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5장
의롭다 인정받은 다음에
평화, 구원, 생명이 왕 노릇 하는 은혜
(찬송 180장)
2023-2-10, 금
맥락과 의미
1-3장에서 모든 사람은 죄인이라고 말했습니다. 3장 후반-4장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롭다고 인정해준다고 말했습니다.
5-8장은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새생명에 대해서 말합니다.
1. 의롭다 인정받았으니 하나님과 더불어 평화와 구원을 누리자(1-11절)
2. 의롭게 하심의 은혜로 왕 노릇하며 영생을 누리자(12-21절)
1. 의롭다 인정받았으니 하나님과 더불어 평화와 구원을 누리자(1-11절)
1절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바로 앞쪽 4장을 한 번 더 요약합니다.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은 성도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평화)을 누리자.” 의롭게 되는 것에서 화평으로 한 걸음 더 나갑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화평을 누리자고 합니다. 은혜를 향하여 나가는 것입니다. 12절의 ‘들어옴’과 비슷합니다. 의롭게 되는 것은 하나님과의 적대적 관계를 떠나 좋은 관계로 들어오는 것을 말합니다. 그 관계 안에서 평화를 누리는 것이 다음에 누리는 복입니다.
우리가 은혜로 구원받았으니 이제 우리가 평화를 누립니다. 구원의 능력을 체험하고, 생명을 누립니다(10절). 2절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는” 것을 통해서 이러한 것들을 누리게 됩니다. 3절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구원, 평화는 환난 가운데서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잘 알아야 합니다. 공짜로 화목하게 되었지만 사실은 공짜가 아닙니다. 사실 우리가 공짜로 구원받은 것도 예수님이 희생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희생하신 이유는 이제 우리도 예수님과 함께 고난을 받고 생명을 향해 나가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죄인으로 고통 가운데 있는 우리를 의롭다고 하신 다음에, 이제는 죄와 고통을 이길 수 있는 존재로 만들어 갑니다. 그래서 우리는 고통 가운데서 계속 이깁니다. 환난 가운데도 즐거워하니 환난은 인내를 이룹니다.
4절의 ‘이룬다’는 일하여 이루어낸다는 뜻입니다. 3-5절, 환난 가운데 인내로써 일하여 만들어냅니다. 인내 가운데 단련됨을 이루고, 단련됨이 소망을 만들어냅니다. 소망은 2절에 하나님의 영광을 ‘바란다’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우리의 소망은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그 영광은 칭의와 화목됨으로 시작합니다. 은혜로 이 화목됨이라는 문에 들어오는 것이 없으면 구원으로 나갈 수 없습니다. 문으로 들어온 다음에 더 나가야 합니다. 죄와 싸워 이겨서 고난 가운데서 영광을 얻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환난 가운데 즐거워하는 이 복은 엄청난 복입니다. 이미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나에게 죄가 발견되더라도 하나님은 나를 버리지 않으십니다. 나는 매 순간 회개하며 그리스도의 보혈 공로로 죄 용서받습니다. 나를 천국 백성으로 삼아주셨다는 확신이 있습니다. 그래서 환난 가운데서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또 이런 환난이 영광의 소망을 이루기 때문에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이 즐거움이 우리에게 있기 바랍니다.
‘의롭게 인정됨’(1절)과 ‘평화를 누림’을 9절에서 표현을 다르게 하여 말합니다.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 ‘의롭게 여겨짐’과 ‘구원’은 ‘의롭게 인정됨’과 ‘평화를 누림’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의롭게 여겨주시는 결과로 누리는 것이 구원입니다. 구원은 히브리말로 ‘승리’라는 뜻입니다. 구원은 넓은 의미로 의로움까지 포함되지만, 좁은 의미에서는 의로움의 다음 단계 삶을 말합니다. 평화와 구원은 같은 의미로 쓰입니다.
그런데 10절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의롭게 됨을 화목이라고 말합니다. 성경에서는 화목을 두 가지 의미로 쓰고 있습니다. 의롭게 된 것을 화목이라고 하고, 평화를 누리는 것도 화목이라고 합니다. 로마서 5장에서는 화목을 의롭게 되었다는 의미로 사용합니다.
화목이라는 것은 죄인 된 우리가 다시 하나님과의 관계 속으로 들어온 것을 의미합니다. 화목하게 된 자는 더 나아가 더욱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11절 “그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하게 하신.” 여기서 화목을 얻게 하셨다는 것은 과거형입니다. 화목을 얻게 하신 일이 이미 시작되었고, 이제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어떤 성도나 교회는 율법적 의만 말하고, 화목을 잘 알지 못합니다. 마치 내가 열심히 노력하고 봉사하기 때문에 구원받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사회봉사를 많이 하는 배경에는 슬프게도 구원에 대한 의심을 지우기 위한 목적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 봉사가 공로가 되어 자기 구원을 이루는 데 보탬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잘못된 구원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교인들은 자기가 노력하여 눈에 보이는 선행을 많이 할 때는 “구원받겠구나” 하는 확신이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선행이 부족해 보이면 구원에 대해 의심합니다. 신앙의 확신이 없고 양심에 불안이 항상 있습니다. 중세 교회가 그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16세기 종교개혁자들에게 성경 말씀을 올바로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사람의 노력이 아니라 은혜로 된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종교개혁자들의 후예인 우리들도 은혜로 화목하게 됨을 확신합니다.
어떤 교회와 성도는 죄 용서받았다는 것만 강조합니다. 그 다음 단계로 구원과 화평, 평화, 생명, 승리를 누리지 못합니다. 구원파와 같은 이단이 그렇습니다. 그들은 구원의 확신만 이야기하고 거룩한 삶이 빈약합니다.
