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까지 압도적인 실력으로 타의추종을 불허하며 케이원에 군림했던 앤디 훅, 피터 아츠, 어네스트 후스트, 마이크 베르나르도. 이 네 명의 선수는 사대천왕이라 불리며 90년대 중반 케이원의 명승부를 만들어왔습니다.
하지만 1999년 케이원에 시대의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신세대 파이터라 불리던 미르코 크로캅, 제롬 르 반나 등이 베르나르도와 아츠를 잇달아 캔버스에 눕히는 등, 케이원은 세대교체에 들어가기 시작합니다.
오늘은 세대교체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99년을 중심으로 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후스트 실신 케이오 패
99년 4월에 열린「K-1 REVENGE'99」. 메인 시합은 피터 아츠 VS 모리스 스미스였습니다. 하지만 이 시합보다 더욱 주목을 끌었던 시합은 바로 프란시스코 필리오 VS 어네스트 후스트였습니다.
필리오는 99년 극진 가라테 세계 대회 출전을 준비하며, 후스트에게 진 빚을 갚기 위해 케이원의 링에 올랐습니다. 기존의 소극적인 스타일을 전부 벗어 던진 필리오는, 시합이 시작되자마자 후스트를 적극적으로 몰아붙이기 시작합니다. 결국 필리오의 연타를 안면에 그대로 맞은 후스트는 앞으로 고꾸라지며 실신 케이오패 당합니다.(右.필리오의 훅에 실신한 후스트)
사대천왕 중 최고의 테크니션으로 불리던 후스트의 처참한 케이오 패배로 케이원의 세대교체는 시작되었습니다. 필리오는 이 시합의 승리에 탄력을 받아, 제 7회 극진 가라테 세계 대회에서 외국인 최초로 챔피언에 오릅니다. 99년은 어떻게 보면 필리오의 해 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입니다.
전설적인 킥복서 모리스 스미스는 피터 아츠에의 리벤지를 성공시키지 못하며 3라운드 TKO를 당합니다. 아츠의 등장으로 구세대인 스미스는 하향세로 돌아섰는데, 아츠 또한 과거의 자신과 같은 신세대의 등장으로 99년 스미스와 같이 쇠락의 길을 걷게 됩니다.
그 외 오랜만에 케이원에 돌아온 미르코 크로캅이 거한 자이언트 노르키아를 4라운드에 케이오시키며 복귀전에 성공합니다.
지역 토너먼트 시작
99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지역 토너먼트는, 일본 각 지역에서 토너먼트를 개최해, 토너먼트의 우승자와 준우승자가 케이원 그랑프리 개막전에 진출하는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폭발적인 인기를 끌며 세계 각국의 격투가들이 모여든 덕분에, 케이원은 점점 커지는 규모에 맞게 이런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하게 되었습니다.
6월 후쿠오카에서 열렸던「K-1 BRAVES 99」는 미르코 크로캅, 맷 스켈톤, 로이드 반담 등 세계의 강호들이 출전한 시합이었습니다. 하지만 토너먼트의 우승은 예상외로 스위스에서 온 자비트 바이라미가 하게 되었습니다. 앤디 훅의 제자였던 바이라미는, 준결승에서 미르코 크로캅에게 판정승, 결승에서 로이드 반담에게 판정승을 거두며 그랑프리 개막전에 진출합니다.(左.앤디 훅의 애제자 자비트 바이라미)
7월에는 나고야에서「K-1 DREAM 99」가 열렸습니다. 우승 후보로 일찌감치 지목되었던 스테판 레코는 예상대로 토너먼트를 제패, 개막전 티켓을 거머쥐게 됩니다.(右.또 한명의 신세대 기수 스테판 레코)
이 대회의 특별 매치 중 가장 흥미를 끈 시합은 바로 어네스트 후스트 VS 이고르 보브찬친이었습니다. 당시 프라이드에서 활약중이던 보브찬친의 케이원 데뷔전이 이 대회에서 열렸는데, 후스트의 노련한 경기 운영과 로우킥 공격에 보브찬친은 3라운드 케이오 패를 당합니다.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보브찬친의 케이원 외도(?)는 실패로 끝이 났고, 결국 그는 프라이드로 돌아갔습니다.(左.프라이드에서 잠시 외도를 한 이고르 보브찬친)
베르나르도 침몰
99년의 케이원 그랑프리는 파란의 연속이었습니다. 전년도 베스트 선수 8명과 지역 예선 토너먼트를 통과한 6명, 그리고 관장 추천 2명인 총 16명이 10월 오사카 돔에서 그랑프리 개막전을 갖게 되었습니다.
4대 천왕 중 유일하게 그랑프리 우승의 경험이 없었던 베르나르도는 무슨 일이 있어도 99년에 우승을 해야 하는 입장이었습니다. 하지만 베르나르도의 우승의 꿈은 단 80초만에 꺾이고 말았습니다. 그 꿈을 짓밟은 선수는 다름아닌 미르코 크로캅.
