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0월 국사봉을 주제로 어문학회(강성복) 논문이 쓰여졌다. 그 내용은 아래와 같다.
지금부터 200여년전부터 산신제가 유래 된 것 같다. 제사당은 마을 뒷산 큰산(국사봉)의 최고점 20m 아래에있다. 그곳에는 큰바위가 4~5개 있으며 옛날 산제를 지내던 그룻이 있다. 제사를 지내기 위해 공회당 있고 제사용 제사 전답도 있다. 그러나 산이 빽빽이 욱어지고 산제당에 올라가기 힘들어 1974년 11월에 산입구에 제당을 짓고었다. 산신제는 일년에 2회 모신다. 봄제사는 입춘과 입하 사이에, 가을제사는 추수가 끝난 후 동지 이전에 길일을 정하여 산신제를 지낸다. 산제답을 짓는사람이 2명이 맡았으나 현재는 순번제로 2명이 결정된다. 제관이 되면 제사 사흘전부터 마을 샘물로 목욕을 하며 제준비를 한다. 제의 시간은 첫닭이 울기전에 산제당에 올라 갔다가 닭이 울면 제를 마치고 내려온다. 제물은 명태3마리 묍쌀 1되3홉, 돼지고기적, 무우나물, 대추, 밤, 불배기, 시루떡(쌀 3되 3홉), 곶감, 식혜 등이다. 제의 순서는 진설초헌(첫잔올림), 독축(축읽음), 아현,(둣재잔), 소지 세재잔 등의 순서로 진행한다. 산신제를 지내는 이유는 산제당이 위치한 큰산(국사봉)에 바위가 많아 홍수가 지면 바위가 마을로 내려와 거주인들에게 해를 주므로 사전에 이를 예방하기 위해 산신령에게 마을주민이 정성을 다하여 제사를 지낸다. 지금도 마을에는 국사봉에서 내려온돌이 몇군데 있다.이제는 제를 잘지낸 덕으로 마을도 평온하다. 30년 이전에는 제사날에 풍물도 치고 황토도 제관집에 뿌리며 금줄을 설치하고 부정한 언행을 삼가하고 남자만 제사에 참여하며 삼일기도한다. 기도중에 사람이나 가축의 출산과 죽음이 발생하면 기도를 중단하고 부정이 가신후 다시 길일을 정하여 제향을 올린다. 그리고 기 마련된 제물은 쓰지 못하고 다시 정결한 제물로 장만한다. 제일에는 재관이 오후 일직 산제당에 올라가 제당을 청소하고 불을 피우고 시간이 되면 제사를 올린다. 큰산 밑에 절(길상사)이 있는데 그 터는 50년전에는 민가 집터 이었는데 지세의 기가 너무 높아 사는자들이 미친병에 들어 30년전부터 절이 들어서 지금은 안정적이며 평온한 마을로 유지하고 있다. 위 주제를 논문 테마로 하여 2010년 에 어문연구회 강성복씨는 "국동리지를 통해본 지명과 민속의 변화"를 주제로 논문을 쓴바있다.
공주 『국동리지』를 통해 본 지명과 민속의 변화
Studies on Changes of Names of Places and their Customs through Kukdongriji of Kongju
부산대학교
초록
As the first town journal of Chungcheong area, it vividly portrays a 19th century real life of a village located in Kongjumok. It was written by Hyeop Jeong who lived in Kukdongriji that was the village of Jeong family from Yongil in 18th century. Names of places recorded as entry words in Kukdongriji are mostly two Chinese characters but they reflect meanings and origins that the words embrace rather accurately. This journal provides useful clues how 19thcentury local culture could be interpreted and restored by including topology, feng shui, legends, important persons, customs, folk religions, plays, and historical sites. This study aims at examining the background on how ‘Kuksadong’ that is the old name of ‘Kungdongri’ was changed into ‘Kukdong’ when the Jeong family from Yongil settled down in this area. Also, it examines the origin of the name of places and customs recorded Kukdongriji by a back-tracking way from the current names. In addition, this study investigates how religious services for the god of the Kuksabong Mountain have been passed down and what is the true nature of golden horses and wooden hens enshrined in the 19th century temple. The original names of ‘Kukdong’ were ‘Kuksadong’ or ‘Kuksadangri’ because of the main mountain called ‘Kuksa’ mount and ‘Kuksa’ temple. However, the Jeong family from Yongil established their own village in this area and since the mid 18th century, the meaning of this place was changed into ‘Kukdong,’ which has the different meaning from the original one. This is because the name of the place of ‘Kuksa’has Buddhist nuances. Because the Jeong family was a leading group of practical ideas of Confucianism, it would be difficult for them to embrace the name, ‘Kuksadong,’ which means “a village where high Buddhist monks live." Therefore, they changed it into ‘Kuksadong’where Confucius scholars lived, and substituted “Kuk" meaning “nation" as “Kuk" meaning a chrysanthemum that is a symbol of fidelity and chastity. Eventually, this created ‘Kukdong’ which has the different meaning from the original one. The religious service for the Kuksabong mountain god recorded in Kukdongriji has changed and passed down to today’s winter festival of Kukdongri since the late Joson Dynasty. It is assumed the golden horse and wooden hens enshrined in this temple were offerings to the mountain gods but they were all destroyed before the twentieth century so their real figure cannot be confirmed any more.
목차
1. 머리말
2. ‘국동(菊洞)’의 지명유래와 변천과정
3. 『국동리지』에 수록된 지명과 민속
4. 국사봉 산신제와 ‘금마(金馬)’의 실체
5. 맺는말
키워드
Kukdongriji, Kuksabong, Kukdong, Golden Horse, Wooden Hen, Hyeop Je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