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
집에서 기도하는 방법에 대해서 여쭙니다.
저는 염불수행을 하고 있는데요, 하기 전에 삼배를 하거나 천수경을 하거나..
또 어떤 문제가 있을 때 그걸 놔두고 해야 하는 건지, 그냥 해야 하는 건지..
염불수행을 다 한 다음에 108배를 해도 되는지..
그런 게 궁금합니다.
▒ 답
인사를 할 때 어떻게 합니까?
우리는 절을 하는데, 외국에선 악수를 하고, 볼을 비비대는 나라도 있고..
우린 '안녕하세요?' 하는데 서양에선 '굿모닝?' 인도에선 '나마스떼..' 라고 합니다.
이렇게 인사 방식도 다르고, 인사말도 다릅니다.
이럴 때 '어떻게 인사하는 게 좋습니까?' 라고 누가 물으면, 뭐라고 답을 하면 좋겠어요?
이 사람은 이러고 저 사람은 저러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
보살님은 뭐라고 답을 하시겠어요?
(본인 하고 싶은 대로요..) (대중들 웃음)
그래요.. 기도를 하실 때도, 본인 하고 싶은 대로 하십시요. (폭소)
삼배를 하고 하시던지, 입정을 하고 하시던지, 천수경을 치고 하시던지..
방식은 그렇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그렇다고 필요없다는 뜻은 아녜요..
보통 하는 방법으로.. 불자는 뭘 하기 전에
불법승 삼보에 귀의하는 마음을 먼저 내야 합니다.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가르침에 귀의합니다, 승가에 귀의합니다..
그 형식은 전통식으로 하든지, 요즘처럼 노래로 하든지, 그냥 말로 읽든지..
이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삼보에 귀의한 자는 오계를 지켜야 합니다.
이게 불자의 기본 행동지침입니다.
그래서 오계를 한 번 더 되새깁니다.
생명을 함부로 죽이지 않겠습니다..
주지않는 남의 물건을 뺏지 않겠습니다..
삿된 음행을 하지 않겠습니다..
거짓말 하지 않겠습니다..
술을 먹고 취하지 않겠습니다..
이렇게 삼귀의와 오계를 먼저 하고, 이제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돼요.
이게 현재 세계 공통적인 방식입니다.
우리나라는 삼귀의, 반야심경을 하고 모든 걸 하는데
원래는 삼귀의, 오계.. 이렇게 내가 불자임을 한 번 더 되새기는 겁니다.
그리고 이 삼귀의가 조금 더 늘어난 것이 칠정례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 모든 부처님, 가르침, 보살, 성문연각, 역대전등 제대조사, 모든 스님들께..
이렇게 지심귀명 하는 것이 결국 불법승 삼보에 대한 삼귀의입니다.
이렇게 삼귀의와 오계 다음엔, 본인 하고 싶은 대로 하시든지
다니는 절에 스님이 가르쳐주시는 대로 하면 돼요.
그런데 스님마다 조금씩 다르죠?
이럴 때, 저 스님은 저러시던데, 이 스님은 왜 이렇게 말씀하시나? 해서
새로 가르쳐주신 것을 부정하거나, 그 전 것을 부정하거나.. 이러면 안 돼요.
그러니까.. 옛날 인사법이 좋다.. 이러는 사람도 있고,
요즘 바쁜데 언제 그렇게 하냐.. 이러는 사람도 있듯이..
삼배를 받는 스님도 있고, 일배만 받는 분도 있고, 악수하는 분도 있고, 포옹하는 스님도 있죠?
이걸 가지고 어떤 게 좋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와 마찬가지라는 말이고
그러나 보통 말할 때, 삼귀의와 오계를 하고 한다 이 말씀입니다.
그리고 끝날 때는.. 사홍서원을 합니다.
두 번째, 염불을 하신다니까.. 염불할 때 마음가짐은
무엇을 부르든, 아미타불을 부르든, 관세음보살을 부르든, 석가모니불을 부르든..
이럴 때 어떤 불보살을 부르는 게 좋습니까?
