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부(馬夫)
최용현(수필가)
쉰 살 홀아비 마부(馬夫) 춘삼(김승호 扮)은 말 수레를 끌며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 그에게는 시집간 벙어리 맏딸 옥녀(조미령 扮), 고시공부를 하는 맏아들 수업(신영균 扮), 허영심 많은 작은딸 옥희(엄앵란 扮), 말썽꾸러기인 고등학생 작은아들 대업의 네 자녀가 있다.
춘삼은 마주댁(馬主宅)의 식모로 있는 서른일곱 살 과부 수원댁(황정순 扮)을 좋아하는데, 마주조합의 김서기(김희갑 扮)도 수원댁에게 눈독을 들이며 수시로 구루무(?) 살 돈을 주는 등 환심을 사려하고 있다. 그러나 수원댁은 돈으로 위세를 떠는 김서기보다 푸근하면서도 수수한 성품의 춘삼에게 더 관심을 보인다.
맏딸 옥녀가 여느 때처럼 남편에게 얻어맞고 오자, 춘삼은 ‘죽어도 그 집 귀신이 되라.’며 옥녀를 데리고 사위집을 찾아간다. 다른 여자와 놀아나고 있던 사위는 춘삼의 훈계를 듣다가 집을 나가버린다. 며칠 후에 또 맞고 온 옥녀는 어머니의 산소에 가서 한참 울다가 춘삼의 옷들을 곱게 다려놓고 한강에 투신한다. 춘삼은 옥녀의 시체를 끌어안고 오열한다.
맏아들 수업은 춘삼의 든든한 버팀목이면서 가장 큰 희망이지만 벌써 세 번이나 고시에 낙방했다. 작은딸 옥희는 마부의 딸이라는 사실을 숨기고 돈 많은 남자를 따라다니며 허황된 꿈을 꾸고 있다. 작은아들 대업은 학교에 가는 둥 마는 둥 사고만 치더니 핸드백을 날치기하다가 잡혀서 경찰의 손에 끌려오기도 한다.
마부들의 일수(日收)를 관리하는 마주댁의 사모님은 요즘 들어 수입이 줄어든 춘삼에게 ‘벌이가 이게 뭐야? 말을 팔아버리든지 해야지, 원!’ 하며 구박을 한다. 그 무렵, 마주(馬主)의 승용차가 춘삼의 말 수레를 들이받아 춘삼이 다리를 다치는 사고가 발생한다. 마주 차의 명백한 과실임에도 불구하고 마주는 사과를 하거나 치료비를 대주기는커녕 다친 춘삼이 일을 하지 못하게 되자 말을 팔겠다고 한다.
어느 날, 수업은 빌린 돈을 갚지 않으면 말을 끌고 가겠다고 아버지를 협박하는 김서기를 보게 된다. 수업은 아버지를 도와서 속히 빚을 갚아야겠다는 생각에 고시공부를 포기하겠다고 한다. 그러자 춘삼은 ‘어림없는 소리!’ 하면서 옛날 얘기를 들려준다.
“내가 13살 때, 네 할아버지를 따라 만주에 갔었어. 네 할아버지는 마차를 끌며 나를 학교에 보냈는데, 나는 돈을 벌겠다며 네 할아버지의 말을 듣지 않았어. 그때 네 할아버지는 내 따귀를 때리면서 혼을 내셨지만…. 그때 공부를 안 한 것이 이 애비는 평생 후회가 된다. 내가 끝까지 뒷바라지할 테니, 너는 열심히 공부해서 붙기만 해라.”
수업은 다시 마음을 다잡는다. 그 무렵부터 춘삼의 가족들 문제도 풀리기 시작한다. 마주가 춘삼이 몰던 말을 팔려고 하자, 수원댁이 친정의 도움으로 그 말을 사서 몰래 춘삼의 마구간에 넣어준다. 다리 부상에서 회복한 춘삼이 다시 일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또 옥희는 사기꾼에게 농락을 당하고 나서야 정신을 차리는데, 그녀를 좋아하는 김서기의 아들의 도움으로 제과공장에 취직하게 된다. 대업도 이제 마음을 잡았는지 책을 가까이 하기 시작한다.
합격자 발표일, 드디어 수업이 고시에 합격한다. 말 수레를 끌고 온 춘삼을 비롯하여 가족들이 모두 중앙청(지금의 광화문) 앞 발표장으로 모여든다. 수원댁을 발견한 수업이 ‘아주머니, 오늘부터 저희 어머니가 되어주세요.’ 하고 말하는 것을 춘삼이 흐뭇하게 바라본다. 온 가족이 눈 쌓인 중앙청 앞 가로수 길을 함께 걸어가면서 영화가 끝난다.
