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강나무(노란 동백)
7시에 버스로 달려가니
출장중인 남편 대신 자리를 마련해주신?
고마운 분이 계시고
점심 김밥을 제 것까지 싸오신 직원 부부도 계시네요
그래서 가벼운 배낭을 안고 떠나는 여행
약간의 비로 어제의 대단한 황사는 좀 가라앉은 듯
흐린 날씨에 버스는 이야기들을 싣고 파주쪽으로 달려
멈췄는데 산자락에 작다 싶은 초가집들이 엉성하게 보입니다
임꺽정 촬영지였다네요 강원도 철원 10시 30분경
하산길에 그쪽으로 내려온다고 하십니다
왼쪽 길을 올랐습니다
초입 커다란 성황당 나무엔 울긋불긋 긴 천들이 매달려 흔들리고
나무 아래엔 굿에 쓰인 듯한 과일들과
액을 쫓아냈을 빨간 팥알들이 떨어져 있습니다
새싹들이 여기저기 파릇하게 올라오는 시기
제법 가파른 산길에 군데군데 밧줄이 늘어져
초반부터 힘을 쓰게 합니다
매월폭포 아래의 두꺼운 얼음이 신기하네요
굉장히 미끄러운 얼음판입니다
노란 생강나무꽃이 제일 먼저 반겨주고
분홍 진달래는 어쩌다 한 송이 수줍은 듯 얼굴 내밀어요
멋진 모습의 노송 쉼터도 있고
아직도 갈색 나뭇잎을 가득 달고 있는 참나무류, 단풍나무들
반짝이는 돌들이 많은 산인데
하얀 돌들도 많네요
한약 냄새가 나기도 하는 바위에서
간식 먹으며 힘을 보충합니다
깊은 웅덩이도 눈에 띄었는데요
6.25 때 태어나지도 않은 저보다 어린 직원이
"6.25 때 폭탄 떨어진 자리지!"하며 주고받는 부부의 말을
잠깐 믿기도 했지만 가능성은 있는 것이
그 웅덩이 안에서 자란 나무가 제법 컸더라고요
군인들의 참호도 있고요 철조망,전선...
이런 것들이 우리의 아픈 역사를 말없이 전하고 있습니다
헬리콥터장을 지나서야
"삐릿삐릿"노래하던 작은 새의 정체를 나뭇가지 위에서 발견
황토색 가슴털을 가진 작은새였어요
이젠 어렵지 않은 산길입니다
아름드리 나무 바로 옆에서 올라 연리지 될 듯
사랑을 고백했다가 미움 받아 옆으로 가지를 뻗으며
고사한 듯한 안타까운 나무
제법 높이 올라가 위에서 가지를 뻗은 소나무 한 그루
옹달샘 50m 팻말
질퍽한 나뭇잎길을 지나서
드디어 정상에 올랐습니다 12시30분
손바닥만한 땅을 차지하고 있는 양지꽃들이
노란 꽃송이 하나 아직 피우지 않았습니다
정상 좁은 바위에 올라
사방을 살펴 보고 다음 헬리콥터장을 지나
좀 아늑한 풀밭에 점심상을 펼쳤지요
서방님께서 캐다주신 냉이로 국을 끓여 오셨다는 박 부회장님
사모님께서 손님맞이로 참석을 못하신 성 부회장님
서울에서 오셨다는 분 등등
열명쯤 되는 분이 계셨는데 우리 직원 부부만 빼고
공교롭게도 모두 싱글만 모였네요
헬리콥터장의 부부팀들은 바람이 휭하니 불어도
추운 줄 모를 거라며...
따끈한 차가 정말 좋았어요 커피까지 마시고
바로 하산 시작입니다
하산길엔 철조망길을 서너 번 넘어야 했고요
가파른 내리막길 골이 굵은 참나무류 사이에
나무껍질 무늬가 너무 고운(뱀무늬) 나무 하나가
눈길을 사로잡는데 고욤나무 같다고 하시네요
솔바람이 땀을 식혀주고
특이하게 의자처럼 꺾여 자란 소나무가 잠깐 쉬다 가라고...
오후 햇살에 반짝거리는 가루들이 많아요
저는 복계산에 은광맥이 숨어 있는 건 아닐까 했는데요
유리의 원료인 규석이라는군요
아래로 내려오면서 하늘색 현호색이 꽃들을 피웠습니다
계곡에 내려와 발을 담갔는데
처음에는 몇십 초를 견딜 수 있었지만
두 번째는 얼어붙는 듯 해서 바로 바위 위로 올라오죠
물속에서도 반짝이는 돌입니다
저보다 늦게 내려오신 분이 생강나무꽃 가지를 한아름 따다
사모님께 헌화하시고
제게도 작은 가지를 꺾어 머리에 꽂아 주시며
"영화 동막골의 한 장면"이라시는군요
작은 행복을 나눠주시니 고맙습니다
계곡을 지나 좀 더 내려오니 현호색 무리 가운데
한 송이 꽃이 외로운데 바로 바람꽃이었어요
돌보지 않아 임꺽정 세트 초가 지붕엔
풀이 길게 자라 말랐고
내려와서야 안내판을 읽으며
매월당 김시습이 세조의 왕위 찬탈로
이곳에 은거했던 매월대 바위가 멋지다는데
그냥 지나쳤음을 알게된 나
가게에서 도토리묵,감자전,
겨울눈에 견딘 산나물 김치,얼음 동동 막걸리를 맛보고
버스에 올랐습니다
4시쯤 출발 한탄강도 지나고
감빡 잠도 들었다 깨고 머리에서 떨어진 생강나무꽃을 든 순간
아 진한 향기는 가끔씩 좋은 향을 풍겨준 것이 나였다고...
옆자리의 분에게도 향을 권하니
"아! 이거였군요!"
산수유는 향이 없다고 하시네요
등반할 때의 한약향도 바로 생강나무꽃 향이었나 봅니다
남들이 모두 꽃바람 나들이 갈 때
우리는 북쪽으로 가 꽃들은 많이 볼 수 없었지만
산을 마치 전세라도 낸 듯이
한번도 마주오는 사람을 만나지 않은
아주 특별한 산행이었답니다
7시 지나 무사히 아파트에 도착했어요
딸이 왜 이렇게 일찍 왔냐고 좋아합니다
2006.4.9.일.
첫댓글 피곤할텐데 벌써 올렸군요. 반가운 회원들과 같이한 산행을 연상하며 잘 보고 갑니다.
옆자리에 따라 다닌 것같은 착각이 듭니다. 복계산 풍경을 고스란히 전해 주시니 아주 좋군요! 편안하게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