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은심
형체의 배반 외 2편
이 은 심
정신이 형체를 입는 순간
계약기간이 정해진다
당시의 필요와 열도에 의해
만들어진 법복을 입고
존재의 신전, 회랑을 오가는 사람들
충족 이후 보존기간은 다 다르다
새로운 욕구가 생겨날 때 까지 현상유지
신행성의 침입이 없을 리 없다
강도와 도적이 끓는 숲에서
어서 나가고 싶은 강과 정체되고 싶은 호수의 줄다리기
마침내 형체는 허물어지고, 정신은 출구전략을 짜기에 바쁘다
무기물이든, 유기물이든,
시간과의 싸움에서 구성성분들은 치열하게 싸우다가
장렬하게 전사하는 전사와 운 좋게 살아남은 용사가 있다
존재의 변화, 발효냐, 부패냐
인간도덕을 넘어 생명체의 선과 악 너머
허물어지는 것들 안에서 새롭게 일어서는 것들이
무수한 깃발과 아우성과 환호를 부른다.
행복이 피어나다
네가 나를 만나고 나서 삶의 기쁨을 찾아 나도 참 좋아
우리의 영혼이 트와일라잇죤이 깃든 집으로 새로 이사했다니, 이처럼 좋을리야
멀리 내 영혼의 숨결을 뿜어내는
대추야자나무 그늘이 드리우는 녹색지붕 아래 서늘한 대리석 나선 계단 위에 아이들이 책을 읽으며, 곰 인형을 안고 뒹구는 모습이 눈에 선하구나
식후에 해가 남중하면 물속으로 풍덩 뛰어드는 아이들의 모습에
백발미인 할머니는 즐거워하겠지
부자동네로 이사 간 아들이 누리는 행복을 엿보는 즐거움
대리만족의 인생은
직접만족이 도대체 무엇인지 의문을 품어본단다.
등 도
말로 그려진 나의 우상은 바깥세상을 향한 등도이다
떠도는 너의 지성의 빛의 한 줄기를 잡고서
천공 바깥의 사정을 살필 때
시는 가상의 좌표
현대기술과학에 대한 도전이자 응전이다
꽃미남 외할아버지를 닮은 얼굴 하나 허공에서 떠돌아
눈의 각막을 뚫고 마음의 벽에 동그라미에 꽂힐 때
시인은 때를 기다린 성자가 된다
물질계와 정신계의 구별을 흔들어놓는 아스라한 안계는 지금 안개속이다
무수한 성자들이 발을 헛디딘 곳에서 한 발 뒤로 물러나
눈을 감아야 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