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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과 나 장정일
중앙과 나
그는 중앙과 가까운 사람
항상 그는
그것을 중앙에 보고하겠소
그것을 중앙이 주시하고 있소
그것은 중앙이 금지했소
그것은 중앙이 좋아 하지 않소
그것은 중앙과 노선이 다르오
라고 말한다
중앙이 어딘가?
중앙은 무엇이고 누구인가?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중앙으로부터
임명을 받았다는 이자의 정체는 또 무언가?
중앙을 들먹이는 그 때문에
자꾸 중앙이 두려워진다
우리가 사는 곳에서 아주 먼 곳에
중앙은 있다고
명령은 우리가 근접할 수 없는 아주
높은 곳에서부터 온다고
그는 말한다
그리고 이번 근무가 잘 끝나면
나도 중앙으로 간다고
그는 꿈꾼다
그러나 십년 세월이 가도
중앙은 그를 부르지 않는다
백년 세월이 그냥 흘러도
중앙은 그에게 편지하지 않는다
중앙은 왜 그를 부르지 않는가?
중앙은 왜 그를 기억하지 않는가?
길안에서의 택시 잡기, 민음사, 1988
강정 간다 장정일
강정 간다
알고 보면 사람들은 모두 강정 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나같이 환한 얼굴 빛내며 꼭 내가 물어보면
금방 대답이라도 해줄 듯 자신 있는 표정으로
토요일 저녁과 일요일 아침, 내가 아는 사람들은
총총히 떠나간다. 울적한 직할시 변두리와 숨막힌
슬레이트 지붕 아래 찌그러진 생활로부터 달아나기 위해
제비처럼 잘 우는 어린 딸 손 잡고 늙은 가장은 3번 버스를 탄다.
무얼 하는 곳일까? 세상의 숱한 유원지라는 곳은
행여 그런 땅에 우리가 찾는 희망의 새가 찔끔찔끔 파란
페인트를 마시며 홀로 비틀거리고 있는지. 아니면
순은의 뱀무리로 모여 지난 겨울에 잃었던 사랑이
잔뜩 고개 쳐들고 있을까?
나는 기다린다. 짜증이 곰팡이 피는 오후 한때를
그리하여 잉어 비늘 같은 노을로 가득 처진 어깨를 지고
장석 덜그럭거리는 대문 앞에 돌아와 주름진 바짓단에 묻은
몇 점 모래 털어 놓으며, 그저 그런 곳이더군 강정이란 데는
그렇게 가봤자 별 수 없었다는 실망의 말을 나는 듣고 싶었고
경박한 입술들이 나의 선견지명 칭찬해오길 기다렸다.
그러나 강정 깊은 물에 돌팔매하자고 떠났거나
여름날 그곳 모래치마에 누워 하루를 즐기고 오겠다던 사람들은
안오는 걸까, 안 오는 걸까, 기다림으로 녹슬며 내가 불안한 커튼
젖힐 때, 창가의 은행이 날마다 더 큰 가을우산을 만들어 쓰고
너무 행복하여 출발점을 잊어버린 게 아닐까
강정 떠난 사람처럼 편지 한 장 없다는 말이
새롭게 지구 한 모퉁이를 풍미하기 시작하고
한솥밥을 지으신 채 오늘은 어머니가, 얘야 우리도
강정 가자꾸나. 그래도 나의 고집은 심드렁히,
좀더 기다렸다 외삼촌이 돌아오는 걸 보고서.라고 우겼지만
속으로는 강정 가고 싶어 안달이 난 지경.
형과 함께 우리 세 식구 제각기 생각으로 김밥의 속을 싸고
골목 나설 때, 집사람 먼저 보내고 자신은 가게
정리나 하고 천천히 따라가겠다는 구멍가게 김씨가
짐작이나 한다는 듯이 푸근한 소리로
오늘 강정 가시나보지요. 그래서 나는 즐겁게 대답하지만
방문 걸고 대문 나설 때부터 따라온 조그만 의혹이
아무래도 버스 정류소까지 따라올 것 같아 두렵다.
분명 언제부터인가 나도 강정가는 길을 익히고 있었던 것 같은데
한밤에도 두 눈 뜨고 찾아가는 그 땅에 가면 뭘 하나
고산족이 태양에게 경배를 바치듯 강둔덕 따라 늘어선
미루나무 높은 까치집이나 쳐다보며 하품하듯 내가
수천 번 경탄 허락하고 나서 이제 돌아 나갈까 또 어쩔까
서성이면, 어느새 세월의 두터운 금침 내려와
세상 사람들이 나의 이름을 망각 속에 가두어놓고
그제서야 메마른 모래를 양식으로 힘을 기르며
다시 강정의 문 열고 그리운 지구로 돌아오기 위해
우리는 이렇게 끈끈한 강바람으로 소리쳐 울어야 하겠지
어쨌거나 지금은 행복한 얼굴로 사람들이 모두 강정 간다.
햄버거에 대한 명상, 민음사, 1987
길안에서의 택시잡기 장정일
길안에서의 택시잡기
길안*에 갔다.
길안은 시골이다.
길안에 저녁이 가까워왔다. 라고
나는 썼다. 그리고 얼마나
많이, 서두를 새로 시작해야 했던가?
타자지를 새로 끼우고, 다시 생각을
정리한다. 나는 쓴다.
길안에 갔다.
길안은 아름다운 시골이다.
그런 길안에 저녁이 가까워왔다.
별이 뜬다.
이렇게 쓰고, 더 쓰기를
멈춘다. 빠르고 정확한 손놀림으로
나는 끼워진 종이를 빼어,
구겨버린다. 이놈의 시는
왜 이다지도 애를 먹인담. 나는
테크놀러지와 자연에 대한 현대인의
갈등을 추적해보고 싶다. 종이를 새로
끼우고, 다시 쓴다.
길안에 갔다.
길안에서 택시를 기다린다.
길안에 택시가 오지 않는다.
모든 도시에서 나는 택시를 잡았었다.
그러나 길안에서 택시잡기 어렵다.
쓰기를 다시 멈춘다. 너무 딱딱하지
않은가? 모든 문장이, 다.
로 끝나는 것이 이상하게도 번역투의
냄새를 풍긴다. 그렇지 않아도
나는 그런 지적을 많이 들었지 않은가?
쓰던 종이를 빼어 구기고, 한 장의 종이를
다시 끼웠다. 나는 쓴다.
길안에 갔다.
길안에 택시가 보이지 않는다.
나는 모든 도시에서 쉽게 택시를 잡았건만
길안에서 택시잡기 어렵고
어느새 어두워진 길목마다 별이 쏟아진다.
문득 길안이 불편하게 느껴진다.
다시 쓰기를 멈추었다. 좀더
매끄럽게, 좀더 구체적인 풍경묘사로부터
서두를 전개할 수 있어야 한다.
아름다운 길안의 시골 풍경을 묘사한 다음
택시가 서지 않는 곳에서 택시를 기다리는
여행자의 자신만만한 모습을 묘사해내야 한다.
나는 종이를 빼어 구기고, 새로운 종이를
끼워, 이렇게 쓴다.
길안에 산이 높고
그 물이 맑다. 길안에 나무가 푸르고
나뭇가지 위에 비둘기떼가 지어올린 흰구름은
마치 건축같이 아름답고 웅장하다.
멀리서 바라봄이 아니라 길안 가운데 있을 때
길안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여행자는 독일빵같이 커다란 슈트케이스를
길가에 내려 놓고, 택시를 기다린다.
이쯤에서 쓰기를 잠시 멈춘다.
마음에 들진 않지만 시작으로서는 적당히
내 구미를 돋우는 것 같고, 독자로 하여금
계속 읽어 내려가게 할 만큼 경쾌하다.
