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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부산토요일산악회 원문보기 글쓴이: redstone
이번주는 다음주가 장거리인 춘천 삼악산이어서 근교의 힐링산행지를 찾다보니 우리나라 불교 유물로 가득찬
경주 남산과 양남면의 주상절리를 찾기로 하고 산행지를 올렸다.
억새철인데도 불구하고 예상외의 많은 회원들이 시청을 해와 산행 게시부터 참석 댓글이 달리기 시작하여
내리고 달기의 이음이 계속되었다.
(경주 남산에 대하여)
고위산(494m)과 금오산(468m) 2개의 봉우리가 솟아 있다. 남북 8㎞, 동서 4㎞의 크기이며 완만한 동남산과 골이
깊고 가파른 서남산으로 크게 나누어진다. 40여 계곡이 있고, 동쪽에는 낭산(狼山)·명활산(明活山), 서쪽에는 선도산
(仙桃山)·벽도산(碧桃山)·옥녀봉(玉女峰), 북쪽에는 금강산(金剛山)·금학산(金鶴山)이 솟아 있다. 뿐만 아니라 토함산
(吐含山) 줄기가 동해를 막는 성벽 구실을 하고 있어 남산은 옛 서라벌을 지키는 요새로서 훌륭한 역할을 하였다.
경주 남산은 신라시대의 불교유적지로 널리 알려져 있다. 불교가 신라에 전파되면서 숭산신앙(崇山信仰)·암석신앙
(巖石信仰)과 연관된 불교문화는 남산에 집중, 표현되었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절터 112군데(암자터 포함), 석불 80
체, 석탑 61기, 석등 22기 등의 유물·유적이 발굴되었다. 남산은 또한 신라 시조 박혁거세(朴赫居世)의 탄생설화가
있는 경주 나정(蘿井:사적 245), 신라 최초의 궁궐터인 창림사(昌林寺) 유적, 서쪽 기슭의 포석정지(鮑石亭址:사적
1), 신라시대의 대표적인 화랑 김유신의 효와 충절을 엿볼 수 있는 경주천관사지(天官寺址:사적 340)가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신라 개국 이래 줄곧 신라인과 호흡을 같이하며 신성시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중요한 유물·유적으로는 청동기시대 것으로 추정되는 민무늬토기[無文土器]·간돌도끼[磨製石斧]·간돌칼[磨製石
刀]·홈자귀[有溝石斧]·방적차(紡績車) 등과 함께 고인돌이 발견되었다. 또 진평왕(재위 579∼632) 때에 쌓은 남산신
성(南山新城)과, 진덕여왕(재위 647∼654) 때 쌓은 것을 문무왕(재위 661∼681) 때 보수한 남산성(南山城:사적 22),
김시습이 기거하면서 한국 최초의 한문소설집인 《금오신화(金鰲新話)》를 썼다는 용장사(茸長寺)가 있다. 그 외에
도 마애불(磨崖佛)·왕릉 등이 많이 남아 있다. 금오산·고위산·도당산(都堂山)·양산(楊山) 일대 즉 경주시 인왕동(仁旺
洞)을 비롯한 4개 동과 경주군 내남면(內南面) 용장리(茸長里) 등 1,813만 4,635㎢의 지역이 1985년 사적 제311호
‘경주남산일원’으로 지정되었다.
(산행 개요)
1. 산행날짜 : 2013.10.05(토) 날씨 : 맑음
2. 산행시간 : 10시37분 ~ 14시56분(4시간19분) - 휴식 및 알탕시간 포함임
3. 이동,도상거리 : 8.18km, 6.97km
4. 평균속도 휴식포함 : 1.89km/h
휴식제외 : 2.53km/h
5. 고도 : 499 ~ 69(430)m - 금오산 정상이 468m이므로 GPS오차 감안
6. 오르막 거리, 속도 : 3.87km, 2.35km/h
7. 내리막 거리, 속도 : 4.09km, 2.58km/h
8. 산행코스
삼릉→상선암→상사바위→남산 금오봉(468m)→용장사지→설잠교→용장골
▼산행궤적입니다.
왼쪽 하단의 삼릉에서 시작하여 가운데 점심식사 장소가 정상이고 오른쪽 용장골로 하산했습니다.
▼ 삼릉주차장에 도착하여 산행 준비를 합니다.
바위로 이루어진 남산의 능선이 조망됩니다.
▼ 산행 준비중에 탄야님과 청아님, 게스트님입니다.
