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마 병장과 맹호5호 작전, 돌격의 최선봉, 항상 소대 선두, 살아있는 신화 창조 (최용호 베트남 정글의 영웅들 12)
이 내용은 다음의 창에서 유튜브 영상으로 시청하실 수 있습니다.
https://youtu.be/lpspBx1jo8o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은 지난 시간까지 1966년 3월 베트남 고보이 평야 맹호5호 작전 띤빈마을 전투에서 활약한 제5중대장 박동원 대위,
전사한 제3소대장 고 정정능 중위와 제10중대의 고 김무석 대위에 대해 말씀드렸는데요
제가 제5중대장 박동원 대위에 대해 말씀드린 후
그분을 잘 알고 계시는 많은 분께서 저에게 연락을 해오셨습니다.
그분들께서 제가 말씀드린 내용 중 사실과 다른 부분 한 가지를 지적해주셨는데요
저는 박동원 중대장이 육군준장으로 예편하셨다고 말씀드렸는데,
투스타 즉 육군소장으로 예편하셨다고 합니다. 사실로 확인하였기에 바로잡습니다.
혼동을 초래해 죄송합니다.
오늘은 1966년 3월 맹호5호 작전 띤빈마을 전투에서 수훈을 세운 김광마 병장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전장에서 모두가 공포에 빠져있거나 위기에 처해있을 때 분연히 일어나 공격을 선도함으로써 단숨에 전장의 분위기를 바꿔놓는 영웅이 있습니다.
김광마 병장이 바로 그런 영웅이었습니다.
맹호부대, 즉 수도사단 제1연대 5중대 1소대 소총수로 참전한 그는 소대가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앞장서 공격을 이끌었습니다.
그의 용맹을 높이 평가한 중대장은 그를 제1분대장으로 임명했지만, 너무 앞장서지 말도록 제지하는 형편이었습니다.
1966년 3월 24일 새벽에 시작된 맹호5호 작전에서도 그의 활약은 빛을 발휘했습니다.
1소대가 중대 서측을 수색하고 있을 때 ‘띤빈마을’을 공격하라는 중대장의 긴급명령이 내려왔습니다.
명령을 접수한 소대는 단숨에 2Km의 늪지대를 돌파한 후 중대장 좌측의 논두렁에 전개했습니다.
그때 베트콩의 박격포탄이 작렬하면서 근접전투가 시작됐습니다.
그 틈을 이용해 소대장 박문규 소위가 1분대와 함께 공격을 시작해 그들의 경계분초를 점령하고 베트콩 8명을 사살했습니다.
그러나 베트콩이 설치해 둔 철조망에 막혀 공격이 저지되면서 최동철 병장이 전사하고 2명이 부상했습니다.
분대원 3명이 한꺼번에 쓰러지는 것을 본 분대장 김광마 병장은 적개심을 가누지 못하고 벌떡 일어나 가슴 높이의 이중 철조망을 단숨에 뛰어넘은 후 돌진하기 시작했습니다.
분대장의 돌격이 시작되자 자동소총수 이창남 일병도 따라 일어나 베트콩 기관총 진지에 집중사격을 퍼부어 그들을 침묵하게 만들었습니다.
그 사이에 소대 정면에서 소대원을 괴롭히던 베트콩 참호에 접근한 김병장은 교묘하게 위장된 참호 뒤로 돌아가 수류탄으로 5명을 폭사시키고 5개의 참호를 차례로 폭파했습니다.
김병장의 활약으로 소대를 묶어 놓았던 장애물이 모두 사라졌습니다. 그때 중대장의 돌격명령이 내려왔습니다.
김병장의 활약에 호응한 소대원들이 돌격으로 기세등등하게 베트콩 진지를 향해 밀어닥쳤습니다.
그 시기를 이용해 적진 깊숙이 진출한 김병장은 그의 측방에 나타난 베트콩 2명의 사격을 받아 철모가 땅이 떨어졌습니다.
그는 순간적으로 총구를 옆으로 돌려 속사로 베트콩을 사살했습니다.
그리고 도주하는 베트콩 사이로 뛰어들어 닥치는 대로 사격을 퍼붓자 베트콩의 두 번째 저항선도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소대장은 지체 없이 돌파구를 확대해 마을 내부의 베트콩 지휘소를 습격해 그들의 저항에 쐐기를 박았습니다.
그때 도주하는 1개 소대 규모의 베트콩을 목격한 소대장은 옆에 있던 김병장에게 “같이 가자!”라고 소리치며 그들을 추격해 마을 뒤편에서 6명을 사살했습니다.
추격을 계속한 소대장이 조금 전에 사살한 베트콩 시체 옆을 지나갈 때 난데없이 시체 속에서 검은 총구가 불쑥 나타났습니다.
그때 김병장이 재빨리 사살했으나 반대쪽 시체 속에서 날아온 총탄을 맞은 소대장은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김병장이 또다시 그쪽으로 사격을 퍼부은 후 소대장을 끌어안자 선혈이 낭자한 소대장 박문규 소위는
“나는 먼저 간다. 너희들이 잘 싸워라!”고 당부한 후 숨을 거두었습니다.
