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나 난닝구 궁물이다, 어쩔래?
(서프라이즈 / 가을들녘 / 2009-10-20)
(※ 아까비뷰에 수원 장안에 사시는 분께서 한나라당 시의원 하던 민주당 이찬열에게 투표를 해야 하나, 시원스럽게 '명박이 독재 타도!'를 내걸고 선거에 나선 민노당 안동섭이에게 한 표 찍어줘야 하나 고민하신다는 글을 보고 한마디 얹습니다. 댓글로 쓸려다 길어질 것 같아 원글로 세웁니다.)
저는 지난 4월 재보선 당시 시흥시장 재선거에서 '시민 후보'에게 한 표를 던졌습니다. 머리털 나고 처음으로 김대중/노무현의 사진을 내건 당의 후보가 버젓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당시 지역의 진보시민단체가 하나 되어 지지한 시민 후보에게 제 소중한 한 표를 행사했습니다. 투표하면서 어차피 안 될 줄 알고 찍었습니다. 민주당 후보 또한 제 기준에 턱없이 부족했기에 누가 되거나 말거나 신경 쓰지 말고 내 속 편한 후보에게 투표하자는 생각으로 그리했습니다. 선거 막판에 민주당 후보와 한나라당 후보가 초박빙이란 것 알았지만, 촛불 시민들이 똘똘 뭉쳐 지지한 시민 후보에게 투표했습니다.
밤이 되면서 재보선 개표결과가 TV화면 아래 자막으로 나오더군요. 딱 10분 만에 제가 찍은 시민 후보의 낙선은 확실해졌는데, 한나라당 후보와 민주당 후보가 엄청나게 치열한 개표전쟁을 치르더군요. 그 순간, 그 개표현황 자막을 보면서… 저는 제가 찍지도 않은 민주당 후보의 당선을 바랬습니다. 내가 찍은 표가 죽은 표가 되어버리고, 저는 제가 찍지도 않은 후보의 당선을 간절히 바랬습니다. 적어도 한나라당 후보가 당선되는 꼴은 정말 보기 싫었나 봅니다. 표는 A에게 찍고 개표가 시작되니 B를 응원하는 제 꼴이 좀 우습긴 했지만, 워낙 제가 궁물에 난닝구이다보니 그렇게 되더라고요.
네, 그동안 쭉~ 민노당과 진보신당에 투표를 해온 분들은 저의 심리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분들은 권영길의 낙선이 확실해진 뒤에도 이회창과 엎치락뒤치락 하는 김대중/노무현 두 대통령님의 당선/낙선 여부에 마음이 조마조마하지 않을 만큼의 대인배들이시며, '조직'과 '대의'를 위해 과감하게 사표가 될 것을 뻔히 알면서도 초박빙의 선거에서 군소후보에게 투표하시는 분들이니 저 같은 소인배가 얼마나 같잖게 보이시겠습니까? 이해를 바라지 않습니다. 제가 그분들의 속내를 이해할 수 없는 것처럼 서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은 있게 마련이겠지요.
그때 다짐했습니다. "사표가 될 것이 확실한 투표는 하지 않겠다. 질 것을 각오하고 선거를 치르는 것은 바보나 할 일이다. 될만한 놈들 중에 덜 나쁜 놈을 뽑아서 찍어주겠다."라고 말이죠.
흔들리는 분들 계신 것으로 압니다. 장안/상록을/양산/강릉/충북 4군에 거주하시는 많은 분들께서 그다지 맘에 들지 않는 반찬거리 내놓고 밥 먹으라고 보채는 민주당과 진보정당들에 불만이 있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찌합니까? 이것이 우리가 현재 갖고 있는 힘의 맥시멈인데요.
서프앙들 입장에서 보면, 최선은 '참여정당'에서 모든 지역구에 후보를 내놓고 선거를 치르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힘이 없으니까 그렇게 못 했습니다.
안산에서는 민주당에서 최초에 상록갑의 전해철이나 충남 금산/논산의 안희정을 공공연히 거론하기도 했지만, 두 분 모두 지역구 옮기는 정치 하지 않겠다며 사양했습니다. 잘하신 결정인데, 아무튼 우리는 안산에서도 후보를 내놓지 못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민노당/진보신당/창조한국당과 함께 임종인을 우리들의 후보로 옹립하지도 못했습니다.
