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산악연맹 설제
일시 : 2009년02월15일
어디서 : 충남 광덕산(699.3m)
2월12일부터 산악회에서 동계훈련을 하기 위하여 설악산에 들어간다. 조직개편과 더불어 휴가내기가 쉽지 않아 참석을 못하고 마침 서울시 산악연맹에서 실시하는 설제가 일요일에 있어 참석할 생각이다. 매년 2월은 우리 산악회 시산제와 연맹의 설제일이 겹쳐 구경이라도 하고픈 연맹 설제를 이번에는 산악회에서 정기산행을 첫 주에 실시하여 중복이 안되 월요일 아침 사무국에 연락을 해보니 참석 가능하다면서 어느 산악회냐고 묻는다. 개인이 신청하기에 그렇고 해서 우리산악회의 이름을 가르쳐주고 나니 와이프와 둘이 가기에는 허전하여 회장님 외 몇 분에게 연락 같이 참석하자고 해 결국은 6명이 참석하기로 통보를 보냈다. 음식은 자체에서 해결하라고 하며 막걸리와 간단한 안주(막걸리 안주에는 김치가 제일)을 제공 한다고 하여 와이프와 상의 우리도 김치와 연관되는 김치찌개를 준비하기 위해 돼지고기 한 근을 사서 김치와 버무려 배낭에 넣으니 배낭이 콱 찬다. 내 배낭에 넣기가 힘들어 콩나물이며 두부 등 양념은 와이프 배낭에 넣고……
출발장소가 대학로이고 출발시간이 8시10분이라 다른 산행에 참석할 때보다 시간적 여유가 있어 좋다. 버스를 이용할까 생각 노선이 기억이 안나 홍제역 지하철을 이용 혜화역에 내리니 온통 산객들이다. 16대의 버스가 대학로 도로에 서있으니 이 또한 장관이다. 막 지하도를 벗어나니 정종백자문위원님이 도착했다는 메시지가 핸폰에 뜨고 우리가 타고 가야 할 13호 차량으로 가기 위하여 한참을 걸어 내려간다. 하늘은 무엇을 뿌리려는지 아님 이미 뿌린 후인지 구름이 낮게 깔려 산객들의 마음을 스산하게 한다. 그래도 서로 알고 지내는 산객들은 손을 잡으며 얼굴에는 미소들이 가득하다.
이번이 38회인 서울시 산악연맹 설제는 지지난해(2007년)우리 산악회에서도 시산제를 지낸 충남의 진산 광덕산이다. 이산은 금북정맥(차령)의 도중에 태화산(455.5m)에서 북쪽으로 다시 갈라진 진맥이 천안시와 아산시의 경계를 이루면서 솟아 있는 산으로 완만한 육산의 능선이 만경산까지 이어져 가족산행하기에도 좋은 산이다. 2007년도에는 광덕사 주차장에서 출발 송악면으로 넘어가 강당사 인근에서 산제를 지냈지만 이번에는 광덕사-정상-장군바위-안골-은골로 내려와 인근주변에서 지낼 계획이라고 안내되어 있다.
그 많은 차량들이 출발시간이 되니 정확하게 대학로를 벗어난다. 우리차량에는 소규모로 참석한 7개 단위산악회 회원들이 승차, 연맹에서 천성구이사가 선탑자로 지정 안내 및 기념 뺏지, 간식 등을 나누어 준다. 장충공원쪽을 넘으면서 환상의 눈꽃이 우릴 반긴다. 우측 남산쪽과 좌측으로 잘 정비된 공원의 나무에 피어있는 설화는 오늘 산행의 맛보기인듯하다. 각각의 산악회 대표들이 인사후 망향휴게소에 들릴 때까지 휴식을 하라는 말에 오랜만에 이용해보는 45인승 버스에 약간의 불편함을 느낀다.^^ 피곤했던지 스피커에서 휴게소 도착했다는 소리에 꿈속에서 깨어난다. 600여명의 대 인원으로 30분의 긴 휴식시간을 준다. 하차 후에 보니 앞차에 임홍순고문님이 사모님과 함께 참석해 계시지 않는가! 우릴 보시고 반갑게 맞이해주신다. 한꺼번에 밀어 닥친 화장실은 초만원이고 커피한잔 마시니 어느덧 시간이 다되어 간다. 어디 가나 단체 행동에 약간 서투른 분들이 계시니 우리 차는 제일 나중에 출발이다.ㅋㅋㅋ
