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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9월 1일 시문학 아카데미 발표
억압을 헤쳐 나온 사회주의자-이수형
오양호
1. 서론
한국문학사에서 이수형李琇馨(1914~?) 만큼 특이한 인물은 없다. 그는 1930년대 초기 사회주의노동운동가, 적색농민조합조직책赤色農民組合組織責이던 이수형李秀亨, 혹은 이수형李秀炯으로 추정되는 존재다. 이 인물은 함경북도 성진, 강원도 양양 등에서 극렬 항일운동을 벌렸다. 당시 신문 기사에는 이 인물이 한자로는 ‘李秀亨,李秀炯’으로 나타난다. 그런데 만주의 시인 이수형은 李琇馨이다. 우리말로는 ‘이수형’으로 모두 같다. 李琇馨은 해방 뒤 남로당 맹장으로 활동했다. 이름이 조금 다른 것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을 하던 사람들이 이름을 몇 개씩 쓰던 것과 같다. 곧 ‘이수형=李秀亨≑李秀炯≑李琇馨’이다. 시인 ‘李琇馨’은 ‘李秀亨,李秀炯’보다 친근감이 간다. 한글로는 본명을 유지하면서 향기를 발산하는 이름이 되어 시인 같은 분위기를 주기도 하고, ‘李秀亨,李秀炯’의 필명 같기도 하다.
‘李秀亨=李秀炯=李琇馨’이란 등식성립이 이 논문의 절대조건은 아니다. 이런 등식이 성립되지 않더라도 李琇馨이란 시인의 작품은 충분히 문제적이다. 그러나 ‘李秀亨=李秀炯=李琇馨’이라는 등식이 성립하면 이 시인은 문인의 차원을 넘어서서 사회주의농민운동과 시문학을 통해 독립운동을 한 애국자의 반열에 오를만한 인물이다. 그것은 1940년대 전반기 중경 임정이 광복군을 창설하고 서울진공작전을 계획하고, 동북항일연군, 특히 김일성부대가 백두산 밀림을 근거지로 관동군과 게릴라전을 벌리던 시간에 이수형은 문학을 통해 그에 버금갈만한 민족운동을 한 존재인 까닭이다. 이런 시인의 발견은, 그것도 1940년대 전반기 일본천지가 된 만주국의 조선인시단에서 발견하는 것은, 우리의 근대문학에서 예가 전무하다. 그래서 “보론” <이수형은 누구인가>로 이 인물의 정체를 밝힌다.
이수형李琇馨은 1940년 3월 <<만선일보>>에 <白卵의 水仙花>를 발표하면서 시인으로 활동을 개시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이 시인의 이력이 ≪만선일보≫ 어디에도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백란의 수선화>는 당시 ≪만선일보≫에 발표되던 일반 시와는 성격이 아주 다른, 별난 작품이다. 그렇다면 독자의 궁금증을 풀기 위해서라도 간단한 이력을 소개할 만한데 그렇지 않다. 평론 <朝鮮詩壇의 裁斷面>도 그렇다. 이 글은 이미 조선문단에 한차례 지나간 초현실주의 시론을 새롭게 조명하는 문제적인 평론이다. 그래서 ≪만선일보≫가 10회나 연재하면서도 정작 작가 소개는 단 한 줄도 없다. 이것은 다른 시인과 다르다. 이수형의 사회주의 이력이 원인 인듯하다. 사회주의와 파쇼 일제는 대척관계이기에 이수형의 이력이 공개되면 ≪만선일보≫는 물론 <시현실>동인의 입장이 난처해 질 수도 있기에 신상문제는 불문에 붙인 듯하다.
≪동아일보≫를 거쳐 ≪만선일보≫ 편집국장을 지낸 홍양명은 <도문 연길의 인상>이라는 르뽀 기사에서 이수형과 함형수咸亨洙는 의기투합하여 늘 붙어 다니고 함께 술을 마시고 뒹굴며, <시현실>동인으로 활동하는 인물이라 했다. 홍양명은 도문을 ‘선계주민의 精神的 首都’라고 하고, 이수형, 함형수, 김귀金貴 세 사람을 ‘多分히 咸鏡北道的이라’고 했는데 이것은 이수형과 함형수를 문제적인 인물임을 암시한다. 함형수가 친일문화권력 일등 잡지 ≪삼천리≫에 무엇을 칭찬하는 듯 야유하는 <이상국통신>(1940.5)을 발표하고, 이수형은 서정주가 <스무살 된 벗에게>(≪조광≫, 1943.10)에서 “황홀한 기쁨이 될 수 있는 죽엄”이라며 징병제를 찬양한 할 때, 그는 그 잡지 다른 지면에 “만세!”를 부른 행동에서 그런 성격이 드러난다. “만세! 소리와같이 꽃피고/만세! 소리와같이 꽃지는/時節이면/玉은/머- ㄴ 故鄕 홀어머님”을 보고 싶다고 화자는 토로한다. 홍양명의 술회는 <玉伊의 房> 화자가 이렇게 “만세!”를 부르는 것은 “함경북도적” 발상이라 하겠다.
