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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 1:8 “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지난 주간 한 지인으로부터 카톡으로 기도 부탁 메시지를 전해 받았습니다. 이탈리아의 한 의사가 보낸 기도 편지였습니다. 이분은 이탈리아 롬바르디아의 한 병원에서 벌써 3주째 코로나19환자를 돌보고 있는 38세의 율리안 우르반(Julian Urban)이라는 젊은 의사입니다. 전해온 메시지 일부를 소개드리면 이렇습니다.
2주전까지만 해도 나와 동료들은 무신론자들이었습니다. 우리는 과학이 하나님의 존재를 배제한다고 배웠습니다. 그리고 부모님들이 교회 가는 것을 비웃었습니다. 9일전에 75세 된 한 목사님이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그분은 호흡하기조차 힘든 상태였습니다. 그런데도 죽어가는 환자들을 찾아가 성경을 읽어주고 기도해주었습니다. 우리들은 그 모습에 감동을 받았고, 시간이 날 때마다 그분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사람들이 매일 죽어갔고, 동료들 중 두 명이 죽었고, 그리고 다른 동료들 여럿이 감염되었습니다. 우리는 기진맥진했고 더 이상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는 중에 우리도 모르게 평안을 주시고 환자들을 계속 도울 수 있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어제 그 목사님이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3주 동안 여기에서 120명 이상의 죽음을 보았지만 이번만큼 힘든 적이 없었습니다. 우리는 몹시도 두려웠습니다. 이제 곧 우리도 그분의 뒤를 따라갈 것 같습니다. 나는 나의 무가치함을 깊이 깨닫습니다. 내가 마지막 한 호흡을 쉴 때까지 환자들을 돌보고 싶습니다. 나는 고통 받는 사람들과 나의 동료들의 죽음에 둘러싸여있지만 내가 하나님께로 돌아왔다는 사실에 행복합니다.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저는 이 기도 편지를 받고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며 몇 가지를 생각하게 됐습니다.
우선 지금 이탈리아의 상황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점입니다. 이들을 위해 기도해야 하겠고, 특히 율리안 우르반이라는 이 의사분을 위해 간절히 기도해야 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여러분! 함께 기도 해주시기 바랍니다.
다음으로 이 목사님을 생각하게 됐습니다. 지금 자기 몸도 호흡조차 힘들 정도로 성치 않습니다. 그리고 점점 죽음이 가까이 오고 있는 것도 느끼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죽어가는 사람들을 돌보았습니다. 힘들어 지친 의료진들을 격려했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럴 수 있었을까요?
그리고 이 우르반이라는 의사분을 생각하게 됐습니다. 원래 무신론자였지만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상황 속에서도 마지막까지 환자들을 돌보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죽음의 공포 속에서도 하나님께 돌아왔다는 사실에 행복을 느꼈다고 했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럴 수 있었을까요?
사실 저는 기도부탁을 받았지만 길지 않은 기도 편지를 읽으며 은혜를 받았고 큰 도전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제 스스로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내가 이 현장에 있었다면 나는 이 목사님처럼 행동할 수 있었을까?” “이 의사분처럼 그 자리를 지키며 오직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그 한 가지만으로도 행복을 느낄 수 있었을까?” 그리고 깊은 신앙적 물음을 갖게 됐습니다. 도대체 이들은 어떻게 이럴 수가 있었을까? 내가 이런 상황 속에 있게 된다면 무엇이 나를 이들처럼 행동하게 해 줄 것인가?
이런 신앙적 질문을 마음에 품고 오늘 본문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본문은 요한계시록입니다. 요한계시록은 편지형식의 계시록입니다. 보낸 사람은 사도요한이고, 받는 사람들은 소아시아 지역의 일곱 교회의 교인들입니다. 그러니까 요한계시록은 사도요한이 주님께 계시를 받아 소아시아지역의 일곱 교회의 교인들에 보낸 편지입니다.
그러면 주님께서는 왜 이 교회들에게 계시록 형태의 편지를 보내셨을까요? 당시 이 교회들은 로마제국으로부터 극심한 박해를 받고 있었습니다. 특히 로마의 열한 번째 도미티안 황제로부터 견디기 힘든 박해를 받고 있었습니다. 사도요한은 밧모섬으로 유배되었고,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투옥되었고, 여기저기서 순교자들이 나오고 있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렇게 힘들고 어려운 상황 가운데 있는 교회의 교인들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켜보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저들을 위로하시기 위해서, 저들이 잘 견디고 믿음을 지켜가도록 돕기 위해서, 그리고 결국 그 고난을 이겨내도록 힘을 주시기 위해서 사도요한에게 이 편지를 써서 보내게 하신 것입니다.