제1소대장이 전사하자 중대장은
정정능 소위와 정주영 중위의 연이은 전사로 지휘 부재 상태인 제3소대를 화기소대장 김주천 중위에게 통합 지휘해 위기를 수습하라고 명령했는데,
또다시 박문규 소위가 전사하자 중대장에게 남은 장교는 2소대장 이청 중위와 화기소대장 김주천 중위뿐이었기 때문에
중대장은 김주천 중위에게 1소대를 위기에서 구하라고 명령하였습니다.
김주천 중위는 다시 소방수가 되어 1소대의 위기를 수습하면서 작전을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이후 김주천 중위는 제1소대장으로 근무했습니다.
당시 소대장 김주천 중위의 회고에 의하면
김광마 병장은 훤칠한 키에 힘도 세고 체구도 유달리 컸으며 전장에서 순간적인 두뇌 회전이 기가 막히게 빨랐다고 합니다.
그는 매번 소대의 선두에서 섰으며 소대장이 앞으로 나가면 즉각 뒤쫓아와 소대원 40명의 목숨을 생각하라며,
소대장보다 한 발 더 나가는 분대장이었다고 합니다.
수색 중에 정글에서 총소리를 들으면 적 방향은 물론 화기의 종류까지 정확하게 알아냈고,
한 차례 지나갔던 지형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주변을 관찰해 적의 흔적을 기가 막히게 찾아냈습니다.
미국의 서부영화에서 보았던 총잡이를 능가하는 타고난 전투감각을 지닌 1급 전투원이었고,
비상한 기억력을 가진 전투원이었습니다.
정부는 그의 전공을 치하해 을지무공훈장을 수여했는데, 미국에서도 그에게 중대장 박동원 대위와 함께 은성무공훈장을 수여했습니다.
미국 은성무공훈장은 대한민국의 을지무공훈장과 같은 격인데 베트남전쟁 기간 동안 총 67명의 한국군이 수훈의 영광을 안았습니다.
그중 생존자에게 수여된 은성무공훈장은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입니다.
김광마 병장은 워낙 뛰어난 영웅이었기에 전쟁터에 계속 있을 경우 그의 안위를 보장하기 어려웠습니다.
따라서 부대는 김광마 병장을 조기에 귀국하게 해 부사관으로 임용 후 중사로 진급시켜 파월장병 훈련소인 화천 오음리 훈련장 교관으로 임명했지만
그는 격렬한 전쟁 후에 찾아오는 공통적인 질환 외상후증후군에 시달렸습니다.
그러나 당시에는 외상후증후군에 대한 개념이 없었습니다.
그는 문제 장병으로 분류되어 순탄치 못한 삶을 살다가 많지 않은 나이에 고인이 되었습니다.
이어서 방송해드릴 김영삼 하사의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사연들이 있습니다.
저는 각각 1천 쪽 이상의 분량으로 편찬한 베트남전쟁 증언록 3권과 함께 베트남 정글의 영웅들을 집필하면서
베트남에서 전투를 직접 수행한 수많은 참전용사, 특히 훈장을 받은 영웅들을 면담하고, 자료를 수집해왔습니다.
그 연구를 통해 저는 전쟁 영웅들의 특성을 파악할 수 있었는데,
연구를 종합해 본 결과 귀국 후 그들의 인생이 대체로 불우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전장에서 치열한 전투를 경험한 전쟁 영웅들은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PTSD, Post-Traumatic Stress Disorder)으로 악몽, 환각, 공황장애 등의 질환을 겪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심약한 병사의 경우는 전장에서 총 한 방 제대로 쏴 보지도 못한 채 외상 후 증후군에 시달려 결국 전장에서 ‘자살’로 생을 마친 경우가 상당수였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또는 베트남에서 귀국한 후
전쟁영웅의사회 적응이 쉽지 않았을 것임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많은 분이 음주와 주벽을 일삼고, 폭력성으로 주변에서 배척받고, 외상후스트레스증후군에 의한 신경질환으로 사회성을 발휘할 수 없어
경제활동에서 낙오하면서 하위층에 속한 분들이 많았습니다.
그로 인해 젊은 나이에 고인이 된 분들도 많았습니다.
그리고 대한민국이 국가경제발전에 매진하는 동안 많은 세월이 지나면서 그분들에 대한 국민의 관심은 멀어졌습니다.
이제 세계 10위권의 대한민국, 선진국에 진입한 대한민국은 잊고 지나온 지난날을 회고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와 관련한 주제는 161명의 베트남파병자살자 문제와 함께 별도로 편성해
60~70회로 계획하고 있는 베트남 정글의 영웅들 중간쯤에 방송할 예정입니다.
여러분들은 김광마 병장의 활약과
전쟁 영웅의 애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여러분의 생각을 댓글로 남겨주시면 다음 영상제작에 참고하겠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김광마 병장과 같은 전투에서 활약하고, 유사한 인생을 살아온 김영삼 하사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