이수형과 함형수가 막역한 관계가 된 것은 이 인물의 입만 전 이력이 함형수의 그것과 같기 때문일 것이다. 함형수가 1932년 ‘咸北 鏡城高普校 檄文散布’ 등 항일운동을 하던 비밀결사단체 멤버로 ‘咸北六市를 中心으로 共靑勞組等各秘社를 結成’하여 일제 통치에 맞선 적색노동자협의회 사건에 참가했고, 이수형이 ‘태평양노동조합사건의 행동대원이 되어 함경북도의 성진농민조합사건’에 가담했다가 옥고를 치른 이력은 성격이 같다. 이수형과 함형수는 경성고보 동기동창으로 추정되는데 이 두 사람은 시만 아니고 사회주의를 통한 민족운동을 함께하는 동지다. 그래서 詩가 단순한 언어예술이 아니라 권력의 횡포를 거부하는 시인의 순수한 창조물이고, 그 연약한 창조물이 의외로 악의 근원인 권력의 횡포를 세탁하는 구실을 한다고 믿기에 그들은 함께 그런 시에 몰입했다.
도문에 살며 시적 화자 ‘옥이’를 내세워 ‘만세!’를 몰래 부르던 이수형은 해방이 되자 바로 귀국하여 남로당 총책 박헌영주의자가 되어 <朴憲永先生이 오시어>를 쓰며 임화, 이병철李秉哲, 김상훈金商勳, 조남령曺南嶺, 유진오兪鎭五 등과 함께 현실주의 시인으로 문단 전면에 나섰다. 그런가 하면 장문의 민중미술론을 쓰고, 일제가 남기고 간 섬유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 조선섬유산업건설동맹회를 결성할 때 그 위원이 되었다. 또 외국어를 통한 내외 문화교류로서 새로운 조선문화건설에 이바지하겠다는 목적으로 외국어연구회를 창립하고 그 육성사업에 뛰어들었다. 그러다가 6‧25가 발발하기 두 달 전 문화, 정치, 산업, 교육에 쏟던 전 방위적 활동을 접고 월북했다. 6・25 발발을 비선을 통해 미리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가 남한에 남긴 마지막 흔적은 그의 어머니가 별세했다는 기사 한 토막이다. 그 뒤 이수형은 북한에서 포경선을 타며 수필을 발표하고, 혹은 농사를 지으며 농촌시를 여러 편 ≪조선문학≫에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1960년대 중반 이후 북한문단에 이름이 나타나지 않는다. 박헌영의 남로당으로 몰려 숙청된듯하다.
이수형이라는 시인의 이름이 한국문단에 공식적으로 나타나는 자료는 조선문학전집·10 ≪詩集≫(한성도서주식회사. 1949.)에 수록된 <아라사 가까운 故鄕>과 <行色>이다. 시집 ≪산맥≫이 ‘헌문사’에서 조판까지 해 놓고 정지용의 ‘서문’을 기다리다가 6‧25로 원고가 산일되었다고 한다. 이 문제는 정지용이 ≪산문≫(동지사.1949)에서 <序 대신 詩人 琇馨께 편지로>라는 글에 시집이 자기가 부찰俯察을 잘못해 못 나온 것을 사과하며 이수형의 시 <指導者>를 인용하며 시의 성격을 언급하는 데서 드러난다.
이수형의 문학활동은 재만문학기(1940년~1945년), 해방공간문학기(1945~1950), 재북문학기(1950~)로 구분된다. 여기서는 재만 조선인시단에서 활동한 시기의 작품을 고찰한다. 논의가 진행되면서 밝혀지겠지만 이수형은 1940년부터 쓴 초현실주의시를 통하여 일제가 지배하는 현실을 문제 삼았다. ‘前衛藝術論假說의設定의意義에 對하야’ 라는 ‘꼬리말’을 붙여 ≪만선일보≫에 발표한 <백란의 수선화>, “「典型」에 들이는 노래, 於 圖們 .一九四0. 一0. 二五日”이라는 주가 달린 <미명의 노래>, 만주국을 5족이 화합하며 사는 도의의 나라이고, 낙토라고 선전하는 것을 비꼬는 <娼婦의 命令的 海洋圖>, 우리 민족의 신화를 수액樹液으로 비유하며 장래를 외과의처럼 해체하는 <風景手術> 등은 모든 것이 민족으로부터 떠나던 1940년대 전기에 민족이 당면한 문제를 테마로 삼는다, <옥이의 방>에서는 저항적 사유가 감지된다. 이런 작품들의 내포가 민족문제에 쏠려 있지만 발표가 가능했고, 그것이 문제되지 않았던 것은 초현실주의시의 기법으로 문화정치와는 무관한 순수시로 시적 진실을 형상화했기 때문이다.