다시 앞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호흡이 가빠오고 죽음이 다가오는 상황 속에서도 그 목사님은 당황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죽음 앞에 두려워 떠는 사람들에게 말씀을 전했고, 기도해 주었습니다. 목사님의 죽음에 큰 두려움을 느꼈으면서도 그 의사분은 의연하게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요?
물론 제가 이분들에게 직접 확인한 것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하게 알 수 있는 것은 주님께서 고난 가운데 있던 소아시아 교인들과 함께 하셨던 것처럼 이분들과 함께하셨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주님께서 고난 가운데 있던 소아시아 교인들을 위로하시고 힘주셨던 것처럼 이분들을 위로하시고 힘주셨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다시 말해 이분들이 이 극심한 두려움과 고난 가운데서도 주님 때문에 잘 견디고 이겨냈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어떤 고난이 닥쳐온다고 해도, 그 어떤 두려움이 밀려온다고 해도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리고 위로해 주시고 힘주십니다. 그래서 우리도 넉넉히 견뎌내고 이겨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본문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주님께서 어떤 분이신가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같은 말씀이 계 21:6과 계 22:13에 두 번이나 더 나옵니다.
왜 주님께서 누구신지를 이렇게 여러 차례 말씀하신 것일까요? 당시 소아시아 일곱 교회 교인들이 주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아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주님께서 알파와 오메가라는 사실을 아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지금까지도 우리를 지켜주시고 인도하신 분이시지만 장차 죽음이 후 더 나가 종말 이후에도 우리를 지켜주시고 인도하실 분이라는 사실을 아는 것이 너무도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주님께서 친히 가르쳐주신 주님께서 알파요 오메가라는 말씀이 무엇을 말하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알파와 오메가의 주님은 도대체 어떤 분이신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알파이신 주님
주님께서 당신 스스로 알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알파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그리스어의 알파벳은 모두 24자로 되어있습니다. α(알파), β(베타), γ(감마) 이렇게 시작해서 χ(카이), ψ(프사이), ω(오메가)로 끝이 납니다. 그러니까 여기서 알파는 그리스어 알파벳의 첫 글자 α를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영어의 a를 말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당신 자신이 알파라는 것은 무슨 뜻으로 말씀하신 것일까요? 한 마디로 α가 시작을 뜻하기 때문에 주님께서 모든 것의 시작이라는 뜻으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철학과 신학에서 오랜 세월동안 신의 존재를 증명하려는 시도가 있어왔습니다. 여러 시도가운데 하나로 ‘우주론적 증명’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원인이 있고, 그 원인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더 이상 원인을 찾을 수 없는 시작점인 ‘제 1원인’(The first Cause)이 나오는데, 그 제 1원인이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성경을 펴보면 첫 장에서 이 세상 모든 만물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셔서 존재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제 1원인이라는 것을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골 1:16에서 이 점을 보다 구체적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이 말씀은 우리에게 두 가지 점을 가르쳐줍니다. 하나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다 하나님 때문에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너무 커서 그리고 또 너무 작아서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그 모든 것들 다 하나님 때문에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눈을 들어 볼 수 있는 대자연과 인간 사회 그 모든 것들 다 하나님 때문에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저와 여러분 그리고 우리의 소중한 가족들과 함께 살아가는 우리의 이웃들 모두 다 하나님 때문에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께서 알파이시라는 것은 우리 자신과 세상모든 것이 존재하는 이유가 주님 때문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 점을 깨닫게 될 때 우리는 감사부터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생명주심에 감사하고, 살아있음에 감사하고, 더불어 살아가게 그 모든 것들을 있게 해 주심에 감사해야 합니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소설가 최인호씨가 쓴 [인연]이라는 수필집에 이런 글이 나옵니다. “그러나 어떤 때 어느 순간... 시청 앞에서 혼자 차를 몰고 가다 문득 신호등 앞에 서서 출발 신호를 기다리고 있다가, 아아, 나는 얼마나 행복한가, 얼마나 축복받은 인간인가 하는 희열이 걷잡을 수 없는 감동으로 내 가슴에 파도처럼 밀려오는 것을 느낀 때가 있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살아있음은 축복이며, 햇살도 신의 은총이었다. 고마워라, 저 지나가는 사람들 모두가 고마워라. 함께, 같은 시대에 태어난 저 사람들, 분수도, 신호등도, 교통순경도 모두 고마워라.“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살아있음 그 자체가 축복입니다. 알파이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토록 소중한 생명을 주셨고, 이처럼 아름다운 인생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무엇보다 감사해야 합니다.