이제 길안에 밤이 내려오며, 나는 이 여행자를
존재론적 자기인식에 이르게 할 작정이다. 나는 쓴다.
웬일인지 꽤 오랫동안 택시가 오지 않고
택시를 기다린 시간만큼. 저녁이 가까워왔다.
이름 모를 잎새들의 흔들림,
여행자는 자신이 혼자임을 느낀다.
이름 모를 새떼가 햇빛 한 조각씩을 물고
서쪽으로 지고, 연이어
모래단지를 엎지른 듯 이름 모를 별들이 흩어졌다.
사십년 간의 도시생활이 어린시절 시골에서 익힌
동식물과 별자리 이름을 깡그리 잊게 했다. 모두가
이름 모를 것들. 여행자는 갑자기
심한 부끄럼에 휩싸인다.
쓰기를 더 멈춘다. 여행자의 고독이
너무 비현실적이다. 그는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고자 하는가? 사십 년 간의 도시생활이,
생경스레 튀어나온 것은 아닌가? 나는 출판사의 사장이자
시인인 한 선배로부터, 비약이 심하다는
평을 들은 적이 있다. 사실 구체적이지 않은 시는
내 자신이 질색이다. 지금껏 쓴 것을
빼어 버리고, 다시 종이를 끼운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쓸 결심을 한다. 나는 쓴다.
고향에서 떠나 도시에서 사십년 간 살았던
한 오십대가 있어 오랫동안 찾아보지 않았던
고향에 온다. 길안…….
나는 한 숨을 쉰다. 종이를 홱
빼어 던진다. 이놈의 시가 나를 골탕먹이는군.
나는 테크놀러지 이용에 대한 이율배반의
모순성을 갈파하고자 한다. 즉 테크놀러지를 이용할
때의 편리성, 그로 인해 그것에 종속되어가는
현대인들을. 그리고 덧붙여, 테크놀러지에
노예화됨으로써 테크놀러지를 이용할 수 없는
자연적인 상황에 부딪쳤을 때 보이는 현대인의
초조한 반응을 묘사하고 싶었다. 어떻게 될까?
그런 상황 앞에서 비로소 테크놀러지의 불편함을
느끼기도 하겠고, 도리어 테크놀러지화되지 않은
자연에 대해 신경질 부릴 수도 있겠지.
새로운 종이를 끼우고, 나는 쓴다.
길안에 갔다.
길안이 아름다워 나는 울었다.
길안에 어둠이 내렸다.
길안에 택시가 보이지 않는다.
길안 바깥에서 나는 기다리고 있을 사람들 생각을 한다.
길안이 불편해진다.
길안이 내 모든 약속을 퍼지르고 앉았다.
길안이 불안하다.
연을 띄우고, 잠시 멈춘다. 이 어조로 쓰는 거야,
독하게 마음먹는다. 누가 뭐라건 말건
이런 생각을 한다. 우표를 모으는 우표수집가가
자신의 스토크 북 속에 우표를 수집해두는
일같이, 시 쓰기 또한 내 가슴 속에
시를 모아두는 일일 것! 새로운 시를 쓰고 싶은
열망은 우표수집가가 자신의 스토크 북 속에
없는 볼리비아산 나비 우표를 간직하고 싶어하는
그 열망 이상의 것에 다름아닐 것이다. 우표
수집가가 아무리 구하기 어려운 귀한 우표를 구해
간직했다 한들, 그 때문에 세상이 바뀌지 않듯
시인이 아무리 좋은 시를 쓴들, 또한 세계는 변함
없는 것. 우표수집가와 시인 가운데 어느쪽이 더
위대한가, 우열을 가릴 수 없을 때 우리는 우표수집가의
그, 성취의 기쁨을 위해 시를 써야 한다. 이렇게
밑도끝도없는 생각을 하곤, 나는 다시 타자기를
두드려갔다.
길안의 바깥에 있을 때 자동판매기에서 커피 빼먹던 생각을 한다.
길안을 빨리 벗어나고 싶다.
길안 벗어날 수단이 없구나.
길안이 불가해하게 느껴진다.
길안의 산과 물이 역겨워 진다.
길안의 나무들이 유령같이 곤두섰다.
아아 상종 못할 자연
이해 못할 자연이다.
길안의 비문명이 공포스럽다.
연을 띄우고 잠시 쉬기로 한다. 여행자는 이미
충분히 불안해졌고, 그는 테크놀러지화되지 않은
길안의 자연상태에 대하여 추악을
느끼고 있다. 그러면 이쯤에서
그가 가야 할 곳에 대한, 현대인의 회의를
끄집어내면서 이 시를 마무리하자. 나는 쓴다.
그러나 나는 어디로 가게 되는 것인가?
내가 가야 할 거기가 어딘가?
택시를 쉽게 잡기 위해
택시잡기 어려운 이곳으로부터 빠져나가야 할
그곳은 어딘가?
과연, 길안을 떠나 다시 길안으로 돌아올 수 있겠는가?
길안에서 처음으로
길안 바깥이 불 안으로 닥쳐온다.
나는, 너는, 모든 길들은
어디로 가게 되어 있는 것일까?
우리 있을 데가 없다.
다 썼다. 3연의 시.
나는 그것을 읽어본다. 엉망이구나.
한숨을 쉰다. 이렇게 어려운 시.
이렇게 어려운 일을 하며, 한평생
사는 것이 내 꿈이었다니! 나는
방금 쓴 3연의 시를 찢는다. 커피를 한
잔 끓여 마신다. 생각이 이어졌다. 유년시절에
계집애들이 하던 고무줄 놀이가 아닐까, 시 같은
것은. 점점 새로운 세계로 나가는 것. 자꾸
고무줄 높이를 높이면서 고통을 즐기는 것,
고통을 즐기는 것! 이 밤 기어이, 길안에서의
택시잡기를 쓰고야 말겠다. 나는 무섭도록 새하얀
종이를 끼운다. 다시 쓴다.
풀이 우거진 자리에
한 무전여행가가 검은 슈트케이스를 든 채
택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늬엿늬엿 해가 지고 있었지만
택시는 보이지 않았고, 그렇다고
여행가가 쉽게 포기할 것 같지도 않았다.
여기까지 쓰자 아침이 밝고, 나는 세수를 하러 일어선다.
하룻밤 꿈을 꾼 듯. 밤샘한 어제가
어릿하다. 더운물에 찬물을 알맞게
섞는다. 생각이 떠올랐다.
물과 물이 섞인 자리같이
꿈과 삶이 섞인 자리는, 표시도 없구나!
나는 계속, 쓸 것이다.
* 길안: 안동 근교의 면소재지
길안에서의 택시 잡기, 민음사, 1988
나, 실크 커튼 장정일
나, 실크 커튼
나는 그 남자를 본다. 수돗가를 향해
조그만 창이 나 있는 골방 속에 들어 있는 남자를
나는 본다. 그는 심한 기침을 해대며
나, 실크 커튼이 쳐진 작은 창이 달린
골방 속에 산다. 그는 입을 오물거려 껌을 씹고
몸은 움직이지 않는다. 가끔 파스 하이드라지드를
입에 털어넣고 주전자째로 물을 마시는 남자.
정말이지 나, 실크 커튼이 보기에 그는 전혀
움직이지 않고 사는 것 같아 보인다.
나는 본다. 그 남자를 보고, 또 한 여자를
나는 본다. 그녀는 하루에도 수차례씩
비누를 들고 나와 수돗가에서 발을 씻는다.
발가락 사이 사이와 발꿈치 복숭아뼈를 거쳐
종아리와 정강이, 무릎에다 잔뜩 비누칠을 하고서
거친 수건으로 그것들을 세심히 문지르는 그녀.
나, 실크 커튼이 보기에 그녀는 마치
씻기 위해 사는 것처럼 보인다.