▼ 산행 준비중에 오랜만에 참석하신 큰돌님입니다.
▼ 산행 준비중에 화암님,젠틀님,국장님입니다.
▼ 산행 준비중에 지연님,정숙님,코발트색바다님입니다.
▼ 산행 준비중에 비타민님과 마음님입니다.
▼ 산행 준비중에 비발디님,포시즌님,초보님,JK님입니다.
▼ 산행 준비중에 박연님과 보조개님입니다.
▼ 들머리인 삼릉 입구를 지나갑니다.
▼ 현위치에서 금오봉, 용장사지를 지나 용장골로 하산하는 코스입니다.
▼ '여뀌'입니다.
▼ '고마리'입니다.
▼ '며느리배꼽'입니다.
▼ 무릎 관절에 좋다는 '쇠무릎'입니다.
▼ 갈림길에서 우리는 금오봉 쪽으로 이동합니다.
▼ 삼릉입니다.
배리삼릉은 경주 남산의 서쪽 기슭에 동서로 3개의 왕릉이 나란히 있어 붙여진 이름으로, 밑으로부터 신라
8대 아달라왕, 53대 신덕왕, 54대 경명왕 등 박씨 3왕의 무덤이라 전하고 있다. 무덤은 모두 원형으로 흙을
쌓아올린 형태를 하고 있다.
신덕왕릉이라 전해오는 가운데의 무덤은 1953년과 1963년에 도굴 당하여, 내부를 조사한 결과 굴식돌방무덤
(횡혈식석실묘)임을 확인하였다. 무덤에는 돌방 벽면에 병풍을 돌려 세워 놓은 것처럼 동·서 양벽의 일부에
색이 칠해져 있는데, 이것은 본격적인 벽화는 아니지만 벽화가 그려지지 않은 경주의 신라 무덤에서는 처음
발견되는 것으로 주목되는 자료이다. 색은 붉은색, 황색, 백색, 군청색, 감청색으로 되어있고, 12폭으로 되어
있다.
배리삼릉의 주인공이 신라의 박씨 3왕이라 전하고 있지만 확실한 기록은 없고 신라 초기의 아달라왕과 신덕왕,
경명왕 사이에는 무려 700여년의 차이가 있어 이들의 무덤이 한곳에 모여있다는 사실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또한 신라 초기에는 이와 같은 대형무덤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었다. 고 합니다.
▼ 사람이 많이 다니는 곳에는 훼손을 방지하기 위해 데크를 설치해두었습니다.
▼ 조선시대 숭유억불 정책의 산물로 목잘린 석불입니다.
석가여래좌상 (시도유형문화재 제158호)
경주시 배동 산72-6번지에 위치한 삼릉계곡 석조석가 여래좌상은 삼릉에서 개울을 따라
약 1km쯤 올라가면 길옆바위 위에 목이 없는 채 결가부좌하고 있는 석불좌상이 보인다.
높이가 1.6m, 무릎 넓이가 1.56m되는 큰좌불이다. 70년대 중반까지 동남쪽계곡에 묻혀있던
것을 발굴하여 지금 장소로 옮겨놓은 것이기 때문에 마멸이 심하지 않고 옷주름이 또렷하게
남아 있다. 특히 왼쪽 어깨에서 가사끈을 매듭지어 무릎아래로 늘어뜨렸는데 이는 우리나라의
특색있는 장식품인 매듭이 먼 신라때부터 이어져 왔음을 보여준다.
사실적이며 기백이 넘치는 조각 수법으로 보아 통일신라시대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 삼릉계곡마애관음보살상입니다.
경주 남산의 삼릉계곡에 있는 이 불상은 돌기둥 같은 암벽에 돋을새김한 것으로 연꽃무늬 대좌(臺座)위에
서 있는 관음보살상이다.
머리에는 보관(寶冠)을 쓰고 있으며, 만면에 미소를 띤 얼굴은 부처의 자비스러움이 잘 표현되어 있다. 손에는
보병(寶甁)을 들고 있어 보관과 함께 이 불상이 현세에서 자비로써 중생을 구제한다는 관음보살임을 알 수 있다.
불상 뒷면에는 기둥 모양의 바위가 광배(光背) 역할을 하고 있는데, 자연미에 인공미를 가한 느낌이다.
이 불상은 정확한 연대와 조각자가 알려져 있지 않으나, 통일신라시대인 8∼9세기 작품으로 추정된다.
(문화재청 사진 자료 퍼옴)
▼ 삼릉계곡 석조여래좌상 앞에서 마하 후미대장님입니다.
