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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서평
《꽃의 계곡》 프랭크 스마이드 김무제역. 2016년 하루재 클럽
산을 걷는 명상가
내가 프랭크 스마이드 작품을 처음 만난 것은 지금으로부터 48년 전이다.
국내에서 그의 작품이 처음 소개된 것은 《산의 영혼. The Spirit of the Hill》이다. 초역(抄譯)본으로 발간된 이 책의 제호가 《山과 人生/ 박성용역. 1968년》이었다. 당시 나는 서점에서 제목이 그럴싸해서 원저자가 어떤 사람인지도 모른 채 이 책을 구입했다. 제호자체가 주는 이미지가 매우 철학적이기 때문에 마음이 이끌렸다. 그러나 몇 페이지를 펼쳐보고는 실망했다. 매끄러운 번역은 처음부터 기대하지도 않았지만 내용이 너무 난해하였으며 원저에서 필요한 부분만 골라서 번역한 책이기에 마음이 끌리지 않았다. 그 후 이 책은 1990년에 안정호의 번역으로 수문출판사에서 《산의 영혼》이라는 제호로 완역본을 낸다. 불교계의 고승 법정스님도 이 책을 읽어본 후 스마이드를 가리켜 ‘산을 걷는 명상가’라고 극찬했다.
스마이드는 에베레스트 개척기에 활동한 영국의 유명한 알피니스트이자 27권의 저서를 펴낸 저술가이자 사진가이다. 대표적인 저서로는 《꽃의 계곡》.《캠프 6》.《산의 영혼》.《산의 환상》등이 있다. 그는 산에 오르며 느끼는 많은 경험을 인생과 비유하며 깊은 성찰을 갖고 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안락함과 평온함을 감성적으로 표현한 작가다. 그의 저서들은 어느 문학작품 못지않게 문장이 수려하고 우리의 영혼에 여유로움마저 느끼게 한다. 그는 49세라는 짧은 인생을 마감했지만 살아 있는 동안 많은 저술활동을 했고, 눈부신 등반활동을 했다. 그는 1933년, 1936년, 1938년에 에베레스트원정에 연속적으로 참여했고, 1933년의 원정에서는 십턴과 함께 에베레스트정상공격을 했으나, 십턴이 병을 얻어 6캠프로 철수하자 그는 단독으로 8560m지점까지 올라갔으나 아무런 지원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너무 지친 나머지 등반을 포기한다. 1930년에 칸첸중가를 원정했고, 1931년에는 당시 인간이 등정한 가장 높은 고도인 7756m인 카메트를 에릭 십턴과 함께 초등한다. 이는 그 당시까지 등정된 봉우리 중에서 가장 높은 고봉등정으로 등반역사에 기록된다. 1937년에는 이 책 21장에 나오는 가르왈 히말라야의 마나피크(7272m)를 경량속공등반 방식으로 등정한다.
그는 히말라야 뿐만 아니라 알프스의 몽블랑 브렌바벽(Brenva Face)의 쌍띠넬 루트(Sentinelle Route)와 메이저 루트(Major Route) 등반으로 알프스 등반에도 커다란 공헌을 하였다. 1930년 디렌푸르트(G. O. Dyhrenfurth)가 이끄는 국제 캉첸중가(KangChenJunga·8586m) 원정대의 대원이었으며, 세계2차 대전 중에는 산악훈련 교관으로 근무하였다.
그는 1927년부터 20여 년간 등산 활동을 하면서 27권의 산악명저를 집필했으며, 훌륭한 사진도 많이 남겼다. 1949년 인도에서 원정대를 조직하던 중 병을 얻어 귀향했으나 사망하고 만다.
그의 문명(文名)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 계기는 캉첸중가 등반 때 <타임>지의 특파원 자격으로 글을 써서 발표한 것이 동기가 되었다. 그의 글이 외국어로 번역되어 많은 독자들에게 읽히면서 산악인들로부터 주목을 받게 된다. 그가 남긴 <The Spirit of the Hills ·산의 영혼>에는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격조 높은 명구들이 많다.
등반의 편의성을 거부한 알피니스트
그는 등반수단으로서의 인공적인 용구(하켄)사용으로 자연이 파괴되는 것을 우려하면서 사용한계 설정을 주장했다. 다음 세대를 위해서 아름다운 산을 남겨놓은 것이 이 시대 사람들이 실천해야 할 의무라고 했다. 또한 등반의 편의성을 적극적으로 배척한 인물이다. 그는 에베레스트에서 산소용구의 사용을 비판했으며, 그런 것을 이용하여 등정에 성공하기보다는 차라리 그런 용구를 사용하지 않고 실패하는 편이 더 좋다고 말했다.
