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젤란이 5척의 범선과 270여명의 탐험대를 이끌고 스페인을 떠나 세계일주 탐험에 나선 것은 1519년 9월이었다. 대서양을 건너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해안을 따라 남하하다가 남위 52도50분 지점에서 알 수 없는 한 해협으로 들어선 것은 출항후 1년여만인 1520년 10월 21일이었다. 훗날 마젤란해협으로 명명된, 남미 대륙의 남단과 푸에고 제도 사이를 지나는 해협이었다.1개월이나 지났을까. 11월 28일 갑자기 저멀리 끊없는 바다가 펼쳐졌다. 태평양이었다. 유럽인으로서는 처음 가보는 뱃길, 그러나 곧 인도가 나타날 것으로 기대했던 희망은 가도가도 육지가 보이지 않으면서 실망으로 바뀌었고 그 실망도 점차 절망으로 바뀌었다. 온갖 고초 속에서도 마젤란은 그 바다를 ‘평화로운 바다(태평양)’로 이름지었다.99일 만에 괌섬을 만나고 곧 필리핀에까지 이르렀으나 결국 마젤란의 묏자리가 되고 말았다. 필리핀 종족간의 싸움에 휘말려 41세로 생애를 마친 것이다. 나머지 탐험대는 출항 3년만인 1522년 9월 8일에 스페인에 돌아왔으나 살아돌아온 것은 한척의 배와 18명의 선원 뿐이었다. 곧 지구가 둥글고, 콜럼버스가 발견한 것은 인도가 아니라 신대륙이었으며 그 너머에는 세상에서 제일 큰 바다가 있다는 사실이 유럽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 [1520년] 마젤란, 태평양항해 시작
1810년에 제작된 작자미상의 마젤란 판화(미 국회도서관 소장)
마젤란이 5척의 범선과 270여명의 탐험대를 이끌고 스페인을 떠나 세계일주 탐험에 나선 것은 1519년 9월이었다. 대서양을 건너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해안을 따라 남하하다가 남위 52도50분 지점에서 알 수 없는 한 해협으로 들어선 것은 출항후 1년여만인 1520년 10월 21일이었다. 훗날 마젤란해협으로 명명된, 남미 대륙의 남단과 푸에고 제도 사이를 지나는 해협이었다.1개월이나 지났을까. 11월 28일 갑자기 저멀리 끊없는 바다가 펼쳐졌다. 태평양이었다. 유럽인으로서는 처음 가보는 뱃길, 그러나 곧 인도가 나타날 것으로 기대했던 희망은 가도가도 육지가 보이지 않으면서 실망으로 바뀌었고 그 실망도 점차 절망으로 바뀌었다. 온갖 고초 속에서도 마젤란은 그 바다를 ‘평화로운 바다(태평양)’로 이름지었다.99일 만에 괌섬을 만나고 곧 필리핀에까지 이르렀으나 결국 마젤란의 묏자리가 되고 말았다. 필리핀 종족간의 싸움에 휘말려 41세로 생애를 마친 것이다. 나머지 탐험대는 출항 3년만인 1522년 9월 8일에 스페인에 돌아왔으나 살아돌아온 것은 한척의 배와 18명의 선원 뿐이었다. 곧 지구가 둥글고, 콜럼버스가 발견한 것은 인도가 아니라 신대륙이었으며 그 너머에는 세상에서 제일 큰 바다가 있다는 사실이 유럽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 [1985년] 프랑스 역사학자 페르낭 브로델 사망
프랑스 역사학자 페르낭 브로델
20세기의 중요한 사료편찬가인 프랑스의 페르낭 브로델이 1985년 11월 28일 사망했다. 브로델은 1902년 프랑스 로렌 지방에서 고교 수학교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변함이 거의 없는 고요한 시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경험은 훗날 브로델의 학문세계에서 `장기지속`이라는 개념으로 나타났다.소르본 대학 사학과를 졸업한 브로델은 당시 프랑스 식민지였던 알제리의 고교 교사로 부임했다. 이곳에서 브로델은 자기가 가르치던 여학생과 결혼했고, 낙타를 타고 사하라 사막을 여행하는 등 특이한 경험을 하게 된다. 브로델은 1930년대 파리로 돌아왔다가 다시 상파울루 대학으로 떠났으며 브라질에서도 원시림 지역을 답사하는 등 강한 탐구심을 보였다. 다시 파리로 돌아와 박사 논문을 준비하던 브로델은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출전했다가 독일군에게 포로가 된다.
