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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오늘도 즐겁게-1 원문보기 글쓴이: 권준부
돌로미티 케이불 카 트래킹 -효도 관광 힐링 트래킹-
제21화 모차르트도시 잘츠부르크 2화
2025년 8월 6일
어제 시티투어를 타고 잘츠부르크의 전체적인 윤곽을 알았기 때문에
오늘은 우리가 걸어 다니면서 중점적으로 섬세하게 관광하는 일정으로 계획하였다
호텔에서 아침식사를 마치고 걸어서 시내 관장지 출발점인 성 안드레 성당앞까지 걸어와
사운드 오프 뮤직의 도레미송을 불렀든 미라벨 정원을 구경하였다
미라벨 정원은 1690년경 요한 폰 툰 대주교의 명령으로 바로크 양식의 기하학적인 배치를
기준으로 하여 만들어 졌으며 잘츠부르크 대성당과 호엔 잘츠부르크 성을 바라볼수 있는
웅장한 느낌을 함께 감상할수 있는 아름다운 정원이다
도레미 송을 불렀든 계단 위에서 그때의 즐거웠든 시간들을 되새겨 보며 인장샷도 하고
페가수스의 사자 분수에서 뛰어 놀든 영화의 한 장면처럼 포즈도 취해 보면서
영화 한장면의 순간을 기억하며 그곳에서 자신을 표현할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대리만족을 얻으면서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원래 미라벨 정원은 그리스 신화에나오는 신들과 요정들의 대리석 조각이 여러곳에
세원져 있었으며 이 정원에서 보는 호엔 잘츠부르크 성과 대성당을 바라다 보면
한편의 그림 같은 풍경이 나온다
페가수스 분수 앞에서 바라본 대성당과 호엔 잘츠부르크 성이 멀리서 보이며
계단 입구에서 본 대성당과 호엔 잘츠부르크 성이 아름답게 보이고 있었다
요한 그라프 툰 대주교 시대에 만든 난쟁이 정원은 흰색 대리석으로 만든 28개의
난쟁이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지금은 17개만 남아 있다고 한다
잘츠부르크의 잘차흐 강변에 지어진 미라벨 궁전(Schloss Mirabell) 은 1606년 당시 대주교였던
볼프 알테나우(Wolf Dietrich Raitenau)가 사랑하는 여인 살로메 알트(Salome Alt)를 위해
지어 알테나우 궁전으로 불렀으며 대주교는 교황청에 둘의 결혼을 허가해 달라고 청원을 하였으나
성직자에게 결혼은 금지사항으로 불허되고 1611년 바이에른 영주 막스밀리안 1세가 찰츠부르크를
점령하고 대주교를 감금하고 후임 마르쿠스 지티히 대주교가 궁전을 재건축하면서 아름다운 궁전
이라는 뜻의 미라벨 (Schloss Mirabell) 이란 이름을 붙여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궁전의 대주교 연회장이 었든 마블홀 (Marble Hall)로 이어지는 천사의 계단( Angel Staircase)은
오스트리아 조각가 라파엘 도너(Raphael Donner)의 작품으로 하얀 대리석으로 만든 수많은
수많은 푸티(putti) 조각으로 장식되어 있었으며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웨딩홀이라고
불리는 마블 홀이 나오는데
화려한 대리석으로 꾸며진 홀과 금박을 입힌 스투코( stucco )로 온통 뒤덮혀 만들어진
웅장한 홀은 모차르트가 6살때 이곳에서 대주교를 위해 연주 했으며 그의 두아들 볼프강과
난넬도 이 홀에서 연주했다고 한다
또한 세계 각곳에서 많은 신혼 부부가 이홀에서 세기의 결혼식하기 위하여 찾아오고
있다고 한다
현재는 미라벨 궁전에는 1947년부터 잘츠부르크 시청이 있으며 이 마블 홀은 결혼식,
컨퍼런스,시상식 외에도 미라벨 궁전 콘서트의 장소로도 많이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잘츠부르크는 로마제국의 국경도시로 잘츠부르크를 가로지르는 잘차흐(Salzach) 강은
다뉴브 강의 상류로, 로마는 라인강과 다뉴브 강을 유럽 국경으로 삼았다.
