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초였을 겁니다. 텐센트라는 중국 IT 기업에서 청년 3명이 찾아왔습니다. 한국 IT 기업을 둘러보러 온 중국 산업시찰단 멤버 중 일부였죠. 이 회사에서 하는 업무를 브리핑하자 우리 서비스를 다 간파했다는 듯 송곳 같은 질문이 쏟아졌습니다. 개괄적인 설명에 그쳤지만, 그들에게 회사 기밀을 유출한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죠. 정말 스마트했습니다.
익명을 요한 한국 굴지의 IT 회사 직원이 떠올린 기억이다. 그는 "1년 후쯤 텐센트 측에서 투자 요청을 하면서 지분을 넘기겠다는 제안도 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당시만 해도 한국 IT 업계는 텐센트 투자제의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고, 중국에 지사 하나 내면 해결될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결국 텐센트 투자 제의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로부터 17년이 지난 올해, 텐센트는 아시아 최대 IT 기업으로 우뚝 솟았다. 지난 24일 기준으로 3조9400억 홍콩달러(약 547조원)를 기록해 아시아 기업으로는 처음으로 '세계 시가총액 5000억 달러 클럽'에 이름을 올렸다. 이 클럽엔 '애플·아마존·페이스북·마이크로소프트' 등이 포함돼 있다.
2000년대 초 한국 IT 기업에 투자 손 내밀었던 ‘텐센트’
이젠 삼성전자 시총보다 200조원 더 앞서고, 亞 최대 시총 기록
亞 기업으로 처음으로 시총 5000억 달러 클럽에 이름 올려
한때 페이스북 시총 넘겨, 내년엔 아마존 시총도 넘어설 듯
지난 21일 기준으로 텐센트 시총은 페이스북도 넘어섰다. 홍콩 증시에 상장한 텐센트 주가는 올해만 120% 넘게 상승했다. 처음 상장했던 2004년과 비교하면 무려 1만1200% 이상 오른 수준이다. 삼성전자 시총(356조원, 11월 24일 종가 기준)보다는 200조원 가까이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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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증시를 달군 중국 ‘인터넷 공룡’ 텐센트,
시총 550조원 육박, 삼성전자보다 200조원 가까이 앞서
창업 역사 19년 만에 거둔 쾌거다. 지난 10년간 주가는 계속해서 올라 거의 정배열에 가깝다. 특별한 이슈로 몇 배로 도약한 사례는 없다. 하지만 주가 곡선이 정비례에 가깝게 오를 수 있었던 힘은 크게 두 가지다. 중국어 메신저 서비스 QQ, 위챗의 탄생과 과감한 글로벌 투자다.
먼저 메신저 서비스를 보자.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인 마화텅 회장은 1998년 이스라엘 메신저 서비스 ICQ를 본떠 QQ를 만들었다. 이젠 텐센트 산하 메신저인 위챗 이용자까지 더해져 지금은 월 이용자만 10억 명에 육박한다. QQ가 부모 세대, 3~4선 도시에서 많이 사용되는 반면 위챗은 젊은 층, 1~2선 도시에서 주로 사용한다. QQ는 연동되는 서비스가 많지만 위챗은 메시지를 전달하는 게 주이기 때문이다. 사용층이 완전히 겹치지 않은 덕분에 중국에서 더 빠르게 이용자를 확보할 수 있었다. 플랫폼은 베껴왔지만, 중국 스타일로 철저히 현지화하는 한편 세대별 수요까지 파악해 가파른 성장을 이끌었다.
핀란드 게임업체 슈퍼셀이 개발한 ‘클래시 오브 클랜’ [사진: 월스트리트저널]
과감하게 글로벌 투자에 나선 텐센트의 먹성 또한 대단했다. 최근 모바일게임 ‘클래시 오브 클랜’을 개발한 핀란드 게임업체 슈퍼셀 지분을 86억 달러, 한국 돈 약 9조3000억원에 대량 매입했다. 이보다 앞서 2011년엔 인기 게임 ‘리그오브레전드(LoL)’ 개발사 라이엇게임즈를 인수했고, 전기차 회사 테슬라에 18억 달러, 차량 공유기업 리프트에 5억3000만 달러를 투자했다. 2014년 한국 게임업체인 넷마블게임즈에도 5000억원을 투자했다.
텐센트는 전기차 회사 테슬라에 18억 달러 투자했다. [사진: 블룸버그]
공개하지 않은 ‘빅딜’도 있다. 사진이나 짧은 동영상을 주고받는 모바일 메신저 스냅챗에도 약 20억 달러(약 2조2000억원) 정도를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상장조차 하지 않은 미국 스타트업까지 따지면 그 규모는 더 불어난다. 시장조사업체 CB인사이트에 따르면 텐센트는 지난 6년간 알려지지 않은 미국 스타트업 40여 곳에 약 35억 달러(약 3조8000억원, 2017년 4월 기준)를 투자했다. 상당한 투자 이익도 거뒀을 거라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2014년 텐센트는 한국 게임업체인 넷마블게임즈에도 5000억원을 투자했다. [사진: 허핑턴포스트]
여기서 거둔 실적은 주가를 매해 밀어 올렸다. 전체 지분의 10%를 가진 마 회장은 자산 450억 달러를 가진 아시아 최고 거부 반열에 올랐다. 마윈 알리바바 그룹 회장까지 제친 상황이다. 하지만 서구 기관들의 평가는 엇갈린다. 투자 기관인 바클레이즈, 다이와캐피털마켓은 텐센트의 목표 주가는 지금보다 10달러 높은 60달러 선으로 잡았다. 바클레이즈는 “텐센트는 핵심 사업 부문인 게임, 비디오, 결제 서비스 등이 크게 성장하면서 막대한 매출을 기록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곱지 않은 시선도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텐센트의 부상은 중국 당국이 페이스북·트위터·유튜브·구글의 중국 진출을 막아섰기에 가능한 일”이라며 “아마존이 진출했을 때도 이미 알리바바가 시장을 꽉 잡고 있었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