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글들을 보니 70년대 참 어려웠던 시절이 기억납니다.
비행기를 하려고 신문배달을 하고, 아이스케키를팔고,심지어자전거를훔치기까지…
참으로 눈물나는 사연입니다.
다행히도 저는 6학년때 아버님이 외국에서 049 키트 2대를 사다주셨습니다.
고1때 까지는 비행기 제작과 비행에 대해 부모님으로부터 전혀 간섭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야말로 복 받았죠.
Carl Goldberg Swordsman 키트와 Cox 049 엔진, 그리고 조종줄이 감겨있는 핸들이
포함된 풀세트 2대 이었습니다. 한동안 신나게 날렸죠. 다음은 국산 P-51D 인데
동체가 피나무로 되어서 무거워서 잘 날지 않아 다른 비행기 날개에 사용하던
1/4”발사를 얻어서 동체를 다시 만들어서 날렸습니다. 첫 개조기 입니다.
(동체의 한쪽면은 평평하고 다른 한쪽면은 익형으로 둥그렇습니다)
제가 다니던 휘문중학교의 물리반에는 상당한 U/C 고수의 고등학생 선배님들이
많아서 쉽게 제작과 비행을 배울수 있었습니다.
또한 주변에 학생과학 건물과 동학사, 한미과학사, 20세기 과학사등 많은과학사가
있었습니다. 가끔 삼선동과 종로5가, 신촌의 과학사에도 구경을 다녔습니다.
안국동, 계동 주변에는 유난히 학교가 많아서 늘 콩나물 시루 버스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중앙, 대동상고, 휘문, 숙명, 덕성, 중동…)
북아현동에 살았고 등교시는 8번 좌석(당인리-수유리), 하교시에는 일반버스를
이용했는데 학생요금이 좌석은 20원, 일반은 10원이었습니다.
(지금 버스요금의 약 1/50정도 입니다.)
한달용돈 3000원(하루 100원)을 군것질 자제하고 아무리 아껴도 1000원 밖에
모으지 못했고 이걸로는 발사 한장 또는 도프 한통밖에 사지 못했습니다.
발사를 사서 모아놓고 메샤슈미트를 완성하여 도프로 위장무늬까지칠해서날렸는데
작고 가벼워서 상당히 빨랐습니다. 어지러워서 띄우기 힘들 정도였습니다.
스케일 다운으로 수평미익이 상대적으로 작아서 안정성이 그다지 좋지 않았는데
테일 모멘트라는 말은 몰라도 스케일기 설계 노하우는 이때부터 조금씩 터득
했던것으로 생각됩니다.

우리집 옥상에서 U/C 049 니들을 맞추고 있는 모습입니다.

1970년 첫비행기인 Carl Goldberg사의 Swordsman (049 U/C) 입니다.

좌측부터 폐기처분 직전의 링마스터, 메셔슈미트, 스워즈맨, 파이퍼컵.

형님이 제작하여 물려준 30년된 049 U/C 스피트파이어.
Gullow’s 키트도면을 구하고 용돈을 아껴가며 1년에 걸쳐 발사를한장씩
사모으고 도프를 사모아서 자작한 기체입니다.

87년~99년도에 R/C로 받은 상이 열개도 넘지만 74년에 받은 이것이 제일 애착이갑니다.
저도 팔불출 인가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