“등산은 모험으로 남아있어야 하므로 산소용구와 같은 인위적인 요소는 동원되지 말아야 하며, 만일 그런 것이 없이 등반이 불가능할 때는 그런 등반은 시도하지 않는 편이 좋다”고 했다. 이것은 등산에서 편의(Expediency)를 배격한 숭고한 철학이라 할 수 있다.
그의 말은 시대에 거역하는 완고한 생각이 아니라 등산은 자연을 사랑하는 일이고, 자연의 어려움 속에서 끝까지 진지하게 싸울 때에 비로소 그 가치와 의의가 있다고 보았다. 그는 과학이 제공하는 편리함을 예찬하는 것이 오늘날 등산 세계의 재난이며, 등산의 진수를 알려면 기계적인 보조기구를 줄여야 한다고 등반윤리문제를 거론했다.
프랭크 스마이드를 말하다.
영국의 유명 등산가이자 작가인 아널드 런경이 알파인 클럽 100주년 기념으로 출간한《등산 한 세기 1857-1957》에 ‘프랭크 스마이드를 말하다’라는 인물평을 실었다. 런 경의 인물평은 이 책 부록으로 실려 있다. 이 글에서 런경은 “처음 만난 스마이드는 산에 대한 편집광이었지만 그 후 독서에 대한 강한 편견은 사라졌고 생의 후반부에는 역사. 생물학. 종교. 문학에 이르기 까지 열광적인 독서가가 되었으며, 그의 박식함에 감명을 받았다. 또한 사진가로서 색과 선에 탁월한 혜안을 지니고 있었으며 싹싹하고 겸손한 선한 인물이었다.”고 술회했다.
또한 영국의 유명등반가 제프리 영은 스마이드를 훌륭한 등산가로 만든 그의 성격에 대하여 “무언가 잘못되어서 역풍이 불어왔을 때, 그의 내부에 느린 불꽃은 더욱 격렬히 타올랐다”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아름다운 난다데비 산군에서 등산과 식물탐사 기록
이 책은 1931년에 작가가 ‘꽃의 계곡’에서 체험한 등산과 명상의 기록으로 1938년에 출간된 작품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인도의 난다데비 산군 의 ‘난다데비 국립공원’과 ‘꽃의 계곡 국립공원’에서의 등산 활동과 식물 탐사기록이다. 이 곳은 지역 고유의 고산식물로 이루어진 초원과 수려한 자연경관으로 유명한 곳이다. 스마이드는 이곳에서 석 달 동안 머무르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며 이때의 경험을 기록으로 남겼다. 이 기록이 지금 소개하려는 《꽃의 계곡》이다. 인도의 꽃의 계곡 국립공원은 서부 히말라야 산맥의 고지에 자리 잡고 있다. 이 국립공원은 지역 고유의 고산식물들로 이루어진 초원과 수려한 자연경관으로 너무나 유명한 곳이다. 1988년 이미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된 난다데비 국립공원의 험준한 산지를 꽃의 계곡국립공원의 부드러운 경관이 보완해주고 있으며 산악인들과 식물학자들에 의해서 1세기 이상, 신두 신화에서는 그보다 더 오래전부터 찬미를 받아온 곳이다. 난다데비(7816m)는 1936년 영국의 틸먼과 오델에 의해 초등되었으며, 이 등정은 제2차 세계대전 이전의 고산등반 중 가장 훌륭한 등반으로 알려져 있다. 장관을 이루는 산의 야생적 자연은 천혜의 보호구역이라는 점 때문에 처음 주목을 받았으며 틸먼 이후 1939년에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었다.
이 책에는 31컷의 원색사진으로 장식한 고산의 꽃들이 펼쳐지면서 향기가 코끝을 자극하는 황홀감을 선물한다. 새벽의 하늘빛을 닮은 양귀비꽃과의 아클레아타의 아름다운 표지 일러스트는 이 책의 제목과 무관하지 않다.
