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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7장, 8장, 9장
예수 그리스도와 멜기세덱, 언약의 대제사장, 지상의 성소
<예수님과 멜기세덱>
1~28절
7:1 이 멜기세덱은 살렘 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 여러 왕을 쳐서 죽이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만나 복을 빈 자라 2 아브라함이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그에게 나누어 주니라 그 이름을 해석하면 먼저는 의의 왕이요 그 다음은 살렘 왕이니 곧 평강의 왕이요 3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의 아들과 닮아서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 4 이 사람이 얼마나 높은가를 생각해 보라 조상 아브라함도 노략물 중 십분의 일을 그에게 주었느니라 5 레위의 아들들 가운데 제사장의 직분을 받은 자들은 율법을 따라 아브라함의 허리에서 난 자라도 자기 형제인 백성에게서 십분의 일을 취하라는 명령을 받았으나
6 레위 족보에 들지 아니한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에게서 십분의 일을 취하고 약속을 받은 그를 위하여 복을 빌었나니 7 논란의 여지 없이 낮은 자가 높은 자에게서 축복을 받느니라 8 또 여기는 죽을 자들이 십분의 일을 받으나 저기는 산다고 증거를 얻은 자가 받았느니라 9 또한 십분의 일을 받는 레위도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십분의 일을 바쳤다고 할 수 있나니 10 이는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만날 때에 레위는 이미 자기 조상의 허리에 있었음이라 11 레위 계통의 제사 직분으로 말미암아 온전함을 얻을 수 있었으면 (백성이 그 아래에서 율법을 받았으니) 어찌하여 아론의 반차를 따르지 않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다른 한 제사장을 세울 필요가 있느냐 12 제사 직분이 바꾸어졌은즉 율법도 반드시 바꾸어지리니
13 이것은 한 사람도 제단 일을 받들지 않는 다른 지파에 속한 자를 가리켜 말한 것이라 14 우리 주께서는 유다로부터 나신 것이 분명하도다 이 지파에는 모세가 제사장들에 관하여 말한 것이 하나도 없고 15 멜기세덱과 같은 별다른 한 제사장이 일어난 것을 보니 더욱 분명하도다 16 그는 육신에 속한 한 계명의 법을 따르지 아니하고 오직 불멸의 생명의 능력을 따라 되었으니 17 증언하기를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이라 하였도다 18 전에 있던 계명은 연약하고 무익하므로 폐하고 19 (율법은 아무 것도 온전하게 못할지라) 이에 더 좋은 소망이 생기니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느니라 20 또 예수께서 제사장이 되신 것은 맹세 없이 된 것이 아니니
21 (그들은 맹세 없이 제사장이 되었으되 오직 예수는 자기에게 말씀하신 이로 말미암아 맹세로 되신 것이라 주께서 맹세하시고 뉘우치지 아니하시리니 네가 영원히 제사장이라 하셨도다) 22 이와 같이 예수는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셨느니라 23 제사장 된 그들의 수효가 많은 것은 죽음으로 말미암아 항상 있지 못함이로되 24 예수는 영원히 계시므로 그 제사장 직분도 갈리지 아니하느니라 25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 26 이러한 대제사장은 우리에게 합당하니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이라 27 그는 저 대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 드리는 것과 같이 할 필요가 없으니 이는 그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라 28 율법은 약점을 가진 사람들을 제사장으로 세웠거니와 율법 후에 하신 맹세의 말씀은 영원히 온전하게 되신 아들을 세우셨느니라
'멜기세덱', 이 히브리어 이름은 '의외 왕'이라는 뜻입니다. 히('멜렉'[왕], '쩨덱'[의]), '살렘'은 멜기세덱의 도성이며 평화를 뜻하는 히브리어('샬롬') 와 동일한 어근에서 유래되었습니다(1~2절).
