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밥상
-지리산착한농부공동체 창립에 부쳐
이 원 규<시인>
그 아이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쑥을 먹으면 온몸에 쑥 냄새 폴폴 나던 아이들
산딸기며 오디를 따먹고
수줍은 듯 보랏빛 혀를 내밀던 미옥이 동철이 영숙이 진국이
그 아이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아주 오랜 옛날처럼 다시 섬진강의 봄이 와도
논밭이며 과수원이며 산비탈 차밭에도
허리 굽은 어르신들의 관절만 삐거덕 거리고
저녁이면 온가족이 둥근 밥상에 둘러앉아
야야, 체할라 꼭꼭 씹어 먹거라이!
잔소리 말씀도 콜록콜록 기침소리에 묻혀버리고
아주 오랜 옛날처럼 다시 지리산의 봄이 와도
농촌은 농촌대로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끊긴 유령의 마을이요
도시는 도시대로 탯줄이 잘린 실향민들의 집단 수용소가 되었다
그리하여 다시
행복한 밥상을 차릴 때가 되었으니
바로 지금 여기 경상남도 하동 땅에서
고향을 지켜온 사람들과 고향을 찾아온 사람들이 모여
지리산 착한 농부의 이름으로
섬진강 어진 귀농자의 이름으로
미숙이 수동이 혜순이 경찬이들을 불러 모아
차일 치고 멍석 깔고 한바탕 잔칫상을 차렸으니
아이들아, 그리운 친구들아
옛날처럼 밥상머리에 둘러앉아 즐겁게 밥을 먹자
손씨 할아버지의 유기농 쌀밥에
구수한 된장, 흑돼지 삼겹살에 상추쌈을 싸먹고
하동의 야생 녹차를 마시며
박씨 아저씨의 무농약 딸기와
꿀물이 흐르는 만지배를 깎아먹고 대봉감 홍시를 먹자
마침내 우리들의 밥상 위에
경상남도 하동산 논과 밭이 올라오고
악양 옥종 청암 화개 적량 횡천 고전 금남 금성 진교 양보 북천
두 눈에 선한 고향 땅의 인심과 맛이 오르고
마침내 온 세상의 행복한 밥상 위에
섬진강이 오르고 지리산이 오르기 시작했으니
날마다 하루 세끼 몸을 열어
우리들의 행복한 밥상 위에서
섬진강을 받아들이자 지리산을 받아들이자
더불어 온 마음을 열어
섬진강을 먹고 온몸 섬진강의 맑은 물결이 되자
지리산을 먹고 온몸 지리산의 푸른 눈빛이 되자
이 땅의 모든 농민들이여, 그리하여 세상은 다시 봄이다
첫댓글 난 아무것도 안보이는데....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