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수업 : 텍스트 5장
9. 영원한 고착(Fixation)
1
우수한
심리학 개념 중에
'고정(set)'이라는
아이디어가 있다.
사실
그것은 성서에서
그리고
또한 이 수업의
다양한 맥락에서
자주 사용된다.
예를 들어
“신께서는, 그의 마음이
신 안에 머무는(혹은 고정된) 자를
완벽한 평화 속에 두신다.”
라는 말은,
신의 평화는, 신께 고착되어 있기에,
성령 안에 고정되어 있다는 뜻이다.
신의 평화는
또한 그대 안에도
고착되어 있다.
그렇다면 그대는
정녕 신의 평화 속에
고착되어 있는 것이다.
‘고착(fixation)’은
프로이트가 완벽하게 이해한
아주 유용한
개념이기도 하다.
불행하게도 프로이트는
두려움에 빠져 있었고,
그대가 너무도
잘 알고 있듯이
두려움은, 좋은 판단과
양립할 수 없기에,
프로이트는
자신의 이해를 상실했다.
두려움은
사고를 왜곡시키며,
따라서
생각에 장애를 일으킨다.
2
프로이트의 사고체계는
아주 독창적이었다.
왜냐하면 프로이트는
아주 독창적이었으며,
마음은,
자신의 생각에 반드시
자신의 속성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마음의
타고난 강점이다.
비록 마음은
자신의 힘을 오용할
수도 있지만 말이다.
프로이트는
자신의 사고체계 안에
자기 자신을
포함시키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이 가진 많은
잠재적 가치를 놓쳤다.
이것은
일종의 단절 상태이다.
왜냐하면,
생각하는 자가
자신의 생각으로부터
스스로를
제외시켰기 때문이다.
프로이트의 생각은
너무나 갈등 상태에 있어서,
단절 없이는
자신이 보는 바의 제정신을
유지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프로이트의 사고에서
아주 명백한 많은 모순이,
그에게는
점점 더 덜 명백해진
이유이다.
고착이 진정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지만,
고착에
자신을 내맡기지 않는
사람은
아주 두려워한다.
3
고착은
신의 끌어당김이다.
그대의 마음은 정녕
신께 고착되어 있는데,
그 이유는 성령의
돌이킬 수 없는 고정 때문이다.
‘돌이킬 수 없음’은, 철회하거나,
방향을
바꿀 수 없음을 의미한다.
성령에게 있는, 고정의
돌이킬 수 없는 특성은
성령의
확고한 음성의 근거이다.
성령은
결코 그의 마음을
바꾸지 않는다.
생각의 명료성은
갈팡질팡하는 조건에서는
일어날 수 없다.
마음이 자신의 목적에
고착되어 있지 않는 한,
마음은, 명료하지 않다.
명료함은 그야말로
<빛의 상태>를 의미하며,
밝게 비춰져 있는 상태
(enlightenment)가
바로 <이해>이다.
밝게 비춰져 있는 상태는
<지각보다 아래>에 놓여 있다.
왜냐하면, 너희가 그것을
<생각의 참된 토대>로 삼기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모든
망상 체계의 근거이다.
4
프로이트가 본 고착 개념은,
학습상 많은 이점을 갖고 있다.
첫째, 이 개념은
사람이
시간상의 특정 시점과
일치하지 않는
발달 과정상의 특정한 시점에,
고착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
만약
프로이트가 열린 마음으로
고착 개념을 계속 연구했다면,
이 개념은 분명히
시간이라는 믿음으로부터의
진정한 해방으로 이끄는
수단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프로이트는 평생 동안
그의 마음이
영원(eternity)을 깨닫게 되어,
영원이 그의 마음을
참으로 밝게 비추도록
허용하지 않아
고통을 겪었다.
그 결과 프로이트는
지금 이 순간(now)을
완전히 간과했으며,
단지
과거와 미래의 연속성만
보았다.
5
둘째, 프로이트는
비록 성령이
그에게 말해준 것,
더 정확하게는 성령이
그에게 상기시켜 준 것을
잘못 해석하긴 했지만,
너무도 정직한 나머지,
그 상황을 지각할 때
두려움을, 참을 수 있는
범위 안에 가두는 데,
필요한 이상으로
부정하지는 않았다.