어떤 이들은 멜기세덱이 영원한 하나님의 아들의 성육신 이전에 일시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인물이라고 주장해 왔습니다. 그러나 이 구절이 보여주듯이 멜기세덱은 실제로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과 닮은 직역하면 하나님의 아들처럼 된 사람이었습니다.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족보도 없고' 이는 아마도 단지 이러한 정보가 그 족보가 기록된 레위 지파 제사장들과는 대조적으로 성경의 어느 곳에서도 주어져 있지 않다는 뜻일 것입니다. 멜기세덱은 '시작한 날도 생명의 끝'도 성경에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멜기세덱은 창세기 14 장에 갑자기 나타났다가 사라졌습니다(3절).
'노략물 중 십분의 일', 아브라함은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받쳤습니다. 여기서 조상은 '한민족 또는 백성의 조상'을 뜻합니다. 이는 이스라엘 전체의 혈통이 아브라함에게서 비롯되는 사실을 상기시킵니다(4절).
모세 율법에서 하나님은 레위 제사장들에게 십일조를 바치라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명령하셨는데 제사장들 자신도 같은 야곱, 이스라엘과 아브라함의 자손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약속을 받았는데 이러한 약속들도 아브라함의 자손을 포함합니다(5~6절).
'저기는 산다', 멜기세덱은 '영원한 제사장'이고 따라서 멜기세덱의 제사장 직분은 영원함으로 죽음을 피할 수 없는 레위 지파 제사장 직분보다 우월합니다. 멜기세덱은 그리스도의 한 모형이며 따라서 멜기세덱이란 인물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예고한다는 것입니다(8절.
히브리서에서는 모세 율법이 사람들의 '온전함'에 이르게 할 수 없는 몇 가지 이유를 제시합니다. 여기서 멜기세덱의 제사장 반열이 존재했다는 사실은 '레위 계통의 제사 직분'과 아론의 혈통을 위해 예비된 대제사장 직분만으로는 그 일을 감당하기에 불충분했음을 보여줍니다. '율법도.... 바꾸어지리니', 더 나은 그리스도의 제사상 직분이 세워진 것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모세 율법으로부터 변화도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그 율법은 모두가 레위의 후손인 재사장들의 계승을 필요로 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레위 계통이 아닌 대제사장으로서의 예수님의 역할은 모세 언약은 더 이상 효력이 없다는 강력한 증거입니다(11~12절).
예수님은 제사장 지파인 레위 지파가 아닌 유다 지파 출신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주님이자 메시아적인 멜기세덱의 제사장 반열을 따르는 제사장으로 불리신 다윗 가문의 메시아이심으로 영원한 대제사장으로 합당하십니다(13~14절).
'불멸의 생명의 능력', 예수님이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 하신 것은 예수님의 영원한 제사상 직분을 나타냅니다. 죽음은 예수님을 정복할 수 없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제사장 직분은 영원히 지속됩니다(15~17절). 하나님은 레위 지파에 제사장 제도를 세우셨지만 그것이 영원한 효력을 약속하시지는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제사장 직분은 하나님의 약속, 맹세에 확실하게 기반하고 있습니다(20~21절).
예수님의 영원한 대제사장 직분에 바탕을 둔 새롭고 더 좋은 언약은 하나님의 맹세와 그 보증이신 예수님과 함께 찾아오며 따라서 모세 언약보다 우월합니다(22절).
많은 레위 제사장의 필멸성은 예수님의 대제사장으로서의 영원성과 또 다시 대조됩니다. '온전히', 이 말은 시간상의 완전함을 뜻하는지 아니면 정도상의 완전함을 뜻하는지 분명치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항상 살아계셔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위하여 간구하십니다. 즉, 신자들의 간구를 항상 성부에 전달하십니다. 항상 살아계신 그리스도가 신자들을 위해 간구하시므로 신자들은 자신이 결코 멸망하지 않을 것이라는 큰 확신을 가질 수 있습니다. 사실 신자들은 자신의 삶 속에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룰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23~25절).
율법은 그 연약함으로 인해 죄 많고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약점을 가진 사람들'을 계속해서 연이어 '제사장'으로 세웁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맹세 하시며 한 영원한 대 제사장을 약속하셨습니다. 다윗을 통한 이 맹세는 모세 언약 이후에 왔고 메시아이신 하나님의 아들을 영원한 대제사장으로 세우시므로써 이전의 모세 언약의 제사상 직분을 폐합니다(28절).