그의 박사학위 논문이자 첫번째 대작인 `필립 2세 시대의 지중해와 지중해 세계` 골격이 만들어진 것은 포로수용소에서였다. 종전 후 이 논문을 완성하여 박사학위를 받은 브로델은 1948년 고등연구원 제6국(현재의 사회과학고등연구원) 출범의 주역으로 이 기관이 아날학파를 중심으로 하는 역사학 연구의 터전으로 자리잡는 데 큰 역할을 했다.타고난 카리스마의 소유자인 그는 학계에서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한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1967년, 1979년) 등의 대작을 내놓았다. 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으로 선출되는 등 화려한 만년을 보냈다.
■엥겔스 Friedrich Engels1820년 11월 28일 태어남 / 1895년 8월 5일 죽음
엥겔스, H. Schey가 그린 초상화(부분) "운명이 카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를 함께 묶어 놓은 순간부터 두 친구는 인생의 과업을 하나의 공통된 대의에 바쳤다. 그러므로 엥겔스가 프롤레타리아를 위해 한 일을 이해하려면 마르크스의 가르침과 저작이 당대 노동계급운동의 발전에서 갖는 중요성을 명확하게 이해해야만 한다."
- 레닌, <프리드리히 엥겔스>
엥겔스는 마르크스와 함께 현대 공산주의 사상을 창시했다. 두 사람은 1844년 마르크스가 잡지를 펴내고 있던 파리에서 편집자와 기고가로 처음 만나 평생 동안 절친한 친구이자 사상적 동지로 지냈다. 1848년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라는 선동적인 구호로 유명한 <공산당선언 Manifest der Kommunistischen Partei>을 발표했으며 이것은 공산주의자의 행동강령이 되었다. 엥겔스는 마르크스의 생계를 책임졌고, 마르크스가 죽은 뒤에는 마르크스의 미완성 초고와 다듬지 않은 노트를 바탕으로 <자본론 Das Kapital> 제2·3권을 완성했다. 마르크스는 훌륭한 이론가였지만, 마르크스주의를 전파하고 <자본론>에 절대적인 권위를 부여한 사람은 바로 엥겔스였다.
■러시아 작곡가 루빈슈타인 출생(1829.11.28)
러시아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인 안톤 루빈슈타인이 1829년 11월 28일 태어났다. 5세 때 어머니에게서 피아노의 기초를 배우고, 1840년에는 프랑스 파리에서 리스트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영국 등 유럽 연주 여행을 하면서 당시 리스트에 버금가는 신동이라는 평을 들었다. 1862년 러시아 최초로 체계적 음악교육기관인 페테르부르크 음악원을 설립해 원장이 됐고 차이코프스키가 첫 제자 중 한 사람으로 배출됐다.주요 작품으로는 오페라 '악마', '네로' 외에, 6곡의 교향곡, 5곡의 피아노협주곡과 실내악곡 등이 있다.
■최초의 포뮬러 자동차 경주(1904.11.28)
1904년 오늘, 뉴욕주 롱아일랜드 섬 나소 카운티에서 미국 최초의 자동차 경주 ‘밴더빌트 컵’이 열렸다. 국제대회로 치러진 이 경주는 자동차 경주광이자 요트 애호가였던 윌리엄 키삼 밴더빌트 2세에 의해 조직됐다. 첫 대회에서는 30.24마일(약 48.66㎞)을 평균 시속 89㎞로 달린 미국의 조지 히스가 우승했다.세계 최초의 자동차 경주는 1894년 프랑스 신문 프티주르날의 주최로 파리~루앙 사이 126㎞에서 실시됐다. 그러나 성능을 제한하는 규정이 없고, 차체가 온전하지 못해 폭발, 전복 사고로 목숨을 잃는 경우가 많았다. 이 때문에 1903년 금지됐다.