나는 본다. 한 남자와 한 여자의 외로운 노래를,
나, 실크 커튼은 본다. 수돗가에서 스테인레스 대야가
햇빛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낼 때마다 그 남자가
나, 실크 커튼 앞에 바짝 다가서는 것을. 나는
본다. 여자는 두 허벅지 사이에 치마를 끼운 채 발을 씻고,
그 모습을 보며 남자가 수음에 열중하는 것을. 나, 실크 커튼은
하염없이 본다. 클클거리며 수음하는 남자를,
기침이 달겨들 때마다 사시나무 떨듯 몸을 떠는 남자를.
그럴 때 그의 몸뚱이는 거대한 기침이 그를 뱉었다,
다시 집어삼키는 것 같고 그때 그는
커다란 기침 속에 들어 있는 것만 같다.
나는 본다. 그 남자의 깊은 땀샘으로부터, 이마
밖으로 솟아나는 땀방울을. 그래, 그는 땀을 흘리며
손을 움직인다. 그것은 나, 실크 커튼이
보기에도 무척 힘겨워 보이고, 그것은 그 남자의
외로움이 어쩔 수 없이 그렇게 시키는 것 같다.
그리고 그 남자의 행동은 해변의 모랫벌에서 모래성을
짓는 순수의 소년들이 하는 허망한 짓을 닮았다.
그렇지 않은가? 나, 실크 커튼이 보기에
수음은 금세 부서질 모래성을 쌓는 것과 같다.
나는 본다. 수돗가에서 발을 씻는 여자를.
그녀 가슴 또한 얼마나 외로움에 사무친 것일까.
나, 실크 커튼이 보기에 그녀는, 저 골방 속에서
한 남자가 나, 실크 커튼을 통하여 비치는 자신의
각선을 훔쳐보며 수음에 열중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는 듯이 보인다. 나, 실크 커튼이 보기에
그녀는 그 남자가 골방 속에서 뛰쳐나와
그녀를 비누 묻은 채 거칠게 수돗가에 쓰러뜨리기를
원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그러니까 그녀는
그의 욕정을 유발시키고 있는 중이고, 강간당하기를
바라는 것이며 나, 실크 커튼이 보기에
처녀들의 결벽증은 그녀들의 욕망과 비례하는 듯이 보인다.
나는 본다. 매일 방안에서 벌레처럼 꼬물거리는
남자와, 하루에도 수차례 발을 씻어야
마음이 놓이는 여자를 나는 나, 실크 커튼을 통해
보고 있다. 나는 그 여자가 발을 씻을 때마다
나, 실크 커튼을 통해 그녀의 모습을 훔쳐보며
수음에 열중하는 남자를 보고, 그 남자가
모래 흩어지는 소리를 내며 쓰러지는 것을 본다
그래, 그는 정말 모래성같이 풀썩
쓰러졌다. 단 한 번의 가래침으로 만들어진 우리들.
계속해서 나는 본다. 그녀가 마른 수건으로 손과 발을 닦고
흘낏, 골방 쪽의 창문을 바라다보는 것을, 그러나
그녀는 나, 실크 커튼 뒤에 있는 나를 보지 못한다.
나는 본다. 방바닥에 웅크린 남자를.
아무 책장이나 죽, 찢어 그 남자가
자신의 손가락 사이와 방바닥에 끈적이는 점액질을
닦아내고 있는 것을 나, 실크 커튼은 본다.
그리고 나는 그가 모래처럼 흩어져 있다가
다시 하나의 모래성으로 모이는 것을 볼 것이다.
그녀는 몇 시간 뒤 수돗가에서 다시 발을 씻을 테고
그때 그는 나, 실크 커튼 앞에 서서
나, 실크 커튼을 통해 안전하게 보여지는 그녀의 자태를
훔쳐보며 굳은 모래성을 쌓을 것이기에.
결벽증에 걸린 뜨거운 여자이자
한 줌의 모래 1과
욕정이 절정에 달한 결핵 3기의 남자인
한 줌의 모래 2의
서로 만나지 못하는 연극.
나, 실크 커튼으로 가로막힌
길안에서의 택시 잡기, 민음사, 1988
도망중 장정일
도망중
한 사나이가 있다. 그는 도망중이었다.
한 사나이는 새침한 여자와 만난다 그녀는
예뻤고 그녀는 귀여웠고 도망중이었고
사나이는 그녀가 좋다. 한 남자가
한 여자를 사랑할 때, 사내는 매일
구두를 반짝거리게 닦지요 붉은 장미를
사지요 비 오는 공원에서 기다리지요.
그러던 어느 날 사내는 그녀에게
구혼을 한다. 그들은 결혼을 하고 신접
살림을 차린다. 그 살림은 도망중이었다.
한 사나이가 있다. 그는 묻는다.
한 사나이가 있다. 그는 아내에게
묻는다. 아직 소식이 없어, 왜 그렇지?
그날 밤 남자와 여자는 한 번 더 간다.
아직도? 남자와 여자는 한 번 더 간다.
아직도? 한 번 더 간다. 아직도? 아직도야?
사나이는 초조해서 유순하고 순한 개 한 마리를
사온다. 사나이는 메리라고 부르며 그 개의
목을 끌어 안는다. 그때 메리는 그 사내의
강한 팔뚝 속에 있는 것 같아 보인다 그러나
그 개 또한 도망중이었다.
한 사나이가 있다. 어느 날 그는
아내의 뺨을 한 대 갈긴다.
기분이 언짢아 갈긴다. 아내는 울음을
참고 따진다. 메리가 누구예요, 메리가 대체,
메리가 누구냔 말예요? 사나이는 대답
하지 않는다. 그제서야 아내는 운다.
한구석에 구겨져서 조용히 운다. 울며
아내는 짐을 싼다. 다시 돌아오지 않겠어요
아내는 짐을 싼다. 깨끗이 끝장내기로 해요.
그러기에 두 사람이 함께 도망 다니는 일은 힘이
든다. 그들은 이제 따로 도망하기로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가 태어난다. 도망중에
무관심중에, 고대중에, 기다리고 기다리던 그
어떤 시간중에, 불어오른 메리
몸에서 아이가 태어난다. 사나이는 돈을 지불
한다 돈을 준다. 메리는, 내가 키우겠어요.
요만큼 가지고는 어림 없어요! 물론 사내는
좀더 준다. 그리고 아카시아향에 젖은 아이
무죄에 싸인 아이와 홀로 산다. 살며
사나이는 발가벗은 아이의 몸뚱이를 꼭 껴안아
자기 귀에 대어본다. 심장이 뛰는 소리가 여리게 들린다.
확, 확, 확, 확, 확, 아이는 저 혼자 도망하고 있었다.
햄버거에 대한 명상, 민음사, 1987
라디오같이 사랑을 끄고 켤 수 있다면 장정일
라디오같이 사랑을 끄고 켤 수 있다면
부제: 김춘수의 꽃을 변주하여
내가 단추를 눌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라디오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단추를 눌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전파가 되었다.
내가 그의 단추를 눌러준 것처럼
누가 와서 나의
굳어버린 핏줄기와 황량한 가슴속 버튼을 눌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전파가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사랑이 되고 싶다.
끄고 싶을 때 끄고 켜고 싶을 때 켤 수 있는
라디오가 되고 싶다.
길안에서의 택시 잡기, 민음사, 1988
물 속의 집 장정일
물 속의 집
냇물 속에 집이 있다.
냇물 속의 집은 물풀에 싸여 아늑하고
잘 씻은 자갈 위에 기초 놓아
튼튼해 보였다. 그리고
어질고 순한 꽃게와 송사리떼가
물 속의 집을 들날락거렸다.
언제나 나는……물……
속의 집에 가고 싶었다. 그
집에 들아가 밀린 때가 굳은
등짝을 밀고 싶었다.