<언약의 대제사장, 중보자이신 에수 그리스도>
1~13절
8:1 지금 우리가 하는 말의 요점은 이러한 대제사장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이라 그는 하늘에서 지극히 크신 이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으니 2 성소와 참 장막에서 섬기는 이시라 이 장막은 주께서 세우신 것이요 사람이 세운 것이 아니니라 3 대제사장마다 예물과 제사 드림을 위하여 세운 자니 그러므로 그도 무엇인가 드릴 것이 있어야 할지니라 4 예수께서 만일 땅에 계셨더라면 제사장이 되지 아니하셨을 것이니 이는 율법을 따라 예물을 드리는 제사장이 있음이라 5 그들이 섬기는 것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라 모세가 장막을 지으려 할 때에 지시하심을 얻음과 같으니 이르시되 삼가 모든 것을 산에서 네게 보이던 본을 따라 지으라 하셨느니라
6 그러나 이제 그는 더 아름다운 직분을 얻으셨으니 그는 더 좋은 약속으로 세우신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시라 7 저 첫 언약이 무흠하였더라면 둘째 것을 요구할 일이 없었으려니와 8 그들의 잘못을 지적하여 말씀하시되 주께서 이르시되 볼지어다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과 더불어 새 언약을 맺으리라 9 또 주께서 이르시기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열조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그들과 맺은 언약과 같지 아니하도다 그들은 내 언약 안에 머물러 있지 아니하므로 내가 그들을 돌보지 아니하였노라
10 또 주께서 이르시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것이니 내 법을 그들의 생각에 두고 그들의 마음에 이것을 기록하리라 나는 그들에게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게 백성이 되리라 11 또 각각 자기 나라 사람과 각각 자기 형제를 가르쳐 이르기를 주를 알라 하지 아니할 것은 그들이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라 12 내가 그들의 불의를 긍휼히 여기고 그들의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13 새 언약이라 말씀하셨으매 첫 것은 낡아지게 하신 것이니 낡아지고 쇠하는 것은 없어져 가는 것이니라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완전한 죄 용서를 베푸신 대제사장이 계시며 이 점은 그가 하나님 우편에 않으셨다는 사실을 통해 명백해집니다. '지극히 크신 이', 하나님 자신을 가리키는 셈어의 간접적인 표현. '성소들'이라고 번역된 헬라어는 나중에 모세 시대에 건축된 지상의 성막 가운데 "성소", "지성소" 직역하면 '거룩한 곳들 중에 거룩한 곳'을 가리키게 될 것입니다(1~2절).
대제사장은 감사의 '예물'과 '제사'를 드렸습니다. 예수님은 대제사장으로서 제사를 드리셔야하며 이 제사를 예수님은 참된 하늘의 성막에서 드리십니다(3절). 예수님은 지상의 성소에서 섬기실 수 없었습니다. 율법은 레위 지파 아론 계열의 혈통을 요구했기 때문입니다. 레위 지파 제사장들이 숨겼던 지상의 성막(장막은) 모세에게 보인 천상의 본을 따른, 그보다 못한 '모형'에 불과했습니다(5절).
예수님의 더 나은 사역에 대한 증거는 새 언약에서 발견되며 예수님은 이 언약의 중보자이시고 이 언약은 하나님이 더 좋은 약속으로 합법적으로 정하신 것입니다(6절).
'저 첫 언약이 무흠하였더라면', 모세 언약은 잘못된 것이 아니라 정확히 말하면 사람들을 온전함에 이르게 하지 못했기 때문에 연약하고 효력이 없었습니다. 옛 언약에 있어서 하나님의 목표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도덕법을 알려주고 죄를 깨닫게 하며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된 제사, 제사장 제도, 구원에 대한 약속의 모형을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죄 많은 인간이 옛 언약 아래서 온전함에 이르지 못하는 무능력은 둘째 언약에 대한 약속을 필요로 하며 첫째 언약에 효력 없음(즉, 단점)을 입증했습니다(7절).