미르코는 개막전 출전 자격이 없었지만 보결로 개막전에 출전하게 되었고, 당시 최강이었던 베르나르도를 레프트 하이킥 한 방으로 다운 시킵니다. 이 하이킥은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빨랐기에, 관중들은 베르나르도가 왜 다운 되었는지 일순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다운 당한 베르나르도는 겨우 겨우 일어났지만 하이킥의 충격은 그대로 남아있었습니다. 미르코는 연이은 펀치 러쉬로 베르나르도를 케이오시키며 12월의 결승전 티켓을 거머쥡니다. 세대 교체의 신호탄이 되었던 이 시합으로 베르나르도는 최강의 자리에서 한 발 물러나게 됩니다.(右.크로캅의 보이지 않는 하이킥에 다운당하는 베르나르도)
사타케, 케이원 은퇴 선언
세대 교체는 외국 선수에게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랑프리 개막전에서 일본의 에이스였던 사타케가 신세대인 무사시에게 밀려나는 이변이 일어났습니다.
그랑프리 결승전 티켓을 두고 붙었던 무사시와 사타케. 사타케는 무사시를 1라운드에 다운시키며 시합을 리드하지만 결과는 사타케의 판정패로 끝이 납니다. 이 대전은 케이원의 일본 대표로 떠오르고 있던 무사시를 확실하게 밀어주기 위한 주최측의 의도가 보인 시합이었습니다.
시대의 희생양이 된 사타케는 결과에 맹렬히 반발했고, 이시이 관장과 시합 후 특별 면담까지 갖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만족한 대답을 얻지 못한 사타케는 은퇴를 선언, 후일 프라이드에 진출하게 됩니다.(左.무사시의 석연찮은 판정승에 불만섞인 표정을 짓는 사타케)
반나의 대역전
세대교체는 결승전에서도 벌어졌습니다.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던 최강 피터 아츠가 준준결승에서 케이오 패를 당했던 것입니다.
아츠의 상대는 개막전에서 복귀전을 가졌던 제롬 르 반나였습니다. 반나는 시합 시작 17초 만에 아츠의 하이킥에 무릎을 꿇으며 다운을 당합니다. 시합은 아츠의 승리라고 생각되던 그때, 금세 정신을 차린 반나는 아츠를 코너에 몰아 레프트 훅으로 케이오시킵니다. 첫 다운을 뺏은 후 방심했었던 아츠는, 육체개조에 성공한 반나의 무거운 훅 한방에 옆으로 기울어지듯 다운을 당했고, 시합은 그대로 끝이 납니다. 최강의 아츠가 너무나도 허무하게 패배한 탓에 팬들은 충격을 받았고, 반나는 케이원에 확실하게 입지를 굳히게 됩니다.(右.반나의 훅에 옆으로 기울어지며 다운당하는 피터 아츠)
이런 반나도 준결승에서 만난 어네스트 후스트에게 케이오 패를 당합니다. 앤디 훅을 판정으로 누르고 올라온 후스트는 반나를 2라운드에 펀치로 케이오 시키며 결승에 진출합니다.
97년 그랑프리 결승전 준준결승에서도 반나를 케이오로 꺾었던 후스트는, 그 때와 같은 패턴으로 반나를 가볍게 케이오시켰습니다. 가드가 허술한 반나는 결국 구세대의 한 명인 아츠를 꺾었지만, 구세대 최고의 테크니션 후스트 앞에서는 맥없이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후스트와 미르코의 결승전
한편 반대쪽 블록에서는 미르코 크로캅이 승승장구하고 있었습니다. 이미 베르나르도를 개막전에서 케이오시킨 크로캅은, 결승전에서도 그 기세를 살렸습니다. 첫 상대인 무사시를 2라운드에 케이오 시킨 후, 미르코는 준결승에서 만난 샘 그레코를 마찬가지로 2라운드에 케이오시켰습니다.(右.하이킥으로 무사시를 케이오시키는 미르코)
결승전은 후일 천적이라고 불리게 되는 어네스트 후스트. 이 시합이야말로 99년 열린 구세대와 신세대 대전의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후스트는 격투가로 한계에 달했다는 소문이 있었지만, 시합은 노련한 노장의 승리로 끝이 났습니다. 로우킥을 적절히 날리며 보디 공격을 감행한 후스트 앞에서 신세대 대표 크로캅은 2번의 다운을 당하며 케이오 패를 합니다.
(左.후스트의 노련한 보디 공격에 주저앉는 미르코)
시합 후 후스트는『나이는 숫자에 불과할 뿐이다』라는 명언을 남기며 자신의 한계설을 일축했습니다. 비록 패하기는 했지만 미르코 크로캅도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알리며 신세대 기수로 떠오릅니다.
99년은 신세대의 약진이 두드러졌습니다. 신세대는 결과적으로 그랑프리 우승을 거머쥐지 못했지만, 아츠와 베르나르도라는 구세대 거물 선수를 케이오시키며 그 존재감을 더했습니다.
첫댓글 기대됩니다~
잘봤습니다^^~~
오홍~ 검은손길님이 참다 못해 먼저 토해 내셨군요~!! ... 혹시.. 더뤼밥님 안오시는거 보니까... 전국을 돌며 전문가들 관장하고 계시는건 ... 아닐까... 검은손길님.. 왔던가요~?? 당했나요~??
관장은 제 취향이 아니라서.. ㅎㅎ
음... ↖저 시원스런 웃음을 보니 필시....
99년 피터와 제롬의 경기는 K-1 팬 투표에서 역대 최고의 경기로 뽑혔습니다. 저도 당시 투표에 참가했었는데요. 저는 96년 준결승 앤디VS후스트 전에 투표했습니다. 두번째로 95년 제롬과 녹비드 데비의 경기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