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여우굴 맛을 보았느냐
지난 4월 서울 산삼회 친구들이 마산에 온 날 5월 6일에 상경하여 북한산을 한번 가보고 싶다는 말을 술기운에 뱉았는데, 이 말을 들은 어원해와 조태호 등이 기억하여 상경 여부를 확인하는 바람에 빼도 박도 못하고 5월 6일 오후 3시 30분 마산발 서울행 KTX에 몸을 실음. 지난해 마산 33산우회의 북한산 산행에 몸 컨디션 난조로 참가하지 못해 아쉬워하다가 이번에 연휴를 이용해 혼자서라도 북한산을 가보고 싶었는데 잘되었다고 억지로 합리화함. 원래 전국의 유명산을 한번은 꼭 올라가 봐야 한다는 야심찬(?) 계획을 실행하는 일이기도 함.
출발 며칠 전 서울지역에 등산예정일인 5월7일(토요일) 비가 온다는 예보 때문에 잠시 흔들리기도 했지만, 당초 계획대로 결행하게 됨. 마침 열차 안에서 얼마 전까지 내가 맡았던 경남대 행정대학원 후임 원장을 만나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덧 서울역에 도착함.
어원해 친구가 기다리다 마치 납치하듯 데려간 곳이 자기 친구가 운영한다는 이수역 근처의 고기집. 근데 그곳에 이미 태규와 태호가 기다리고 있었다. 산행의 두 고수를 모셔다 놓은 것이 주눅들게 한데다, 거기에는 송인철이라는 전혀 뜻밖의 친구가 나와 있었다. 이 친구는 40년이 지나서 만나게 되었는데 태호와 요즘 같이 지내다가 내가 온다고 하니 보고 싶어 나왔다고 하는데 무척이나 반가왔다. 나하고는 마중서 같이 야구도 했지만, 초등학교 때는 도민체전에 초등학교 야구 마산 대표팀의 배터리로 호흡을 맞추었던 친구인데, 상고를 나와 홍익대에서 건축을 전공해서 해외에 많이 근무하다가 기술사가 되어 지금을 국내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업가였다. 결국 그 유명한 장수막걸리로 점잖게 시작하다가 원해가 혼자 소주를 마시는 것 거들다가 결국 소맥 화합주로 갈 데까지 가버림. 다음날 산행은 잊어버리고 오랜 만에 만난 친구들과 필름이 끊길 정도로 마시게 되었다. 다음날 눈 떤 곳은 일산의 원해집. 결국 거구인 원해가 대취한 나를 원래 계획대로 자기집으로의 데려가 자게했던 것이다. 그날 밤에 식당에서 으레 술마시면 하는 버릇대로 생각나는 서울에 있는 친구들에게 모조리 전화해서 통화하고, 윤규와 정열이는 현장까지 왔다고 하는데 기억이 없슴.
다음날 평소보다 늦게 잠이 깨어 비몽사몽간에 사우나 까지 하고, 다시 라면 한그릇 얻어 먹고는 출발시간까지 시간이 남아 부족한 잠으로 다시 운기 조식함.
지하철과 버스를 번갈아 타 도착한 곳이 구파발 밤골계속 입구의 만남의 장소. 거기서 먼저 나와 있던 태호와 상연이를 만나고, 잠시후 낙진일 만나서 산행을 시작함. 백운대는 컨디션 봐가며 가보자고 해 술이 아직 덜 깬 상태에서 모든 걸 태호에게 맡기고 엄살도 떨면서 출발함(11시 15분) 이때까지만 해도 태호가 나를 빡시게 태울 것으로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어 계획적으로 엄살도 부림. 밤골계곡을 출발하여 처음에는 평지여서 그럭저럭 따라감.
나는 평소 혼자서 주로 산행을 해 왔는데, 이유는 다른 사람보다 속도가 느리기 때문. 엄살을 떨었더니 낙진이와 상연이가 내 뒤에서 받쳐주고 초반에는 그럭저럭 진행함. 물이 말라버린 옥녀탕과 태규탕을 지나면서 거기에 얽힌 얘기도 전해 들어면서 30분 경과했을 시, 태호가 먼저 북한산 초입에 전날 과음의 산물인 천연 거름을 안기고 와서는 출발장소에 윗도리 자킷을 벗어 놓고 온 것을 늦게야 알고 찾으러 가려다가 포기하고 계속 산행함.