'그들의 잘못을 지적하여', 하나님은 죄 많은 인류에게 첫 번째 언약을 지키지 못한 책임을 물으십니다. 새 언약은 첫 것을 낡은 것으로(여기서는 낡아지게 라고 번역됨), 너무 낡아서 극도로 나이가 많은 사람처럼 되어버려 그 결과 거의 사라져 가는('없어져 가는') 것으로 만듭니다(13절).
<지상의 성소>
이 단락은 구약의 성막과 그 가구와 예배 의식을 묘사합니다. 첫 언약에 대한 이런 묘사는 다음 단락에서의 새 언약에 대한 논의를 위한 기초 작업입니다.
1~10절
9:1 첫 언약에도 섬기는 예법과 세상에 속한 성소가 있더라 2 예비한 첫 장막이 있고 그 안에 등잔대와 상과 진설병이 있으니 이는 성소라 일컫고 3 또 둘째 휘장 뒤에 있는 장막을 지성소라 일컫나니 4 금 향로와 사면을 금으로 싼 언약궤가 있고 그 안에 만나를 담은 금 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와 언약의 돌판들이 있고 5 그 위에 속죄소를 덮는 영광의 그룹들이 있으니 이것들에 관하여는 이제 낱낱이 말할 수 없노라
6 이 모든 것을 이같이 예비하였으니 제사장들이 항상 첫 장막에 들어가 섬기는 예식을 행하고 7 오직 둘째 장막은 대제사장이 홀로 일 년에 한 번 들어가되 자기와 백성의 허물을 위하여 드리는 피 없이는 아니하나니 8 성령이 이로써 보이신 것은 첫 장막이 서 있을 동안에는 성소에 들어가는 길이 아직 나타나지 아니한 것이라 9 이 장막은 현재까지의 비유니 이에 따라 드리는 예물과 제사는 섬기는 자를 그 양심상 온전하게 할 수 없나니 10 이런 것은 먹고 마시는 것과 여러 가지 씻는 것과 함께 육체의 예법일 뿐이며 개혁할 때까지 맡겨 둔 것이니라
성막(예배를 위해 공들여 만든 천막)은 '성소'와 '지성소'(직역하면 '거룩한 곳 중에 거룩한 곳) 가장 거룩한 곳의 의미함에 두 부분으로 나뉩니다. 이 각 부분 안에 있는 물건들은 구약에 따라 언급됩니다(예컨대 출 25장, 30장, 37장). (2~3절).
이 본문은 지성소를 '금 향로'가 있는 곳으로 묘사합니다. 그러나 향로는 지성소에 있지않고 성소, 즉 성소를 지성소와 구분하는 '휘장 밖'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향로는 제사장이 일 년에 단 한 번이 아니라 매일 관리했습니다(출 30:7~8). 이 본문은 또한 '그 안에 만나를 담은 금 항아리와 아론의 싹 난 지팡이가 언약궤' 안에 있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구약은 이 항아리와 지팡이가 언약궤 안이 아니라 앞에 놓여 있었다고 말하며(출 16:32~34) 두 돌판만 이 궤 안에 있었다고 말합니다(출 25:16).
하지만 항아리와 지팡이가 그 이후에 언약궤 안에 보관되었을 가능성이 없지도 않을 것이고 히브리서 기자는 우리가 더 이상 접할 수 없는 다른 정보에 의존했을지도 모릅니다. 솔로몬 성전 시대에 이르러서는 언약궤 안에는 두 돌판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 잘 알려져 있었지만 이는 다른 물건들이 그 이전에 언약궤 안에 있었음을 암시할 수도 있습니다. 언약의 '돌판들'은 십계명이 담겨 있는 두 돌판입니다(4절).
저자는 성막을 묘사한 뒤에('이 모든 것을 이 같이 예비하였으니') 그 안에서 드려진 예배를 묘사합니다. '제사장들이 항상 첫 장막에 들어가', 레위 지파 제사장들만이 출입이 허용되었습니다. 그들은 등유와 진설병과 향로에 불을 가는 일상적인 예식을 행하고(출 25:30) 매일 드리는 제물을 바치기 위해 성소 즉, '첫 장막'으로 들어갔습니다(6절).