당시 <만선일보> 기자였던 안수길은 문학작품을 번역하여 그것을 편집부장의 허가를 받는 일이 싫고 힘들어서 용정 특파원을 자청해서 본사를 떠났다고 했다.곧 <만선일보>의 모든 기사는 일본어로 번역하여 일인 편집자의 허락을 받아 게재했는데 문학의 경우 조선어로 쓰여진 미묘한 표현을 일어로 번역하는 것은 극히어려뤘다. 특히 초현실주의기법으로 쓴 이수형의 <창부의 멸령적 해양도> <풍경수술> 같은 작품은 번역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조선어를 모국어로 쓰는 사람도 이해가 어려운데 그걸 번역한 시를 일인이 독해하기는 불가능했다고 봐야한다. 정황이 이렇기에 <옥이의 방>의 화자는 “만세!”를 부를 수 있었다. 가상의 공간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그 초현실주의 기법 때문이다. 사정이 이렇기에 <만선일보>에 발표된 모든 시를 시대영합으로 독해하는 것은 사정을 모르는 무식의 소치다. 조선 총독부 독서과가 오장환의 <전쟁>을 삭제하던 것과는 사정이 판이하다.
이수형의 재만 시는 만주국의 일계문화 속에서 창작된 선계鮮系 작품으로 조선말이 그런 시대나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낯선 언술구조로 시 의식을 발현시킨다. 그런데 이런 기법의 시를 추적하면 그 끝에 1930년대 최말기의 사회시가 있고, 김기림의 초현실주의기법의 시가 있고, 정지용의 <백록담>, <盜掘> 같은 사회시가 원경을 형성한다. 그리고 그 끝에 민족의 소망이 딸려 나온다. ‘시현실 동인집’ 6편의 첫 번째 작품인 <생활의 시가>에서부터 이런 사회시의 성격이 표상된다. 이수형이 <백란의 수선화>로 재만조선인시단에 초현실주의시의 상륙을 알릴 때 신동철은 <詩論메모—消火器의 海邊.上⸱下>로 京城 시단에도 초현실주의시의 재상륙을 알렸고, 신동철은 <作品>으로 그런 기법을 도문의 이수형과 선창 복창으로 화답하였다. 이런 작품의 외연은 초현실주의시의 재상륙이나 그 내포는 1930년대 중반, 李箱 류의 초현실주의시와는 다르다.
1940년대 전반기 재만 조선인시에서 제일 먼저 문제가 되는 것은 시의 주제다. 따라서 이런 작품들을 주제론Thé matologie의 관점에서 고찰한다. 지금까지 발굴된 자료는 다음과 같다.
시: <白卵의水仙花」(≪만선일보≫ 1940.3.13.), <未明의노래>(≪만선일보≫1940.11.6.),<生活의市街> (≪만선일보≫,이수형・신동철.1940.8.23.). <娼婦의命令的海洋圖>(≪만선일보≫,1940.8.27.)<風景手術>(≪만선일보≫, 1941,12,10),<人間나르시스>, ≪재만조선시인집≫, 1942), <소리> (≪조광≫, 1942. 9), <기쁨>(≪조광≫, 1943. 3), <玉伊의 房>(≪조광≫, 1943.10)
평론: <朝鮮詩壇의 裁斷面> (≪만선일보≫. 1941. 2. 12~22).
<前衛의 魔笛은. 上⸱下> (≪만선일보≫. 1940.11.15.~16일)
이 작품들을 다음과 같은 문제를 제기한다.
첫째, 이수형은 우리가 주권과 영토를 빼앗기고 민족만 남았던 1940년대 초기, 민족의 모멸을 피해 이주해간 남의 땅에서 시인으로 살면서 인간의 보편적 가치와 조선인의 존재감을 시를 통하여 실현하려 했다. 이것은 한국문학사가 1940년대 초기를 암흑기, 친일문학기, 이중어 글쓰기로 기술하는 잘못된 사실평가를 바로 잡을 수 있는 성격이라는 점에서 절대로 간과할 수 없다.
둘째, 1940년대 초기의 만주국은 일본의 재벌자본의 유입으로 초기 자본주의사회로 변해가고 있었고, 천황제를 앞세운 애국심 강요, 야마토민족의 민족주의, 관동군의 통치가 강고했다. 이수형은 이런 정황을 데페이즈망, 데포르마시옹, 상징에 기댄 기법으로 민족주의, 군국주의, 부르주아의 가치를 파괴하고 인간을 모든 것으로부터 해방시키려는 글쓰기를 했다. 한편 그는 ‘무찌르자 강도 일본제국을’이라는 기치 아래생명과 자유를 위해 공산주의와 손을 잡고, 적색농민운동을 벌렸고, 해방 직후에는 남로당 맹장으로 사회주의이념을 문학으로 실현하려 한 인물이다. 이런 행동노선은 프랑스의 초현실주의자들이 공산주의의 사회혁명에 동조하면서 초현실주의 논리를 저버리지 않은 선에서 혁명의 길에 동참했던 것과 유사하다.
