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다와 함께 맛 집을 찾아가는 길/ 전 성훈
동갑내기 친구 여섯이 2박3일 일정으로 길을 떠났다. 몇 년 전 환갑을 맞아 동갑들과 대천과 변산반도 지역에 여행을 다녀왔다. 그 때 우리나라 명승지를 찾아 전국 일주 여행을 결의하였다. 작년에 이어 올해가 세 번째 여행이었다.
[순천 괴목리]
금요일 오전이라 길이 시원시원하게 뚫려 점심 무렵 전남 순천에 도착하였다. 어느 방송 음식프로에 소개된 ‘꽃삼겹살’ 집을 찾았다. 음식점이 협소하여 번호표를 받고 음식점 밖에서 기다렸다. 종업원이 고기를 먹다가 추가로 주문할 수 없다며 잘 생각하여 한꺼번에 결정하라고 하였다. 그 말을 듣자 별나게 손님을 대접하는 음식점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20분 정도 지나 식당 한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땀을 흘리며 일하는 주인 손에서 구워지는 돼지고기를 보니까 먹음직해 보였다. 삼겹살 덩어리를 목살보다 두세 배 두껍게 잘라서 초벌구이를 한 다음 먹기 좋게 잘라 주었다. 불판에 지글지글 노릿노릿하게 달아오르는 고기를 보고 있자니 군침이 절로 돌았다. 성급한 친구는 고기가 다 익기 전에 잎새주부터 들이켰다. 한번쯤 먹어 볼 만한데 가격이 너무 비싸고 고기 양도 턱없이 적었다.
음식점 바깥에서 기다리는 동안 따가운 햇볕 속에 길거리 구경을 하다가 이해할 수 없는 간판을 만났다. ‘괴목구나무장’,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그 뜻을 알 수 없었다. 궁금증을 풀려고 어떤 가게에 들어가 주인에게 물어보았다. 이곳의 지명이 ‘괴목리’이고 오래전 커다란 상수리나무 아홉 그루가 있었던 시장터라고 하여 ‘괴목구나무장’이란 명칭이 생겼다고 한다.
[한 많은 소록도]
순천을 떠나 고흥군 소록도를 찾았다. 과거에는 배를 타야만 갈 수 있었으나 지금은 다리로 연결되어 찾아가기가 훨씬 수월하였다. 100년 전 일제가 한센병 환자들을 강제로 수용한 서러운 한이 겹겹이 쌓인 소록도. 보기 좋게 잘 가꾸어진 넓은 공원이 시원한 바다 바람 속에 우리 일행을 맞이하였다. 공원 주위를 바라보면서 오스트리아 출신 수녀 두 분이 이곳에서 평생을 헌신하셨다는 매스컴 기사가 떠올랐다. 세상을 떠난 나병환자들을 강제로 검시하였던 검시실과 환자들을 감금한 감치실 등을 둘러보며 마음이 착잡하고 무거웠다. 편한 몸과 마음으로 관광하며 소록도를 찾은 내가 세상에서 버려진 한센병 환자들과 그 가족의 절절한 슬픔과 삶의 애환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여수 어느 선창가]
소록도를 떠나 여수로 향했다. 고흥반도 나라도 우주 발사 기지를 볼 수 없어 아쉬웠다. 저녁 무렵 여수 시내로 들어서자 길이 막혀 돌산대교 부근을 구경하며 적당한 숙소를 잡았다. 인터넷에 맛집으로 소개된 어떤 ‘횟집’, 그 집의 음식은 가격대비 품질 소위 ‘가성비’가 너무 나쁘고 가격도 비쌌다. 뜨악한 기분으로 옆자리를 보니 여성 4명이 우리보다 술을 더 많이 마시고 있었다. 갑자기 횟집에 속은 듯 한 기분이 들어 애꿎게 술잔만 기울였다.
숙소에 들어가서 샤워를 하려고 했으나 뜨거운 물이 나오지 않았다. 주인을 불러 알아보니 보일러를 가동해야 난방과 욕실에 뜨거운 물이 나온다는 것이었다. 여행 첫날밤은 이렇게 해프닝으로 끝났다.