그리하여 어느 날
바짓단을 무릎까지 걷고
물 속으로 첨벙 뛰어들어
문을 연다. 물의 고리를 잡고
문을 연다. 열리지 않는다
문도. 물도. 도무지
열리지 않는다 어리석은
심사에는 내가 열려는 문고리가
물에 실려 자꾸 떠내려가는 듯이
보였다. 아니면
출렁이며 물무늬가 생기는 만큼
열어야 할 문이
새로 만들어지는 것일까? 그래서
못다 연다는 것일까. 또는
물 속의 집 속에도
왼쪽 목에 무서운 칼집을 가진
나와 같은 한 불행한 청년이 있어
내가 당기는 문을 맞잡고
물 속의 문을
잡아당기고 있는 것인가.
언제나 나는. 갈 수 없는 집에
가고 싶었다. 그러나 문은 열리지 않고
집은 점점 붉게 흐린 황혼 속으로 깊어졌다.
그리고 연꽃송이가 불타오르듯
하나. 둘,
물 밑에서부터
별들이 돋아났다.
무심코 고개를 들었다.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때, 물 속에 잠겨 있던 집이
수천 허공을 가로질러
앞산 중턱에 날아가 박혔다.
험한 산.
아궁이 지피는 불쏘시개같이
끝이 까만 나무들이 우뚝우뚝 솟은 산중턱에
물 속의 집이 있었다.
아, 모든 건 환영이었구나!
나는 무안해서
물에 젖은 발목을 마른 흙에
비벼 닦았다.
갑자기 그 집에서 울리는 듯한
개 짖는 소리가 이오처럼 들렸고
밥 타는 매캐한 냄새가
코끝을 끌어당겼다.
그렇습니다.
나르시스가 살러 간 것같이
우리가 물 속에 집을 지을 수는 없습니다.
햄버거에 대한 명상, 민음사, 1987
백화점 왕국 장정일
백화점 왕국
1983년 11월 한 달 간 산격동에 소재한 시영 물물교환센터에서 일하며 한 블록 떨어져 당당히 버티고 서 있던 D백화점 북지점을 모델로 이 작품을 쓴다.
□ 1
살아 있다는 까닭 외에 생업이라는 수식어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 것인지.
밀대와 빗자루가 작은 내 생활의 가게를 쓸고 있을 때
쳐들어 오는 것이다. 허벅지에 꿀을 가득 묻힌 벌떼같이
낮게 웅웅거리며 황금색 상호로 번뜩이는
왕국의 차들이 오는 것이다. 어디선가 이루어진
거대한 공업으로부터 그러나 철저히 은폐된
공업이 자신 스스로를 판매하기 위해
여섯 대의 차를 나누어 타고 사방의
길 끝에서 길을 끌고 몰려온다. 그렇다 여기 이 도시의 한쪽을
제일 먼저 흔들어 깨우는 것은 태양이 아니라
신선한 우유를 만재한 냉동트럭 밀려드는 상품트럭
그리고 도시를 도시답게 만드는 것 또한
널찍하고 쾌적한 녹지대가 아니라
우뚝우뚝 솟아오른 현대식 상가인 것이다.
□ 2
거대한 벌집을 연상케 한다. 그것은
여왕벌이 충실한 일벌을 거느리는 것같이
물론 천성에 의해서가 아니라
교육에 의해 훈련받는다는 그 점이 다르겠지만
어쨌든 백화점은 충실한 일벌을 거느린다.
하얀 와이셔츠와 멋있는 넥타이를 매고서
라면상자를 공중으로 던지고 맵시있게 받아 재는
그들. 정오에서 세시까지 사십 명씩 교대로
점심시간을 갖는 드러난 다리의 여점원들
여 점원들에 대해서라면 몇가지 부기할 것이 있다.
기사식당에서 나는 늘 그녀들의 일부를 만나곤 했지
마른 빵을 우겨 넣으며 간단히 점심식사를 때우던
한가한 잡담도 없이 만화책과 주간지를 뒤적이며 나른한 옷주름을 펴던
백색의 처녀들.
선지국밥 속에 숟가락을 묻은 채 나는
그녀들 중의 한 사람에게 얼마나 말을 걸고 싶어했는가
왕국의 여자를 아는 것은 왕국을 아는 것이기에
아니, 내가 왕국을 정복할 수도 있는 일!
그녀들이 좋아하는 이상적 남성을 나에게서 이루고
그녀들의 잠버릇을 충분히 연구한 연후에
시도한다면 그 또한 가능한 노릇. 그녀의 성감대는
주식시세처럼 민감하게 떨려오겠지
그러나 그들이 무엇을 권리로 가지고 있습니까, 그 왕국에 대하여?
물으신다면. 담당매장만이 나의 것이라고 말하겠어요
열 시간의 노동만이 나의 것이라고 말하겠어요
빳빳한 월급봉투만이 나의 것이라고 말하게에엣써요. 말하
게에에, 개처럼 짖게엣써요. 짖게에엣써요
개처럼 벌어서 정승처럼 쓰게에엣, 써어요.
그러면 생각해보는 것이다
잘 썰어 놓은 깍두기 한 점을 집어 삼키며
노동은 인간적이다 아니다 비인간적이다
다시 깍두기 한 점을 삼키고서 아니다 아니다
노동은 비인간적인간적 행위다.
아아 모르겠다. 어이 알리
중졸인 내가 어이 알리? 모르겠다, 말해다오.
학문에 도통한 자여, 잠시
딱딱하게 빛나는 해골의 턱주가리를 열어
명확하고 간략하게 누구나 알아듣기 쉽게 말해다오
인간이 노동을 통해서만 행복을 얻을 수 있음은 어인 변괴뇨?
□ 3
이 왕국엔 보안이 없다. 오고 싶은 자는 오라지
당신 어깨 두드리며 아마 그는 이렇게 속삭일걸
우리 친구가 되지,
어때?
난 네 것이라구!
그의 어깨 두들겨주기엔 당신 키가 모자라겠지만
번뜩이는 네온의 월계관을 쓴
왕관 없는 현대의 왕
그는 결코 지배하지 않는다.
그러나 분명히 알아두는 것이 좋다
누가 우리에게 채소를 심게 하고
가구를 만들게 하며 어린 누이를
밤새도록 컨베이어 시스템 앞에 꼰아 박아두는지
다가올 할인판매를 광고하고 잽싸게 뒤돌아서서
새로운 판매전략에 고심하는 이자가 바로
우리들의 등과 배를 간지르며
만들라! 만들라! 만들라!
강요하는 것. 기실은
지상에서 이루어지는 비밀스런 공업이
모두 우리들의 일인 것이다.
□ 4
사람들이 모여서 강하고 지혜 있는
새로운 왕국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그것은 백화점 왕국이고
오전부터 술 취한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의 생업을 망친 자들인데
망쳐버렸다구, 풀이 죽어 망. 쳐.
버. 렸. 다. 구. 떠드는 사람들은
정말 생을 망쳐버린 자들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한켠에서 그들의 아내는
얼마나 심약하고 슬프게 지껄이는 것인가
젖통에 남은 젖을 아이에게 먹일 힘도 없이 슬프게
우리도 문을 닫아야겠어요. 우리는, 문을 닫아야겠어요
우리가, 문을 닫아야겠어요 우리의, 문을 닫아야겠어요
우우. 우우우. 우우우우. 우우.
우우우. 우우우우. 우우. 우우.
사람들이 모여서 강하고 지혜 있는
상심의 왕국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그것은 백화점 왕국이고
그것은 백인과 황인종간의, 공공연한 성기 핥아주기 계약에 의해
그것은 흑인과 백인간의, 한밤의 매질하기 놀이에 의해
그것은 황인종과 흑인간의, 서로의 어머니 바꾸기 운동에 의해 일어나는
다국적 사람 망치기 왕국이고
그것은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서 튀어 나와
치사스레 전세계를 먹어 치우는 쓸쓸한 눈뭉치.
