 키가 2m에 가까웠다고 한다.
당장 전장으로 달려갈 듯한 모습으로 도열해 있는 병사들. 영화 <진용>이나 <미이라3> 등에 등장해서 우리에게는 익숙한 모습들이다. 갑옷을 입은 모습이나 모든 면에서 당시의 생활사 연구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무엇보다 무려 2200여년 뒤의 사람들에게 경이감을 안겨주고 있는 점이 가장 크다고 할 것이다.
1호갱은 발굴 후 돔을 씌운 후 공개하였는데 옆으로는 창을 내었다. 창에는 진나라의 수레가 달리는 모습으로 장식을 하여 더욱 실감이 나도록 하였다.
1호갱 뒤쪽에 복원된 병마용의 모습. 보충대로 언제든지 제 자리로 달려들 준비를 하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이 뒤쪽에서 보면 진용과 같은 눈높이에서 볼 수가 있다.
병마용갱 외부를 장식하고 있는 타일에도 병마용의 얼굴을 새겨놓았다. 얼굴의 헤어스타일이나 수염 등만 가지고도 신분을 알 수 있다고 한다.
다음에 들른 곳은 2호갱인데 이곳은 거의 폐허 상태이다. 1호갱처럼 완전한 진용을 갖춘 모습도 아니고... 그래도 이곳에는 유리 상자 안에 완전한 형태의 계급별 병마용을 전시해놓아서 볼만하였다.
무릎을 꿇고 활을 들고 있는 모습(궤사용)이다. 복장으로 보아 졸병은 아닌 것 같다. 여러 형태의 병마용 기념품을 파는데 나는 이 모양의 기념품을 샀다. 물론 지난 여행 때.
일찍부터 역사탐방을 하러 온 중국 어린이의 스케치가 범상치 않아보인다. 이 아이는 자라면 큰 역사학자나 아니면 화가가 될 자질이 충분히 보인다.
중급군리(中級軍吏)의 모습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전투 양상이 전차전이 일반적이어서 갑옷이 무릎 밑까지 길게 덮고 있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중급 군리답게 쓰고 있는 관(冠)이나 수염, 목에 두른 스카프 등이 인상적이다. 가이드의 말이 의하면 안면의 핏줄까지 세세하게 표현되어 있다고 한다.
드디어 상급장교이다. 관이나 수염, 스카프는 중급 관리와 큰 차이가 없다. 왼쪽 어깨쪽의 리본이 인상적인데 요즘으로 치면 훈장이라고 한다. 진나라는 철저하게 전공(戰功)에 입각하여 승진이 결정되었다. 적의 수급을 베는 정도에 따라 졸병에서 장수까지 진급할 수 있었다.
이 상급관리의 손은 모나리자의 손과 비슷하다. 다만 오른손 검지로 무엇을 가리키고 있다. 적진의 방향이라느니, 진시황의 능이라느니 여러가지 설이 있지만 무엇을 가리키고 있는지는 확실치 않다.
말을 몰고 있는 병사
복식으로 보아 하급관리쯤 되어 보인다. 마구(馬具)는 새로 복원한 것처럼 보인다. 당시 훌륭한 전투마 한 마리의 위력은 요즘 스커드 미사일과 맞먹을 정도였다고 한다.
생동감있게 묘사된 입사용(立射俑). 몸을 비스듬히 돌리고 적을 응시하는 표정이 날카롭다. 복식으로 보면 병사이다. 갑옷도 갖춰입지 못한...
2호갱의 내부 모습. 군데군데 깨지고 금이 가고 하였지만 완정한 모습일 때를 생각해보면 놀랍도록 사실적이다.
여기저기 깨지고 흩어진 채 널브러져 있는 병사들
부분적으로나마 완전한 모습을 보이는 이 모습들은 무너지기 전의 참으로 놀라운 광경을 상상 이상으로 채워주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3호갱 관람을 앞두고 전시실 앞에서 다시 모였다. 가이드가 준비해간 깃발로 3호갱을 가리키며 마치 "진격"이라고 소리치는 것 같다.
3호갱은 규모는 가장 작지만 알려진 바에 의하면 지휘부라고 한다. 따라서 전투부대의 모습인 1호갱과는 많은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이곳도 일부는 이미 파괴되었다. 이 정도라도 보여줄 수 있고 또 우리가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만 해도 우리는 얼마나 다행인가 하는 생각을 갖게 된다.
지휘본부를 지키는 3호갱의 병사들은 하나 같이 복장이 단정하고 위엄이 있어 보인다. 요즘으로 치면 사단장 호위를 맡고 있는 참모 부대 정도 쯤 될 것이다.