밴더빌트 컵은 차량의 무게를 1000㎏ 이하로 제한한 첫 포뮬러(규격) 경주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경주에 참가하는 자동차의 크기나 성능을 규제해 안전을 유지하기 위한 조치였다.
■하와이 이민자 첫 사진결혼(1910.11.28)
한국인의 첫 미국 이민은 1902년 12월 22일 갤릭호가 제물포항을 출발하면서 시작된다. 1905년 7월 정부의 금지령으로 노동이민이 중단될 때까지 모두 7천226명이 하와이로 건너갔다. 그 가운데 여성은 637명, 남자의 1/10에 불과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미혼 남성의 결혼 문제가 심각해졌다. 그렇지만 이민간 남성들이 짝을 찾기 위해 태평양을 건넌다는 것은 시간과 돈이 많이 드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서 대안으로 등장한 것이 사진결혼이었다.사진결혼의 방식은 이렇다. 보통 남자가 자신의 사진을 고국의 처녀에게 보내 선을 보이고, 처녀는 남자가 마음에 들면 자신의 사진을 보내 서로 결혼에 합의한다. 신부가 하와이로 오는 여비와 결혼비용은 신랑이 지불한다. 사진결혼 이민은 1910년부터 시작되었다. 그해 11월 28일 23세의 최사라라는 여성이 호놀룰루에 도착해 하와이 국민회 총회장이던 이내수(38세)와 결혼한 것이 시초다. 그 뒤 1924년 미 의회의 동양인 배척법안 통과로 이민이 중단될 때까지 951명의 사진신부가 하와이로, 115명은 미국 본토로 이주했다. 이들 중 대부분은 경상도 여성이었다.여성들이 사진만 보고 짝을 찾아 먼 이국땅을 밟은 첫째 목적은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함이었다. 성차별과 일제 탄압을 피하고, 종교와 교육기회를 얻으려는 목적도 있었다. 그러나 하와이에 도착한 신부는 크게 실망하게 된다. 사진 속 모습과 달리 신랑이 너무 늙고 가난했기 때문이었다. 신랑들은 이민올 때 찍은 젊은시절 사진이나 잘 생긴 친구의 사진, 부잣집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을 보내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다고 되돌아갈 수도 없어 신부들은 대부분 현실을 받아들이고 남편과 함께 지난한 개척 이민의 삶을 살았다.
■알바니아 독립 선언(1912.11.28)
알바니아 1912년 11월 28일 알바니아는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했다. 1908년 오스만 제국에서 정권을 잡은 청년 투르크당은 알바니아의 자치 요구를 무시하고 중앙집권화 정책을 밀고 나갔다. 이에 알바니아인들은 무력투쟁에 돌입했다. 무려 3년여에 걸친 투쟁에서 성공한 알바니아는 오스만 제국과 협상에 들어갔다.그러나 1912년 10월 그리스·세르비아·몬테네그로 등 이웃한 발칸 국가들이 오스만 제국에 전쟁을 선포하면서 발칸 전쟁이 발발하자 사태는 복잡해졌다. 알바니아 지역을 분할 점령할 계획이었던 발칸 국가들은 오스만 제국의 군대를 물리치고 알바니아 영토를 차지했다.1912년 11월 28일 알바니아 전역에서 뽑힌 대표들은 블로러에서 회합을 가진 후 알바니아가 독립국가임을 선포했다. 서유럽 열강들이 알바니아의 독립을 지지함에 따라 1913년 발칸 전쟁을 종식시킨 런던 조약에 의해 세르비아·몬테네그로·그리스와 알바니아의 국경선이 확정되고 알바니아 영토에서 외국 군대가 철수하게 되었다.
