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 김동진 회장에게 듣는
푸른 눈의 한글학자 호머 헐버트 이야기
우리나라 최초의 순 한글로 된 교과서 《사민필지》 를 편찬한 사람. 최초의 국어정책 기관인 국문 연구소 창립에 공헌한 사람. 아래아 폐지와 띄어쓰기 도입 등 한글 표기법의 근대화에도 빼놓을 수 없는 사람. 바로 호머 헐버트(Homer Hulbert, 1863-1949) 박사다. 한글날을 한 달여 앞둔 지금, 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 김동진 회장과 함께 호머 헐버트 박사를 다시 만난다.
안중근 의사는 뤼순 감옥에서 일본 경찰이 헐버트 박사에 관해 묻자 “한국인이라면 하루도 잊어서는 안 되는 인물”이라고 말했다고 하죠. 그만큼 우리 근대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신 분이라는 뜻일 텐데요. 하지만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호머 헐버트는 생소한 이름입니다.
김동진
그렇습니다. 헐버트 박사는 조선 말기부터 일제 강점기에 이르기까지 한글 보급과 근대 지식 교육의 기틀을 닦아 주신 분입니다. 그런 분임에도 지금 국어학자들이나 언론인들은 헐버트 박사 이후의 한국인 학자나 운동가들의 업적만 언급할 뿐, 헐버트 박사는 거론도 잘 되지 않습니다. 안타깝기도 하고 서글프기도 합니다.
왜 그럴까 생각해 보면, 말 그대로 이분을 잘 몰라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이분이 외국인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국적에 관계없이 우리 역사에 큰 획을 그은 사람이라면 그에 상응하는 관심과 연구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역사는 객관적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쉼표, 마침표.>>
헐버트 박사의 업적으로는 《사민필지》 편찬이 유명한 것으로 압니다.
김동진
1889년에 발간한 《사민필지(士民必知)》는 우리나라 최초의 순 한글 세계지리 교과서입니다. 천문, 지리부터 각 나라의 정부 형태, 사회 제도, 풍속, 산업, 교육, 군사력까지 다양한 내용이 담겨 있어 서양에 대한 정보를 얻기가 힘들었던 당시 학생들뿐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아주 유용한 책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책의 가치를 더욱 높여 주는 것은 바로 순 한글로 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책 제목을 풀이해 보면, 선비들뿐만 아니라 일반 백성들도 알아야 하는 지식을 담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책 제목대로 일반 백성들도 읽을 수 있게 하려면 마땅히 한글로 적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이로써 언문일치의 전형을 보여 주는 사실상 최초의 근대 서적이 출현하게 된 것입니다. 저는 이 부분에서 헐버트 박사의 한글 사랑과 애민 정신을 느낍니다. 최초의 근대식 국어 교과서로 알려져 있는 《국민소학독본》(1895)도 국한문 혼용체였다는 것을 감안하면, 순 한글 교과서 《사민필지》에 담긴 박사의 한글 사랑이 더욱 특별하게 다가옵니다. 또, 그 자체로 당대의 국어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 주고 있기 때문에 국어사 연구에도 중요한 자료라 할 수 있습니다.
▲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 사무실에 전시된 《사민필지》 사본
헐버트 박사는 《사민필지》 머리말에서 “조선 언문이 중국 글자에 비하여 크게 요긴하건마는
사람들이 요긴한 줄을 알지 아니하고 오히려 업신여기니 어찌 안타깝지 아니하리오!”라며 한글 사용을 호소했다.
<<쉼표, 마침표.>>
호머 헐버트 박사가 외국에도 우리 한글을 많이 알렸다고 들었습니다.
김동진
헐버트 박사는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교육기관인 육영공원의 교사로 처음 조선 땅을 밟았는데요. 내한 초기 육영공원에 5년가량 재직하면서, 한글사에 빛나는 세 가지 업적을 남깁니다. 하나는 1889년 미국의 신문 《뉴욕트리뷴(New York Tribune)》지에 기고한 <조선어(The Korean Language)>라는 글에서 최초로 한글의 우수성과 한글 자모를 국제적으로 알린 거고요. 다음으로는 앞서 말씀드렸던 《사민필지》 저술이 있고요. 마지막으로는 1892년 《조선 글자(The Korean Alphabet)》라는 논문에서 한글의 기원과 문자로서의 독창성을 학술적으로 고찰한 것이 있습니다.
저는 주시경 선생이 우리말의 문법을 완성했다면, 호머 헐버트 박사는 한글 전용의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합니다. 한자가 아닌 한글로 써야 조선인들이 지식을 넓힐 수 있다고 믿었던 거죠.
하인을 선생으로 삼은 교사
<<쉼표, 마침표.>>
헐버트 박사가 처음 한글을 배우기 시작한 것은 학생들을 잘 가르치기 위해서였다고 들었는데요.
김동진
헐버트 박사는 육영공원에 파견된 1호 교사예요. 육영공원은 나라에서 세운 학교였으니까 조선 조정에서 녹을 받았죠. 헐버트 박사가 한글을 배운 것은 순전히 교사로서의 욕심 때문이었어요. ‘학생들을 가르치는데 통역을 쓰는 건 말도 안 된다’라고 생각한 거죠.
박사는 1886년 7월 5일에 조선에 와서 일주일 뒤인 7월 13일부터 바로 조선 말글 공부를 시작했는데 한글을 배운지 4일 만에 읽고 쓰기가 가능해, 약 9개월 후에는 조선인들과 학술 논쟁을 벌일 수 있을 정도였다고 해요. 《사민필지》를 쓴 게 한글을 깨치고 3년 만이니 놀라운 실력이죠.