10시20분이 되어 도착한 광덕사 입구 휴게소는 차량을 돌릴 수가 없어 아수라장이다. 우린 기사분의 특출한 실력으로 제일 후미에 있던 차량이 바로 휴게소로 들어와 하차를 시킨다. 바람이 심하게 불지만 그렇게 차가운 바람은 아니고 무언가 내리려는지 하늘은 서울부터 계속 구름을 먹고 있다. 광덕1리 동네 어귀를 오르면서 주변에 천안의 명물로 자리잡은 호도과자의 생산지답게 호도나무가 여기저기 주택가에 심어져 있다. 일주문 앞에는 고려 충렬왕 16년(1290년)에 원나라에서 처음으로 호도묘목을 가지고 와 심었다는 호도전래사적비가 있다. 일주문에 당도하니 어느덧 10시40분, 광덕사는 신라 선덕여왕 당시 건립된 유서 깊은 절로서 이름이 나있다. 광덕사 정면 좌측에 산행 안내 포인트 2지점이 있으며 개울과 민가의 담으로 된 좁은 등산로를 지나니 차량도 다닐 수 있는 넓은 산행길이 나오고 약간씩 경사를 높이니 여기저기 상의를 벗기 위하여 옆으로 빠진다. 초입과는 다르게 경사가 심한 산행 길을 모두들 헉헉거리며 오른다. 산행 초부터 무슨 일이 있는지 구조대 두 명이 성급히 우리를 추월, 잰 걸음으로 올라가고, 출발한지 1시간 정도 지나며 나무계단 끝나는 부분에서 오른쪽으로 꺾이면서 능선에 팔각정자도 있고 의자를 설치 해놓아 휴식할 수 있는 곳이 나타난다. 이산은 예부터 풍요롭고 덕이 있는 산이라 하여 여러 산악회에서 산제를 많이 지내는 곳이기도 하다. 지난번에도 이곳(산악인 선서 탑)에서 시산제 지내기 위하여 준비하고 있었던 기억이 나는데 오늘도 년도만 바뀐 똑 같은 현수막이 걸려 있어 알아보니 매년 2월이면 이곳에서 산제를 지낸다는 우등불산악회란다. 잠시 휴식 후 우측으로 나있는 1.3Km앞 정상으로 전진한다. 좌측으로 잘 정리된 묘 한기가 있으며 산행 길 중간 중간 주변에 훼손된 생태계 복원을 위하여 초식류를 파종한 후 볏짚으로 덮고 울타리를 처서 보호 해 놓은 곳이 나타난다. 참석한 인원이 많기에 산행속도가 약간씩 늦어지며 등산 안내도에 보면 헬기장이라고 표시되어 있는 지점에 도착 잠시 휴식을 하며 회장님이 주는 초콜릿을 입에 문다. 옆에서 한 분이 헬기장은 사실 정상이 헬기장이라고 한다, 하기야 나도 헬기장치고 너무 좁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분 말이 맞는 것 같다. 정자문위원님과 건식씨는 선두에 서서 언제 올라 갔는지 안 보인다. 자문위원님께서는 요즘 몸이 안 좋아 이번 산행도 간신히 참석하셨는데 땀을 한번 흘리면 괜찮을까 생각한다면서 올라가셨다. 잠시 휴식 후 다시 헉헉거리며 산행, 이젠 내리막길이다. 얼마 남지 않은 정상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약 백여 메타를 하산 후 다시 오름 짓을 한다. 등산로에는 파이프를 설치 굵은 로프로 연결 힘든 산객들은 그걸 잡고 오르고 좀 괜찮은 산객은 옆으로 치고 올라간다. 0.6Km가 무척 길게만 느껴진다 생각할 때 산객들이 정성들여 모아놓은 돌무더기 옆을 지나 약간의 너덜지대를 지나고 커다란 바위 사이를 지나니 자문위원님이 웃으시며 나타난다. 정상 바로 앞에서 여성분들에게 양보한다고 능선에서 기다리신다. 정상에 오르니 막걸리 파는 사람들과 주변에서 마시는 산객들, 기념사진 찍는 산객등 초만원이다. 더구나 사고가 있었는지 잠시 후 헬기가 착륙해야 한다며 빨리 하산하랜다. 좌판에 옥수수로 만든 노란 막걸리가 군침을 돌게 만드니 그냥 갈 수 없고 남자 넷은 한잔씩 받아 마늘쫑을 고추장에 찍어 먹으니 내장까지 시원함을 느껴온다. 한곳에서 사진을 많이 찍어 무엇이 있어 그런가 가보니 詩비가 하나 세워져 있다.
광덕산에 올라
가뿐 숨 가다듬고 장군바위 타고 넘어 지팡이 몸을 실어 산정에 올라 보니
크고 작은 산줄기 발아래 엎드리고 안개 자욱한 골에 구름이 머물레라
태고적 신비 가슴에 묻고.
마르지 않는 정기로 마음을 다스리며 천년 역사 속에 말이 없더니.
아산만 물줄기 호령하며 새 시대를 열게 하고
서해바다 품에 안고 기지개 켠다.
이름 모를 산새는 사랑을 노래하고 땀 식은 이마에는 산바람이 시원하니
시인 아님에도 시심이 절로 일어 나웅선사 시한구절 읊조려 본다.