사기막 능선을 타고 호랑이 등바위에 오르면서 나는 서서히 체력이 떨어지기 시작함. 친구들이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받쳐주는 덕분에 겨우 호랑이 ‘등바위 전망대’에 올랐더니, 거기서 멀리 보이는 백운대와 인수봉의 모습은 가히 환상적. 이를 배경으로 인증샷을 찍고, 점심을 먹기 위해 왼쪽으로 내려가 너른 바위 위에 자리 잡음. 거기서 우리보다 나이가 좀 더 많은 듯한 여자 두 분을 만나, 북한산 등산로에 대해 진반 농반으로 여러 가지를 물어 보기도 했는데, 포스가 예사롭지 않다는게 태호 사부의 말. 그래서 이곳을 나중에 ‘누부야 바위’로 명명하기로 함. 나의 초반 저조한 체력에 친구들이 걱정하여 백운대 오르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겠나하는 것이 대체적인 분위기. 당사자인 나는 0.1톤의 거구인 원해 정도는 따라가지 않겠느냐, 몸이 불편한 상연대감도 저리 잘 가는데 만감이 교차함. 어찌됐던 갈데까지 가보자는 심산으로 맛있게 점심을 먹고 바람골 정상까지 가보기로 함. 멀리서 보니 장난이 아니었는데 가보니 서서히 술도 깨고 체력도 회복되기 시작함. ‘토끼굴’(원해가 새로 지음)을 지나 ‘산삼샘사거리’에서 태호는 빈 물병을 수거하여 혼자 산수를 받아와 곧 합류하여 바람골을 따라 오르기 사작함. 여기서 원해가 급히 볼일을 보고 싶다하여 혼자 처져 일을 보고 우리는 바람골 바람이 밑에서 위로 불기에 악취를 피할 요량으로 급히 올라감. 바람골 정상이 멜론식당이라는데 알 사람은 알겠지만, 여기는 상연이와 관련이 있는 듯함. 여기서 이제 다음 행선지를 결정해야 하는데, 여우굴로 해서 백운재로 오르는 좀(?) 힘든 코스하고 대충 옆으로 돌아서 하산하는 방법이 있는듯 한데, 원해와 낙진이도 내 핑계대고 대충 내려가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의견을 내놓고 눈치를 보고 있는데, 눈치 없는 나는 백운대 정상을 밟아보고 싶다는 일념에 태호의 달콤한 유혹에 빠져 ‘여우굴’ 코스를 멋도 모르고 가게 됨.
‘새마을식당’과 ‘시발식당’(욕이 아니고, 시발택시 기사와 관련이 있는 장소)에 얽힌 이야기를 들으며 이곳들을 지나 보기에도 난코스로 서서히 접어듦. 어떤 곳에서는 영화에서나 보던 밧줄 없이 클라이밍도 대장 태호의 안내대로 왼발, 오른발, 왼속, 오른 손이 짚어야 할 위치까지 지도받으면서 평생 처음으로 위험한 산행을 함. ‘여유굴’이라 불리는 곳에서는 개구리 자세로 무릎을 땅에 대지 않고 기어서 빠져 나가야 했슴. 내가 보기에 이건 사람이 다니는 길이 아니고, 네발 달린 짐승이나 다니는 길이 분명한데 왜 이리 가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되었슴.(다른 사람들도 간혹 보이는 것 보면 그렇지도 않은 것 같기도 하고) 난 평소에 등산을 건강 괸리를 목표로 하기 때문에 일단 위험한 곳은 가지 않는 것을 철칙으로 삼아 왔는데 이번에는 그런 것 생각할 겨를도 없이 살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으로 난관을 헤쳐나감. 내 뿐만 아니라 상연대감도 원해도 낙진이도 폼은 뒷전이고 어렵게 여우굴과 암벽 타기에 가까스로 성공하여 ‘말바위 전망대’를 거쳐 마침내 태극기 휘날리는 백운대 정상에 도착함. 근데 날씨가 갑자기 흐려지기 시작하여 백운대 정상에서의 조망은 시계제로 상태. 박운대 정상 바위를 껴안고 인증샷을 찍고 잡시 숨은 고른 후 우이동으로 하산하기 시작함. 위문을 거쳐 ‘백운산장’에서 나도 참았던 뒤처리를 정말 어렵게 하고(좌변기가 아니어서 이날 산행중 가장 어렵고 힘든 자세로 일을 봄) 인수산장, ‘하루재 고개’를 뒤로 하고 도선사 주차장에 도착하여 버스를 타고 ‘소문난 족발집’으로 가볍게 내려가려 했으나 우리 바로 앞에서 40분만에 오는 버스가 끊어지는 상황이 발생. 할 수 없이 다시 아스팔트 길을 20분 남짓 더 걸어서 식사 장소까지 이동하게 됨.(사실 난 평소에 매일 이런 길을 1시간 이상 걸으니 큰 문제될 것이 없었고 지구력은 괜찮은 편이라서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슴) 목표지점인 ‘소문난 족발집’에 도착해 보니 저녁 6시 30분, 오늘 총 산행시간은 7시간 15분. 힘든 산행이었지만, 좋은 벗들과 함께한 산행이어서 뿌듯함만 남는 산행이었습. 족발에, 파전에 장수 막걸리 7병을 간단히 해치우면서 즐겁게 오늘의 산행을 회고하고 복기함. 8시 50분에 종로 5가의 피자집에서 윤규와 정열이를 만나기 위해 족발집을 나서면서 우리의 산행이야기는 여기서 끝을 맺는다.
