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처음에 아웃소싱이 있었다
아담과 하와가 벌거벗은 몸으로 나무 위의 과일을 따고 있었다
그 나무 아래로 고양이 두 마리 지나다녔다 고양이가 도로로 뛰어들었고 납작해졌다 바닥에서 떼어내려 했으나 떨어지지 않았다
빨간 버스를 타고 그곳에 도착했다 계단을 따라 4층으로 올라갔고 인력센터 출근부에 나를 기입했다 체온과 휴대폰 번호를 기입하고 나의 신체를 기입했다 소지품 검사대를 통과하고 바코드를 찍고 와이파이를 껐다 우리는 완전히 물류창고에 편입되었다*
나와 닮은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잠깐 밤 산책 나온 사람들로 착각했다 밤고양이들이 떼로 창고로 들어갔다 창고는 창고마다 고양이들로 그득했다 뺨이 움푹 들어간 고양이가 반장이었다 고양이들은 일제히 두 손을 벌리고 나에게 일을 다오! 일을 다오! 다른 고양이들이 달려오기 전에 그들의 손은 재빨랐다 두 발이 공중에 떠 있었다
점 점 점 늘어나고 점 점 점 커지는 창고에서 몸집을 키우기 위해, 고양이들의 대화는 금물이므로 눈짓으로만 소통해야 한다 하늘만큼 땅만큼 쌓여가는 상자들 사이에서, 당신은 겨드랑이에서 흘러내리는 땀을 몇 번씩 식혔다 다른 고양이들이 밀려오기 전에 다시 뜨거워지는
우리들의 성실한 노동의 의무를 위해 우리는 서로 모른 체하기로, 역시 알바의 배치는 날카로웠다 오늘도 어떤 결함도 불량도 발생하지 않았다 밤새 꺼지지 않은 창고의 불빛이 우리를 밀어낼 때까지
빨간 버스를 앞질러 바퀴 안으로 고양이 한 마리가 달려들었다 헤드라이트가 도로에 납작하게 들러붙은 고양이 눈으로 쏟아져 들어갔다 고양이 두 눈이 어둠을 빨아먹고 있었다 다른 고양이들이 밀려오기 전에 아담과 하와같이 우리는 그곳에 편입되었다
* 외부하청
이은, 『밤이 부족하다』, 2023년
누군들 치열하지 않은 삶이 있으랴만, 경제적 사회적 약자의 삶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그 처절함으로 눈시울을 붉히지 않을 수 없다.
경향신문 송경동 칼럼(‘사소한 물음들’, 2024.05.14.)의 일부분을 인용한다.
“지난주 금요일 서울 영등포에 있는 비정규노동자의집 꿀잠에서 ‘최인기를 위한 꿀밥’ 자리를 가졌다. 얼마 전 1년2개월의 감옥살이를 마친 민주노점상전국연합 수석부위원장 최인기를 위로하는 소박한 자리였다. 2023년 2월10일 그와 그의 동료 다섯 명이 법정 구속됐을 때 이 지면에 ‘감옥만 여덟 번째인 최인기를 위하여’라는 글을 썼다. 구속 사유가 근 10여년 전인 2014년 박근혜 정부 시절 강남구청의 폭력적인 노점상 단속에 항의해 연대했다는 것이었다. 사회적 약자의 권익을 위해 연대한 일로 10여년간 경찰, 검찰, 법원에 끌려다녔으면 충분한 죗값을 받은 것과 같은데 실형이라니.
감옥 안에서 그가 겪은 이야기도 충격적이었다. 여전히 과밀수용이 이뤄지고 있는데, 나날이 증가하는 조현병 등 정신질환 수용수들도 별도의 의료조치 없이 혼거방에 함께 수용하면서 힘겹고 험악한 일들이 끊이지 않는다고 했다. ‘양심수’들 역시 불평불만만 많은 ‘앙심수’ 정도로 취급받으며 인권유린을 겪어야 했단다. 그의 경우 감옥 안 인권상황에 대해 항의했다는 이유로 28일간 징벌방에 갇히기도 했다. 면회도 금지당한 채 온몸을 결박하는 혁수정을 차고 어두운 벌방에서 일명 개밥을 먹어야 하는 고문 이상의 형벌이다.
함께 구속된 빈민해방실천연대 전 의장 김현우 선생님 소식은 더 놀랍다. 윤석열 정권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일베로 추정되는 동료 수형수가 나무로 된 밥상으로 폭행해 머리와 귀 쪽이 파열돼 무려 120바늘을 꿰매는 심각한 중상을 입었지만 특별면회도, 병보석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인권침해에 대해 어떤 조치도 받지 못한 채 김 선생님은 아직도 구속 중이다. 수십 년 한국 사회 빈민들을 위해 일해온 이력과 노령에 이런 고통까지 받았으면 형기의 3분의 1을 채우면 되는 가석방 대상이 될 법도 한데 일언반구도 없다.”
“면회도 금지당한 채 온몸을 결박하는 혁수정을 차고 어두운 벌방에서 일명 개밥을 먹어야 하는 고문 이상의 형벌”을 받아야 했다니, 이 대목에서 나는 그만 아득해지고 말았다.
시인은“물류창고”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현실을 그려내고 있다. 그들은 “밤이 부족한” 사람들이다. 고양이로 묘사된 사람들은 “점 점 점 늘어나고 점 점 점 커지는 창고에서 몸집을 키우기 위해, 고양이들의 대화는 금물이므로 눈짓으로만 소통해야”했으며, “하늘만큼 땅만큼 쌓여가는 상자들 사이에서” “겨드랑이에서 흘러내리는 땀을 몇 번씩 식혔다” “성실한 노동의 의무를 위해”“서로 모른 체하”며, 감정없는 기계처럼 노동에 종사한다. 얼마나 절박한 노동이었을까? “어떤 결함도 불량도 발생하지 않았다 밤새 꺼지지 않은 창고의 불빛이 우리를 밀어낼 때까지” 그렇게 정교하게 일하지 않으면, “다른 고양이들이 밀려”와 자신의 일용할 양식을 앗아가기 때문이다.
내가 숙면을 취하는 밤, “물류창고”에서 “아담과 하와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있어, 우리들의 아침은 밝아온다. 내가 드라마에 빠져서 웃고 울고 할 동안, 그들의 뜨거운 밤은 “부족하” 기만 하다. (홍수연)
🦋 다시, 시작하는 나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