□ 5
백화점을 다스리는 자가 필시
국방을 다스리게 되리라.
햄버거에 대한 명상, 민음사, 1987
벽돌이 올라가다 장정일
벽돌이 올라가다
우리들은 얼마나 오랫동안 동네 어귀의 빈터를 이야기 했나
양지바른 그 땅이 푸줏간 남씨의 소유라고
혹은 소문난 바람둥이 곽씨의 땅일 것이라고
지난 봄과 여름, 우리는 상상할 수 있는 온갖 소문을
그곳에 세웠지. 술주정꾼은 맥주홀을
병든 자들은 자혜병원을 세우는 식으로
그런데 저자들은 누구인가.
검은 양피의 두터운 책을 받쳐들고
둥그러니 둘러선 채 …감사…은총…돌보심을
뇌까리는 저들은?
죄 많은 동네에 하나님이 집을 짓는다
찬송 없이 여태껏 잘 살아온 이 마을에
주의 충실한 종들이 몰려와 성당을 짓는다
간단한 시축미사가 끝나고
인부들이 땅을 파기 시작한다. 그런데 저들은
하나님을 지하실에 묻으려는군
구경꾼 몰래 지구가 익혀 놓은 금을 캐려는 듯
인부들은 며칠내 땅을 파 내려가고
기초를 놓는다는 말인가
하나님도 자기 집을 땅 위에 굳건히 세워 놓기 위해서는
쌓기 전에 먼저 깊이 파야 한다는 것인가?
주의 종들이, 그지없이 선량한 천국의 백성들이
죄 많은 동네에 성당을 짓는다.
적벽돌의 환한 이마에 시커먼 양회를 발라
한 칸 한 칸 신의 별장을 쌓아 올린다.
마치 주스를 마시는 것처럼
정말 저 높은 곳에 어떤 자가 있어 스트로우를 꽂고
벽돌을 빨아 올리는 것일까. 돌아보기가 무섭게
성당은 새로운 면모를 드러내고
저녁이면 그 길고 무거운 그림자가
입맞춤 청하듯 이방인의 창문까지 늘어졌다.
그리고 그것은 얼마나 높이 솟구쳤는가
모든 눈썹의 높이를 범람한 붉은 벽돌은
올라가고 올라갔다.
혹 저놈 혼자 신을 만나고 있지나 않을까.
꿈속에도 깨어나 몰래 창문을 열면
그렇기나 한 듯 은은한 구름이 미완의 종루를 감추고
정오마다 새로운 벽돌이 짧은 발꿈치를 들었다.
벽돌이 올라간다, 벽돌이!
높아지는 종루를 바라보며 사람들은 이
비천한 마을에 천국으로 가는 계단이 서는 줄 알았지만
그 높이 멈춘 쯤해서 십자가 하나 눌러 앉을 뿐
쏟아지는 햇살 가운데 하얀 십자가 하나
오롯이 세워질 때 나는 생각했다.
신은 하늘에 있고 벽돌이 아무리 높아진들
육체는 지상에서 견디는 것
우리 마음이 성당으로 가든, 불당으로 향하든
굴리는 대로 구르는 흔들바위를 숭배하든
필시 믿음이란 것도 쌓고 쌓아
마지막엔 자기 가슴 속에 한줌 소금을
남기는 일일 것이라고
햄버거에 대한 명상, 민음사, 1987
삼중당 문고 장정일
삼중당 문고
열다섯 살,
하면 금세 떠오르는 삼중당 문고
150원 했던 삼중당 문고
수업시간에 선생님 몰래, 두터운 교과서 사이에 끼워 읽었던 삼중당 문고
특히 수학시간마다 꺼내 읽은 아슬한 삼중당 문고
위장병에 걸려 1년 간 휴학할 때 암포젤 엠을 먹으며 읽은 삼중당 문고
개미가 사과껍질에 들러붙듯 천천히 핥아 먹은 삼중당 문고
간행목록표에 붉은 연필로 읽은 것과 읽지 않은 것을 표시했던 삼중당 문고
경제개발 몇 개년 식으로 읽어간 삼중당 문고
급우들이 신기해하는 것을 으쓱거리며 읽었던 삼중당 문고
표지에 현대미술 작품을 많이 사용한 삼중당 문고
깨알같이 작은 활자의 삼중당 문고
검은 중학교 교복 호주머니에 꼭 들어맞던 삼중당 문고
쉬는 시간 10분마다 속독으로 읽어내려간 삼중당 문고
방학중에 쌓아 놓고 읽었던 삼중당 문고
일주일에 세 번 여호와의 증인 집회에 다니며 읽은 삼중당 문고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지 않는다고 교장실에 불리어가, 퇴학시키겠다던 엄포를 듣고 와서 펼친 삼중당 문고
교련 문제로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했을 때 곁에 있던 삼중당 문고
건달이 되어 밤늦게 술에 취해 들어와 쓰다듬던 삼중당 문고
용돈을 가지고 대구에 갈 때마다 무더기로 사 온 삼중당 문고
책장에 빼곡히 꽂힌 삼중당 문고
싸움질을 하고 피에 묻은 칼을 씻고 나서 뛰는 가슴으로 읽은 삼중당 문고
처음 파출소에 갔다왔을 때, 모두 불태우겠다고 어머니가 마당에 팽개친 삼중당 문고
흙 묻은 채로 등산배낭에 처넣어 친구집에 숨겨둔 삼중당 문고
소년원에 수감되어 다 읽지 못한 채 두고 온 때문에 안타까웠던 삼중당 문고
어머니께 차입해 달래서 읽은 삼중당 문고
고참들의 눈치보며 읽은 삼중당 문고
빳다 맞은 엉덩이를 어루만지며 읽은 삼중당 문고
소년원 문을 나서며 옆구리에 수북히 끼고 나온 삼중당 문고
머리칼이 길어질 때까지 골방에 틀어박혀 읽은 삼중당 문고
삼성전자에 일하며 읽은 삼중당 문고
문홍서림에 일하며 읽은 삼중당 문고
레코드점 차려놓고 사장이 되어 읽은 삼중당 문고
고등학교 검정고시 학원에 다니며 읽은 삼중당 문고
시공부를 하면서 읽은 삼중당 문고
데뷔하고 읽은 삼중당 문고
시영 물물교환센터에 일하며 읽은 삼중당 문고
박기영 형과 2인 시집을 내고 읽은 삼중당 문고
계대 불문과 용숙이와 연애하며 잊지 않은 삼중당 문고
쫄랑쫄랑 그녀의 강의실로 쫓아 다니며 읽은 삼중당 문고
여관 가서 읽은 삼중당 문고
아침에 여관에서 나와 짜장면집 식탁 위에 올라앉던 삼중당 문고
앞산 공원 무궁화 휴게실에 일하며 읽은 삼중당 문고
파란만장한 삼중당 문고
너무 오래 되어 곰팡내를 풍기는 삼중당 문고
어느덧 이 작은 책은 이스트를 넣은 빵같이 커다랗게 부풀어 알 수 없는 것이 되었네
집채만해진 삼중당 문고
공룡같이 기괴한 삼중당 문고
우주같이 신비로운 삼중당 문고
그러나 나 죽으면
시커먼 배때기 속에 든 바람 모두 빠져 나가고
졸아드는 풍선같이 작아져
삼중당 문고만한 관 속에 들어가
붉은 흙 뒤집어 쓰고 평안한 무덤이 되겠지
길안에서의 택시 잡기, 민음사, 1988
새로운 자궁 장정일
새로운 자궁
버릇같이 그것을 들여다보고 있을 때였어요
갑자기 내 몸이 가비엽게 뜨는 듯하더니
어디론가 세차게 빨려들어가기 시작했어요
캄캄하고 비좁은 인큐베이터 속으로!