7세기말에 잘츠부르크 교구는 대교구로 인정되었고 이곳 대주교는 헝가리는 물론
중부유럽까지 관장하는 세력가로 부상했으며 소금광산에서 나오는 수입으로 도시는 번창하였고
잘츠부르크 대주교는 교황에 버금가는 권력을 누린 대주교의 역활은 거대 하였다고 한다
우린 어제도 잠시들렀든 잘츠부르크 대성당 지구쪽으로 걸어서 관광하였다
제일 먼저 모차르트 도시인 이곳에서 모차르트의 생가를 찾았다
상가 거리인 케트라이데 거리 9번지에 위치한 모차르트 생가의 눈부시게 빛나는 노란색 외관은
상징적이며 1880년 이후 국제 모차르테움 재단이 모차르트 박물관으로 관리하고 있다고 한다
빈의 화가 안톤 로마크의 가 1877년 그린 스피넷의 모차르트
모차르트 가족은 1747년 부터 1773년 까지 이곳에서 살았으며 1756년 모차르트는
잘츠부르크 왕립 음악가 레오폴드 모차르트의 7째 아들로 태여났다
형제들은 모두 일찍 죽고 누나인 마리아 안나만 살아 둘 다 음악가로 성공하였다고 한다
요세프 엥거트의 1826년 유화 "세인트세실리아"
5~6세의 어린 나이에 잘츠부르크, 뮌헨, 비엔나 궁정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여주어 아버지는 그를
데리고 광범위한 콘서트 투어를 떠나 마침내 1773년 모차르트를 잘츠부르크 대성당 궁정 오케스트라
지휘자로 선정되어 미사곡등 수많은 종교작품들을 만들었고 1781년 초에는 궁정 음악가로 써의
환멸을 느끼고 프리랜서 음악가로서 역사상 최초의 예술가가 되었으며 1782년에서 1791년 사이에만
17개의 피아노 협주곡을 작곡했다고 한다
빌헬름 러크가 만든 모차르트의 포르테 피아노 클라비 포트
35세의 나이로 사망한 모차르트는 피아노 바올린뿐아니라 모든 악기를 다룰수 있는
위대한 음악가이며 마술피리를 작곡한 클라비코드와 모차르트의 어린시절 바이올린과
초상화 문서 음악 초본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우린 모차르트 생가를 나와 대성당 지구인 레지던트 광장으로 이동하였다
대성당지구는 7세기말부터 잘츠부르크 대주교들의 정치적, 종교적 권력의 역사적 중심지였으며
역대 대주교들의 거처였든 잘츠부르크 레지던트(Salzburg Residente)는 공식행사의 장소로
사용되었으며
1120년경 콘라트 대주교시절 이탈리아 건축가 빈첸초 스카모치가 설계한 르네상스식 건축물은
고전주의까지 다양한 예술을 표현하고 왕의 위험을 표현하기 위하여서는 거대한 축제 문화가
계속되어야 하기 때문에 궁정 악사들은 새로운 음악을 계속해서 작곡하여야 하는 노예처럼
취급하였든 것 같았다
그래서 모차르트는 25세때 궁정악사를 그만두고 빈으로 가 자유로운 음악활동을 하였다고 한다
주교 접견실 대기실 (Ante Camera)에는 의자를 없애고 서서 대주교를 기다리면서 천정의
알랙산들 대왕의 일대기를 보면서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라는 의미가 담겨져 있다고 한다
컨퍼런스 룸(Conference Room)은 궁정의 정치적 중심지였으며 왕의 위엄을 표현하는
축제문화가 열리는 공연장이 되기도 하였다 모차르트가 잘츠부르크 레지던트 궁정의
이곳에서 대주교를 위하여 첫 콘서트를 열었고 바이올린 협주곡 A장조(KV 219)를
비롯한 그의 많은 작품들이 이곳에서 초연되었습니다.
