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버지는 아브라함이라(요8:37~43)
37절. 나도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아노라 그러나 내 말이 너희 안에 있을 곳이 없으므로 나를 죽이려 하는 도다.
주님도 유대인들이 육신적으로 볼 때는 그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씨)들이라는 것을 알고 계시다
아브라함은 열국의 아버지라는 뜻을 가진 아브라함의 본명은 아브람이다(창17:4~5).
그는 셈의 후손인 데라의 아들로 주전 2000년경 갈대아 우르에서 태어났다(창11:27~28), 그는 그곳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자기의 고향 친척들을 떠나 하나님의 말씀을 따랐다(행7:2~4, 창12:4).그는 나이가 75세나 되었지만 자식이 없었다(창11:30,12:4), 그러나 하나님이 그에게 씨를 주시겠다는 약속을 믿었다. 그가 가나안에 거한지 10년이 되었지만 그 약속은 이루어지지 아니하였고 사래는 그의 몸종 하갈을 그에게 주어 이스마엘을 낳았다(창16:1~16), 그때의 아브람의 나이는86세 이었다. 그 후 아브라함의 99세에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나서 사래가 아들을 낳을 것을 말했고 아브라함 100세에 이삭을 낳았다(창21:5). 그러므로 그가 혈통적으로나 자손들이나, 약속을 믿음으로 낳은 자손들을 포함하여 열국의 아버지가 된다는 하나님의 약속이 25년 만에 이루어 졌다.
(1) 아브라함의 씨(자손)는 두 종류가 있다.
①육적 씨: 아브라함이 육신적 하갈을 통하여 난 씨(이스마엘)와 첩들을 통하여 난씨(자손)들(창
25:1~4).
②영적 씨: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을 통하여 난 씨 (이삭).
(2)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씨를 육적 씨(자손)와 약속의 씨로 분류한다.
① 육신적 씨 :아브라함의 혈통을 따라 난 자들(이스마엘, 이삭, 후처의 자식들)
② 약속의 씨 :하나님의 약속(믿음)에 따라 난 자들(아브라함의 씨, 유대인과 이방인 포함)
(3) 성경은 또한 아브라함의 씨를 세 부류로 나눈다.
①. 육신적 씨
육신적으로 아브라함의 씨를 통하여 난 자들 (롬9:6~7) 이삭, 이스마엘, 또 후처들을 통하여 난 자손들(창25:1~4).
②. 약속의 씨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얻은 사라에서 낳은 이삭의 자손(롬9:7~9)
③ 약속으로 낳은 영적 씨
아브라함, 이삭, 야곱처럼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으로 구원받은 예수님 안에 있는 믿는 모든 성도들 <아브라함의 씨> 즉 아브라함의 씨는“유대인, 헬라인, 종, 자유인. 남자, 여자”를 가리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를 말하며 아브라함의 씨 이면 약속대로(창12:2~3)하나님의 유업을 이을 상속자들이다.(갈3:29)
유대인들은 그들의 아버지는 아브라함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하지만 그것은 육적으로 혈통적인 관계를 말하는 것이지 아브라함처럼 경건함으로 하나님을 믿고 영접하여 그 말씀을 삶에 적용시키는 아브라함의 믿음의 영적자손(씨)은 아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내 말이 너희 안에 있을 곳이 없으므로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
즉 그들은 예슈아 주님의 가르치는 말씀을 거부함으로 그들 안에 말씀이 거할 곳이 없으며 예수님을 죽이려고 한다는 것이다.
38절. 나는 내 아버지에게서 본 것을 말하고 너희는 너희 아비에게서 들은 것을 행하느니라.
주님께서는 내 아버지와 함께 본 것을 말씀하셨으나 유대인들은 그들의 아버지와 함께 본 것을 행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들의 아버지는 육신적인 아버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관습과 전통을 중요시하며 외식과 위선을 행하고 거짓을 말하는 유대인들의 영적인 아버지를 말한다,
39절.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 아버지는 아브라함이라 하니 예슈아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면 아브라함이 행한 일들을 할 것이거늘
그러자 유대인들이 다시 대답하였다. 우리 아버지는 아브라함이라고 했다. 그러자주님께서도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면 아브라함이 행한 일들을 할 것인데 그러나 너희는 아브라함이 행한 것들을 하지 아니하므로 아브라함의 아들이 아니라고 부정하셨다. 우리 속담에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란 말이 있다. 이 말은 아들은 여러 면에서 아버지를 닮았음을 이르는 말이다. 그러므로 아들은 그 아버지의 형상이다. 보통 자녀들은 그 부모처럼 보고 말하고 행동한다. 그러므로 아들을 보면 그 아버지를 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그들의 아버지라고 자랑스럽게 여기는 유대인들의 삶은 아브라함의 삶과 전여 반대의 삶을 살고 있다고 지적하셨다.