'일 년에 한 번', 속죄일에 대제사장은 둘째 장막, 즉 지성소에 들어갔습니다(레 16:2~3). 향 연기가 대제사장의 속죄소에서 가려준 뒤 대제사장은 황소와 염소의 피를 속죄제로 속죄소에 뿌렸습니다(레 16:6). 대제사장은 자기 자신과 모든 백성을 위해 죄에 대한 속죄가 필요했습니다. 율법은 비의도적인 죄와 고의적인 죄를 구별하며 초기 유대교에서는 속죄일의 어떤 종류의 죄가 다루어졌는지에 대해 논쟁했습니다(7절).
'이로써', 즉, 성소와 특히 지성소에서 하나님의 임재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권리를 레위 지파 제사장들에게만 제한하는 제도로써, '성령이....보이신 것은', 모세 언약은 성령을 통한 하나님의 명령이었고 모세 율법을 통해 하나님은 죄로 인한 인간과 하나님의 영적인 분리와 예수님에 대한 제사장적 사역에 대한 모형을 제시하셨습니다. '성소에 들어가는 길', 제사장들만이 성소에 들어갈 수 있으며 대제사장만이 휘장 뒤에 지정소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따라서 휘장과 성소가 '서 있을' 동안에는 나머지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지성소)로 직접 나아갈 수 없었습니다. 그 길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8절).
'그 양심상 온전하게 할 수 없나니', 모세 율법의 제사 제도는 영혼의 성화도, 예배하는 자에 내적인 삶에 하나님의 충만한 평안도 가져오지 못했습니다. 이는 새 언약과 대조를 이룹니다(9절). '먹고 마시는 것과 여러 가지 씻는 것'(훗날 초기 유대교 속에서 확대됨), 정한 음식과 부정한 음식, 제사 음식과 전제, 제의상의 결례에 대한 구약의 가르침, 이는 음식에 대한 "여러 가지 다른 교훈"을 신봉하는 이들에 대한 간접적인 비판일 수도 있습니다. '육체의 예법', 이 말은 이 예법이 양심에 도달하는 데는 효과가 없음을 암시합니다(10절).
<예수님의 피를 통한 구속>
11~28절
11 그리스도께서는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것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12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13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를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하게 하여 거룩하게 하거든 14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 15 이로 말미암아 그는 새 언약의 중보자시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에서 속량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16 유언은 유언한 자가 죽어야 되나니 17 유언은 그 사람이 죽은 후에야 유효한즉 유언한 자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효력이 없느니라 18 이러므로 첫 언약도 피 없이 세운 것이 아니니 19 모세가 율법대로 모든 계명을 온 백성에게 말한 후에 송아지와 염소의 피 및 물과 붉은 양털과 우슬초를 취하여 그 두루마리와 온 백성에게 뿌리며 20 이르되 이는 하나님이 너희에게 명하신 언약의 피라 하고 21 또한 이와 같이 피를 장막과 섬기는 일에 쓰는 모든 그릇에 뿌렸느니라 22 율법을 따라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하게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23 그러므로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은 이런 것들로써 정결하게 할 필요가 있었으나 하늘에 있는 그것들은 이런 것들보다 더 좋은 제물로 할지니라
24 그리스도께서는 참 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바로 그 하늘에 들어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고 25 대제사장이 해마다 다른 것의 피로써 성소에 들어가는 것 같이 자주 자기를 드리려고 아니하실지니 26 그리하면 그가 세상을 창조한 때부터 자주 고난을 받았어야 할 것이로되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물로 드려 죄를 없이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 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28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그리스도의 피를 통한 구속, 모세 시대의 성막 예배와 비교해볼 때 예수님의 새 언약에 대제사장 직분은 더 나은 하늘의 성막에서 단 한 번의 더 나은 제사를 제공하며 따라서 완전한 죄 용서, 영원한 구원, 정결하게 된 양심, 하나님께 직접 나아갈 수 있는 권리를 가져옵니다.
'더 크고 온전한 장막'은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임재를 직접적으로 둘러싼 영역이지 문자적인 성막은 절대로 아닙니다. 이 성막은 인간의 손으로 쥔 것이 아니며 '이 창조에 속하지 않은'...즉,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하늘에 속한 것이므로 모세의 성막보다 우월합니다(11절).