쇳조각과 전류가 흐르는 네모 상자 속으로!
나는 그 속에서 바보같이 킬킬대고
잽싸게 지껄이고 거짓말하고 미소짓습니다
나는 이 속에서 온갖 죄악과 부패를 배웠습니다
그래요, 언제부터인가 나는 무감각한 한 대의
티 브이일 뿐입니다
서울에서 보낸 3주일, 청하, 1988
성난 눈 장정일
성난 눈
눈은 이글이글 불타오른다.
그 순하고 얌전하던 눈, 동경을 담은 채로
그 순하고 얌전하던 눈, 핍박받은 것들.
저렇게 충혈해지다니
그래, 눈은 약올랐다.
약오른 눈은 일어선다.
그것들이 네 목을 조를 때,
눈은 튀어나오고 부푼다.
가련한 것들,
그 순하고 얌전하던 눈들이,
광고들 선전탑들 영화간판들 또는 무분별한 씨 에프에 의해,
하루아침에 시들다니
(오! 섹시, 얼마나 섹시한가, 그런 것들은?)
눈은 병들었다.
꼼짝마, 눈으로 쏘겠어!
내 눈은 성났어!
소리치는,
그 순하고 얌전한 눈들.
가련한 것들.
길안에서의 택시 잡기, 민음사, 1988
아파트 묘지 장정일
아파트 묘지
홀린 듯 끌린 듯이 따라갔네
그녀의 희고 아름다운 다리를
나 대낮에 꿈길인 듯 따라갔네
또박거리는 하이힐은 베짜는 소린 듯 아늑하고
천천히 좌우로 움직이는 엉덩이는
항구에 멈추어 선 두 개의 뱃고물이
물결을 안고 넘실대듯 부드럽게 흔들렸네
나 대낮에 꿈길인 듯 따라갔네
그녀의 다리에는 피곤함이나 짜증 전혀 없고
마냥 고요하고 평화로웠다
나 대낮에 꿈길인 듯 따라갔네
점심시간이 벌써 끝난 것도
사무실로 돌아갈 일도 모두 잊은 채
희고 아름다운 그녀 다리만 쫓아갔네
도시의 생지옥 같은 번화가를 헤치고
붉고 푸른 불이 날름거리는 횡단보도와
하늘로 오를 듯한 육교를 건너
나 대낮에 여우에 홀린 듯이 따라갔네
어느덧 그녀의 흰 다리는 버스를 타고 강을 건너
공동묘지 같은 변두리 아파트 단지로 들어섰네
나 대낮에 꼬리 감춘 여우가 사는 듯한
그녀의 어둑한 아파트 구멍으로 따라들어갔네
그 동네는 바로 내가 사는 동네
바로 내가 사는 아파트!
그녀는 나의 호실 맞은편에 살고 있었고
문을 열고 들어서며 경계하듯 나를 쳐다봤다
나 대낮에 꿈길인 듯 따라갔네
낯선 그녀의 희고 아름다운 다리를
햄버거에 대한 명상, 민음사, 1987
안동에서 울다 장정일
안동에서 울다
언젠가 왔던 듯한 도시. 산림이
벽처럼 둘러쳐진 한국의 중북부
낮은 건축 사이로 울긋불긋한
바람이 지나가고 몇 개의 아이스크림
껍질이 흙먼지와 섞여 날은다. 중북부
누구나 이런 소도시에 오면 미국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생각해도 좋으리라.
여기에도 코카콜라를 마셔대는 갈증난
목구멍이 있고. 문제의 외화를 보는 호기심이
있고. 광광 울리는 팝송이 있으니
중북부의 소도시. 어딜 가나
한국의 찻집에는 중년들이 있다
정치적 예언가 역할을 즐기는 중년신사가 있어
개혁세력, 후계자 또는 한 재벌의 기업의 어이없는
무너짐에 대하여 진단하고 의심하고 예언한다.
그 어딜 가나 한국에는 책임감 없는 논객이 있다.
세상 모든 사람이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세상 사람 모두가 부르주아가 되면 될 것이라고
호탕하게 껄껄거리는 중년이 있다.
한국의 어느 도시엘 가나 문제가 있는 곳에
문제의 중년이 있고 추문이 있다. 나이 먹은 추물이
벌써 이곳의 어린 소녀들도 유행의 소매
끝으로 손등을 덮고 다닌다. 유아기적인 것과
가까워지려는 최근의 문화양식이 이곳
계집아이들의 손등을 덮쳐 누르고 있다.
계집의 손등만 아니라 모든 도시는 서울화.
모든 도시는 최근의 서울화인 것. 언제나
끊임 없이 서울식의 삶을 반추해야 하는 소도시
출세를 결심한 자들이 칼을 갈며 떠나간
텅 빈 소도시로 서울이 덮고 남은
절정 없는 밤이 내려 깔린다.
그러면 유격훈련에 임한 신병같이
한 번씩 아내의 이름을 부르고. 첫딸의
이름을 부르고. 낯선 소도시를 무대로
비상한 상술을 벌여 놓은 약삭빠른 장사치들이
실비의 여관을 찾는다. 서적외판원이며
남성향수외판원. 캘린더 주문배수원들이
하나. 둘. 값싼 여관을 찾는다. 소도시의
3류 여관에서 출세한 자들의 서울에서 탈락한
뜨내기 서울내기들이. 하루의 피곤을
풀처럼 눕히리라.
언젠가 왔던 듯한 도시. 산림이
벽처럼 둘러쳐진. 한국의 중북부
거기에 싸락눈처럼 잠이 떨어진다.
그러나 잠들지 못하는 회한도 있으리라.
내가 왜 여기까지 왔지? 여기가
어디지? 끝? 끝?
그래 너는 이제 끝이야. 외판원이
너의 끝이야. 네 삶의 끝이야!
베개 속에 얼굴을 묻고
사나이는 울어버린다. 중북부의 외진
소도시가. 썰렁한 소도시의
초라한 여관의. 꿉꿉한 이불이
다 큰 사나이를. 서울내기 사나이를
울려 버리고 만다.
햄버거에 대한 명상, 민음사, 1987
약속 없는 세대 장정일
약속 없는 세대
우리들은 약속 없이 만나지 않는다. 우리들은 언제나 약속을 하고서야 만난다. 왜냐하면 우리에겐 이미 약속없이 만날 수 있는 영감이 사라진 지 오래니까. 하므로 우리에게 약속 없이 만나는 갑작스런 기쁨이 선사되는 일이라곤 없다.
그렇다고 해서 대체 우리가 어떤 약속을 하기나 했다는 걸까. 우리들은 우연히 길거리에서 만났고, 우연히 극장에서 만났는데, 그리고 디스코 텍과 맺주 홀에서 우연히 만났는데. 또 한잔 더 하기 위해 찾아들어간 포장집에서 우연히 만났는데. 그래, 이런 일들이 정말 어떤 약속하에 이루어진 것일까, 정말 어떤 약속하에? ―믿기는 어렵다.
우리들이 만나기 위해 더는 약속이 필요치 않다. 우리들은 약속 없이도 만날 수 있는 예민한 습관을 가지고 있다. 티 브이를 켜면 만나지는 얼굴같이, 너와 내가 만나는 것은 타성이다. 우리들은 그 습관 위에서 만난다.
진정 사랑할 만한 그녀를 공들여 찾아내고, 전화번호를 훔치고, 그녀가 있을 만한 시간을 점쳐 몇 번이나 망설인 끝에 전화를 하고, 실랑이 끝에 만날 약속을 하고, 어렵게 장소를 정한 그날부터 만날 날을 손꼽으며 하루 또 하루를 보내고, 가슴 아프게 기다리고, 수첩을 확인하고, 달력을 보고, 또 보고, 그날이 되어 아껴둔 셔츠를 입고, 정성들여 구두를 닦고, 하숙집 아주머니에게 두 사람 몫의 커피값을 비는 일은 이제 할 필요가 없다.