그러므로 그들은 비록 육신을 따라서 혈통적으로는 아브라함의 자손들이었지만, 도덕적으로나 영적으로는 아브라함의 아들들이 아니라고 부정 하셨다.
40절. 지금 하나님께 들은 진리를 너희에게 말한 사람인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 아브라함은 이렇게 하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들이 아브라함과 대조된 삶을 살고 있는 것은 하나님께 들은 진리를 그들에게 말씀 하시는 주님을 죽이려 한다는 것을 지적 하셨다. 그러나 그들이 말하는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대언자로서 항상 진리를 택하고 그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았으며 멸망하여 가는 소돔을 위하여 기도하였고(창18:16~33), 자기의 아내를 취하여 빼앗으려 하였던 아비멜렉을 위하여 기도했다(창20:17).
41절. 너희는 너희 아비가 행한 일들을 하는도다. 대답하되 우리가 음란한 데서 나지 아니하였고 아버지는 한 분뿐이시니 곧 하나님이시로다
그러나 주님께서 너희들은 너희의 아비가 행한 일들을 행한다고 지적하자 그들이 대답하되 우리가 음란한 데서 나지 아니하였고 자신들의 아버지는 한 분뿐이신 하나님이시라고 말을 바꿨다. 본문에서 유대인들이 자신들은 음란한데서 나지 아니하였다는 말은 부정한 관계에서 난 간음한 자식이라는 말이 아니다, 성경에서 음란 하다는 것은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숭배를 하는 것을 말한다(출34:15,16).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을 버리고 영적인 간음을 범한 적이 전혀 없고 언제나 진실하게 한 분 뿐이신 하나님만을 섬기는 자들로 오직 그분만을 자신들의 아버지로 알고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42절. 예슈아께서 이르시되 하나님이 너희 아버지였으면 너희가 나를 사랑하였으리니 이는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나와서 왔음이라 나는 스스로 온 것이 아니요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이니라
그러나 주님은 그들에게“하나님이 너희 아버지였으면 너희가 나를 사랑(아카파오)하였으리니”라고 하셨다. 이는 주님이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고 오셨기 때문이다. 주님은 자신이 스스로 오신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보내셔서 멸망하여 가는 이 세상을 구원하시려고 오셨다.
43절. 어찌하여 내 말을 깨닫지 못하느냐 이는 내 말을 들을 줄 알지 못함이로다.
주님은 유대인들에게 어찌하여 내 말을 깨닫지 못하느냐고 책망 하셨는데 왜 그들은 예슈아 주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했을까? 그것은 그들이 예슈아 주님의 말씀을 들을 줄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그들과 주님이 communication 즉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 말씀은 그들이 귀와 청력이 없다는 뜻이 아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보고 싶은 것만 본다. 모든 것을 다 보고 들을 수는 없다. 인식 능력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욕구와 경험, 기타 개인적 특성에 따라 선택해 듣거나 본다. 자신의 신념과 일치하거나 자신에게 유리한 정보만 수용하고 그 밖의 정보는 무시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을“선택적 지각”이라 한다. 유대인들이 예슈아 주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는 것은 자신의 편견과 고정관념으로 인해 예슈아 주님께서 하시는 말귀를 못 알아듣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본문에서 앞에 나오는 내 말(speech)과 뒤에 나오는 내 말(Word)는 서로 다르다. NKJV 성경은 앞에서는speech<연설, 설교>을, 뒤에서는Wo-rd<말, 낱말>를 사용하고 있다. 그리스도 말씀(Word)은 그분의 가르치신 것들(Things)을 말하고 그분의 말씀(speech)은 그분이 전한 진리들(Tnuths)을 말한다. 그들은 주님이 전한 말씀(speech)조차도 이해하지 못했다. 이는 그들이 그분의 가르침을 용납하기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윌리암 맥도날드 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