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사
세상에 예쁘지 않은 꽃은 없다. 모든 꽃은 자기만의 특성을 지니고 있다. 어린이집에는 다양한 모습의 아이들이 모여있다. 각기 다른 꽃들이 모인 꽃밭이다. 가을 부드러운 바람에도 하늘거리는코스모스를 닮았는가 하면, 햇볕이 드는 곳이면 어느 곳이든 잘 자라는 해바라기 같은 아이도 있다. 때로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장미꽃처럼 뾰족하게 가시를 드러내며 까칠하게 경계를 하기도 한다. 척박하고 혹독한 환경에서도 잘 자라는 들꽃 같은 아이도 있고 타인의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온실 속의 연약한 모습으로 지지대에 기대고 있는 화초처럼 몸과 마음이 아픈 아이도 있다. 이렇듯 어린이집은 제각기 다른 아이들이 어우러져 있는 놀이터이자 배움터다.
몇 해 전 만 3세 신입 입소 상담 요청이 들어왔다. 상담 전 친밀감 형성을 위해 부모와 차 한 잔 마시는 동안 아이는 가만히 못하고 이상야릇한 목소리를 내며 반복적으로 바닥을 빙그르르 돌았다. 순간, 발달장애가 있는 아이라는 직감이 들었다. 상담 시작 전, 아이를 관찰한 결과 서너 가지 자폐 스펙트럼 행동을 보였다. 상담 내내 아이 아버지는 단순히 발달이 조금 늦을 뿐이라고 말했다. 조심스레 이야기를 꺼내려고 하면 본인도 어릴 때 발달이 많이 늦었다면서 이야기할 틈을 안 줬다. 아이는 나이에 맞지 않게 엄마를 “어어 마” 라고, 어눌하게 표현했고 어린이집에서는 음식을 전혀 먹지 않는다고 했다. 영아기에 다녔던 가정어린이집에서도 원에서 제공되는 간식과 점심은 일절 먹지 않았고, 집에서 가져온 이오 요구르트와 쿠크다스 과자 두세 개 먹는 것이 전부라고 했다. 아이의 자폐 스펙트럼이 음식에 대한 선호도나 식사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친 것 같았지만 있는 그대로 말하지 못했다. 솔직한 심정으로 ‘입소를 안 했으면 좋겠다.’ 싶었지만 아픈 아이라고 해서 입소 거부를 해서도 안되지만, 할 수도 없었다.
꽃들과 정원사의 작은 사랑싸움이 시작되었다. 이전까지는 조용하게 지내던 만 3세 반에서 일당백의 역할을 하는 민수와 담임교사의 아우성이 메아리친다. 15명의 그 반 아이들이 행복하고 즐겁게 생활하는 역부족이다. 잠시도 조용한 날이 없다. 민수는 간식시간에 이리저리 다니면서 소리 지르고 자유 놀이시간에는 친구들이 만들어놓은 블록을 휘저어 무너뜨려 버린다. 애써 만들어놓은 놀잇감이 물거품이 되는 순간 영락없는 작은 전쟁터다. 속상해서 우는 아이, 일러주는 아이, 소리치는 아이, 놀이를 방해해 놓고 더 크게 우는 우리 민수……. 나(원장)와 누리 보조교사는 틈나는 대로 도왔지만 불감당이다. 조심스레 학부모 상담 요청을 했다. 아버지는 화가 많이 났는지 담임교사에게 해서는 안 되는 말까지 전화로 퍼부었다. 아버지, 어머니 두 분 다 오라고 했지만, 어머니만 방문했다.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은 모두 돕기로 작정하고 부모를 설득한 결과 아버지와도 무사히 상담을 끝냈다. 오랜 설득 끝에 민수를 K 대학병원에 가서 검사받기로 했다.