셋째, 이수형이 창작한 초현실주의 시는 1940년대 한국문학을 주체적 정신사로 기술할 수 있는 결정적 자질을 지니고 있다. 그의 시에 나타나는 가치중립적 포에지가 결과적으로 그가 초현실주의시의 본질인 현실을 부정하고, 그 부정을 통해 인간해방을 실현하려 하는 까닭이다. 지금까지 한국의 초현실주의시는 李箱과 ≪삼사문학≫을 중심으로 논의되어 왔다. 그 결과 1940년대 전반기 일단의 재만 조선인시인들이 이미지의 상반된 양면성을 아우르며 인간의 자유를 구속하는 세계를 순수시의 포즈를 취하면서 그 내포는 당대 현실을 겨냥한 사회시를 창작한 사실에 대한 연구는 거의 방치된 상태에 있다. 李箱 시 연구는 <오감도> 15편이 詩이기를 포기한다고 할 만큼 언어파괴에까지 이른 것과는 달리 재만 조선인 시단의 초현실주의시 연구는 겨우 시작단계에서 중지되어 있는 형국이다. 사정이 이렇지만 <시현실>동인으로 대표되는 재만 조선인시단의 초현실주의 작품은 조국을 잃은 슬픔에 잠겨 탄식만하고 있을 수는 없고, 몰락해 가는 모국을 그대로 둘 수 없어 살려내려 했고, 일제가 조선을 삼킨 뒤 더욱 강고한 군국주의 국가가 되어 민족의 고토인 만주에서도 주인 노릇을 하는 것을 검증하려는 했다. 이것이 재만 조선인 시를 지배하는 시적 진실이다. 따라서 이에 대한 사실 확인은 이 논문의 필요조건이다.
2. 작품 분석
2-1. 도의의 나라 ‘만주국’ 야유 <娼婦의 命令的 海洋圖>
시는 언어의 제약을 벗어나 대상 그 지체에 이르려고 한다. 사물시의 경우는 리얼리티 획득을 위한 것이고, 순수서정시의 경우는 정서표상 그 자체의 리얼한 재현에 이르기 위해서다. 그런데 이 리얼리티는 언어로 표현하는 순간 실재의 대상에서 멀어진다. 그러므로 언어로 표현된 인식은 진짜와 거리가 있다. 하지만 시가 언어의 예술인 이상 이런 제약을 벗어날 수 없다. 따라서 시는 결국 관념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특히 시를 둘러싼 환경이 소망스럽지 못할 경우 이런 제약은 더 커진다. 만주국치하의 재만 조선인 시는 이런 점을 가중시킬 여러 조건에 놓여 있다. 이수형의 시에서는 <娼婦의 命令的 海洋圖>가 그런 조건을 갖추었다.
一萬系列의 齒科術時代는 밤의 海洋에서 섬의 하-모니카를 분다
一萬系列의 化粧術時代는 空港의 層階에서 근 추-립푸의 저녁을 심포니한다. 記念日 記念 日의 츄-립푸는 送葬曲에 핀 紙花엿다
明日의 손락을 算術하는 츄-립푸는머-ㄴ 푸디스코 압페
오르는 오르는 비누방울의 夜會服 記念日記念日의 幸福을 約束한 肉體의女人이 雙頭의 假面을장식하는날 七色의 슈미-즈가 孔雀의 미소를워나의 海洋의 蜃氣樓를 러왓다.
記念日 記念日의 너의 장식에
너의그洋초와 갓튼 蒼白한 얼굴에너의 그바다와가튼 神話를 들여주는 눈동자에
나의 椅子는 溺流되엿다.
나의 椅子는 溺流되엿다.
그러나 娼婦는 울고만 잇엇다.
肉體의 女人은 장식의 歷史가슬펏다.
假面의 女史는 살아있는것이 슬펏다 雙頭의 怪物은 왜울엇을?
明日을 장식하여야 할 運命을
明日도 그다음날도 그다음날도 살아야할것을
女人아 假面아 深夜의 어린애야
現實에規約된 誠實보담도 阿片보담도술보담도 밤의秘密보담도 이健康術을 사랑한다.
一九四0 春作
李琇馨. <娼婦의 命令的 海洋圖> 전문
이 작품은 이미지의 공통성을 발견하기 어려워 시의 주제가 무엇인지 쉽게 잡히지 않는다. 이 시에 집중적으로 나타나는 도시 이미지는 위선으로 상징되는 ‘화장술 시대, 가면의 여사’로 형상화되고 있다. 육체의 여인은 ‘행복을 약속’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쌍두의 가면’을 쓴 창부이다. 여러 개의 얼굴을 지니지 않고는 살아남기 어려운 근대문명사회에 대한 비판을 ‘살아있는것이 슬펏다 쌍두雙頭의 괴물’, 창부로 상징한다.
