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재 ~ 이화령 <제25구간>
1. 산행 정보
1) 일 시 : 2013. 09. 22. (일) 04:30 ~ 15:20(날씨 : 맑음)
2) 주요산 : 탄항산(857), 부봉(917), 마패봉(920), 신선암봉(937), 조령산(1026)
3) 소재지 : 경상북도 문경시 동로면, 예천군 및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4) 코 스 : 하늘재 – 부봉 – 마패봉 – 조령3관문 - 조령산 – 이화령
들머리 : 경북 문경시 문경읍 관음리 산93-2 하늘재
날머리 : 경북 문경시 문경읍 각서리 산40-25 이화령
2. 하늘재 ~ 이화령 (도상 : 16.6km / 실거리 : 18.3km) - 남진
하늘재(550) – 4.6km – 부봉갈림길 – 4.0km – 마패봉 – 0.8km – 조령3관문 – 2.8km - 신선암봉 – 2.5km - 조령산 – 2.6km - 이화령(550)
하늘재에서 모래산, 탄항산을 거쳐 평천재로 내려섰다 960봉으로 상승한다. 960봉은 주흘산삼거리이고, 백두를 따라 부봉삼거리를 지나 새재산성을 끼고 수평 이동하다가 마패봉에서 급상승한다. 마패봉에서 조령3관문까지 고도를 300m정도 낮추고 식수를 취수한다. 조령3관문에서 깃대봉을 향하다가 깃대봉삼거리에서 신선암봉을 향해가면서 로프를 타고 암봉을 줄줄이 넘어가야 신선암봉이다. 이후에도 이등변삼각형의 봉우리들을 연속해서 넘어가야 조령산이다. 조령산에서 이화령까지는 계속 내리막이고, 봉우리의 허리를 감아 돌면서 하산하여 한결 수월하다. 산행은 이화령에서 하늘재로 하는 것이 좋을 듯.
3. 산행의 흐름과 메아리
1) 들머리에서
보름이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달빛도 어둠에 잠들었다. 상현달이라서 어둠을 밝혀줄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디로 꼭꼭 숨었는지 알 수 없구나. 이름도 아름다운 하늘재를 어둠 속에서만 만나니 기록을 남기기 어려워 안타깝다. 그리고 어제 내려온 포암산 전경도 볼 수 없고, 이래저래 어둠에서 행동은 많은 불편함이 따른다.
2) 하늘재 – 탄항산 - 주흘산갈림길 – 부봉삼거리 – 마패봉 - 조령3관문 (04:30 ~ 10:10)
공사중인 계단을 타고 하늘을 향해간다. 달이 없는 달빛으로 어둠을 밝히면서 하늘재표지석에서 출발신호를 알리는 조명이 터진다. 마사토에 미끌리면서 모래산을 지나서 탄항산에 이른다. 암봉을 지나도 빛이 없으니 속수무책이고, 주변경관도 검정색이라 비오듯이 흐르는 땀도 표시가 없다. 평천재로 내려서니 960봉이 하늘과 맞닿아서 여명의 빛을 선사한다. 끝없이 올라가는 끝자락에 정비된 계단이 희망으로 다가오고, 960봉에 이르니 주흘산 삼거리다. 부봉으로 향하니 암봉이 압권이고, 그 너머로 조령산 등도 조망된다.
평탄한 능선을 따라가면 바위 두 개 위에 날카로운 바위가 앉아서 자연 생성의 경이로움을 전해준다. 그리고 화강암으로 연이어지는 암릉을 끼고 돌면, 암봉들의 작품 전시장이고, 그 위로 쏟아지는 아침햇살이 신비로우면서 신선한 기운을 펼쳐진다. 그래 자연에 안겨서 산하를 둘러 볼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백두대간에서 빗겨 있는 부봉에 오른다. 부봉은 6봉까지 있으며 동화원으로 이어진다. 부봉에서 포암산, 대미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을 감상하고, 백두대간으로 들어선다.
백두대간 능선을 따라 조성된 조령산성의 돌담과 동암문에서 삼국시대의 전쟁을 연상하지만 실상은 조선 숙종 때 남쪽에서 북침하는 적을 방어하고자 세운 성(城)이다. 암릉 속의 고요한 능선을 평이하게 이어가면서 축성에 투입된 일꾼들의 노고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 많은 백성들의 고혈로 쌓은 성이 수뇌부들의 부질없는 이권다툼으로 임진왜란 때는 하루아침에 무너지고 만다. 축성보다는 고관대작들의 정치가 올바른지, 그른지에 따라서 국가는 흥망성쇠(興亡盛衰)의 길을 걷는다. 고관대작들의 썩은 정치관을 탄식하며 해발 200m를 급하게 올라가면 어사 박문수가 마패를 걸어 놓은 마패봉이다. 박문수는 반대파와 관계없이 정의에 입각해서 공과사를 정확하게 구분하는 정책을 시행했으나 병조판서로 관직을 마감한다. 이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는 정의를 주장하지만 정의를 용납하지 않으니 이 시대의 박문수를 그리며 고도300m를 급하게 내려가서 조령3관문에 이른다.