■미, 영, 소 정상회담(1943.11.28)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3년 오늘 미국, 영국, 소련 세나라 정상이 이란의 수도 테헤란에서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였다.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과 영국의 처칠 총리, 소련의 스탈린은 전쟁에서의 협력등 국제 정세에 대해 논의했다.먼저 동부전선에서 소련이 반격을 개시한다는 것과 미국과 영국등 은 프랑스 노르망디에 상륙한다는 작전이 합의됐다. 또 소련군은 유럽전선에서의 공격이 끝나는대로 아시아에서 일본을 공격한다는 작전도 세웠다.
한반도 문제는 6일전 카이로에서 합의된 노예상태에서의 해방과 신탁통치의 필요성등을 재확인했다. 그러나 소련의 아시아지역 참전은 후에 한반도의 분단을 고착화시키는 원인이 되었다.
■물리학자 페르미 세상 떠남(1954.11.28)
이탈리아의 원자 물리학자인 엔리코 페르미가 1954년 오늘 세상을 떠났다.그는 전자에 관한 새 통계법을 발표하였고, 중성자에 의한 원자핵 파괴 실험ㆍ원자로 이론ㆍ우주선에 관한 연구 등에 공적을 올려 1938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로마 태생이나 파시스트에 의해 추방 당해 미국에 귀화했다. 그는 세계 최초로 원자로를 건설하고 우라늄 235의 핵분열 실험에 성공, 원자 폭탄 제조의 길을 열었다.
■한, 미 우호통상조약 체결(1956.11.28)
1956년 오늘, 한국과 미국은 서울 중앙청 회의실에 한미 우호통상조약을 체결한다. 양측 대표는 국문과 영문으로 된 두 종류의 문서에 서명 날인했다.조정환 외무부장관 서리는 인삿말에서 '조약도 중요하지만 도의적인 우정을 더 한층 강화해나가자'고 말했다.이 조약은 구한말인 1882년 제물포에서 한미 사이에 통상조약이 맺어진 지 74년만에 다시 체결됐다.
■동티모르 독립선언(1975.11.28)
1975년 11월 28일 동티모르가 포르투갈로부터 독립을 선언했다. 그러나 그로부터 9일 만에 인도네시아가 침략하여, 동티모르를 인도네시아공화국의 27번째 주로 강제 합병시켰다.인도네시아의 침략 과정에서 68만명의 동티모르 인구 중 약 10만명의 주민이 희생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대대적인 동화정책에도 불구하고 동티모르 주민들의 독립투쟁은 줄기차게 이어졌다.동티모르 사태가 대표적인 인권유린 사례로 알려지면서 국제사회의 압력이 거세어지자 1999년 인도네시아는 주민투표로 동티모르의 독립을 결정했다. 현재 초대 입법기구인 동티모르민족회의(의장 사나나 구스마오)가 구성되어 독립 정부를 수립하기 위한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동티모르 독립선언1975. 11. 28
인도네시아와 동티모르 1975년 11월 28일 동티모르(티모르티무르)가 포르투갈로부터 독립을 선언했다. 동티모르는 19세기부터 포르투갈의 지배를 받았고, 포르투갈군의 철수로 1975년에야 독립을 이루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9일 만에 인도네시아 군대가 침략하여, 동티모르를 인도네시아 공화국의 27번째 주로 강제 합병시켰다. 인도네시아의 침략 과정에서 68만 명의 동티모르 인구 중 약 10만 명의 주민이 희생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대대적인 동화정책에도 불구하고 동티모르 주민들의 독립투쟁과 저항의지는 줄기차게 이어져왔다. 동티모르 사태가 대표적인 인권유린 사례로 널리 알려지면서 국제사회의 압력이 거세어지자, 1999년 인도네시아는 동티모르 독립을 위한 주민투표를 수용했다. 주민투표 결과 동티모르의 독립이 결정되었으며, 현재 국제연합 다국적군의 감독 아래 초대 입법기구인 동티모르민족회의(의장 사나나 구스마오)가 구성되어 독립 정부를 수립하기 위한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한국의 상록수부대도 이 다국적군에 동참함으로써 동아시아의 평화 유지에 기여하고 있다.