이미지란 무엇인가. 헤겔의 말이 솔깃하게 들린다. 칸트철학을 계승한 이 관념론자는, 자연에서 빌려온 이미지의 경우 그것은 사상을 표현하기에 부적절하더라도 깊은 감정이나, 비상하게 윤택한 직관이나, 활기차게 배합된 유머로 정련될 수 있으며, 이 경향이 발전하면 시를 촉진하여 늘 새로운 발명에 이르게 할 수 있다고 했다. 여기서는 근대적 도시문명을 상징하는 이미지들이 장구를 지배하고, 그것이 일상의 질서와 단절된 상태에서 충돌한다. 그리고 그것은 상투성・cliche을 넘어 창발성・initiative을 자극한다.
<창부의 명령적 해양도>는 지성과 이지가 문맥을 지배한다는 점에서 모더니즘 시다. 그러나 이 시는 언어예술로서 지닌 본질이 제대로 전달되는 통사구조가 아니기에 모더니즘 일반론으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이미지를 통하여 시적진실을 획득하려 하나 그런 의도가, 시가 문학의 한 갈래로서 수행할 역할이 비판적 현실이라 뒷일이 두렵고, 시의 시간적 배경 또한 너무 엄혹해서 기법이 주제를 포장해 버렸다.
첫 구절 ‘一萬系列의 齒科術時代는 밤의 海洋에서 섬의 하-모니카를 분다.’에서 ‘치과술 시대’와‘ 밤의 해양’이 만드는 문장은 일상적인 관계를 이탈한다. ‘~분다’는 서술어가 앞의 상이한 명사들이 충돌하여 내 뿜는 특이한 심상을 무의미하게 만든다. 놓일 자리가 아닌 자리에 놓인 어휘가 예상 못할 기능을 한다. 치과 술, 밤, 화장술, 공항 등의 이미지들도 과도한 독창성의 애너그램anagram으로 읽힐 수 있는데 그게 뭉쳐서 다른 의미로 확장된다. 곧 ‘阿片보담도 술 보담도 밤의 秘密’, 혹은 ‘근 추-립푸의 저녁, 기념일’이 발산하는 의미는 근대 도시문명의 생리를 연상시키고, ‘치과술 시대’, ‘밤’은 여인의 교태, 밤의 유혹으로 의미가 굴절되는 게 그렇다. 또 이런 다양한 이미지는 ‘記念日의 추-립푸는 送葬曲에 핀 紙花’라는 시구와 만나면서 그런 포에지는 근대가 자본주의의 물신성에 포획되어 본의를 상실한다. 그 결과 형식으로 보면 초현실주의시의 기법의 구현이 되고, 본질적으로는 자본주의적 근대도시 이면의 쾌락, 저주받은 직업, 사창가의 유령 같은 풍경을 문제 삼는 현실주의시 역할을 한다. 그리고 시적 화자가 현실을 장송곡에 불과하며 종이꽃이라고 말하고 그런 퇴폐의식을 형상화한다는 점에서 이 시는 결국 시대에 대한 새로운 전환의 요구이자 체제에 대항하는 탈식민주의적 정서의 실현이 된다.
이 작품에서 여러 상이한 이미지가 충돌하여 나타나는 결과는 우리가 무시하였거나 알지 못하는 세계의 어떤 양상이 불가사의한 상상력을 빌려 우리 앞에 얼굴을 드러내는 ‘경이驚異’의 창출이다. 앙드레 부르통이 인간의 어떤 능력보다 상상력이 우위에 있고, 그것은 숭고하다고 하면서 초현실주의시는 시의 첫 구절은 동떨어진 이미지의 결합으로 출발해야한다고 한 그것, ‘경이’의 구현이다. 경이는 초현실주의시의 요체다. 경이는 놀람, 이성의 방어 없는 급습상태인데 이 시에서는 그것이 ‘七色의 슈미-즈가 孔雀의 미소를 워 나의 海洋의 蜃氣樓를 러 와서,’ 그것이 ‘슈미즈=공작의 미소=해양의 신기루’가 되어 세 존재의 성격이 소멸되고, 그 대신 경험 세계를 떠난 특수한 리얼리티를 생성시킨다. 그리고 ‘肉體의 女人이 雙頭의 假面을 장식하는 날 七色의 슈미-즈’라는 표현이 형식적으로는 상이한 이미지의 폭력적 결합이지만 그것이 가상공간에서 엉뚱한 정서를 자극하여 보이지 않는 현실의 어떤 치부를 찍어냄으로써 심리에 충격을 준다. 그래서 “七色의 슈미-즈”가 “記念日 記念日의 너의 장식”과 묶여 기념일의 주체, 곧 도의의 나라, 만주국이 결국 농락을 당한다.
만주국은 인의와 예양의 나라이다. 이것은 “사랑이 넘치고 증오가 없는/인의와 예양으로 우리는 발전한다·只有親愛 竝無怨仇/重仁義尙禮讓使我身修.”는 ‘만주국 건국가’에서부터 나타난다. 만주국 정부는 일본인 고관이 이취임을 할 때마다 잔치를 베풀었고, 1933년 관동군사령관이 죽었을 때는 황제 부의의 참석 하에 거대한 장례를 치렀다. 정씨아오쉬 총리는 연중무휴로 열리는 각종의식을 거의 자신이 직접 집전했다.