따라서
프로이트는,
마음이
동의하지 않는
외부 현실보다는
마음이 고착된
발달 과정상의 한 시점이,
마음 자신에게
더 실재적임을 강조했다.
이 점 또한, 강력한 해방의
메커니즘이 될 수 있었다.
만약 프로이트가, 고착을
공격으로 지각함으로써
강력한 방어 기제 안에,
포함시키기로 결정하지
않았더라면 말이다.
6
셋째, 비록 프로이트는
마음이 언제라도
퇴행해 돌아갈 수 있는
‘위험지점’을
고착이
포함하고 있다고
해석했지만,
이 개념은 또한
마음이 결코 상실할 수 없는
온정신으로의 확고한
부름으로, 해석될 수 있다.
프로이트 자신은, 이런
해석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러나
그의 사고체계 전체에 걸쳐
고착의 ‘위협’이 남아있으며,
그 사고체계에 따르면
살아있는 사람이라면,
그 누구도 그 ‘위협’을
결코 제거할 수 없다.
본질적으로 이것은
이론적으로나 개인적으로
프로이트의
비관주의의 근거였다.
프로이트는 자신의
매우 독창적인 마음이
고안해낼 수 있는
온갖 수단을 사용하여,
마음이 고착으로부터
영원히 벗어날 수 있게 할
치료법을 정립하려 했다.
비록 그는
이것이 불가능함을 알고
있었지만 말이다.
7
이런 앎은
자신의 사고체계에 대한
프로이트의 믿음을
모든 면에서 약화시켰다.
왜냐하면 프로이트는
정직한 사람이자
치유사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는 부분적으로만
정신이상이었으며,
또한
비록 그 자신은
해방의 가능성에
제대로
대처할 수 없었지만,
해방의 가능성을
포기할 수 없었다.
이것을
이토록 상세하게
다루는 이유는,
그대가 같은 상황에
있기 때문이다.
그대는 창조될 때
영원히
신께 고착되었다.
이런
고착의 끌어당김은
너무도 강하여
그대는 결코
그것을 이겨낼 수
없을 것이다.
그 이유는
아주 명백하다.
그 고착은 너무도
높은 수준에 있어서,
다른 것에 의해
결코 극복될 수 없다.
그대는 항상
그대의 창조주께,
돌아가는 방향으로
끌어 당겨지고 있다.
왜냐하면, 그대는
본래 그분에게 속하기
때문이다.
8
그대는 정말로
신의 음성을 잠재울 수 있는
어떤 음성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믿는가?
그대는 정말로
신의 사고체계로부터
그대를 떼어낼 수 있는
사고체계를
고안해낼 수 있다고
믿는가?
그대는 정말로
그대의 안전이나 기쁨을
얻기 위한 계획을
신보다
더 잘 세울 수 있다고
믿는가?
그대는 걱정할 필요도
무관심할 필요도 없다.
그저
모든 걱정거리를
그분의 손에
맡기기만 하면 된다.
왜냐하면,
신께서 그대를
돌보시기 때문이다.
신께서는
그대를 사랑하시기에,
그대를 돌보신다.
신의 음성은 항상,
신께서 그대를 돌보시기 때문에
모든 희망이
그대의 것이라고 상기시켜준다.
그대는
신의 돌보심을
벗어나겠다고
선택할 수 없으니,
그것은 신의 뜻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대는
신의 돌보심을 받아들여,
그분의 돌보심의
무한한 권능을
그 권능에 의해
창조된 모든 것을 위해
사용하기로
선택할 수 있다.
9
이제까지는
스스로를 치유하지 않은
치유사들이 많았다.
그들의 믿음은
온전하지 않았기에,
그들은 믿음으로
산을
움직일 수 없었다.
그들 중 몇몇은 때로
아픈 자를 치유했지만,
죽은 자를
일으키지는 못했다.
치유사가
자기 자신을
치유하지 않는 한,
그는 기적에
난이도가 없음을
믿지 않는다.
신께서
창조하신 마음은
신께서 온전하게
창조하셨으므로
모두가 동등하게
치유 받을 자격이
있음을
그는 배우지 못했다.
그대는 단지 마음을
신께서 창조하신 대로,
그분께 돌려드리라는
요청을 받고 있을 뿐이다.