■한·일 해저케이블 개통(1980.11.28)
해저케이블은 바다를 사이에 두고 나라와 나라, 육지와 섬 등의 통신을 위해 해저에 부설되는 케이블이다. 이 해저케이블이 처음으로 부설된 것은 1951년 영국의 브레트 형제가 도버해협을 횡단하여 영국과 프랑스를 잇는 케이블이었다. 이후 20세기 초까지 해저케이블은 가장 효과적인 통신수단이 되었다.1980년에는 우리나라와 일본을 잇는 해저케이블이 개통되었다. 부산과 일본 시마네현 하마다 간 바다 밑 280km 구간을 연결하는 통신망으로 공사비 140억 원이 들어갔다. 한국의 정보통신부와 일본국제전신전화주식회사가 공동으로 해저동축케이블로 전년 5월에 공사를 시작했다. 한·일 해저케이블의 개통으로 국내 전화가입자는 교환원을 거치지 않고 다이얼만 눌러도 일본과 통화할 수 있게 되었다. 기존에 10여 분 이상 기다리던 소통난도 해소되었다. 또 국제전신과 텔레비전 전송, 사진 등도 종전보다 쉽고 간편하게 송·수신이 가능했다.이후 1990년 4월 해저 광케이블이 제주와 고흥 간의 구간에 건설되었고 다음달에는 한국에서 건설한 최초의 국제해저 광케이블인 한국과 홍콩, 일본을 연결하는 H-J-K라인이 구축되었다.
■국내 첫 액체연료 로켓 발사(2002.11.28)
2002년 오늘 우리 나라 우주개발에 있어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우리 나라의 과학자들이 최초로 개발한 액체연료 로켓을 성공적으로 발사했다. 지금까지는 모두 고체연료를 사용하는 로켓이었다. 이번에 발사한 로켓은 우리 과학자들이 직접 설계하고 제작한 100% 액체연료 로켓이다. 이 로켓의 이름은 KSR-Ⅲ(케이 에스알쓰리),한국과학관측로켓의 약자이다.KSR-Ⅲ는 액체 상태인 등유와 액체산소를 사용하고 있다. 길이가 14미터이고 직경은 1미터이며 전체 무게는 6톤 정도이다.KSR-Ⅲ 로켓은 불꽃을 뿜으며 43킬로미터까지 올라가 오존과 지구자기장을 측정 하고 3분51초 뒤 발사장에서 남서쪽으로 79킬로미터 떨어진 서해상에 예정대로 추락했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우주로 가는 첫걸음을 내딛었다.