우린 레지던트 광장으로 나와 인간 두상의 4점이 전시된 작품을 보면서 건너편에 있는
잘츠 부르크 박물관으로 향했다 어제 점심을 먹었든 Muse 식당 바로 뒤에 있었다
박물관은 2027년도 까지 내부 수리를 위하여 휴관한다는 팻말이 붙어 있어
우린 맞은편의 잘츠부르크 대성당으로 갔다
대성당 이북에는 세개의 문이 잇는데 입구 철문에는 774 1628 1959의 금박으로 숫자가 세겨 있었다
774년은 아일랜드에서온 성 버질 (St. Virgil of Salzburg) 대주교가 처음으로 성당을 봉헌한 해이며
1628년은 1598년대화재로 인하여 파리스 로드론(St.Paris Rodron) 대주교가 재건한 해이며
1959년은 2차대전때 공습으로 파괴된 성당을 안드레아 (St. Andrea) 대주교가 재건한 해를
가르킨다고 한다
8세기 건립된 성당은 17세기 이태리 건축가 산티노 솔라리(Santino Solari)에 의해
바로크 모습인 현재의 모습으로 재건되었으며 외부는 어두운 회색 돌로 된 본체와
밝은 운터스베르크 대리석으로 장식된 화려하고 엄숙하며 높이 81미터의 쌍둥이
종탑은 잘츠부르크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모습이었다
입구 정면의 파사드에는 교황 베드로와 바울 조각상그리고 소금 통을 들고 있는
잘츠부르크의 수호성인인 성 루퍼트와 교회 모형을 들고 있는 성 버질의 거대한
조각상이 세워져 있었다
내부는 흰색과 세피아 톤의 밝고 화사한 색상으로 마감되어 있았고
바로크 양식의 조각품 장식과 프레스코화로 채워져 있었다
천정의 성화와 조각품들은 르네상스의 절정기를 연상하듯 바로크 식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약 4000개가 넘는파이프로 구셩된 파이프 오르간은 세계에서 가장 큰 파이프 오르간 중
하나이며 모차르트가 이곳에서 3년간 1779년부터 오르가니스트로 활약하며
모차르트의 음악이 이곳에서 초연되기도 했다고 한다
모차르트가 태여나서 세례를 받은 성당이기도 하고 성수가 담긴 세례당 철제 성수함이
섬세하게 조각되어 있는 것을 보면 이 성당의 모든 것이 하나의 예술품으로 인정 받고
있은 것 같았다
잘츠부르크 대성당은 종교적인 공간뿐만 아니라 바로크 건축의 정수이며 모차르트의 숨결이
깃든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명소이었다
또한 돔광장은 세계적인 음악 축제인 잘츠부르크 페스티발이 개최되는 중심 공연장되며
도시의 문화적 중심지 역활을 하고 있다고 한다
돔광장 옆에는 모차르트 광장이 있었다
우린 돔광장과 모차르트 광장 사이에 있는 뮤즈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가성비가 좋아 어제도 이곳에서 먹었지만 오늘은 더 맛있는 것 같았다
이곳 식당의 주방으로을찾아가 가성비 좋은 음식을 만들어 주어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주반장과 기념사진도 찍고 즐겁게 시간을 보내다
점심을 먹고 상가거리인 게트라이데가세(Getreidegasse) 근처에 있는 파파게노 광장
(Papagenoplatz)으로 가니 여기도 모차르트의 기념물이 설치되어 있엇다
파파게노 분수(Papagenobrunnen)는 1960년 조각가 요제프 토락(Josef Thorak)의
작품으로 설치되어 있었다
이 분수의 중심에는 1791년 초연된 모차르트의 오페라 "마술피리(Die Zauberflöte)" 속에
등장 인물인 파파게노(Papageno)"의 청동상이 세워져 있었다
그는 유쾌하고 활달적인 인물로 새의 깃털로 장식된 옷을 입고 새장을 들고 있는 모습이 었으며
잘츠부르크 시민들의 유머 감각, 음악적 전통, 삶의 기쁨을 상징하고 있다고 한다
이 동상은 1960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Salzburger Festspiele)의 40주년에 모차르트를
기념하기 위하여 세워졌다고 한다 그만큼 잘츠부르크는 모차르트의 도시였다
우린 귀국 선물도 사고 거리의 아름다운 사진도 찍기위하여 게트라이데가세(Getreidegasse)
거리로 갔다
좁은 골목길 같은 거리의 모든 가게는 철제 장식으로 된 독특하고 예술적인 간판을
사용하고 있어 거리를 걷는 즐거움을 더 하고 있었다
위버 자물쇠 철공소는 케트라이데가세 28번지에서 1415년부터 자물쇠 제작을 시작으로
위버가(Wieber)에서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으며 이 거리의 간판은 물론 길드 간판, 대문, 열쇠,
자물쇠 등 어떤 종류의 자물쇠든 가족 사업으로 제작하여 왓다고 한다
우린 모차르트 커피솦에 올라가서 커피 한잔을 마시며 시간을 보내다 쇼핑도 하고
걸어서 세마장 쪽으로 갔다 호프 마르슈탈슈벰메 (Hofmarstallschwemme)는
1696년 요한 에른스트 툰 대주교의 명에 의하여 왕실 마구간 확장의 일환으로
건설되었으며
뒤에있는말그림은 1732년 프란츠 안톤 에브너(Franz Anton Ebner)의 프레스코화이며
앞에 있는 조각품은 알렉산더 대왕과 그의 말 부케팔루스를 제압하는 장면으로 길들여지지
않은 동물이라도 인도하는 손으로 다스리고 마땅한 복종을 요구하는 수호성인으로서의
대주교를 암시한다고 한다
우린 내일 오후 그레이트 페스티발 하우스(Großen Festspielhaus)의 오페라 공연을
관람하기로 되어 있어 미리 그곳을 사전 답사하였다
건축가 클레멘스 홀츠마이스터(Clemens Holzmeister)의 작품으로 1960년 7월26일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이 지휘하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 장미 의 기사' 를 개관하였다고 한다
건물 입구의 위 벽에는 베네딕토회 수도사 토마스 미셸스의"Sacra camenae domus
concitis carmine patet quo nos attonitos numen ad auras ferat."