▼ 삼릉계곡 석조여래좌상 앞에서 박연님입니다.
▼ 삼릉 석조여래좌상에서 조금오른 후 선각육존불 방향으로 들어 갑니다.
▼ 선각육존불의 설명입니다.
▼ 앞쪽(왼족) 아미타삼존의 모습이 새겨져 있습니다.
▼ 오른쪽 석가삼존의 그림입니다.
▼ '며느리밥풀꽃'입니다.
▼ 삼릉계곡의 석불 좌상 설명입니다.
▼ 삼릉계곡 석불좌상 앞에서 개미님입니다.
▼ 삼릉계곡 석불좌상앞에서 비타민님입니다.
▼ 삼릉계곡 석불좌상입니다. 보수한 부분이 눈에 띄게 드러납니다.
▼ 석불좌상 바로 뒤에는 불공을 드리기위한 조그마한 석굴이 조성되어 있었습니다.
▼ 삼릉게곡 석불좌상에서 초이님입니다.
▼ 삼릉계곡 석불좌상에서 다솜님입니다.
▼ 석불좌상에서 나와 상선암 방향으로 오르막을 재촉합니다.
▼ '고들빼기'입니다.
▼ 상선암에 도착했습니다.
삼릉계곡의 조그마한 절이지만 금오봉 오르는 길목에 있어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습니다.
근래에 설립된 절인지 건물이 왜소하고 초라하게 보여 절다운 모습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 선각보살입상인데 넘어진 채로방치되어 있었습니다.
▼ 위에서 바라본 상선암입니다.
▼ 붕괴위험으로 보수공사중인 관계로 마애석가여래좌상은 가보지 못하고 우회길로 이동해야 했습니다.
▼ 우리가 가보지 못한 마애석가여래불 모습입니다. 문화재청 사이트에서 퍼 왔습니다.
경상북도 경주시 배동의 거대한 자연 바위벽에 새긴 앉아 있는 모습의 석가여래불로 높이는 6m이다.
몸을 약간 뒤로 젖히고 있으며, 반쯤 뜬 눈은 속세의 중생을 굽어 살펴보는 것 같다. 머리에서 어깨까지는
입체감있게 깊게 새겨서 돋보이게 한 반면 몸체는 아주 얕게 새겼다.
전체적인 양식으로 보아 통일신라 후기에 유행하던 양식의 마애불로 추정된다.(문화재청 사이트에서 퍼옴)
▼ 산행중 이런 바위들이 눈에 많이 들어왔습니다.
이런 바위들이 많아서 자연스럽게 석불이나 탑들이 조성된 것 같습니다.
▼ 삼거리에서 우리는 금오봉으로 향해 길을 이어가야 합니다.
▼ 전망대에서 바라본 경주 들판입니다 .
▼ 경주시내를 배경으로 국장님과 비발디님입니다.
▼ 경주시내를 배경으로 정숙님과 박연님입니다 .
▼ 경주시내 전경입니다. 대릉원과 반월성이 눈에 들어옵니다.
▼ 경주시내를 배경으로 젠틀님입니다.
▼ 경주시내를 배경으로 화암님입니다.
▼ 경주 들판을 배경으로 솔미님, 게스트님, 다솜님, 큰돌님입니다 .
▼ 경주 들판을 배경으로 비발디님입니다.
▼ 경주 들판을 배경으로 송산님과 지연님입니다.
▼ 경주 들판을 배경으로 국장님입니다.
▼ 전망대에서 박연님,정숙님,젠틀님,화암님입니다.
▼ 전망대에서 마하님입니다
▼ 전망대에서 바라본 태종 무열왕릉입니다.
▼ 전망대에서 경주 시내에 있는 대릉원도 빤히 볼 수 있습니다.
▼ 금송정터에 올랐습니다. 조망이 좋습니다 .
▼ 앞서간 회원들이 상사바위 부근에서 공사중인 여래좌상을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 금송정 옆 바위전망대에서 정숙님,젠틀님,송산님,지연님,국장님,비발디님입니다.
▼ 금송정터에서 송산님입니다.
▼ 금송정터에서 박연님입니다.
▼ 금송정터에서 지연님입니다.
▼ 상사바위에서 박연님입니다.
▼ 상사바위에서 비발디님입니다.
▼ 상사바위에서 지연님입니다.
▼ 상사바위에서 정숙님입니다.
▼ 상사바위에서 국장님과 비발디님입니다.