정황이 이러한데 <창부의 명령적 해양도>의 화자는 이 도의의 나라에 ‘七色의 슈미-즈가 孔雀의 미소를 워 나의 海洋의 蜃氣樓를 러와’, ‘너의 그 洋초와 갓튼 蒼白한 얼굴에 너의 그 바다와 가튼 神話를 들여주는 눈동자에/나의 椅子는 溺流되엿다’고 토로한다. 인의와 예양을 받드는 것은 국민의 정신교화를 위해서인데 이 시는 그것을 7색의 슈미즈와 엮어 버린다. 여인의 은밀한 부위를 가리는 엉뚱한 어휘와 조합해서 말의 의미를 날려 버렸다. 당시 만주국은 매춘부나 카페여급을 소재로 하는 것, 나라의 어두운 면, 퇴페적인 것을 ‘예문지도요강’에서 검열의 대상으로 삼았는데 이 작품은 그것을 뭉개버렸다. 이 작품의 마지막 행이 “阿片보담도술보담도 밤의秘密보담도 이 健康術을 사랑한다.”, 곧 “~보다, ~보다 ~~을 시랑한다.”라는 통사구조로 앞의 것을 부정하고, 건강술을 내세우다가 익류溺流시킨다.
관동군은 중일전쟁을 단기간에 끝날 것으로 예상했으나 제2차 세계대전과 중일전쟁을 함께 치러야 하는 처지에 몰렸다. 관동군은 그 곤경을 만주국의 인의예양을 앞세워 충성을 도모하려 했다. 국민의 도덕함양과 정신교화운동을 전개하여 중일전쟁에서 승리하여 대동아건설을 실현시키려는 전략이다. 그런데 <창부의 명령적 해양도>는 그런 정책과 도덕 함양의 기념일을 일곱 빛깔 여자 속옷으로 싸서 패대기치고 있다. 그것도 시답잖은 일상어가 도의의 나라라는 만주국을 야유한다.
초현실주의시에서는 두 개의 이미지의 결합에 따른 새로운 이미지, 혹은 기존의 사고, 사유, 주체에 대립되는 무엇을 ‘오브제objet’로 활용한다. 이 시에서는 ‘창부, 밤, 가면의 여사’ 같은 어휘들이 ‘化粧術 時代, 空港의 層階, 夜會服, 肉體의 女人, 슈미-즈’ 등의 어휘와 묶여 제2의 세계 창조를 시도한다. 어휘가 근대적 도시의 타락한 성적 생활의 한 상징으로 변용된다. 틀에 박힌 방식에 의하여 상습화된 상태를 탈피시키고 지나치게 익숙해져 있는 대상을 비친숙화(defamiliarize)시켜 대상을 이화시킨다.
만주국의 모든 정책을 5족협화, 왕도낙토, 도의의 나라, 위생국가에 집중시켰다. 그런데 이 시는 화자를 내세워, 그 득시글거리는 무리를 ‘지화’로 규정한다. 이것은 만주국이 자신만만하게 건설하는 근대도시가 ‘지화, 가짜 꽃’이라는 말인데 지화는 향기가 없으니 모양은 꽃이지만 꽃이 아니다. 창부는 여자지만 여자의 향기를 느낄 수 없으니 여자가 아니다. 육체를 시장에 내놓는 여자는 오염된 신체이고, 그 신체는 신비로움을 상실한 상품으로서의 생명체다. 만주국이 겉은 독립국이고 속은 식민지기에 가짜 나라다. 이 작품이 여러 이미지가 충돌하여 記意signifie`가 모호한 것은 이런 시 의식을 포장하기 위한 전략이다.
근대는 도시문명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신경은 어떤 기념일이 오면 화려한 행사를 하며 근대도시의 위상을 자랑하던 만주국의 수도이다. 그런데 그 자랑스러운 도시를 향해 시적 화자는 ‘女人아 假面아 深夜의 어린애야/現實에 規約된 誠實보담도 阿片보담도 술보담도 밤의 秘密보담도 健康術을 사랑하라’고 타이르고 있다. 이것은 초현실주의가 ‘인류가 공동으로 주도한 개별인간(육체), 곧 주체중심의 의학적 현실에 가치를 두고, 자유를 추구한 전통부정에 기초한 그 문학정신과 대립한다. 창부가 들끓는 병든 도시, 비의학적 현실을 외면한 만주국 사회에 대한 비판이다. 당시 ≪만선일보≫를 펼치면 여성 화장품, 위장약, 정력제 등 각종 광고가 뜨는데 매일 나타나는 것이 ‘임질’ 치료약이다. 그런 온갖 광고 속에 '향기로운 술, 진미의 요리, 미녀의 써비쓰!', ‘新大陸’ 어쩌고 하는 유흥업소 광고도 눈에 띄는데 그게 대부분 신경 아니면 합이빈哈爾濱 소재의 업소이다. 이 작품은 그런 현실의 이면을 겨냥하고 있다. 다른 시인은 ‘道路 뒷골목에서 마신 호주가/깨이기 전에/스카야 모롱이 白系露女의/부연 젓가슴 밑에서 사라저버리고//키큰 아가씨들의 팔 밑을 지나/樓에서 두 대, 棧에서 세대…’라며 하르빈의 표면을 단순한 피사체로 인식할 때 이수형은 ‘娼婦는 울고 잇엇다.’ ‘女人은 歷史가 슬펏다.’며 현실 뒤의 현실을 오브제 기법으로 걸어 올린다. 신경과 하르빈은 1940년대 초기 만주국의 근대화를 실현하는 선봉이었다.