<<쉼표, 마침표.>>
헐버트 박사의 열정이 대단했네요. 그래도 혼자 우리말을 전부 익히진 않았을 것 같은데, 박사의 우리말 선생이 있었나요?
김동진
박사 집에 있던 하인입니다. 물론 처음에는 우리말 선생이 따로 있었다고 해요. 그런데 아버지를 부친, 어머니를 모친이라고 하면서 일상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말만 가르쳐서 세 번이나 선생님을 바꾸었대요. 그래도 마음에 드는 선생을 찾지 못해 나중에는 혼자 문장을 외우고, 그것을 하인에게 말해 하인의 웃거나 울거나 하는 반응을 확인하며 공부했다고 합니다.
헐버트 박사는 회고록에서 “그는 영어를 그때도 못 했고 후에도 못 했지만, 인성이 좋고, 두뇌가 명석한, 평생 빚을 다 갚을 수 없는 사람”이라고 하인에게 감사를 표하기도 했습니다.
<<쉼표, 마침표.>>
그 정도였으면 당대에 꽤 유명하셨을 듯합니다. 혹시 교류한 학자들도 있을까요?
김동진
헐버트 박사는 1904년 <한글 맞춤법 개정(Spelling Reform)>이라는 논문을 《한국평론》에 발표했는데요. 그 무렵 지석영, 김가진, 주시경 등과 깊게 교류해서 서로 큰 영향을 주고받은 것으로 짐작이 돼요.
주시경 선생과도 인연이 있습니다. 둘은 배재학당에서 사제로 만났습니다. 헐버트는 배재학당 삼문출판사에서 책임자로 있었는데, 형편이 어려웠던 주시경 선생이 출판사에서 일하게 하여 도움을 주기도 했습니다. 훗날 독립신문 서재필 박사에게 주시경 선생을 추천한 것도 정황상 헐버트 박사라고 추정합니다.
또한 1907년에는 헐버트, 김가진, 지석영, 주시경 등의 거듭된 노력으로 한글 보급청이라 할 수 있는 ‘국문 연구소’가 설치됩니다. 국문 연구소는 세종 시대 집현전 이후로 처음 생긴 국어정책 기관이란 점에서 그 의미가 남다르죠. 지금의 국립국어원과도 맥이 닿아 있는 기관이기도 하고요.
한글 표기법 정비에도 힘쓰다.
<<쉼표, 마침표.>>
무엇보다 아래아(ㆍ)를 없애고 띄어쓰기를 도입하자고 주장하는 등 혼란스러웠던 한글 표기법을 정비하기 위해 노력한 부분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김동진
헐버트 박사는 한글만 배운 게 아니라 한국어도 배웠습니다. 언어와 문자를 다 배운 거죠. 《사민필지》에는 띄어쓰기가 안 되어 있습니다. 그건 헐버트가 당시의 관습을 존중했기 때문인데요. 박사가 처음 학교에 부임했을 때는 부모들이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으려 했다고 합니다. 한문도 안 가르치고 이상한 것만 가르친다고 말이죠. 헐버트 박사는 학생들이 한글을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선 학교에 오는 것이 더 중요하다며 한문도 가르치고 부모들이 원하는 것을 반영하려고 노력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박사는 한글 보급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았고, 특히 표기법에 대한 연구를 지속해 나갔습니다.
《사민필지》가 간행되고 5년이 지나서 《독립신문》이 나오는데 가로쓰기, 띄어쓰기, 가운뎃점 등이 다 돼 있어요. 띄어쓰기와 가운뎃점은 《독립신문》 창간 이전부터 헐버트 박사와 윤치호, 아펜젤러 등 《조선소식》 편집진에 의해 논의되어 오다가 《독립신문》 창간을 계기로 이 땅에 정착되었습니다.
<<쉼표, 마침표.>>
회장님은 평생을 금융인으로 살아오셨습니다. 그런 회장님이 어떤 계기로 헐버트 박사를 만나고, 이렇게 기념사업회를 이끌고 계시는지요. 사비를 털어 사업회도 발족시키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김동진
이 답은 짧게 하죠. (웃음) 대학 재학 때 헐버트 박사가 쓴 «대한제국의 종말»을 읽으며 이방인인 그가 조선과 조선인을 깊이 사랑했음을 알게 됐어요. 또, 운명처럼 1989년 미국 은행 뉴욕 본사에 근무할 때 우연히 헐버트 박사의 손자를 만난 후 그의 삶에 매료됐죠. 이때 헐버트 박사 연구가 제 소명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은행 일을 하면서도 시간을 내 그에 관한 자료를 찾는 일에 몰두하면서, 박사에 관한 자료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달려가곤 했죠.
한번은 뉴욕 컬럼비아대 도서관 지하에서 먼지를 뒤집어쓴 채 헐버트 박사 관련 자료를 찾다가 힘이 들어 막 나가려는데 선반 모서리에 부딪혀 책이 떨어진 거예요. 책을 주워 담다가 “한국어가 영어보다 우수하다.”는 헐버트 박사의 글을 발견했습니다. 당시의 희열은 잊을 수가 없어요. 아, 그리고 사비로 운영하고만 있지 않고요. 기업이나 개인들의 도움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 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를 도와 주시는 모든 분께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번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쉼표, 마침표.>>
마지막으로 국립국어원에 바라는 점이 있으시다면?
김동진
우리 말글이 외국어에 잠식되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어려운 일인 줄 알지만, 그 부분을 국립국어원이 계속 더 노력해 주셨으면 해요. 외국인도 그 가치를 인정하고 매료될 만큼 빼어난 우리 말글을 보존하고 가꿔 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헐버트 박사가 가장 원했던 것이니까요.
글: 강은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