청산은 나를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나를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
단체 사진도 찍지 못하고 내려가려니 올라오면서 보지 못한 상고대가 맞은편 나무에 아름다운 자태로 유혹한다, 몇 장 급하게 누르고 장군바위 쪽으로 길을 잡는다. 정각 12시 내려가는 길은 온통 상고대의 풍년이다. 이곳 상고대는 화려하지도 거만하지도 않은 듯 충청도의 성격을 닮았는지 소박하며 견고한 모습이다. 오늘 멀리에서 내려온 그 많은 산사람들의 출연에 놀라워서 그런지 아니면 설제를 지낸다니 산신님이 이런 미를 연출했는지는 모르지만 무척 아름답다. 왼쪽으로만 있던 상고대가 이제는 등산로 좌우와 하늘에도 피어 있어 온통 산객들의 마음을 들뜨게 한다. 그 주변에는 삼삼오오 모여서 점심식사를 즐기니 얼마나 행복하겠는가? 내려오는 길은 그리 험하지도 않으며 서쪽 강단리에서 불어오는 약간의 겨울바람에 얼굴들이 붉게 물들어 있다. 20분 정도 하산하니 좌측으로 장군약수터와 어둔골 하산로가 있지만 요즘은 폐쇄되어 출입금지 팻말이 달려있다. 정상에서 30분을 하산하니 장군바위라는 곳이 나타난다. 연약한 청년이 바위에서 나오는 물을 받아 마시고 장군처럼 우람한 체격이 되었다 하여 이름 지어진 유래가 있는 바위로 모습이 우람한 어깨와 얼굴형상의 돌이 올려져 있어 장군처럼 생겼다. 바위를 돌아 등산로가 되어 있고 전방 먼 곳 봉우리(만경산)에도 하얀 모습으로 왼쪽 경사면을 장식하고 있으며 저 아래 벌판에는 송악저수지가 올 봄 농사의 밑거름이 될 수 있도록 만수가 되어 푸른빛을 자아낸다. 능선 길 바로 앞에 만경산과 부용묘 갈라지는 갈림길이 나오며 안내7번이 달려있는 오른쪽 부용묘쪽으로 길잡이를 한다. 낙엽이 양탄자처럼 깔려있는 등산로를 지나 약간씩 내리막이 있지만 그리 힘든 구간은 아니고 다행히 며칠 전 전국에 비가 내려 먼지가 나지 않아 좋다. 정상에서 내려오기 시작한지 한 시간, 거의 산행이 마감되나 보다. 좌측에 계단식으로 되어 있는 논이 보이지만 농사지은 지 오래된 듯 잡초가 무성하다. 임도가 나오며 새로 지어진 예쁜 집 뒤에는 묘 1기가 있는데 거리가 멀어 부용묘인지는 확인을 할 수가 없다. 기생 부용하면 떠오르는 건 탑시 부용상사곡이다. 한 글자로부터 시작해서 각 구마다 한 자씩 더하여 마지막에는 18자까지 되어 탑 형태를 이루는 그리움과 기다림을 달래면서 지은 시이다.
운초 김부용(1820~1869)은 평안도 성천에서 가난한 선비의 무남독녀로 태어나 조실부모 후 기구한 운명으로 바뀐다. 송도 황진이, 부안 매창과 더불어 우리나라 삼대시기(詩妓)로 일컬어지던 시인이며 당시의 여성으로서는 드물게 300여 수가 수록되어 있는 문집을 남긴 조선후기 순조 때의 여류문인이다. 나이 19세에 58살이나 차이 나는 김이양과의 만남과 기적에서 빼내지만 얼마 있자 한양으로 혼자 올라간다. 그 후 한양으로 올라와 남산골에서 지내다 김이양이 묻혀있는 곳에 묻어 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파란만장한 생을 마감했지만 신분의 차이로 같이 묻히지 못하고 인근 이곳에 홀로 묻혀 있다고 한다. 임도를 따라 내려오며 논밭에서 풍기는 농촌의 향기를 느끼며 봄의 기지개를 피기 전 한가로운 전원의 모습을 보면서 한마디씩 건네는 이야기 속에 웃음꽃을 피운다. 연맹에서 안내하는 오솔길로 접어든다. 마이크 소리가 들리니 거진 왔나 보다. 좀더 진행하니 잘 가꾸어 놓은 가족 묘가 있고 그곳을 지나 바로 아래로 내려서니 넓은 공터에 가입 산악회의 기를 연결하여 만국기 식으로 장식되어 있는 설제 장소에 도착한다. 개울을 건너 막걸리 마시는 곳에 가 한잔씩 마시고 자리를 잡기 위하여 설제 장소로 이동 중 예전에 동작에서 같이 근무한 강성태 서울시연맹 (전)사무국장이 보여 서로 인사를 나눈다.
김치찌개 만들어 반주와 함께 늦은 점심을 해결, 정통유교식 제례방법으로 건 쓰고 두루마기 입고 식을 거행, 우리도 헌작을 올리고 주차장에 내려와 출발을 기다린다. 제일 늦게 출발하여 늦을 것만 같던 서울도착이 휴게소 한번 안 쉬고 올라오니 우리가 제일먼저 도착 했다. 여유롭다. 이제는 우리 시산제가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