'단번에....들어가셨느니라', 이 제사는 반복할 필요가 없으며 이제 그리스도는 지성소와 하나님 보좌에게서 계속 머물러 계십니다. '염소와 송아지의 피', '자기의 피로', 예수님의 희생적인 죽음은 '영원한 속죄', 즉 값을 치르고 죄의 압제에서 풀려나는 것의 기초입니다(12절). '부정한 자에게 뿌려', 구약의 제사와 정결 의식을 통해 '염소와 황소의 피', '암송아지의 재', 민 19:1~22에서 이 재는 시체와의 접촉이나 부정을 제거하기 위해 진 밖에 남겨두어 물에 섞은 뒤 사람들에게 뿌렸습니다(13절).
'영원 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자기를....드린', 예수님은 대제사장인 동시에 제물 그 자체였지마 이 구절은 성령이 어떤 면에서 이 제물을 드리는 데 있어서 그리스도를 도우시거나 능력을 부여하셨다고 밝힙니다. 구약의 제물은 흠 없는 것이어야 했습니다. 예수님은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으십니다. '너희 양심을....깨끗하게 하고', 모세 율법의 제사는 양심에 영향을 끼치지 않았지만 그리스도의 제사는 존재의 가장 깊숙한 곳을 정결케합니다. '죽은 행실에서', 인간의 죄악성 때문에 사람을 구원할 수 없는 행위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자', 구원은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섬기게 합니다. 하나님은 다른 곳에서도 살아계신분으로 불리며
이는 하나님의 영원성을 나타냅니다(14절).
'중보자', '새 언약', 그리스도는 이 언약을 먼저는 계시하심으로써 그 다음에는 제물로 드리는 언약의 제사장 역할을 하심으로써 이 언약을 중재하셨습니다. "이로 말미암아"라는 표현이 사용된 이유는 이 때문입니다(15절). '유언', 이 헬라어('디아테케')는 법적 구속력이 있는 고인의 마지막 지시인 유언장을 지칭하거나 효력을 발하려면 짐승 제사가 요구되는 고대 근동의 '언약'을 나타냅니다. 어느 경우에든 '디아테케'는 죽음 후에야 효력을 발휘합니다. 이는 새 언약의 제정이 실제로 그리스도가 죽으셨을 때 발생했음을 의미합니다(16~17절).
'피로서 정결하게 되나니', 모세 율법에서 하나님의 백성과 하나님의 성소를 처음으로 정결하게 하는데는 희생 제물과 피가 필요했고 그런 제사는 율법에서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 계속 요구되었습니다. 이는 죄가 속죄하는 피의 제사를 필요로 하기때문입니다. 구원의 제사들은 하나님이 그리스도의 장차 있을 더 크고 완전한 제사의 모형으로 주신 것입니다(22절).
'손으로 만든 성소',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인간이 만든 지상의 성막, '참 것의 그림자', 영원한 하늘은 하나님의 처소이므로 땅의 모형보다 더 참된 실재입니다. 하나님 앞에 예수님은 대제사장으로서 하늘에 성소에 들어가셨고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제물로 드리셨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신자들을 위한 더 나은 제사를 통해 더 나은 곳에 들어가셨습니다(24절).
'한번 죽는 것은....정해진 것이요', 모든 사람에게는 영원한 심판 이전에 단 한 번의 삶이 있을 뿐입니다. 이 사실은 윤회설과 사후에도 다시 기회가 있을 것이라는 일체의 생각을 일축합니다. 죽음의 사실에 대한 언급 직후에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니리"라는 표현이 그 사이에 지위가 변화될 기회에 대한 어떤 암시도 없이 바로 나오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심판은 그리스도가 다시 오실때 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많은 사람의 죄'에 대한 제물로 '단번에' 죽으셨고 심판하시러 두 번째 나타나셔서 자신을 따르는 이들을 구원하실 것입니다. '자기를 바라는 자들',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이 분명한 예상은 구원을 바라는 모든 이들에게 기대 속에서의 인내를 요구합니다(27~2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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