▼ 상사바위에서 젠틀님입니다.
▼ 상사바위에서 젠틀님과 국장님입니다.
▼ 상사바위에서 국장님입니다.
▼ 상사바위에서 보니 마애석가여래좌상의 보수공사 광경을 자세히 볼 수 있었습니다.
▼ 상사바위에서 시계방향으로 젠틀님(좌측부터),박연님,비발디님,화암님,정숙님,국장님입니다.
▼ 상사바위에서 바라본 상선암 전경입니다 .
▼ 화암님이 뭘 찍고 계시는지????? 분위기가 엄숙합니다.ㅎㅎ
▼ 이어지는 길들은 소나무 우거진 그늘길이었습니다.
▼ 석가여래좌상을 배경으로 정숙님입니다.
▼ 석가여래좌상을 배경으로 국장님입니다.
▼ 석가여래좌상을 배경으로 젠틀님입니다
▼ 석가여래좌상을 배경으로 비발디님입니다
▼ 전망대에서 국장님입니다.
▼ 남산 금오봉(산)에 도착했습니다.
▼ 금오산 정상에서 비발디님입니다.
▼ 금오산 정상에서 송산님입니다.
▼ 금오산 정상에서 박연님입니다.
▼ 금오산 정상에서 국장님입니다.
▼ 금오산 정상에서 젠틀님입니다.
▼ 금오산 정상에서 화암님입니다.
▼ 금오산 정상에서 정숙님입니다.
▼ 금오산 정상에서 솔미게스트님, 솔미님,다솜님,큰돌님입니다.
▼ 금오산 정상에서 솔미님입니다.
▼ 금오산 정상에서 마하님입니다.
▼ 금오산 정상 바로 옆에서 점심식사를 합니다.
▼ '미역취'입니다.
▼ 정상 단체 촬영입니다.
▼ 금오산 정상 이정표입니다. 우리는 용장사지 방향으로 길을 이어가야 합니다.
▼ 단체 촬영후 용장사지 방향으로 하산을 시작합니다.
▼ '구절초'입니다 .
▼ 비파골 계곡의 전설이라고.....
▼ 삼거리에서 용장사지 방향으로길을 연결합니다.
▼ 하산길에 카카님과 마하님입니다.
▼ 삼거리에서 다시 용장사지 방향으로 길을 이어가야 합니다.
▼ 용장골에 대한 설명입니다.
▼ 용장골 하산중에 마하님입니다.
▼ 아래 보이는 계곡이 남산에서 가장 계곡이 깊다는 용장계곡입니다 .
▼ 나뭇잎들도 가을을 재촉하듯이 붉게 물들어가고 있습니다.
▼ 탑의 상층부는 어디로 가고 탑신과 한층만이 남아 있습니다.
▼ 가을하늘을 배경으로 박연님입니다 .
▼ 가을하늘을 배경으로 국장님입니다
▼ 가을하늘을 배경으로 정숙님입니다
▼ 가을하늘을 배경으로 젠틀님입니다
▼ 가을하늘을 배경으로 지연님과 코발트색바다님입니다
▼ 가을하늘을 배경으로 J.K님과 비타민님입니다
▼ 가을하늘을 배경으로 솔미님,다솜님,게스트님입니다
▼ 가을하늘을 배경으로 솔미님입니다
▼ 용장사터의 삼층석탑 설명입니다.
▼ 용장사터 삼층석탑을 배경으로 샛별님과 박연님입니다.
▼ 용장사터 삼층석탑을 배경으로 송산님입니다.
▼ 용장사터 삼층석탑을 배경으로 소(牛)님들입니다.
좌로부터 카카님,정숙님,청아님,하리님,송산님, 앞줄 송아지인 초이님,지로님입니다.
▼ 용장사터 삼층석탑을 배경으로 지연님입니다 .
▼ 용장사터 삼층석탑을 배경으로 젠틀님입니다 .
▼ 용장사터 삼층석탑을 배경으로 국장님입니다 .
▼ 용장사터 삼층석탑을 배경으로 솔미님입니다 .
▼ 용장사터 삼층석탑을 배경으로 솔사랑님입니다 .
▼ 용장사터 삼층석탑을 배경으로 코발트색바다님입니다 .
▼ 용장사터를 향해 하산길에 작은 로프구간도 만납니다. 국장님입니다.
▼ 작은 로프구간에서 코발트색 바다님입니다.
▼ 작은 로프구간에서 가비앙님입니다.
■ 용장사에 대하여.......