깨끗이 씻은 두 손으로 고급한 요리를 차례대로 먹듯, 그런 약속된 형식을 누리는 즐거움은 사라졌다. 우리들은 버려진 고아같이 약속 없는 거리에서 만난다. 우리들은 두 손을 호주머니 깊이 찌르고 거리를 걷다가, 첫눈에 서로 반한다.
우리들은 첫눈에 반하기를, 너무 잘하는 세대. 남자들은 길거리에서 아무 여자나 잡아 강간을 하고 여자들은 잘난 사내를 애태우며, 그 완강한 근육 속으로 천천히 잡혀들기를 원한다. 그리하여 우리들은 혼음으로 젊음을 달떠보낸다.
우리들은 약속 없는 세대. 노상에서 태어나 노상에서 자라고 결국 노상에서 죽는다. 하므로 우리들은 진실이나 사랑을 안주시킬 집을 짓지 않는다. 우리들은 우리들의 발끝에 끝없이 길을 만들고, 우리가 만든 그 끝없는 길을 간다.
우리들은 약속 없는 세대다. 하므로, 만났다 헤어질 때 이별의 말을 하지 않는다. 우리들은 헤어질 때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하지 않는다. 타 ¦ 쏘대다가 다시 보게 될 텐데, 웬 약속이 필요하담!― 그러니까 우리는, 100퍼센트, 우연에, 바쳐진, 세대다.
길안에서의 택시 잡기, 민음사, 1988
요리사와 단식가 장정일
요리사와 단식가
□ 1
301호에 사는 여자. 그녀는 요리사다. 아침마다 그녀의 주방은 슈퍼마켓에서 배달된 과일과 채소 또는 육류와 생선으로 가득 찬다. 그녀는 그것들을 굽거나 삶는다. 그녀는 외롭고, 포만한 위장만이 그녀의 외로움을 잠시 잊게 해준다. 하므로 그녀는 쉬지 않고 요리를 하거나 쉴 새 없이 먹어대는데, 보통은 그 두 가지를 한꺼번에 한다. 오늘은 무슨 요리를 해먹을까? 그녀의 책장은 각종요리사전으로 가득하고, 외로움은 늘 새로운 요리를 탐닉하게 한다. 언제나 그녀의 주방은 뭉실뭉실 연기를 내뿜고, 그녀는 방금 자신이 실험한 요리에다 멋진 이름을 지어 붙인다. 그리고 그것을 쟁반에 덜어 302호의 여자에게 끊임없이 갖다 준다.
□ 2
302호에 사는 여자. 그녀는 단식가다. 그녀는 방금 301호가 건네준 음식을 비닐봉지에 싸서 버리거나 냉장고 속에서 딱딱하게 굳도록 버려둔다. 그녀는 조금이라도 먹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그녀는 외롭고, 숨이 끊어질 듯한 허기만이 그녀의 외로움을 약간 상쇄시켜주는 것 같다. 어떡하면 한 모금의 물마저 단식할 수 있을까? 그녀의 서가는 단식에 대한 연구서와 체험기로 가득하고, 그녀는 방바닥에 탈진한 채 드러누워 자신의 외로움에 대하여 쓰기를 즐긴다. 흔히 그녀는 단식과 저술을 한꺼번에 하며, 한 번도 채택되지 않을 원고들을 끊임없이 문예지와 신문에 투고한다.
□ 3
어느 날, 세상 요리를 모두 맛본 301호의 외로움은 인육에게까지 미친다. 그래서 바싹 마른 302호를 잡아 스플레를 해 먹는다. 물론 외로움에 지친 302호는 쾌히 301호의 재료가 된다. 그래서 두 사람의 외로움이 모두 끝난 것일까? 아직도 301호는 외롭다. 그러므로 301호의 피와 살이 된 302호도 여전히 외롭다.
길안에서의 택시 잡기, 민음사, 1988
요리책 장정일
요리책
나는 요리책입니다.
나는 분쟁을 일으키지 않습니다 질투를
일으키거나 시기를 품지도 분노하지도
않습니다 나는 어떤 전술이나 전략을
가지고 있지 못하고 전쟁을 일으키지도
못합니다 나는
요리책입니다.
나는 당신을 웃게 하지도 울게 하지도
못합니다 나에겐 갈등도 반전도 없으니까요
또 나는 당신으로 하여금 외치게 하지도
침묵하게 하지도 않습니다 그것은 나의
목적이 아니니까요 물론 당신을
침대에서 일으키지도 못하고
라디오를 켜게도 끄게도 못 합니다
단지 나는
요리책일 따름입니다.
여러분은 나에게서 음탕한 욕설을 배우지도
못할 것이고 총쏘는 방법이나 주먹질을
배우지 못할 것입니다 뿐 아니라
당신들은 나에게서 색다른 피임법을
듣지도 보지도 못할 것이며
구린내나는 부패의 냄새를 맡거나
으시시한 부정의 그림자를 느끼지도
못할 것입니다 나는
요리책이라고 합니다.
아무리 뒤져봐도 나에게는
행운당첨권이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나에게서 기관총을 든 특공대가 튀어 나오지도
않습니다 또한 나는 구음성교를 권장하지도
동성연애를 옹호하지도 않습니다 그렇다고
남녀간의 정상적인 사랑을 찬미하지도 않고
실연에 대처하는 열두 가지 방법을 가르치지도
않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요리책이니까요.
하므로 이화효과를 노리지도 정신적 배설을
노리지도 않습니다 나는 상징하거나 은유
하지 않습니다 물론 우회적이거나
풍자적이지도 않죠 더더욱이 자동기술법이나
자유연상과는 거리가 멉니다 정말이지 나는
구조주의나 원형이론 따위와 관계가 없고
현상학을 응용하지도 않습니다 새로운
학설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 이
말씀입니다 나는
요리책일 뿐입니다.
나는 당신을 모욕할 의사가 없을 뿐더러
여론에 호소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또
신비극을 보여주거나 막간극을 보여주지도
않죠 나는 당신의 반응에 박수를 치거나
당신으로부터 박수를 받고자 원하지도
않습니다 나는 당신에게 교훈을 주지도
꿈을 지니라고 충고하지도 않습니다
그런다고 해서 당신 멋대로 하라고는
말하지 않습니다 나는
요리책이라고 부릅니다.
나는 사상투쟁을 하도록 이론을 제공
하지도 않고 민중봉기를 부추기지도
않습니다 나는 또 정부를 선전하지도
기성세대를 대변하고 있지도 않습니다 어떤
주의와 종파를 지지하거나 공격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도 나의 존재는 누구에게나
긴요하게 쓰여집니다 나는
요리책입니다.
서울에서 보낸 3주일, 청하, 1988
지하도로 숨다 장정일
지하도로 숨다
공습같이 하늘의 피 같은 소낙비가 쏟아진다
그러자 민방위훈련 하듯 우산 없는 행인들이
마구잡이로 뛰어 달리며 비 그칠 자리를 찾는다
나는 오래 생각하며 마땅한 장소를 물색할 여유도 없이
가까운 지하도로 내려가 몇 분쯤 비를 피하기로 했다
계단에서부터 달싹한 무드 음악이 내리깔리는 지하도
비 한 방울 스며들지 않는 지하도가 믿음직스럽다
언젠가 그날이 와서 몇십만 메가톤의 중성자탄을 터트린다 해도
사십 일 간의 홍수가 다시 진다 해도 끄떡하지 않을 지하도
나는 느릿하게 지하도의 끝과 끝을 거닌다
검둥개라도 한 마리 끌고 다녔으면 그 참 멋진 산보일 것인데.