이것은 어느 인사법이 좋습니까? 하고 같은 말입니다.
그러니까 각 종파별로, 절별로 부르는 대로 부르는 게 좋은데..
다 부처님이고 보살님이니까.. 다 훌륭한 분이시고..
그 마음은 지극정성으로 불러야 합니다,
그래야 가피를 주신다는데..
불러보면 지극하게 됩니까 안 됩니까? 안 되죠?
온갖 망상이 생깁니다. 입으로만 부르지 생각은 늘 딴 데 가 있어요.
아무리 지극정성으로 할래도 그게 안 돼요..
그래서 이제, '정신을 집중해야지.. 정신을 집중해야지..' 그러는데
'집중해야지' 이게 염불이예요 아녜요? 아니지?
그래서 번뇌가 하나 더 생기는 겁니다.
입으로 관세음을 부르면서 생각으론 관세음 보살 성상을 생각합니다.
법당에서 한다면 관음상을 딱.. 주시하면서 그렇게 부르되
귀로는 이 '관 세 음 보 살' 만 들리도록 해야 합니다.
그걸 목표로 해야 합니다.
'관' 할 때는 '관'에만 딱.. 집중이 되고
'세' 할 때는 '세'에만 딱.. 집중이 되고
'음' 할 때는 '음'에만 딱.. 집중이 되고
'보' 할 때는 '보'에만 딱.. 집중이 되고
'살' 할 때는 '살'에만 딱.. 집중이 되고
이래야 하는데, 현실적으론 이게 안 된다..
온갖 망념이 생기고 하더라도.. 다만 이렇게 하려고 노력만 하지
안 되는 걸 문제삼지 마라, 이 말입니다.
나는 왜 집중이 안 되느냐? 나는 왜 염불이 안 되느냐?
이런 생각은 하지 마라.. 이게 번뇌입니다.
내가 염불할 때 딴 생각이 일어나는 것은, 내가 원해서 일어나는 겁니까, 저절로 일어나는 겁니까?
저절로 일어나지? 저절로 일어나는 건 문제삼을 필요 없어요.
'왜 나는 기도가 안 되지?' 이건 저절로 일어나는 겁니까, 자기가 일으키는 겁니까?
자기가 일으키는 거지? 자기는 일으키면 안 돼.
저절로 일어나는 건 문제삼지 말고, 나는 다만 일심으로 관세음보살만 부른다..
그때 망념이 일어나면.. 망념에 따라가지 마라.
'어 망념이다' 하고 원래대로 돌아와야 한다.
그래서 돌아오면 또 도망가고, 돌아오면 또 도망가고..
잡아다 놓으면 또 도망가고.. 잡아다 놓으면 또 도망가고..
이렇게 천번 만번을 했더라도, '나는 왜 염불이 안 되지?' 이런 생각을 내면 안 된다..
다만 할 뿐예요. 다만 할 뿐..
이렇게 망상이 일어나는 것은 기도가 잘못된 게 아니고.. 자연스러운 겁니다.
일어나는 게 자연스럽다.. 이 말입니다.
망념이 일어나는 게 보여요, 안 보여요? 들려요, 안 들려요?
그러니까 딴 사람은 다 열심히 하는 거 같애.. 나만 문제야..
근데 그 사람도 마찬가지예요.. ㅎㅎ
염불 중에 집안 생각이 났다.. 그러면 그런 '나'를 알아차리고 얼른 염불로 돌아오면 되지
그냥 꼬리에 꼬리를 물고 거기에 계속 빠져들면 안 된다.. 이 말예요.
그래서 알아차리고 다시 돌아오고, 알아차리고 다시 돌아오고..
다만 염불만 할 뿐.. 입니다.
그렇게 열심히 하다보면
주위에서 이런 저런 일이 일어나도 그것을 그저
파도가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처럼.. 본다..
구애를 받지 않게 됩니다.. 시비가 없어집니다..
그렇게 돼야 이제, 염불로 공덕이 생겼다..
가피를 입었다..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