민족 항일기 이 계곡을 발굴 조사할 때 용장사라고 쓴 기와조각이 발견, 확인되었다. 이 절은 신라시대에 창건된
사찰로서 유가종(瑜伽宗)의 고승인 대현(大賢)이 살고 있었는데, 그가 이 절에 있는 장륙상(丈六像)의 주위를 돌며
예배하면 불상도 그를 따라 얼굴을 돌렸다고 한다.
또, 조선 초기에는 말년에 승려가 된 김시습(金時習)이 이절에 기거하면서 『금오신화(金鰲神話)』를 썼는데 이때
까지만 해도 용장사가 존재하였음을 알 수 있다. 현재 이 절터에는 보물 제187호인 석불좌상, 보물 제186호인
삼층석탑, 보물 제913호인 마애여래좌상 등 중요한 문화재들이 산재하고 있다. 이 중 석불좌상은 자연석의 기단부
위에 연화(蓮華)를 양각한 3층의 원형좌대를 탑의 옥개석과 같이 놓고 그 위에 불상을 안치하였다. 『삼국유사』를
보면 신라의 고승 태현(太賢)이 이 불상 주위를 돌면서 참배하였다는 이야기가 있다.
또, 삼층석탑도 자연석을 지대석으로 이용하고 그 위에 석탑을 올린 것으로 용장사 주위의 계곡 어디에서나 이 탑
을 볼 수 있게 건립하였다. 불상보다 더 높은 위치에 탑이 세워진 것은 자연지형을 이용하여 자연과의 조화를 이루
기 위해서이며, 탑과 대좌가 자연석을 기단으로 한 것도 이러한 의미에서이다. 또, 원형불상대좌 옆에 있는 마애여
래좌상은 거의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수려한 작품이다. 상호(相好)는 단아하고 머리에는 나발이 선명하며 의문(衣
文)은 가는 평행선으로 음각하였다. 이 밖에도 삼층석탑의 위쪽에는 폐탑(廢塔)이 있으며, 용장사계가 끝나는 산꼭
대기 바위에는 거대한 불좌(佛座)가 있다. 자연암석 위에 연꽃을 새긴 것으로 지름 1.5m, 둘레 5.5m이다.
▼ 용장사지 석조여래좌상(보물 제187호 ) 입니다.
남산 전역에서도 손꼽히는 큰 사찰이었던 용장사터를 내려다보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머리 부분은 없어졌고 손과 몸체 일부가 남아 있는데 대좌에 비해서 불상은 작은 편이다. 목에는 3줄의 뚜렷한
삼도가 있고 어깨는 넓지 않으며, 가슴 또한 풍만하지 않은 체구로 어떤 승려의 자세를 보고 만든 것으로 보인다.
불상이 입고 있는 옷은 양 어깨를 모두 감싸고 있으며, 옷자락이 대좌(臺座) 윗부분까지 흘러 내리는데, 마치
레이스가 달린 것처럼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대좌는 자연기단 위에 있는 특이한 3층탑이라 생각될 만큼
특이한 원형인데, 맨 윗단에는 연꽃무늬를 새겨 놓았다.
이 석불은 특이한 대좌 뿐 아니라 석불 자체의 사실적 표현이 작품의 격을 높여주며, 『삼국유사』에서 보이는
유명한 승려 대현과 깊이 관련되어 있는 유명한 불상이다. 대현의 활동 기간에 제작되었다고 보아 8세기 중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 용장사지 마애여래좌상은 사진을 찍지 못해 아래 사진 퍼왔습니다.
▼ 용장사지 석조여래좌상 앞에서 국장님입니다.
▼ 용장사지 석조여래좌상 앞에서 코발트색 바다님입니다.
▼ 용장사지 석조여래좌상 앞에서 마하님입니다. 자세 나옵니다.
▼ 배경 좋은 곳에서 다솜님,게스트님, 솔미님입니다.
▼ 큰돌님이 추가 되었네요.ㅎㅎㅎ
▼ 하산길에 짧은 산죽길도 만납니다.
▼ 곳곳에 주춧돌로 사용했던 구멍파인 돌들이 자주 눈에 띄입니다.
▼ 출렁다리인 설잠교(雪岑橋)를 지납니다 .
설잠은 매월당 김시습의 법명이며 법명을 따서 이 다리이름을 붙인거 같습니다.
설잠은 눈 설(雪), 봉우리 잠(岑) 즉 눈봉우리를 말하는데.....