(뮤즈의 성스러운 집은 예술 애호가들에게 열려 있습니다. 신의 힘이 우리를 불타오르게 하소서.)
라고 새겨저 있엇다 사진의 1~2 부분에 "AD AURAS FERAT"이런 글자를 볼수 있었다
우린 페스티발 하우스의 맞은편에 있는 잘츠부르크 현대 미술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잘츠부르크 현대 미술관은 1976년옛 가톨릭 신학교인 루페르티움 콜레기움을 개조하여
미술상 프리드리히 벨츠(Friedrich Welz)의 기부로 "현대갤러리 및 그래픽아트컬랙션"이
생기면서 루퍼타룸(rupertinum)이라는 이름으로 설립되었다고 한다
2층에는 일상의 단면(Slice Of Life)란이름의 개인 화가들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었다
1913년 제작된 오스트리아 초상화가 코코슈카 (Oskar Kokoschka 1886~1980)의
"소녀의 초상"은 영혼이 우울하게 보이는 소녀상은 작가 자신의 심리 상태를 억누려는
억제된 모습으로 표현하였다고 한다
여성 분리주의자 인 플로렌티나 파코스타 ( Florentina Pakosta 1933~)의 1978년
작품으로 "지배자"라는 이름은 초상화는 엄숙한 얼굴에서 상상를 초월한 모든 삶의 힘과
권력의 어둠움이 깃들여 있는 모습이 상상되는 그림이라고 한다
에른스트 키르히너(Ernst Kirchner 1880~1938)는독일의 표현주의 화가로써 1차대전에
참전하여 정신이상으로 1916년 입원하여 치료 받았으며 그후 그의 노력으로
정신력을 극복하여 전쟁의 악몽과 전선의 생각을 긍정적으로 표현한 작가로 그의 와병
중 타우누스언덕에서 본 풍경을 화폭에 담았다고 한다
우린 현대미술관을 나와 오늘 일정을 마무리 하기 위하여 걸어서 호텔까지 가기로 하구시가ㅣㅈ와
구 시가지와 신시가지를 이어주는 슈타츠 브뤼케(Staats Brucke)를 건너가니 20세기를
이끈 세계적인 음악가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1908–1989) 의 생가를 발견하였다
폰 카라얀은 1908년 잘츠부르크에서 그리스계의 귀족출신의 가문에 태여난 음악 신동으로
1926년엔 잘츠부르크의 지휘자로 발탁되고 10년후엔 아헨에서 독일 최연소 음악 감독을
맡았으며 모차르트의 마술피리를 지휘하며 베를린 슈타츠카펠레를 지휘하여 수많은
음반을 내어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고 한다
그러나 나치시대엔 괴멜스가 "신의 축복을 받은 음악가"로 극찬할 정도로 나치당원이
되었으며 대전이 끝난 후 나치당의 협력 때문에 공연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세계적인 음악가의 자질은 감출 수 없어 1945년 해금이 풀리고 나서 더욱 활발한
활동을 하였다고 한다
그는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종신 수석지휘자 였으며 빈 국립 오페라의 예술감독
런던 필 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수석지휘자를 역임한 20세기의 최대음악 거장이라거 한다
그는 "우리의 관심을 사로잡는 것은 소리의 아름다움과 완벽에서 행복을 느끼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지휘한다고 한다
우린 이것으로 오늘읠 일정을 모두 소화하고 걸어서 호텔로 돌아와
오늘도 즐겁게 하루를 마무리 하였다
2025년 8월 6일 오늘의 운동량 15,687보 이동거리 10.2KM 이동시간 2시간 44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