이곳의 병사들은 모두 영양상태가 좋은지 배가 조금씩 볼록한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나중에 만들어 조립해 넣은 팔과 머리 부분이 가장 손상되기 쉬운데 이 사진이 그런 면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머리는 없어진 병사들이 많지만 지휘부를 지키는 삼엄한 모습은 그대로 잘 남아 있는 듯하다. 아주 잘 훈련되어 전혀 흐트러지지 않은 진나라 군대의 모습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말은 주로 2마리나 4마리가 세트로 나타나는데 이는 당시만 해도 단기필마의 전투형태가 아니었음을 잘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양쪽 곁의 말을 참마라 하고 중간의 말은 복마라 한다.
지휘부를 호위하는 아주 잘 조련되고 정비된 병사들. 진나라 이외 국가의 군사들이 보면 왠지 모르게 지레 겁을 먹고 주눅이 들어 움츠러들 것 같은 모습이다.
점심을 먹은 곳. 사실 이 근처는 그렇게 적당한 식당이 없고 또 이동을 하여야 하므로 시간도 뺏길 것 같아 이곳에서 식사를 하기로 결정했는데 잘 한 것 같다.
식당의 1층은 기념품 가게인데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것이 청동마차이다. 전시된 청동 마차가 약 3분의 1 정도로 축소된 모형인데 이 모형은 몇 분의 1로 줄였을까? 축소율이 매우 큼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정교하여 놀랐다. 하나 기념으로 가지기에는 집의 전시공간도 넉넉지 못하고 또 가격도 만만치 않았다. 그래도 하나 가지고 싶은 마음은 들었다.
병마용갱을 발견한 양씨. 처음에는 양지발이 지키고 있었는데 지금은 다른 사람이다. 이들은 서로 최초 발견자가 자기라고 우겨 현재 재판 중이라고 한다. 그리고 자기 이름 석 자를 서명한 도록은 다른 책보다 50원 정도 비싼데 그 수입은 자기 것이라고 한다. 또한 이들은 자기네 지위를 박물관 부관장급으로 올려달라고 요구를 하고 있단다. 아는 글자는 자기 이름 석 자밖에 모르는 사람들이 우물을 파다가 요행히 곡괭이질 한번 잘한 대가로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는 것 같다. 어떠한 경우든 금전이 걸려 있으면 분란을 피할 수가 없다.
기념품점의 채색한 병마용
병마용 제작과정을 보여주는 기념품. 실물 크기만큼은 안 되었지만 다른 기념품들과 비교를 하면 크기를 가늠해 볼 수 있다.
점심을 먹은 곳. 도삭면(刀削麵: 칼국수)과 랍면(拉麵: 라면) 두 종류가 있는데 도삭면이 더 맛있었다. 저 도삭면은 일종의 보여주기 위한 관광상품 중의 하나라는 느낌도 들었다.
진시황제릉문물진열청이다. 이곳에는 진시황릉 근처에서 발견된 청동마차 2대를 전시하고 있다. 지난번 왔을 때만 해도 이곳은 다시 한번 표검사를 하였는데 이제 진시황릉까지 하나의 권역으로 모두 이용할 수 있게끔 하였다고 한다.
청동마차의 말 네 마리. 생동감이 있고 사실적이다. 그리고 얼룩말[斑馬]이다. 황제를 태우고 다니는 말인만큼 위엄이 느껴진다.
두 번째 마차를 끄는 말
말을 숭상한 나라. 이 석상은 부장품인지 새로 만든 것인지 모르겠다. 부장품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정교하고 금방 만든 듯한 인상이 강하다.
진시황제릉 표석. 저 뒤의 야산이 릉이다. 옛날에는 릉 꼭대기까지 계단을 깔아 올라갈 수가 있었는데 2011년부터 폐쇄하였다. 그로 인해 관람객이 줄어들자 따로받던 입장료를 통합시켰다. 걸어서 도는 무리들이 오른쪽에 보이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동차를 타고 한 바퀴 도는 것이 다이다. 그러나 청동마차 발굴지에 잠시 내려서 기념 컷 원샷하는 것이 고작이다.
첫댓글 사람크기의 1:1사이즈 토용을 사 가는 분들이 있다고 했던 가이드 말이 생각납니다.
사진을 보니 저도 웬지 사고 싶은 마음이^^
자세한 설명으로 빠진 기억을 채워 주시는군요. 감사합니다.
직접 보는 듯한 느낌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