슬금슬금 윈도우를 훔쳐보는 나에게 어린 점원들이
들어와 구경하시라고도 하고 어떤 걸 찾으세요 묻기도 한다
각종 의류며 생활용품 그리고 식당에서 화장실까지 거의 완벽한 지하도
그러면 이런 공상을 해보기도 한다. 이곳에서 여자 만나
연애하고 아이 낳고 평생 여기 살 수도 있을 것이라고……
바깥에서 비가 그쳤는지 어떠한지 도무지 여기서는 알 수가 없다
도무지 바깥의 기상을 알 수 없는 여기는 무덤인가
장신구며 말이며 몸종과 비단 옷감이며 씨앗 단지들
그 많은 부장품들을 함께 매장한 여기는 고대인의 무덤인가
지하도의 끝에서 끝으로 한번 더 걸으며 윈도우에 비친 얼굴을
쳐다본다. 창백해진 얼굴, 아아 내가 이 무덤의 주인인가?
그러고 보니 이번에는 아무 점원도 나를 불러세우거나 묻지 않는다.
그래 나는 유령 이제는 비가 그쳤기도 하련만 지상으로 올라가기가 싫다
이렇게 할일없이 걷다가 방금 내려온 친한 친구라도 만나면
반갑게 악수하면서 모르는 지상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아니 감쪽같이 숨어 있고 싶다 사흘을 여기 숨었다가
계단을 밟고 집으로 돌아가보는 재미도 괜찮으리라
전화도 전보도 없이 사흘 간을 아무 연락도 없이 잠적해 버리면
어머니는 얼마나 슬퍼하시련가 두 번이나 나를 체포하고 고문한
내가 가장 싫어하는 파출소같은 데다 실종신고를 내시지는 않을까.
하지만 나는 유유히 돌아가리라 그리고 나는 부활했다
휘황찬란한 100촉 전구가 불 밝히고 늘어선 문명의 무덤을 걷어 차고
나는 솟아올랐다. 들어라 나는 재림예수라고 소리치면
사람들은 믿을 것이다 안 믿을 것이다 아마 믿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안 믿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아아 믿거나 말거나
비를 피해 나는 지하도로 숨은 적이 있는 것이다
햄버거에 대한 명상, 민음사, 1987
지하인간 장정일
지하인간
내 이름은 스물두 살
한 이십 년쯤 부질없이 보냈네.
무덤이 둥근 것은
성실한 자들의 자랑스런 면류관 때문인데
이대로 땅 밑에 발목 꽂히면
나는 그곳에서 얼마나 부끄러우랴?
후회의 뼈들이 바위틈 열고 나와
가로등 아래 불안스런 그림자를 서성이고
알만한 새들이 자꾸 날아와 소문과 멸시로 얼룩진
잡풀 속 내 비석을 뜯어 먹으리
쓸쓸하여도 오늘은 죽지 말자
앞으로 살아야 할 많은 날들은
지금껏 살았던 날에 대한
말 없는 찬사이므로.
햄버거에 대한 명상, 민음사, 1987
햄버거에 대한 명상 장정일
햄버거에 대한 명상
부제 : 가정요리서로 쓸 수 있게 만들어진 시
옛날에 나는 금이나 꿈에 대하여 명상했다
아주 단단하거나 투명한 무엇들에 대하여
그러나 나는 이제 물렁물렁한 것들에 대하여도 명상하련다
오늘 내가 해 보일 명상은 햄버거를 만드는 일이다
아무나 손쉽게, 많은 재료를 들이지 않고 간단히 만들 수 있는 명상
그러면서도 맛이 좋고 영양이 듬뿍 든 명상
어쩌자고 우리가 햄버거를 만들어 먹는 족속 가운데서
빠질 수 있겠는가?
자, 나와 함께 햄버거에 대한 명상을 행하자
먼저 필요한 재료를 가르쳐 주겠다. 준비물은
햄버거 빵 2
버터 1½ 큰 술
쇠고기 150g
돼지고기 100g
양파 1½
달걀 2
빵가루 2 컵
소금 2 작은 술
후춧가루 ¼ 작은 술
상추 4 잎
오이 1
마요네즈소스 약간
브라운소스 ¼
위의 재료들은 힘들이지 않고 당신이 살고 있는 동네의
믿을 만한 슈퍼에서 구입할 수 있을 것이다.
―슈퍼에 가면
모든 것이 위생비닐 속에 안전히 담겨 있다. 슈퍼를 이용하라―
먼저 쇠고기와 돼지고기는 곱게 다진다.
이 때 잡념을 떨쳐라,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이 명상의 첫단계는
이 명상을 행하는 이로 하여금 좀더 훌륭한 명상이 되도록
매우 주의깊게 순서가 만들어졌는데
이 첫단계에서 잡념을 떨치지 못하면 손가락이 날카로운 칼에
잘려, 명상을 포기하지 않으면 안 되도록 장치되어 있다
쇠고기와 돼지고기를 곱게 다졌으면,
이번에는 양파 1개를 곱게 다져 기름 두른 프라이팬에 넣고
노릇노릇할 때까지 볶아 식혀 놓는다.
소리내며 튀는 기름과 기분 좋은 양파 향기는
가벼운 흥분으로 당신의 맥박을 빠르게 할 것이다
그것은 당신이 이 명상에 흥미를 느낀다는 뜻이기도 한데
흥미가 없으면 명상이 행해질 리 만무하고
흥미가 없으면 세계도 없을 것이다.
이것이 끝난 다음,
다진 쇠고기와 돼지고기, 빵가루, 달걀, 볶은 양파,
소금, 후춧가루를 넣어 골고루 반죽이 되도록 손으로 치댄다.
얼마나 신나는 명상인가. 잠자리에서 상대방의 그곳을 만지는 일만큼
우리의 촉각을 행복하게 사용할 수 있는 순간은,
곧 이 순간,
음식물을 손가락으로 버무리는 때가 아니던가
반죽이, 충분히 끈기가 날 정도로 되면
4개로 나누어 둥글납작하게 빚어 속까지 익힌다.
이때 명상도 따라 익는데, 뜨겁게 달구어진 프라이팬에
반죽된 고기를 올려놓고 1분이 지나면 뒤집어서 다시 1분 간을 지져
겉면만 살짝 익힌 다음 불을 약하게 하여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절대 가스레인지가 필요하다― 뚜껑을 덮고 은근한 불에서
중심까지 완전히 익힌다. 이때
당신 머리 속에는 햄버거를 만들기 위한 명상이 가득 차 있어야 한다.
머리의 외피가 아니라 머리 중심에, 가득히!
그런 다음,
반쪽 남은 양파는 고리 모양으로
오이는 엇비슷하게 썰고
상추는 깨끗이 씻어놓는데
이런 잔손질마저도
이 명상이 머리 속에서만 이루고 마는 것이 아니라
명상도 하나의 훌륭한 노동임을 보여준다.
그 일이 잘 끝나면,
빵을 반으로 칼집을 넣어 벌려 버터를 바르고
상추를 깔아 마요네즈소스를 바른다. 이때 이 바른다는 행위는
혹시라도 다시 생길지 모르는 잡념이 내부로 틈입하는 것을 막아준다.
그러므로 버터와 마요네즈를 한꺼번에 처바르는 것이 아니라
약간씩, 스며들도록 바른다.
그것이 끝나면,
고기를 넣고 브라운소스를 알맞게 끼얹어 양파, 오이를 끼운다.
이렇게 해서 명상이 끝난다.
이 얼마나 유익한 명상인가?
까다롭고 주의사항이 많은 명상 끝에
맛이 좋고 영양 많은 미국식 간식이 만들어졌다
햄버거에 대한 명상, 민음사, 19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