후기: 비록 힘들기는 했지만, 마산 촌놈에게 북한산의 아름다운 조망을 보여주려 했던 태호의 깊은 배려에 감사한다. 사실 나는 마산을 출발하기전 북한산 정상인 백운대를 가장 쉽고 빠르게 오르는 방법을 인터넷에서 찾아보았는데, 거기에는 우이동을 해서 오르는 방법이 안내되어 있었다. 비로 우리가 하산했던 코스였는데, 만약 그렇게 했다면 참 재미없는 산행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호랑이 등바위’에서 바라본 삼각산의 모습은 가히 절경이었다. 아무턴 한국의 명산 중 하나인 북한산(개인 생각으로는 삼각산으로 개칭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의 정상에 올라 좋은 기를 받고 온 것도 기쁜 일이지만, 무엇보다도 상연, 낙진, 원해, 태호, 태규, 윤규, 정열, 인철이라는 좋은 친구들을 만났다는 게 나에게는 더 큰 기쁨이었고 행복이었다. 가을의 북한산도, 눈덮힌 북한산도 보러 다시 와야겠다.
- 함께 산행한 6사람을 대표해서 마산에서 청호가 씀 -
첫댓글 디기수고 했소
사진도 몇장 올리주소
서울있는 친구들도 안간 사람 있을 낀데.....
자꾸 외지인들한테 서울명산 구경시켜주면 헌산되어 우리산악회 갈데없어진다.앞으로는 야매로 입산시키지말고 산악회 이사회결의 받고 입장료도 받고 출입시키라오!등산로 입구에 음주측정기도 설치하고 우리산악회를 지주회사로하고 지역소산악회를 발족시켜야할듯함.어지럽다,어디로 가야할지,네비게이션 장착하고 등산해야겠다.아무튼 부럽소이다,고참도 못가본곳을 등정하다니......축하합니다.
원아재요,
조만간에 이대장님과 상의해서 바로 함 모시도록 하께요.
그런데, 별거 아니니 너무 큰 기대는 하지 마이소.
아재요, 장시간 산행의 수고 보다도 산행기를 오리느라고 더 수고 많으시구마.
산행에 재미있고 즐거웠다고 하니 친구들 또한 그렇게 생각하고 있소.
자주 올라오시면 더욱 더 큰 기쁨이고, 다음에는 서울 동기 산삼회 모임에 꼭 참석하시어,
자리를 빛내 주시면 감사하겠슴다.
다음 만날때도 계속 더욱 건강한 모습 기대됩니다.
참고로, 오늘 오후에 가 봤더니 자켓은 못 찾았습니다.
10년정도 입은거라 바꿀때도 된거니 개념치 마시기 바랍니다.
秋天아재, 전날 과음에도 불구하고 백운대를 끝내 등정한 그대의 감투정신에 박수를 보내요,
게다가 장거리 여행, 주독과 빡센 산행에 여독이 풀리지 않았을 텐데 요로코롬 정밀한 산행후기
까지 올리는 정성에 감복했소. 개인 사정으로 아재와 함께하지 못해 아쉽고 미안하요. 서울 칭구
들을 대표해서 秋天과 시간을 함께한 톤, 레이크,푸르른날, 사느로, 목동아재 들 수고
마이 했소 ^)^*
참!!! 재미있어네여~~ 전날 과음에도 대단하삼.....산행보다 맞이하고 안아주고 함께하여 더욱 빛나는것 같아 보기가 좋습니다
아재 수고많았소. 상당히 내공이 쌓여야 도전하는 코스인데 대단하요. 그라고 축하하요.
사실 나도 그 산행에 동참한다캤는데 내가 착각하여 놀토인줄 알았는데 일토더라고...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어쩔 수 없었소.
아뭏든 대단한 체력과 빛나는 투지가 노가다 말마따나 능히 감투상 감이요. 그다가 후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