담임교사는 민수를 볼 때마다. 다정다감한 언어와 행동으로 스킨십하고 영 유아기에 익혀야 할 기본 생활 습관을 끊임없이 반복해서 알려준다. 이런 담임교사의 노력으로 민수도 조금씩 마음을 여는 듯하나 소통 능력이 미흡한 민수는 또래들과의 마찰, 다툼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다른 부모들은 자신의 아이가 피해를 본다고 생각하는지 잦은 불만으로 담임교사를 힘들게 했다. 후에 들은 이야기지만 하루에도 수십 번씩 갈등하며 그만두고 싶었다고 했다. 하지만 이내 다시 마음을 다잡고 차분히 호소와 설득으로 같은 반 부모들을 대응하면서 민수를 포기하지 않았다. 이런 분위기에서도 아이들 간에 소통 방법을 찾아내고 연구하며, 문제 상황에 대처하는 방법을 찾아내려 노력하는 모습이 참 대견하고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그녀는 여리고 어린 꽃들을 위한 진정한 정원사임이 틀림없다. 담임교사를 볼 때면 가끔 시루의 콩나물이 생각난다. 시루에 담긴 콩나물에 물을 주면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모두 흘려버린다. 그런데도 콩나물은 쑥쑥 자란다. 주는 물 모두 흘려버린다고 해서 물을 안 주면 콩나물은 자라지 않고 금방 상한다.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진정하고 진실한 관심과 사랑으로 매일 매일 콩나물시루에 물 주듯 보살펴야 한다.
정원사는 꽃을 관리하는 사람이다. 꽃이 시들지 않고 건강하고 예쁘게 자랄 수 있도록 적당한 햇빛, 온도, 물, 영양을 제공해야 한다. 물이 필요한 꽃은 물을 충분히 제공하고 물을 싫어하는 꽃은 물을 많이 주면 안 된다. 각자 다른 환경에서 태어난 식물일지라도 정성을 다해 거름과 영향을 주면서 관리해야 한다. 때에 따라 무엇이 필요한지를 파악하고 어린 새싹에서 예쁘고 건강한 꽃이나 나무로 성장시키는 것이 정원사가 해야 할 일이다. 정원사는 꽃의 종류와 특성에 따라 개별적인 관리를 해야 한다. 아이도 마찬가지다. 아이들 한명 한명 대할 때 기질과 개별성, 환경, 사회문화적인 배경까지 충분하게 파악하고 개개인에게 맞는 지원을 해야 한다….
민수가 병원 검사를 받는 날이다. 검사 시작부터 집중하지 못해 같은 문항에 대해 여러 번 시도하면서 어렵게 수행했다. 온종일 검사하느라 부모와 아이 모두 소금에 절인 파김치가 되었다. 불안해하는 민수 엄마를 달래어 힘내라고 격려하고 위로하는 담임은 날개 없는 천사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후에도 몇 번 더 검사하고 몇 개월 뒤 검사 결과가 나왔다. 처음 만났을 때 예상했던 대로 발달장애로 판명을 받았다. 실망한 부모에게 안정감을 느끼도록 위로하고 함께 노력해보자고 말하는 선생님 모습이 평온하면서도 당차 보였다. 그날 이후 본격적으로 치료센터와 연계해서 놀이치료, 언어치료, 감각통합치료까지 병행하면서부터 민수는 서서히 조금씩 좋아졌다. 또래 간의 놀이 방해와 공격성도 거의 사라졌고 또래들과 같이 밥도 먹었다. 물론 집에서 가져온 도시락이긴 하지만…. 처음에는 초등학교 취학을 유예하려고 했지만, 그 당시 담임교사의 노력 덕분에 민수는 많이 호전되어 23년 3월 정상적인 나이로 일반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초등학교에서 도움반 선생님의 도움을 받는다고 함.)
민수를 생각하면 나도 모르게 “모두 다 꽃이라네” 동요를 흥얼거린다. ‘산에 피어도 꽃이고 들에 피어도 꽃이고 길가에 피어도 꽃이고 모두 다 꽃이야…….’ 정원사의 시각과 생각을 그대로 표현한 것 같은 참으로 예쁜 가사로 여겨진다. 이 세상 소중하지 않은 아이는 아무도 없다. 담임 선생님은 모든 아이가 놀이에 참여하는 것임을 알고 즐겁게 놀이하되 피곤하지 않게 적절히 휴식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었다. 또한, 자기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이 서툴더라도 아이의 의견을 잘 들어 아이를 존중하는 보육을 실행하는 분이다. 아이가 말할 때 진심으로 관심을 보이며 아이의 말을 인정하고 따뜻하고 온정적인 언행으로 신체적 접촉, 수용의 눈빛 등을 사용하며 자기 생각을 표현할 수 있도록 기다려 줌으로써, 아이는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고 자기 생각이 중요하다는 느낌이 들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선생님이다. 정원사의 역량에 따라 정원의 운명을 좌지우지한다. 교사는 아이를 존중하는 태도를 보이고 아이에게 바람직한 행동을 가르치는 것이 목적이야 한다. 아이는 우리의 미래다. “보육의 질은 보육교사의 질을 능가할 수 없다”라는 말을 대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