‘마부(馬夫)’는 ‘시집가는 날’(1955) ‘박서방’(1960) 등을 연출한 강대진 감독이 1961년에 만든 흑백영화로, 가난하면서도 꿋꿋하게 살았던 그 시대의 아버지들에게 바치는 헌정영화라고 할 수 있다. 제11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특별 은곰상을 수상하여 이후 한국영화의 세계무대 진출에 길잡이 역할을 하였다.
이 영화는 도시의 거리에 자동차와 말(馬)이 공존하던 1960년대 초,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밑바닥 노동자를 대변하는 한 홀아비의 가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면서, 돈 없고 백 없는 하층민에겐 자식을 공부시키는 것이 신분상승의 유일하면서도 합법적인 방법이고, 그 중에서 고시합격은 신분상승의 지름길이며 판타지임을 알려주고 있다.
아울러 그 시대 우리영화의 한 흐름이었던 서민적 리얼리즘을 추구하는 작품으로, 가족질서의 회복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벙어리 맏딸이 스스로 죽음을 택한 것은 가슴 아픈 일이지만, 다른 가족들은 모두 자신의 문제를 어떤 방식으로든 해결하면서 가족드라마의 보편적인 패턴에서 벗어나지 않고 해피엔드로 끝을 맺는다.
춘삼 역을 맡은 김승호(1917~1968)는 50~60년대 ‘로맨스 빠빠’(1960) 등 250여 편의 영화에서 넉넉한 몸매와 선량한 웃음으로 친근하면서도 서민적인 아버지상을 보여주었다. 그는 국내외 영화제에서 많은 상을 받은 천부적인 연기자였으나 52세에 타계했다. ‘시’(2010)에서 강노인 역으로 나오는 김희라가 그의 아들이다.
맏아들 신영균(1928~ )은 60년대에 사극과 현대물을 가리지 않고 선 굵은 연기를 한 카리스마 넘치는 배우로, 70년대에는 명보극장을 인수하는 등 사업가로 활동했으며, 90년대에는 SBS프로덕션 사장과 국회의원을 지냈다. 최근에 500억을 기부하면서 남은 재산도 사회에 환원할 것이라며 ‘내 관(棺)에 성경책 한권만 넣어 달라.’고 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수원댁 황정순(1925~2014)은 성우와 연극배우를 하다가 영화계에 입문하여 400여 편의 영화에서 인자하고 후덕한 어머니 상을 남긴 독보적인 배우였다. 맏딸 조미령(1929~ )은 이규환 감독의 ‘춘향전’(1955)에서 춘향 역을 맡는 등 단아하고 청순한 이미지로 50~60년대를 풍미하다가 1969년 재미교포와 재혼하여 하와이로 이민했다. 1973년생 배우 조미령은 동명이인이다.
중학교 시절인 60년대 말, 자전거를 타고 읍내로 통학하면서 짐을 싣고 5일장을 오가는 소달구지를 자주 보곤 했었다. 간혹, 길에서 가난한 초등학교 학생들에게 급식으로 줄 옥수수빵을 싣고 가는 소달구지를 만날 때도 있었는데, 그 소달구지를 따라가면 빵 냄새가 얼마나 고소하고 달콤하던지….
첫댓글 저도 초등학교때 본 영화입니다.처사님의 영화평을 읽으니 옛날생각이 새록 새록 납니다.저는 중학교 다닐때 신문배달을 해
초대권을 신문과 바꿔 많은 영화를 볼수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때 이런 영화를 보셨다니 대단하네요.
저는 초등학교 때는 시골 가설극장에서 영화를 봤는데...
어릴 때 신문배달을 하시면서 많은 영화를 보셨다니,
고생은 되셨겠지만 부럽기도 하군요.
@월산처사 고생보다도 용돈벌어 친구들과 노느라고 아주 즐거웠습니다.ㅎ
@음유시인쭌 용돈을 일찍 벌었네요.
그런 사람들이 크면 성공한다고 하던데...
@월산처사 성공은 못했어요.돈벌어 친구들과 놀고 연애하느라 다 썼어요.ㅎㅎㅎ
@음유시인쭌 그렇군요. 재미있는 분이시군요.ㅎㅎ
정말 고전중고전이죠
네 동감입니다
아까운 나이에 타계한 타고난 배우 김승호와 치과의사 출신의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자 신영균의
모습이 생생한 추억의 영화입니다. 감사합니다~~~
동감입니다.
흑백영화 속에 담겨진 그 시절의 서울의 거리도 정감이 넘칩니다.
아, 그리운 그 시절...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