이찬열 혹은 손학규가 수원장안에서 후보가 될 것이 거의 확실한 상황을 지켜보면서 '노무현의 후예'를 독자 후보로 내세울 엄두도 내지 못했고, 양산에서처럼 우리 후보를 민주당에 밀어넣어 이찬열과의 경쟁도 시도하지 못했습니다.
아쉽지만, 인정해야 합니다. 이것이 지금 우리들의 실력이라는 것을.
이찬열과 김영환, 김재목, 정범구가 다시 정치판에 나서기 위해 노력하는 동안 우리 쪽에서는 그만큼 시간과 돈과 열정을 투입해 지역을 누빈 일꾼이 없었다는 사실을 먼저 인정해야 합니다.
내키지 않는 것은 매 한 가지 일 겁니다.
민주당과 친노의 입장에서는 노무현 대통령님에게 저주를 퍼붓고, 열린우리당 좌초의 총알을 날린 임종인이 마뜩찮고, 민/진/창과 함께 우리들 모두가 노무현 대통령 탄핵의 주역, 그 원한을 아직 잊을 수 없는 김영환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을 것입니다. 노무현 대통령님을 향해 '경포대(경제를 포기한 대통령)'라는 비아냥을 보낸 손학규와 그의 수하 이찬열이 못마땅한 게 당연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은 선거국면에서는 판을 크게 봐야 합니다.
선거날 되지도 않을 후보에게 투표하고, 제가 4월에 했던 것처럼 개표 시작하면 내가 찍지도 않은 후보의 당선을 응원하실 거면 아예 될만한 후보에게 투표하십시오. 내가 찍은 후보가 되거나 말거나 그의 표가 몇 %만 되면 된다, 한나라당이 되거나 민주당이 되거나 관심 없다고 하시면 자신의 소신에 따라 군소후보에게 투표하면 됩니다.
몇 번을 이곳에서 말씀드립니다.
나의 한 표를 저들에게 내어주고, 송인배에게 표를 몰아 줄 것을 당당하게 요구하는 게 더 낫다는 게 저의 판단입니다.
양산에서는 '기호 2번 민주당 송인배'에게 투표해 줄 것을 바라는 마음으로, 다른 지역구에서는 '기호 X번 다른 당 아무개'에게 투표해 줄 것을 바라는 마음은 아무리 생각해도 당당하지가 못합니다.
송인배는 민주당 후보로 나와서 당선이 꼭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송인배에게 나중에 '친노 참여정당'이 성공적으로 안착한 후에도 '민주당 탈당, 참여정당 입당'을 권유해서는 안 됩니다. 그게 정치에서의 도의입니다.
저는 이번 선거를 노무현 가문의 막내아들 송인배를 민주당에 양자 입적시키는 선거라고 봅니다. 아버지 잃고 망한 가문에서 일단 멸문지화의 위기에서 벗어나 새로운 지도자를 세워 다시 가문을 바로 세우기 전에 코앞에 닥친 선거에서 송인배를 민주당에 부탁했으면, 크게 봐서, 민주당을 지지하는 게 지금 친노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네, 저 궁물이고 난닝구입니다. 지역주의 정당 민주당이 갖고 있는 15%의 양산 호남표가 저는 무척이나 탐이 납니다. 어차피 30% 정도 될 투표율에 늘 무서운 응집력을 보여주는 호남표는 너무너무 욕심을 부리고 싶습니다.
네, 저… 지역주의에 기생하는 개새끼입니다. 송인배를 위해서, 이게 제가 할 수 있는 전부이기에 저는 이렇게밖에 글 못 씁니다. 송인배만 없었으면, 이해찬/한명숙/유시민/문재인/이병완 이 다섯 분의 나의 지도자가 '기호 2번 민주당 송인배' 지지해달라고 양산시를 누비지만 않는다면, 저는 애초부터 이번 재선거와 관련해서 입을 다물어 버렸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저는 계속 말을 할 겁니다. 제 주위사람들을 설득할 겁니다. 읍소도 할 겁니다. 제발 우리 송인배 살려서, 노무현 대통령님 원한 조금이나마 풀어드리고, 복수의 소심한 계기라도 마련해보자고 말입니다.
(cL) 가을들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