죄 용서와 평화의 균형을 유지하려면 말씀을 바로 붙잡아야 합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올바른 방향을 잡고 은혜를 누리게 됩니다.
2. 의롭게 하심의 은혜로 왕 노릇하며 영생을 누리자(12-21절)
12절부터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의롭게 하셨기 때문에 생명이 왕 노릇 한다고 강조합니다. 앞에서 “화평”, “구원”을 말하고, 여기서는 “왕 노릇 함”을 말합니다. 구원과 평화에 대해서 보충 설명을 합니다. 14절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이라.” 아담은 하나의 타입입니다. 진짜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12절, 한 사람 아담으로 인해서 죄가 들어왔습니다. 14절, 죄 때문에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왕 노릇 했습니다. 그런데 15절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은 많은 사람에게 넘쳤느니라”. 한 사람 아담으로 인해서 죄가 들어왔습니다. 죄에 대한 정죄가 있습니다. 그 결과 죽음이 들어왔습니다. 다시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우리가 정죄를 받는 대신 의롭게 되었습니다. 의롭게 된 우리에게는 사망 대신 생명이 왕 노릇 합니다. 17절, 이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 아래에서 왕 노릇 하는 것입니다.
“왕 노릇 하는 것”이 5장 후반부터 6장 후반까지 중요한 단어입니다. 21절,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 같이”. 죄가 사망을 통해서 왕 노릇 합니다. 은혜는 의를 통해서 왕 노릇 합니다. 그 결과 영생으로 갑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은혜는 우리를 의롭다 함에서 시작해서 생명의 왕 노릇 하게 하고 마지막으로 영생을 누리게 합니다.
10절 “그(그리스도)의 살아나심으로(생명 안에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이 말을 17절이 반복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구원은 실제적 새 생명을 누리는 것입니다. 죄와 죽음이 아니라 의와 생명이 우리 삶에 가득합니다.
믿고 복종할 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하신 일은 죄 용서뿐만이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평화를 누리게 하십니다. 죄를 이기고 승리하게 하신 것도 포함됩니다. 오늘도 우리에게 승리가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도 이미 영생을 누리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죄 용서의 은혜를 매일매일 경험하십시오. 죄 용서의 은혜 위에서 화평을 누립시다. 고난 가운데 승리합시다. 그리스도의 생명을 우리의 것으로 누립시다.
우리가 죄와 싸워서 넘어지더라도 완전히 패배하는 것이 아닙니다. 실패도 축복으로 바꾸어주실 것입니다. 죄와 싸워서 지더라도 하나님께서는 진 것을 계산하지 않으십니다. 죄를 용서하시니까 이긴 것만 계속 쌓아서 우리에게 생명을 풍성하게 하십니다. 오늘도 어떠한 작은 유혹이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싸워 이기기를 바랍니다.
죽음의 세력들, 절망과 고통, 자연적으로는 힘든 상황이 생길 때 자연히 마음이 가라앉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자연적인 감정을 따르는 자가 아닙니다. 성령 안에서 새로운 존재가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이 부은 바 되었고, 생명이 있기 때문에 이런 것이 올 때마다 믿음으로 이깁니다.
우울감이 오고 죄의 유혹이 올 때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의지하여서 마귀와 싸워 이기고 죄와 싸워 이기고 생명을 취하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얼마나 풍요로운지를 삼위일체 하나님이 주신 생명의 은혜가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니 믿음으로 이 생명을 받고 나가는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의 승리와 왕 되심 안에서 우리도 승리하는 왕으로 살아갑시다.
1. 오늘 말씀을 통해 계시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 찬양합시다. 2. 하나님께서는 내게 무엇에 순종하라 하십니까? (회개, 감사, 사랑, 섬김 등) 오늘도 나는 주님과 함께 거하는 평안을 누리고 있습니까? 고난 가운데 있을 때에도 주님께서 나를 사랑하시고 나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 때문에 기뻐하며 감사합니까? |
조금 더 생각하기
<참고> “하나님과”(프로스, 1절) = ‘하나님을 향하여’ = 12절, “들어감” (프로스-아고게)
“하나님과”(프로스, 1절)는 하나님을 ‘향하여’입니다. 은혜를 향하여 나가는 것입니다. 12절, “들어감”(프로스-아고게)과 비슷합니다. 같은 전치사를 통해서 우리 영혼이 하나님께 나가는 것에 대해 말합니다.
<참고> 3-4장에서 말하는 ‘자랑’이라는 주제가 5장으로 이어짐
앞서 3-4장은 의로움과 자랑에 대해 말했습니다. 3장에서는, 하나님이 그리스도의 속죄하심을 믿는 자를 의롭게 하셨기에, 누구든지 자기의 행위를 자랑할 수 없습니다(3:27).
4장에서는, 아브라함이 할례를 받기 전에, 그의 후손이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기 전에, 자손과 땅의 복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을 믿은 것을 하나님께서는 의롭다고 인정하셨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도 의롭게 된 것을 자랑할 수 없습니다(4:1).
3,4장은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다는 것을 자랑합니다.
5장도 자랑에 대해 말합니다. “즐거워한다”(3,11절)는 직역하면 ‘자랑한다’입니다. 5장은 의롭게 된 이후의 삶에서 자랑하는 것을 말합니다. 의롭게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께 편안한 마음으로 나아가는 평화, 구원의 능력, 생명을 누리는 축복을 가르칩니다. 이 자랑은 고난 가운데서 누리는 자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