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예고 드린바 있습니다만 오늘은 필라에 살고있는 강대식 동기생의 초대로
동부지역 동기생들이 함께 만남을 갖는 날 입니다
버지니아로 부터 달려온 최영종 동기생의 차에 동승해서 미국의 동맥이라 일컫는
95번 고속도로를 60마일의 속력으로 한시간정도 달려 찾아간 강대식 동기생의 집은
미국에서도 자랑할만큼 조용한 전형적인 주거지역에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겉에서 보아도 무언가 다른 중후한 멋을 풍기고 있는 단독주택들이 하나의 마을을
형성하고 있었는데 내가 여유만 있다면 한번쯤 저런 집에서 살아보고 싶었던
바로 그 동경의 대상이 었던 집들이 초록색 잔디밭 위에 그림처럼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초인종의 벨을 누르자 현관문이 활짝 열리고 반갑게 맞이하는 강대식 동기생
부부의 뒷편에는 벌써 도착한 김기희 동기생 부부의 모습도 보였습니다
우리는 푹신한 소파에 몸을 파묻은채 저녁만찬이 준비된 큰 식당으로 안내되기 전 까지
이런 저런 한국과 미국의 소식들을 전하며 한동안 왁자지껄 웃음의 꽃을 피웠습니다
이국만리 타향에서 그것도 칠십이 넘은 사람들이 이렇게 한자리에 모여 한 가족처럼
정담을 나눌 수 있다는 사실이 마냥 꿈만 같았지만 절대 꿈이 아닌 현실이었 습니다
그것은 진해 해병학교 연병장에서 1년이란 긴 각고의 세월을 함께 했던 동기애의
표출이 아니겠는가 생각 했습니다
인간개조 라는 엄격한 교욱목표아래 혹독하게 당금질을 당했던 그 각고의 시절이 아니었다면
그리고 생사를 넘나든 월남전 참전이 아니었다면 어쩌면 불가능한 일들이 아니었을까
생각도 해보았 습니다
만찬에 대한 소개는 생략 하겠습니다
다만 너무나 과분한 접대를 받았다는 사실을 전하는 것으로 대신 하겠 습니다
정말 오래도록 잊을 수 없는 풍성하고도 유쾌한 만찬이었 습니다
너무나 오랜 시간동안을 음식준비로 힘들었을 강대식 동기의 어 부인께 다시 한번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자 합니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우리 일행은 각각의 승용차에 골프백을 나누워 실고 미리 예약해둔
"레드 락 골프크럽" 으로 내달렸 습니다
레드 락 골프크럽은 필라델피아에서는둘째 가라면 서러운 명문 프라이빗 골프장으로서
버지니아의 "스프링 필드 골프크럽"에 조금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아주 훌륭한 골프장 이었
습니다
전장 7,023 야드의 죽 뻗은 코스는 홀마다 공략회의를 거쳐야만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는
흥미진진한 골프크럽이였 습니다
최영종 동기생의 제안으로 가장 긴 부루티에서 시작 하려 했으나 대부분 500 야드를 넘나
드는 미들홀이라서 그보다 한칸 아래인 그린티에서 첫 샷을 날렸 습니다
최프로는 여전히 우리의 선망 이었 습니다 빨래줄 같이 죽 뻗어 나가는 드라이브 티샷은
280 야드수준을 오르내리며 1번홀 부터 4번홀 까지 줄 파를 하고 있었 습니다
게다가 거리라면 최프로에게도 맞장을 떠보겠다는 강대식 동기생도 그 특유의 강력한 임펙트로
간간 롱게스트의 실력을 보여주어 모두를 놀라게 했습니다
14번 191 야드의 숏홀에서 드라이버를 들고 준비하던 강대식 동기생은 최프로가 5번 하이브리드로
온그린에 성공하자 자신도 5번 하이브리드로 교체, 온그린에 성공, 동반자들로 부터 감탄과 더불어
박수를 받기도 했 습니다
뉴저지에서 달려온 김기희 동기생도 보기 프레이 수준이었는데" 짐 퓨릭" 프로는 저리가라 할 정도로
허공에서 몇 바퀴를 돌리는 특유의 스윙폼에도 불구하고 만만치 않은 거리를 내고 있었 습니다
정식으로 프로들의 교습은 받지 않았지만 오랜 실전경험으로 다져진 실력은 미국이기 때문에
가능할것 이라고 생각 되었 습니다
그날의 스코어는 최영종 동기생이 82 타,강대식 동기생이 89타,김기희 동기생이 97타 그리고 본인이
93타를 쳤 습니다
우리는 오후 4시가 조금 지나면서 골프를 마치고 한국식당으로 가서 시원하게 물냉면을 먹고
그자리에서 헤어져야 했습니다
서두르지 않으면 밤길을 달려야 하기 때문 입니다
김기희 동기생은 북쪽으로 최영종 동기생은 남쪽으로 차머리를 돌리며 우리들은 손을 흔들었
습니다 " 기회가 되면 또 만나자" 면서.
강대식 동기생은 우리들이 올바른 길로 접어 들때까지 뒤를 쫒아오면서 안내를 하다가 돌아 갔습니다
여기서 미국에서의 동기생들과의 만남에 대한 이야기를 줄이려 합니다
너무 고마웠고 감사했다는 말로 끝을 맺으려 합니다
한마디로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동기생들은 모두 생동감이 철철 넘쳐났으며 안정된 경제적 기반위에서
행복한 생활을 영위하고 있었 습니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 "는 말과 "고생끝에 낙이 있다"는 진리를 우리들에게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었 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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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자고로 대접을 받았으면 갚아야하능긴데 소강이 큰일났네그려 ㅎㅎㅎ
소크라테스
오래 전에 그곳에서 골프하고 강대식이네 저택에서 거나한 대접 받고, 한국아가씨들이 있는 노래방까지 갔었지.
강대식동기생이 지금껏 그곳에서 산다니 정말 반갑다.그곳 동기생들 소식들으니 너무반갑다.다들건강하고 행복하게나.
오래 전에 그곳에서 골프하고 강대식이네 저택에서 거나한 대접 받고, 한국아가씨들이 있는 노래방까지 갔었지.
강대식동기생이 지금껏 그곳에서 산다니 정말 반갑다.그곳 동기생들 소식들으니 너무반갑다.다들건강하고 행복하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