<참고> 영국의 시인이자 화가 윌리엄 블레이크(William Blake) 태어남(1757.11.28)
♬ 오늘의 추천 묵상 찬양 :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앨범:피아노2 (성가연주 시리즈))
▧ 오늘의 말씀 다니엘 5:10 - 5:16
10 왕비가 왕과 그 귀족들의 말로 말미암아 잔치하는 궁에 들어왔더니 이에 말하여 이르되 왕이여 만수무강 하옵소서 왕의 생각을 번민하게 하지 말며 얼굴빛을 변할 것도 아니니이다
11 왕의 나라에 거룩한 신들의 영이 있는 사람이 있으니 곧 왕의 부친 때에 있던 자로서 명철과 총명과 지혜가 신들의 지혜와 같은 자니이다 왕의 부친 느부갓네살 왕이 그를 세워 박수와 술객과 갈대아 술사와 점쟁이의 어른을 삼으셨으니
12 왕이 벨드사살이라 이름하는 이 다니엘은 마음이 민첩하고 지식과 총명이 있어 능히 꿈을 해석하며 은밀한 말을 밝히며 의문을 풀 수 있었나이다 이제 다니엘을 부르소서 그리하시면 그가 그 해석을 알려 드리리이다 하니라
13 이에 다니엘이 부름을 받아 왕의 앞에 나오매 왕이 다니엘에게 말하되 네가 나의 부왕이 유다에서 사로잡아 온 유다 자손 중의 그 다니엘이냐
14 내가 네게 대하여 들은즉 네 안에는 신들의 영이 있으므로 네가 명철과 총명과 비상한 지혜가 있다 하도다
15 지금 여러 지혜자와 술객을 내 앞에 불러다가 그들에게 이 글을 읽고 그 해석을 내게 알게 하라 하였으나 그들이 다 그 해석을 내게 보이지 못하였느니라
16 내가 네게 대하여 들은즉 너는 해석을 잘하고 의문을 푼다 하도다 그런즉 이제 네가 이 글을 읽고 그 해석을 내게 알려 주면 네게 자주색 옷을 입히고 금 사슬을 네 목에 걸어 주어 너를 나라의 셋째 통치자로 삼으리라 하니
▧ 길라잡이 Guide
왕의 부친 때에 있던 자로서(11): 다니엘은 비록 느부갓네살 왕의 총애를 받았지만, 그는 이미 죽었고 또 세월도 상당히 흐른 상황이었기 때문에 다니엘은 사람들에게(특히 벨사살에게) 거의 잊혀진 상태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다니엘을 알고 있었던 태후가 다니엘을 추천했을 때 비로소 벨사살은 다니엘을 부를 수 있었다.
왕의 부친 느부갓네살 왕(11): 벨사살의 실제 아버지는 느부갓네살 왕이 아니라 나보니두스 왕이었다. 하지만 고대 동방에서는 직계 조상 가운데 유명한 사람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이 관례였기 때문에 느부갓네살을 벨사살의 부친이라고 부른 것이다. 이러한 예는 유다 왕의 족보에서도 종종 나타난다.
▧ 묵상과 삶 Meditation & Life
다니엘은 느부갓네살 이후에는 바벨론 왕궁에서 거의 잊혀졌던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벨사살 왕이 경험한 그 엄청나고 기이한 일을 해석함에 있어서 다니엘보다 더 적합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다니엘을 기억하고 있던 태후가 그를 추천했고, 결국 다니엘은 벨사살 왕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태후는 다니엘을 신들의 영이 있는 사람으로서 명철과 총명과 지혜가 있어 능히 꿈을 해석하며 은밀하고 기이한 일들을 알 수 있는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에서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이 힘쓰고 감당해야 할 일들에 대한 면죄부가 될 수는 없습니다. 즉 그리스도인은 다니엘처럼 믿지 않는 사람들조차도 인정할 수 있는 인격과 실력을 가져야 합니다. 그럴 경우 이 세상에 선한 영향을 끼치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을 보다 효율적으로 성취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내 주위의 믿지 않는 사람들은 나에 대해서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요? 뭔가 자신들과는 다른 사람, 고민하고 걱정하는 문제에 대해서 지혜로운 답을 제시하는 사람, 무엇보다도 아프고 상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을 사랑하고 위로하는 사람으로 여겨져야 하지 않을까요?
▧ 오늘의 기도
1. 세상에서 믿음으로 살며 나아가 그에 어울리는 인격과 실력을 갖춘 그리스도인으로 살게 하소서
2. <사회 & 문화> 아주 소량의 간접적인 담배연기 노출조차도 어린이들에게 주의력 장애를 일으킬 위험이 높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습니다. 간접흡연에 대해 사회가 더욱 각성하게 하시어 개인적인 습관 및 사회적인 제도가 잘 마련될 수 있게 하소서 [ 자료제공: SFC Tel.(02)596-8493 / 홈페이지편집: 김인균]
마지막 나팔 소리가 들리면 모든 성도는 순식간에 홀연히 변화해 썩지 않을 몸을 입게 될 것입니다. 죄와 사망은 예수님에 의해 완전히 멸망할 것입니다. 성도는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흔들리지 말고 견고하며 주님의 일에 힘써야 합니다.
