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천문학 58호에
프로필
-율목 문학상 수상
- 과천문인협회 이사
- 과천시의회 의장 역임 -과천시 지속가능발전위원회 공동대표역임
-시집 작은불빚하나 - 시와수필집 나의사랑과천
시
조우遭遇
청계산 등산로에 앉아 있으니
거친 세상이 가만히 다가와
내 어깨에 머릴 기댄다
산 넘어 넘어온 바람도
힘든 시간을 애써 견디어왔는지
발밑이 엉성하고 거칠기만 한데
서쪽에 솟은 빛이 봉우리에 이어져
그림자가 길어진 오후,
까무룩한 한 점에도 마음을 기대어 오는
그의 큰 무게가 벅차
웅숭해진 내 심장이
깊은 골짜기에서 쟁강거린다
권세가 추회막급할 때
엉킨 사념을 다독이며
조용히 잠드는 법을 산은 알려 준다
바이러스
이홍천
내 몸 안에 무시무시한 놈이 살고 있다
몸 아닌 몸이 되어 같이 살게 된 침입자
많은 시간 함께 같이 살아온 ‘죽음’이라는
또 다른 존재는 좀비처럼 생명을 위협 한다
탯줄을 자르던 신생의 순간부터 몸 속에 들어와
형체도 없이 소리도 없이 목숨을 노려왔을지도 모른다
내가 성장할수록 그도 검은 세포를 증식하고 있었을까
살다가, 고공의 절벽에서 나를 놓아버리고 싶은 순간
혹은 바닥의 바닥에서 폭풍의 해일마저 기다림일 때,
해수면 위로 정체를 드러냈다가 사라지는 표정 없는 얼굴
어제는 심장하나 가져가고 오늘은 폐하나 쓸고 갔다
독식하고 있는 놈의 정체가 점점 부풀고 있다
끝내 패자의 목숨은 소환 될 것이지만,
남의 영토에서 뿌리를 내린 이인자의 암투가 살벌하다
놈이 숨겨진 광기를 드러낼 때, 심하게 흔들리던 눈동자들
하늘엔 무표정한 별들이 어둠을 갉아 세상에 뿌리고,
결국 나를 괴롭히던 그 놈을 죽였다 내가 죽었으므로,
최강의 군림을 위해 나의 몸을 내놓고
죽음을 죽인 마지막 승리자
죽은 놈은 유골함에 안치되었다
수필
권력의 법칙
이홍천
옛 속담에 하늘을 쓰고 도리질 한다는 속담이 있다 세상모르고 권력을 휘두르는 사람들에게 쓴 소리를 하는 것인데 요즘 뉴스를 보면 새삼 그 말이 떠오르곤 한다.
현재 '코로나19'가 수십만 명에 달하는 사람을 감염시키는 유례없는 위기를 만들어 내었고 결국 국제사회 대부분이 전염병에 무방비 상태라는 민낯이 드러났다.
이렇듯 치명률이 많은 걸 보면 국가마다 서로의 권력과 나라의 경제만을 고집하다가 애꿎은 시민들만 낭패를 보게 된 것이 아닌지 하는 의문이 든다. 애초에 처음 바이러스가 창궐했던 나라도 그렇고 유럽과 미국 등 선진국들의 행태를 따져보면 더욱 그렇다. 각 나라마다 보건 체계만 무방비였던게 아니라, 돈이 있고 없는 것에 따라 의료 접근성에서 차이가 났고 서로 정책적인 눈치만 보거나 자신의 정치적 안위만을 생각하다가 전염병에 대한 대처는 늦어지고 결국 면역력이 약한 노약자들에게 치명적인 위협을 안겨주게 된 것이다.
정부에서는 바이러스 확산을 피해 자가격리와 외출금지를 주문했으나 이 역시 빈부격차를 드러내는 도구가 되었다. 스스로를 격리할 집이 있는지, 재택근무가 가능한 직종인지, 며칠간 휴직하고도 생계를 이을 수 있는지에 따라 각 나라마다 치료의 격차가 생겨났다.
옆 나라 일본 정부에서는 도쿄 올림픽 개최를 위해 코로나19 확산 상황을 대내외로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는 지적에 직면했고 올림픽 개최 연기를 결정한 이후에 갑자기 검사 수와 확진자 수가 급증했다는 책망을 들었다. 생명의 존엄성보다도 나라의 경제가 선차적이라니 인류의 존엄성이 돈과 권력의 후위에 존재한다는 사실이 서글프다.
인류는 생물체가 살고 있는 이 지구를 정복하고, 우주 공간, 공전의 궤도면을 욕망으로 모두 채우며 살아가지만 우리가 사는 이 땅을 무시한 탓으로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또 다른 생물체들의 공격을 받게 되는 것이다.
봄비에 얼음 녹듯 바이러스는 우리 몸 안에 스며들었고, 결국 많은 사람들이 바이러스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은 코로나 바이러스...
또한 아프리카나 인구밀집 국가는 지구 환경에 결코 바람직한 모습이 아니다. 위생적이지 못한 환경도 오늘날처럼 예상치 못한 파국을 초래할 수 있다. 세계적으로 바이러스가 해마다 주기적으로 유행을 하는 것은 이러한 도시화로 인한 인구 과밀집 때문이다. 바이러스처럼 스스로 이동할 수 없는 생명체는 전염에 의해 자신을 복제하며 개체 수를 퍼트린다. 좁은 지역에서 밀접된 생활을 하는 인간은 바이러스에게 최고의 숙주가 되기 때문이다. 한 공간에서 다닥다닥 붙어서 근무 하는 사무실, 수백, 수천 명이 모여서 함께 예배를 하는 종교 시설들 그리고 스포츠 경기장 등 이런 환경은 바이러스가 활개 치기에 너무나 좋은 환경들일 것이다.
자연환경을 덜 훼손하고 함께 공존하며 사는 것 만이 여유로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길일 뿐이다. 인류에게 직격탄을 날린 코로나 바이러스는 인간의 오만과 무지를 일깨워 주고 인류의 무책임과 무지에 대한 경고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유형의 바이러스는 해마다 태풍이 발생하듯 앞으로도 주기적으로 올 거라고 한다. 현재와 같은 인간의 거주 방식, 생활 방식, 경제 활동, 사회적 활동 방식을 바꾸지 않은 한 새로운 바이러스의 공격을 막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제는 우리가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생각해야 할 시점이다. 그 방향은 생산성의 극대화가 아닌, 경쟁의 승자가 되는 것이 아닌, 지구 자원의 절약, 인간을 넘어서 지구 환경과의 공생을 바탕에 깔아야 한다. 그 어떤 종교적 지도자도 정치인도 정신적 구루를 해결하지 못한 깨달음을 코로나19가 하고 있다. 이제는 이 상황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앞만 보고 달려온 길을 되돌아볼 때다
권력이 모든 열정가운데 가장 강력한 것이지만 겸손이 없는 권력은 이처럼 위험한 것이다. 바이러스와 인간, 주종관계의 교환과 정치, 모든 깨달음의 모순에서 인류는 모범해법을 제시해야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