<창부의 명령적 해양도>는 외연으로 보면 말을 관습적인 틀에서 벗어나게 함으로써 주체를 해방시키려는 사유의 받아쓰기 형태다. 그러나 묘사의 주체를 따지고 들어가면 그 끝에 만주국이 등장한다. 이 시가 ≪재만조선시인집≫에 재수록될 때는 ‘七色의 슈미-즈가 孔雀의 미소를 워 나의 海洋의 蜃氣樓를 러왓다.’라는 대문이 빠졌는데 이것은 편집자의 부주의로 시의 한 행을 빠뜨린 실수 같지만 오히려 그 반대일 것이다. 이 시행이 외설적 분위기를 발산하는 것이 쉽게 잡히고, 그것이 현실의 한 면을 겨냥하고 있다는 판단 때문일 것이다. 만주국의 사정으로 보면 ‘칠색의 슈미즈’와 같은 표현은, 비록 뜻이 모호하여 꼭 찍어 의미를 규정할 수 없지만 인의와 예양을 거슬리는 표현인 것만은 분명하다. 또 왕도낙토의 이미지를 훼손시키고, 천하제일의 강군이라 자랑하는 관동군이 주관하는 대동아공영에 먹칠을 한다. 그럴 경우 이 작품 전체가 검열에 걸려 발표가 불가능해진다.
‘娼婦는 울고만 잇엇다./肉體의 女人은 장식의 歷史가 슬펏다.’, 혹은 ‘明日도 그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살아야 할 것을/女人아 假面아’라며 ‘명일’을 찾는 여인, 그러나 몸이 그대로 삭아가는 여인들만 가득하다. 이런 타락해가는 정황은 다음과 비허구산문과 다른 데가 하나도 없다.
淫蕩한계집들의 育이 돈을달라고 아양을 떨며 香氣노픈洋酒와 騷亂한짜즈와 애로틱한舞踊으로 하르빈의밤은 새여간다. 하르빈의價値는 낮보다밤에잇스며 사랑보다育에잇다…(중략)…
저녁을 먹고 거리에 나서면 아지못할 게집들도 윙크를 하며 지나가고 심한 게집들은 따라와 산보가자고도 한다. 이로 보아서 哈爾濱이 얼마나 淫蕩한곳이라는것을 알겠거니와 그보다도 그거리에 病院看板을보면 거의 全部가 ‘淋疾梅毒’專門治療라는 看板뿐이다.
하르빈이 성병으로 망가지고 있는 현장이다. ‘저주받은 직업’들이 소돔과 고모라의 악과 타락을 연상시킨다. 이 비참한 사실은 여자가 ‘다러진 넷말로는 “福德房”이고’, ‘화류병균 로커’와 같은 표현으로 압축된다. <창부의 명령적 해양도>는 이런 자본주의적 도시의 밤풍경을 그런 이미지 다발을 충돌시켜 황홀한 공간으로 묘사한다. 이것은 1차적으로 초현실주의가 도덕적이고 이성적인 것보다 비이성적인 무의식과 상상의 논리가 더 중요하다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는 점에서 시적 한계라 하겠다. 그러나 본질적으로는 이미지의 우연한 충돌로 발생하는 세계가 신생 제국 만주국의 이면 폭로이고 응축이라는 점에서 초현실주의시의 가치관의 실현이다. 초현실주의시가 독자에게 당혹스런 충격을 주는 기법이 특징이지만 그 시의식은 부르주아사회질서를 예술적으로 전복하려는 반항정신인 까닭이다, <창부의 명령적 해양도>의 배경이 신경이고, 하르빈이라는 확실한 증거는 없지만 만주국이 자랑하는 근대도시가 이렇게 병들어 가고 있다는 것은 그 나라가 그 지경이라는 말이다. 그러니까 이 시는 만주국의 혐오스러운 부르주아적 현실이 장차 모든 것을 병들게 하리라는 예보, 초현실주의시의 그 비판적 가치관의 압축적 형상화에 다름 아니다.
2-2. 초현실주의 시의 확장 <未明의 노래>
오----
骸骨엔 사보뎅 어근 피여 나는 밤
오----
墓穴엔 蛆虫의 凱歌가 들니는 밤
피고 노래가 들니고
꽃피고 노래가 들니고
밤이 가고 밤이 오고
밤이 가고 밤이 오는 밤
오----
黑板엔 蒼白한 空間이 되여 날으고.