3) 조령3관문 – 928봉 - 신선암봉 – 조령산 – 조령샘 - 이화령 (10:10~15:20)
조령샘에서 식수를 취수하여 깃대봉으로 향하며, 산신각에서 안전을 기원하며 812봉에 서면 깃대봉(치마바위봉) 삼거리다. 거대한 화강암 깃대봉과 눈인사로 인사를 나누고 암봉 위의 평이한 행로를 따라서 간다. 험한 곳도 길이 있고, 나무도 자란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눈에 보이는 것에 두려워 포기하지 마라. 언제 어디서나 길은 있기 마련이다.
암봉 능선이라 조망도 시원하다. 조령산으로 이어지는 봉우리를 겹겹인데 설마설마 하면서 넘어가기 800봉이다. 맞은편의 원뿔형 암봉이 부봉(釜峰)이고, 호쾌하면서 웅장함에서 밀려오는 시원함과 강인함에서 사람들이 자연처럼 살아가면 얼마나 좋으리. 뒤편의 주흘산과 백두대간 능선을 바라보면 참으로 많은 길을 걸었음을 실감하며 전진한다.
문경새재 제2관문 갈림길을 지나서 암봉들을 로프를 이용해서 오르내려도 끊임없이 이어지는 로프들이 수행의 장이란다. 상승을 할 때는 공덕을 쌓은 것으로, 내려 갈 때는 번뇌를 떨쳐내는 수행으로 잡념을 떨쳐내며 자신과의 싸움을 이어가다 보면 신선암봉이 신선세계를 선사한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자연과 동화되려고 상의를 탈의한다. 시원한 바람이 감싸고 돌아가는 자연의 신선함에 하늘을 이불삼아 신선암봉을 구둘장삼아 누우니 삼라만상이 하나로다. 하나의 지구에 인간은 끊임없이 선을 긋는다. 끝없는 욕심의 선을......
월악산 암봉들이 설악의 암봉과 겨누어서 부족함이 없고, 여기에 문경과 괴산의 황금벌판이 어우러져 생활의 진리가 익어가고, 번잡한 세상살이에서 자기 성찰의 의미를 살리며 신선암봉이 전해주는 신선을 만나는 듯하다. 누구를 믿어서 자신을 천당으로 극락으로 가려하지마라 진정한 것은 천당과 극락에 못가더라도 올바른 삶을 살다 지옥을 가면 어떠리.
화강암의 칼날능선에 걸쳐진 로프에서 이승과 저승의 교차점을 상상하고, 바위틈을 비집고 자라는 소나무분재에서 강인한 생명력과 예술을 감상하며 곡예를 즐기다 보면 마당바위갈림길이다. 조령산도 800m 거리에 있는 것에 위안을 삼으며 선녀와 나무꾼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며 하늘에서 내려주는 로프를 타고 하늘로 하늘로 향해 올라가니 조령산이다. 표지석이 새옷을 입었네. 스스로 만든 한계를 극복한 시간들을 회상하며 하산을 시작한 후 조령샘에서 심신을 가다듬고 너덜지대를 지나서 이화령에 안착한다.
4) 날머리에서
무수한 공덕과 번뇌가 교차하며 일어나도 속세에 들어서니 모든 것이 제자리다.
4. 문화유적과 전설
1) 조령산(鳥嶺山)의 유래
새도 날아서 넘기 힘든 재라고 새재이고, 이 새재에서 조령산이 탄생한다. 그러나 새재에는 억새가 많이 자라서 동국여지승람에 초재(草岾)로 기록되어 있는데, 억새를 우리말로 새로 표기되고, 이를 일제강점기 때 한자어로 지명을 표기하면서 새가 조(鳥)가 되면서 조령산이 되었다. 다른 유래는 조선 태종14년에 새로운 고개로 새(新)재로 불렸다고 한다.
2) 이화령(梨花嶺 548)의 유래
백두대간의 조령산과 갈미봉사이에 있는 고개로 충청도와 경상도를 연결하는 고개이다. 이화령은 이유릿재로 불렸으며, 현재는 조령천과 연풍천에 배꽃이 많이 피어나 이화령이라고 불린다고 한다.
3) 부봉(釜峰)
부봉은 제6봉까지 있으며, 이곳에서 조령산, 월출산, 신선봉 등의 장엄한 산줄기를 바라볼 수 있다.
4) 문경새재와 조령산성
문경새재는 영남의 선비들이 과거를 보러 넘던 길로 조령1관문(주흘관), 조령2관문(조곡관), 조령3관문(조령관)이 있으며, 백두대간 능선을 따라서 조령산성이 축성되어 있다. 임진왜란 때 신립(申砬) 장군은 이 요새를 두고 충주의 탄금대에 배수의 진을 치고 왜적과 싸우지만 패전하고 만다. 신립장군은 조령로를 막지 못한 것을 크게 후회하였다고 한다. 이성은 선조 30년(1597) 2월 응암의 일자성의 축성을 시작으로 숙종연간에 제1관문과 제3관문을 축성하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