신께서는
단지 그대에게
그분이 주신 것만을
요청하실 뿐이니,
신께서는
이런 돌려드림이
그대를
치유할 것임을
아시기 때문이다.
제정신은
곧 온전함이요,
그대 형제의 제정신은
곧 그대의 제정신이다.
10
그대 안에
신의 음성이 있음을
알면서, 그대는 왜
그대에게 전해지는
끊임없는 미친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가?
신께서 그대에게
<당신의 영>을 맡기셨다.
그리고
<그대의 영>을 당신께
맡기라고 요청하신다.
신께서는
그대의 영을
완벽한 평화 속에
간직하기를 뜻하신다.
왜냐하면, 그대는
신과 한 마음, 하나의 영이기
때문이다.
그대 자신을 속죄에서
제외시키는 것이야말로,
에고가 자신의 생존을 위해
사용하는 필사적인 방어이다.
그것은
분리해야 하는 에고의 필요와
에고의 분리를 편들고자 하는
그대의 용의를 모두 반영한다.
이런 용의는
곧 그대가 치유되고 싶어
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11
그러나
때는 바로 지금이다.
너희는
스스로 구원 계획을 짜라는
요청을 받은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내가 전에 말한 대로,
치료법은
너희가 만드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신께서 직접 너희에게,
너희가 만든 것 중에
당신의 거룩한 뜻과
일치하지 않는 모든 것에 대한
완벽한 교정법을 주셨다.
나는 너희에게
그분의 계획을
낱낱이 밝혔으며,
또한
그분의 계획에서 너희가
맡은 부분이 무엇인지,
그리고 너희가
그것을 이행하는 것이
얼마나
긴급한지도 말해주었다.
지연시킬
시간은 있으나,
그럴 필요는 없다.
신께서는
당신께 잊혔다고
믿고 있는
당신 아이들의
‘희생’ 때문에,
눈물을 흘리신다.
12
앞에서 나는
그대가 전적으로
기쁘지 않다면
그것은 언제나
신께서 창조하신
어떤 영에게
사랑의 결핍으로
반응했기 때문
이라고, 이미 말했다.
그대는 이것을
‘죄’라고 지각하여,
공격을 예상하여
방어적이 된다.
그렇지만 이런 식으로
반응하려는 결정은
그대의 결정이며,
따라서 무효화될 수 있다.
그것은 통상적인 의미의
참회로는 무효화될 수 없다.
왜냐하면, 참회는 죄의식을
함축하기 때문이다.
그대 자신이
죄의식을 느끼도록
허용한다면,
그대를 위해
잘못이 무효화되도록
허용하기보다는
오히려 잘못을
강화하게 될 것이다.
13
결정은 어려울 수 없다.
만약 그대가
전적으로 기쁘지 않다면
그대는
이미 그러겠다는
결정을 했음에
틀림없음을 깨닫는다면,
이것은
너무도 분명하다.
그러므로
무효화의 첫 단계는,
그대가 적극적으로
잘못 결정했음을 인식하고,
그러나 똑같이
적극적으로 다르게
결정할 수 있음을
인식하는 것이다.
너희는 이점에 대해
아주 확고해야 한다.
또한,
무효화 과정은
너희로부터
비롯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께서
그것을 너희 안에
두셨기 때문에,
너희 안에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자각하고 있어야 한다.
너희의 역할은
단지 너희의 생각을
잘못이
만들어진 곳으로
다시 가져가,
그 잘못을
평화롭게 <속죄>에
맡기는 것뿐이다.
성령은 그대의
아주 미약한 초대에도
전적으로
응답할 것임을
기억하면서,
할 수 있는 한
진지하게 마음속으로
다음과 같이 말하라:
“지금 평화롭지 않은 것을 보니,
나는 잘못 결정했음에 틀림없다.
나 자신이 그런 결정을 했지만,
나는 또한 다르게 결정할 수 있다.
나는 평화롭기를 원하기에,
다르게 결정하기를 뜻한다.
나는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내가 맡기기만 한다면, 성령이
나의 그릇된 결정의 모든 결과를,
무효화 할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성령이 그렇게 하도록
허용하겠다고 뜻한다.
그러기 위해 나는
성령이 나 대신에, 신을 위한
결정을 내리도록 허락한다.”
ㅡ 기적수업 밴드ㆍ텍스트 5장 ㅡ
첫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