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교(鄕校)는 훌륭한 유학자를 제사하고 지방민의 유학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나라에서 지은 교육기관이다. 세조 25년(1443)에 세운 광양향교(光陽鄕校)는 임진왜란(1592) 때 불에 타 없어진 것을 광해군 5년(1613)에 군수 남내원(南來爰)과 지방 유림이 힘을 모아 대성전(大成殿)을 지으면서 점차적으로 건물을 지었다. 그 뒤 여러 차례 수리가 있었으나 한국전쟁 때 완전히 없어진 것을 1966년에 출입문인 풍화루(風化樓)를 돌기둥으로 대신하여 세운 것을 시작으로 건물을 다시 지었다. 현재 남아있는 건물은 대성전(大成殿)·명륜당(明倫堂)·풍화루(風化樓)·동재·서재 등이 있다. 앞쪽에 명륜당(明倫堂)을 중심으로 배움의 공간을 두고, 뒤쪽에 대성전((大成殿) 중심의 제사공간을 이루는 일반적인 배치형식과는 달리 자유롭게 배치하였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책·노비 등을 지급받아 학생들을 가르쳤으나 갑오개혁(1894) 이후에는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가을에 걸쳐 제사만 지낸다. 이곳에는 전라남도 향교(鄕校) 중 비교적 많은 책을 보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