▼ 하산길 막바지에 설치된 용장사지에 대한 설명입니다.
▼ 하산길 시냇가에서 솔사랑님 게스트님입니다.
▼ 시냇가 암벽 앞에서 국장님입니다.
▼ '등골나물'입니다.
▼ 일부는 이곳에서 발을 담그고 있습니다 .
▼ 용장사는 매월당 김시습과 인연이 깊은 곳이라 김시습에 대한 글들이 많습니다 .
(김시습에 대하여....)
본관 강릉(江陵). 자 열경(悅卿). 호 매월당(梅月堂)·동봉(東峰)·청한자(淸寒子)·벽산(碧山). 법호 설잠(雪岑).
시호 청간(淸簡). 생육신(生六臣)의 한 사람이다. 서울 성균관 부근에 있던 사저(私邸)에서 부친 김일성의 아들
로 출생하였으며, 신동·신재(神才)로 이름이 높았다.
3세 때 보리를 맷돌에 가는 것을 보고 “비는 아니 오는데 천둥소리 어디서 나는가, 누른 구름 조각조각 사방
으로 흩어지네(無雨雷聲何處動 黃雲片片四方分)”라는 시를 읊었다 하며, 5세 때 이 소식을 들은 세종에게
불려가 총애를 받았다.
15세 되던 해에 어머니를 여의고 외가에 몸을 의탁했으나, 3년이 채 못 되어 외숙모도 별세하여 다시 상경했을
때는 아버지도 중병을 앓고 있었다. 이러한 가정적 역경 속에서 훈련원 도정(都正) 남효례(南孝禮)의 딸을 아내
로 맞이하였으나 그의 앞길은 순탄하지 못하였다.
이어 삼각산 중흥사(重興寺)에서 공부하다가 수양대군이 단종을 내몰고 왕위에 올랐다는 소식을 듣고 통분하
여, 책을 태워버리고 중이 되어 이름을 설잠이라 하고 전국으로 방랑의 길을 떠났다. 북으로 안시향령(安市香
嶺), 동으로 금강산과 오대산, 남으로 다도해(多島海)에 이르기까지 9년간을 방랑하면서 《탕유관서록(宕遊關
西錄)》 《탕유관동록(宕遊關東錄)》 《탕유호남록(宕遊湖南錄)》 등을 정리하여 그 후지(後志)를 썼다.
1463년(세조 9) 효령대군(孝寧大君)의 권유로 잠시 세조의 불경언해(佛經諺解) 사업을 도와 내불당(內佛堂)에
서 교정 일을 보았으나 1465년(세조 11) 다시 경주 남산에 금오산실(金鰲山室)을 짓고 입산하였다. 2년 후
효령대군의 청으로 잠깐 원각사(圓覺寺) 낙성회에 참가한 일이 있으나 누차 세조의 소명(召命)을 받고도 거절,
금오산실에서 한국 최초의 한문소설 《금오신화(金鰲新話)》를 지었고, 《산거백영(山居百詠)》(1468)을
썼다.
이곳에서 6∼7년을 보낸 후 다시 상경하여 성동(城東)에서 농사를 지으며 《산거백영 후지》(1476)를 썼다.
1481년(성종 12)에 환속(還俗), 안씨(安氏)를 아내로 맞이하였다. 그러나 1483년 다시 서울을 등지고 방랑의
길을 나섰다가 충남 부여(扶餘)의 무량사(無量寺)에서 죽었다.
그는 끝까지 절개를 지켰고, 유·불(儒佛) 정신을 아울러 포섭한 사상과 탁월한 문장으로 일세를 풍미하였다.
1782년(정조 6) 이조판서에 추증, 영월(寧越)의 육신사(六臣祠)에 배향(配享)되었다.
▼ 날머리 직전의 돌탑밭에서 슈가미야님,마하님,개미님입니다.
▼ 절골약사여래좌상은 시간 관계상 통과합니다.
▼ 이건 또 뭔가요? 누군지 다 아시지요? 48시간내 삭제하겠습니다 .
▼ 용장마을 750m 전방 이정표입니다 .
▼ '물봉선'입니다.
▼ 날머리 용장마을입니다.
▼ 날머리에서 초이님입니다.
▼ 용장골 주차장에 도착했습니다.
역사공부를 겸한 힐링산행 오늘은 여기서 마무리했습니다.
경주 남산은 어느곳으로 산행하던지 역사의 현장입니다. 다음에는 또 다르 코스로.....
수고하신 산행위원님들과 함께한 회원님들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