이 책의 저자 스마이드는 등반과 휴식. 사색을 한가지로 묶어볼 줄 아는 철학적인 안목을 지니고 있는 산악인이다. 그는 이 책에서 치열한 등반 과정은 물론이고 등반대상지로 이동하는 과정 중 만나는 지역의 풍물이나 기후, 원주민의 외관, 의상, 행동, 생활방식, 관습, 종교, 신화 등은 물론이고 셰르파와 짐꾼들의 사소한 행동이나 성격, 심리까지 세세하게 묘사했다. 《꽃의 계곡》은 단순한 등반 기를 넘어 식물학적인 연구는 물론이고 민속학적인 내용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 대한 기록을 담은 풍성한 책이며 특히, 짐꾼들을 단지 짐꾼으로 대하지 않고 같이 등반을 하는 동료나 친구처럼 대하는 스마이드의 태도는, 다른 등산 관련 책에서는 찾기 힘든 휴먼 스토리와 감동을 선사해 준다.
무위無爲에 대하여
스마이드는 꽃의 계곡에 캠프를 치고 3개월을 머물기 전까지는 유럽의 문명권에서 생활했던 문명인이었다. 그러나 그는 비 문명권인 이곳의 무위자연 속에서 만족과 행복을 발견했다. 단순한 삶과 단순한 것들 속에 행복이 있을 수 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돈이나 물질에 좌우되지 않는 삶을 살고 있는 그곳 주민들의 행복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는 산기슭을 걸으며 삶의 의미를 탐색하고 문명인으로 살아온 자신의 삶이 행복했는지를 성찰했다.
그는 무위자연(無爲自然)속에서 맛볼 수 있는 단순한 행복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내 생각으로는 꽃의 계곡에 있으면서 호화판 호텔에서 자고 먹는다면 이것은 마음과 영혼에 최고의 고통이 될 것이다. 우리는 주위 환경에 잘 적응함으로써 행복을 얻을 수 있다. 나는 가르왈에서 기계 장치, 자동차, 비행기를 전혀 볼 수 없었지만 삶에 만족해하고 저마다 행복하게 살고 있는 사람들을 보았다. 한 티베트인의 말 속에 히말라야에 사는 사람들이 서양의 진보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잘 나타나 있다. 그들은 정신문화에 있어서 유럽인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우리는 티베트에서 당신들 문화를 원치 않습니다. 당신들의 문화가 있는 곳은 어디나 전쟁과 불행이 찾아오니까요.’ 이는 무시무시한 경고이긴 하지만 사실이다.”
마나피크(7272m) 등정과 분다르 계곡
1937년 스마이드는 가르왈 히말라야의 마나피크(7272m)를 경량속공등반방식으로 등정한다. 지금의 표현을 빌려 말하면 알파인 스타일 등반이다. 몇 주간의 정찰과 힘든 작업 끝에 그는 이 봉을 오른 후 “내 생애 가장 길었고, 가장 훌륭했으며, 가장 힘들었던 등반을 끝냈다고 했다. 이 밖에도 스마이드는 닐기리 파르바트(6481m). 두나기리(7066m)를 등반했다.
‘꽃의 계곡’이라 부르는 분다르 계곡은 우리가 쉽게 범접할 수 없는 중앙 가르왈 히말라야에 있는 5천 미터대의 고산에 있다. 이곳은 꽃을 밟지 않고서는 단 한 발작도 움직일 수 없을 만치 꽃들이 많은 식물군의 보고(寶庫)다.
새벽의 하늘빛과 같다는 푸른 양귀비꽃 아쿨레아타(표지사진. 19p. 147p), 이 꽃은 히말라야 꽃들 중의 여왕이라 불린다. 히말라야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찬사를 받는 박치니폴리움(173p) 등 이 책을 통해서 그 아름다움을 완상(玩賞)할 기회를 누려보기로 하자. 이 책은 고산식물도감(부록)이라할 정도로 꽃의 종류가 많다. 꽃그림만으로도 눈을 즐겁게 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이 책에 등장하는 꽃그림은 원전에 없는 삽화이지만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히말라야 식물대도감/2008년 김영사 간행》의 꽃그림을 사용했다.
첫댓글 너무 설명과 해석이 깊고 넓으셔서 책을 다 읽은듯한 느낌입니다.주중에 이제서야 하루재북클럽에 가입했는대 7월말중에 저 책이 와야되는대~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꽃의 계곡에서 보낸 기억을 '산의 영혼' 책에는 이렇게 기록했다.
'내가 산에서 보낸 가장 행복한 나날들 중에는 꽃들 속에서 보낸 날이 많다. 나는 꽃들과 더불어 있을 때면 전혀 외로움을 느끼지 않았다.'
스마이드의 글이 어려웠던건 저 뿐만 아니었네요...
하지만 이번 '꽃의 계곡'은 참 재미나게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