[향일암 천수관음보살]
이튿날 아침 라면을 끓여서 술에 찌든 속을 달래고 해안 도로를 끼고 향일함을 찾았다. 주차장에서 절까지는 편편한 길과 계단 길이 있었다. 친구들과 천천히 이야기 하면서 계단을 걸어 올라갔고 내려올 때는 평지로 내려왔다. 향일암은 해수 관음성지로 알려져 있다. 천 개의 손과 천 개의 눈을 가지고 지옥에 빠진 중생의 고통을 구제해준다는 천수관음보살. 천수관음보살상을 바라보면서 인간의 마음을 꿰뚫어보신 부처님의 큰 뜻이 무엇일까 생각해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어리석은 중생인 나로서는 도저히 알 수 없고 갈 수 없는 머나먼 세계 같았다. 주차장 부근 음식점에서 갓김치와 막걸리를 샀다. 해안도로를 달리다가 전망 좋은 곳에 주저앉아 바다를 바라보면서 갓김치에 막걸리 몇 잔을 마셨다. 한 번쯤 규범을 넘어 약간의 일탈을 해보는 것도 여행의 묘미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해 땅으로]
여수를 떠나기 전에 ‘돌게 정식’으로 유명한 집을 찾았다. 유난히 간장게장을 좋아하는 내 입맛을 꽉 사로잡은 돌게 정식은 맛있고 가격도 적당하고 주인이 매우 친절하였다. 다른 지역에서는 참게로 게장을 담그지만 여수에서는 돌게로 게장을 담근다고 했다. 점심 식사를 기분 좋게 하고 포만감을 느끼며 여수를 떠나 남해 ‘다랭이’밭을 찾았다. ‘다랭이’밭은 몇 년 전에 보았던 모습과 많이 변해 실망하였다. 더 이상 농사를 짓지 않아 풀밭으로 변해 버린 곳이 드문드문 보였다. 현지에서 농사를 짓는 분들에게 어떤 문제가 있는지 모르겠다. 허전한 마음을 달래려고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경치 좋은 정자에서 부추전 맛을 보면서 푸른 남해 바다와 시원한 바람을 만끽하였다. 남해읍으로 돌아와 피곤한 몸을 풀려고 목욕탕을 찾았다. 목욕을 마치고 남해성당 저녁 미사에 참례하였다. 성당 사무실을 통해서 주변 숙박업체를 소개받아 잠자리를 구했다.
[남해 미조항]
다음날 일찍 아침 식사를 거르고 남해읍을 출발하였다. 뻥 뚫린 해안도로를 달리면서 상쾌한 바닷바람을 가슴 깊숙이 들이 마셨다. 40년 전 추억 속의 상주해수욕장을 지나 미조항에 갔다. 대학 3학년 여름 상주해수욕장 모래밭에서 양동이에 막걸리를 받아놓고 인생을 논하고 사랑을 갈구했던 젊은 청춘들은 흔적도 없이 어디로 사라지고 없었다. 경상도 억양이 드세어 잘 알아들을 수 없는 아주머니가 운영하는 음식점. 함께 간 친구가 강력하게 추천한 멸치무침회와 멸치쌈밥은 처음 맛 본 별미였다. 10여 년 전부터 통풍 약을 복용하면서 멸치는 먹지 않고 있다. 모처럼 특별한 음식을 맛보지 않을 수 없어 ‘산수 갑산’ 간다는 생각으로 그 맛을 음미하였다. 서울의 횟집에서 자주 먹었던 광어나 도다리와는 다른 맛으로 조금 비릿한 냄새가 났지만 황홀한 맛이었다. 늦은 아침을 먹고 남해성당 미조항 공소에 들려서 주모경을 바치고 독일인 마을을 찾았다. 파독 간호사와 광부들의 한을 달래주고 노년을 고국의 산천에 보내고 싶은 분들에게 조그마한 보답을 한 곳이 독일인 마을이다.
[진주 촉석루]
남해를 벗어나 삼천포대교를 거쳐 진주로 들어섰다. 촉석루에서 임진왜란의 슬픈 역사를 간직한 의녀 논개를 기리는 사당을 둘러보았다. 논개가 적장을 안고 뛰어내렸다고 알려진 의암을 내려다보며 잠시나마 숙연한 마음이 들었다. 촉석루 정문을 나서자 촉석루 공원화 사업 계획에서 일확천금을 꿈꾸며 ‘알박기’를 한 일그러진 인간의 모습을 보았다. 흉물처럼 공원부지 한가운데 폐허 같은 건물이 덩그렁 하니 서 있었다. 세상에는 공익보다는 사욕이 앞서는 사람들이 수 없이 많음을 확인하니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귀향을 앞두고 ‘진주냉면’ 집에서 시원한 물냉면을 먹었다. 커다란 놋그릇에 담아준 냉면은 면발이 조금 굵은 편이지만 정말 맛있었다. 냉면 속에 고개를 푹 박고 숨어있는 얇게 썬 고기를 찾아 조금씩 씹을 때 그 감촉이 그만이었다. 게다가 대접 가득히 냉면을 듬뿍 담아주어 더욱 좋았다. 앞자리 친구도 싱글벙글하며 너무 맛있다고 하였다.
[여행의 맛은? ....]
나에게 여행이란 무엇인가? 혼자 길을 떠날 때는 내 자신을 들여다보는 힐링의 기회가 된다. 아내와 둘이 떠날 때는 젊은 시절 숨 가쁘게 달려온 우리 부부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노년에 들어서는 부부의 진정한 가치와 길동무 역할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역사탐방에 참가했을 때에는 우리 문화와 조상의 숨결과 그 정신의 의미를 찾아가는 기쁨이 있다. 친구들과 여럿이 갈 때는 일상에서 벗어나 마음을 훌훌 털어버리고 수다를 떨며 맛있는 음식과 술을 탐하는 즐거움이 있다. 집 떠나면 생고생뿐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여행은 길 떠나는 그 자체가 즐거움이요 기쁨이자 삶의 활력소이다. 여행은 익숙한 사람과 장소로부터 벗어남이요 생소한 환경과 장소로의 초대이며 낯 설은 사람들과의 교류이다. 여행은 지나간 세월의 기억이자 회상이며 다가올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헤쳐나 갈 수 있는 지혜의 길이다. (2016년 5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