피여나는 空間엔 太陽처럼 親한
죄만 죄만 胡蝶의 무리 무리 날으고
거미줄 같은 地土엔 太陽을이든
數많은 慾望과 暗憺한 愛慾이
아름다운 時間 우으로
昆虫처럼 사라지고
波紋처럼 사라지고
亡靈이 되고 亡靈이 되고
오----
骸骨엔 사보뎅 하이얀 피여 나는 밤
피고 노래가 들리고
은 永遠을 은 永遠을
凱歌는 忘却의 地圖에서 異邦女의 노래처럼 들니고.
오-
은 骸骨에 피여가고 피여나리라
忘却의 地圖에서 노래는 들니리라.
一九四0. 一0. 二五.
「典型」에 들이는 노래. 於 圖 們
2-3. 해체당한 현실 <風景手術>
닭소리에 宇宙가라는새벽이면 히여가는 들창밋에 카레더-의神話를記念하는 戀文들은 회파람을 불드라. 흙빗을 어르만지면 파라핀이 그리워진다 新作路가 海女처럼 발가벗고 웃는다. 飛行場에서 兒孩들이 말은풀 거두며 포장과가튼 喜悅을 湖水에 보낸다 이것은 장임에게 무지개를 알리자는 意味였다 아라비아의地圖를가진 兒孩들이 軌道를橫斷한다 배추속에 새벽노래가 아롱지면 물동이인少女의 그림자가 海邊의 젓봉오리를휘젓는다 北窓을 여러제치고 蒼空을흘으는 숫탄 손벽소리를헤치고 노래와가튼 彫像에 七面鳥한머리 딩굴고잇다 히-ㄴ壁압에서 오랜-지의太陽이 누른頭髮을 고잇다 바사솔을 쓰고 나의感情이 戀人의손바닥에 音樂을들여주엇다 戀人은 고무風船의 微笑를하엿스나 나는 목아지업는思考를 가젓다 薔薇色秘密을가진 靑年들은 凋落이되면 모-도 外套를입드라 靑年들의 會話는『興亞』를 피우며 사보덴과가치 그속에서 肥滿하더라 그들은 左右兩 포켓트에 疲困한 손바닥을 르고 正午의 네거리를 서성거리다 비로-드의 검은乳房을 어루만지면 열개의 손락이 낡은感情을 바란스하드라 薔薇입파리 러진것을 슯어말것이다 健康한 검푸른가시蒼空을휘젓는것을 노래할것이다. 太陽은 그러케아름다웟스나 印象派畵家들은 서른두개의 舞臺를미고 그우에서 쏘라노를 불럿느니라 이것은 한개귀여운 베일이엿다. 베일에 靑年畵家들의 핑거-가 湖水를 숨쉬드라 이것은 二十一世紀의 나이팅겔-ㄹ을 할머니들들이자는 行動이드라 한개 원두와가튼 形態에서 무서운 體溫을 어더편으로 感情花하였다는것은 比喩가아니엿다 그것은 黃昏風景에 젓을줄려는 意味다 에서 해마다 鳳仙花는 붉은 요기를 잇지안트니할머니는 힌 등을 구부리고 少女의 손락을 보기시작하드라 어대간들 이 피질안켓니 어대간들 이 러지질 안켓지 그러기에 兒孩들은 유리박과가튼 湖水에 얼골을비추워 보는方法을 갓일 것이다 푸른森林을 사랑할수업는 장님에게 美學으로 이야기 말것이다. 凋落한 落葉이 아니라 樹液이속으로 흘으는 나무나무의 거리를 은손바닥으로 어르만지게할일이다. 樹液의合唱을 들을 것이다.
이 두 작품에 대한 분석은 <<1940년대 전반기 재만조선인시 연구>>(제68회 대한민국 학술원상 인문학부분 수상저술. 역락출판.2022) 227~231, 232~241 쪽에서 상세히 이루어졌다.
3. 마무리
<만선일보>에 발표된 작품은 관동군이 관리하는 신문이기에 볼 것도 없다는 것은 잘못된 선입견이다. 이런 사실은 이수형의 <창부의 명령적 해양도> 한 편 분석만으로도 증명되었다. 유치환의 <생명의 서> 연작 3편(<만선일보>. 1942. 1.18~1.21), 김조규, 한 얼 生 등의 작품으로도 증명된다. <만선일보>의 중요 기사는 일역하여 기사로 나가기 전에 주간의 검열을 받아야했고, 문학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나 이수형의 초현실주의 기법의 시 <창부의 명령적 해양도> <풍경수술> 같은 시를 일본어가 모국어도 아닌 사람이, 그것도 일간지의 시간에 맞춰 번역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을 것이다. <만선일보> 문예란의 작품 가운데는 이런 사정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와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형상화한 작품이 많다. 이수형이 대표적 시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