또 하나는 우리가 깨닫게 되는 것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그 모든 것들은 다 하나님을 위하여 창조되었다는 점입니다. 세상에 쓸 데 없는 것들은 하나도 없습니다. 모두가 하나님께서 이 우주와 역사 속에 꼭 필요해서 만드셨습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에 존재하는 그 모든 것들은 존재 목적이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그 뜻에 합당하게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주님께서 창조하신 그 뜻을 따르도록 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지금 코로나19바이러스 때문에 온 세상이 그야말로 난리입니다. 근년에 들어서 메르스, 사스, 에볼라, 에이즈 등의 신종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전파되면서, 전 세계적인 팬데믹 현상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도대체 왜 이런 바이러스들이 나타나는 것일까요? 전문가들은 인간의 탐욕 때문이라고 합니다. 인간의 탐욕으로 생태계가 파괴되고 서식지를 잃은 동물들이 인간과의 접촉이 빈번해 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탐욕으로 무분별하게 야생동물을 식용으로 먹거나 유통하면서 접촉이 늘어나게 됐습니다. 그러면서 그들 몸속에 있던 바이러스들이 돌연변이를 일으키게 되었고, 인간에 감염이 되게 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께서 창조하신 생태계를 주님의 뜻대로 존재하도록 내버려두지 않고 인간이 탐욕으로 파괴하고 변질시키면서 이런 끔찍한 참사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이런 일들이 앞으로도 계속 일어나게 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그래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알파이신 주님께서 창조하신 뜻을 존중하며 그 뜻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그 모든 알파이신 주님께서 만드신 것들 역시 주님의 뜻대로 존재하도록 돕는 일이 중요합니다.
오메가이신 주님
주님께서 당신 스스로 오메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오메가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앞에서 살펴본 대로 오메가는 그리스 알파벳의 마지막 글자 ω를 말합니다. 영어의 z를 뜻합니다. 그러니까 주님께서 오메가라고 말씀하신 것은 ω가 끝을 뜻하기 때문에 주님께서 모든 것의 끝이라는 뜻으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과학자들의 연구결과를 보면 영원할 것 같은 저 태양도 사라질 것이라고 합니다. 46억 년 전에 생겨나 오늘까지 성실하게 빛과 열을 제공해서 지구에 생명체가 살게 했고, 오늘과 같은 지구가 있게 했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50억 년쯤 뒤에 ‘적색거성’으로 팽창하게 되고, 이 때 지구는 폭발하는 태양열 때문에 불타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또 50억 년쯤 뒤에 ‘백색왜성’으로 변하고, 마지막 ‘초신성’이 되었다고 사라질 것이라고 합니다. 태양에도 끝이 있다는 것입니다.
마 24:14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천국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역사의 끝과 우주의 종말이 있음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히 9:27을 보면 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우리 각자의 인생에도 끝이 있음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끝이 있습니다. 우주만물도 끝이 있고, 인간의 역사도 끝이 있고, 우리 각자의 인생에도 끝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모든 것이 영원할 것처럼 착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끝이 도둑처럼 우리를 찾아올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끝을 늘 염두에 두고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에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모든 것을 시작하게 하신 분이 주님이신 것처럼 모든 것을 끝나게 하시는 분도 주님이시라는 점입니다. 지금의 이 세상과 우주를 끝내실 분이 주님이시고, 인간 역사를 끝내시는 분도 주님이시고, 그리고 우리 각자의 인생을 끝내게 하실 분도 주님이시라는 점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이 끝은 진정한 끝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새 하늘과 새 땅을 예비해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의 인생을 끝냈다고 해도 연기처럼 사라지거나 소멸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믿음의 사람인 우리를 저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인도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새로운 시작을 맞게 될 것입니다.
계 14:13을 보면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주 안에서 종말을 맞는 사람들이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주 안에서 죽음을 맞는 것입니다. 종말을 주관하시는 주님 품 안에서 끝을 맞을 때 주님께서 우리를 저 새 하늘 새 땅으로 인도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우리가 주 밖에서 종말을 맞는다면 그것은 저주 중의 저주입니다. 우리가 새 하늘 새 땅으로 나아갈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께서는 우주만물과 우리 자신의 시작을 허락하신 알파이신 주님이십니다. 우리에게 생명주신 주님께 감사하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시작하신 뜻을 깨닫고 그 뜻을 따라 살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우주만물과 우리 자신의 끝을 주관하실 오메가이신 주님이십니다. 늘 끝이 있음을 기억하고 그 끝을 대비하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가 주 안에서 그 끝을 맞아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아름다운 끝 이후 새 하늘 새 땅을 맞이해야 하겠습니다.
상도중앙교회 박봉수위임목사님 설교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