☞ 마지막 나팔 소리
50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 또한 썩은 것은 썩지 아니한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50 I declare to you, brothers, that flesh and blood cannot inherit the kingdom of God, nor does the perishable inherit the imperishable.
51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51 Listen, I tell you a mystery: We will not all sleep, but we will all be changed--
52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
52 in a flash, in the twinkling of an eye, at the last trumpet. For the trumpet will sound, the dead will be raised imperishable, and we will be changed.
53 이 썩을 것이 불가불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53 For the perishable must clothe itself with the imperishable, and the mortal with immortality.
☞ 사망에 대한 승리
54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이 이김의 삼킨 바 되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응하리라
54 When the perishable has been clothed with the imperishable, and the mortal with immortality, then the saying that is written will come true: "Death has been swallowed up in victory."
55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55 "Where, O death, is your victory? Where, O death, is your sting?"
56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56 The sting of death is sin, and the power of sin is the law.
5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57 But thanks be to God! He gives us the victory through our Lord Jesus Christ.
58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58 Therefore, my dear brothers, stand firm. Let nothing move you. Always give yourselves fully to the work of the Lord, because you know that your labor in the Lord is not in vain.
본문 해설 ☞ 마지막 나팔 소리(15:50~53)
가장 좋은 것은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날이 곧 올 것입니다. 그날을 기대하며 사는 것이 성도의 최고 소망입니다. 그날은 온 천지에 나팔 소리가 울려 퍼지며 최후의 심판이 시작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초림 때에 아무도 모르게 낮은 모습으로 오셨지만, 마지막 때에는 천하 만민이 알 수 있도록 천사장의 나팔 소리와 함께 오십니다. 그때에는 정말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납니다. 지금 우리는 썩어질 육체를 갖고 있지만, 그날에 우리 몸의 모든 구조와 구성 요소가 다시는 죽음을 보지 않고 고통 받지 않는 영광스러운 형체로 변하게 됩니다. 부활은 단순히 다시 숨 쉬고 오래 살게 되는 정도가 아니라, 질적으로 완전히 다른 새로운 변화를 겪고 나서 하나님의 자녀다운 삶을 살게 하는 것입니다.
☞ 사망에 대한 승리 (15:54~58)
노래는 승리자의 몫입니다. 이긴 사람이 여유를 갖고 노래할 수 있습니다. 그날에 하나님의 온 백성이 승리의 개선가를 부를 것입니다. 완전한 승리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죽음은 인류 역사에서 한 번도 패한 적이 없는 우리의 최대 강적입니다. 그날은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인류를 괴롭히던 그 죽음이 사망하는 날이 될 것입니다. 단순한 패배가 아니라 완전히 패배할 것입니다. 다시는 죽음을 찾아볼 수 없는 그날이 오고 있습니다. 죽음이 사망함으로써 그 졸개들도 함께 멸망하게 됩니다. 죄와 율법의 권능이 함께 사라져 버릴 것입니다. 이런 모든 일은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뜻에 따라 그분의 역사하심으로 이뤄집니다. 이런 복을 받을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곧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분 앞에 서서 그분의 일에 힘쓰는 것입니다.
● 부활과 영생에 대한 소망을 최고 가치로 삼고 있습니까? 부활과 영생의 소망 안에서 남은 생애를 어떻게 살면 좋겠습니까?
●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신 예수님의 능력을 힘입어 삽니까?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날까지 흔들리지 않도록 힘써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오늘의 기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망을 이기셨음을 알기에 죽음 앞에서도 그 믿음이 흔들리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