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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51장
바벨론에 대한 대한 하나님의 심판 예언과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위로 2
(찬송 236장)
2023-6-28, 수
맥락과 의미
51장은 50장에 이어 바벨론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말합니다. 51:59-64에서는 바벨론에 대한 심판의 내용을 책에 기록하여 유프라데스 강에 던져 넣습니다. 바벨론뿐 아니라 모든 민족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확실히 이루어진다는 것을 확정하는 상징적인 행동입니다.
1. 바벨론을 멸망시키면서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는 여호와(1-14절)
2. 여호와는 창조주요 우상과 그 숭배자를 벌하시는 분임을 찬양(15-19절)
3. 바벨론이 행한 대로 심판을 당할 것(20-26절)
4. 하나님이 여러 나라를 불러서 바벨론을 심판하심(27-32절)
5. 하나님의 백성의 기도와 하나님의 응답(33-40절)
6. 바벨론의 멸망을 인한 찬양(41-49절)
1. 바벨론을 멸망시키면서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는 여호와(1-14절)
1절,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신다. 14절, 여호와께서 맹세하신다. 바벨론에 대해 일어날 일은 여호와께서 미리 계획하고 말씀하신 내용입니다.
1-4절: 하나님께서 멸망시키는 자의 무리, 즉 페르시아와 메대 연합국(고레스 왕)을 일으켜서 바벨론을 치실 것입니다. 그 예언은 주전 550년에 실제로 이루어졌습니다. 침략군은 바벨론의 청년을 아끼지 않고 그 군대를 진멸할 것입니다.
5-6절: 바벨론을 심판하는 것은 그분의 백성을 구원하기 위해서입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과 유다는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지”(알만) 않았기 때문입니다.
“버림받는다”(알만)는 ‘버림받아 과부가 된 자’라는 뜻입니다.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은 음행한 아내와 같은 이스라엘을 바벨론의 손으로 벌하시지만, 이혼하지는 않았습니다. 별거 상태에 두어 벌하시다가 다시 순결한 신부로 받아들이십니다.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거역하므로 죄과가 땅에 가득한 것은 전에 하나님의 백성이 행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포로로 간 바벨론은 더 악이 가득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에게 바벨론으로부터 도망하여 나와 생명을 구출하라고 하나님이 초대합니다. 바벨론에 있는 우상 숭배와 악에 참여하여 멸망당하지 말라고 합니다.
7-10절: 한때 여호와께서는 바벨론을 악한 나라들을 심판하는 도구로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 악한 바벨론을 보복하십니다. 바벨론 주위로 모여들었던 나라들과 바벨론의 군사들도 다 흩어질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의 백성은 이같이 찬양할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우리 공의를 드러내셨으니, 오라! 시온에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일을 선포하자!” 백성이 절대적으로 의롭다는 뜻은 아닙니다. 바벨론과의 분쟁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옳다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백성은 시온에 돌아와서 침묵하지 않을 것입니다. 여호와의 구원을 찬양하며 선포할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통해 죄와 마귀에게서 해방받은 우리는 더 찬양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11-14절: 바벨론에 메대를 보내서 멸하십니다. 바벨론의 멸망은 단순히 군사적 사건이 아니라 영적인 사건입니다. 여호와의 성전을 파괴한 바벨론에 대해 그분이 보복하십니다. 침략군은 메뚜기같이 와서 바벨론을 멸망시킬 것입니다.
2. 여호와는 창조주요 우상과 그 숭배자를 벌하시는 분임을 찬양(15-19절)
바벨론에 대한 심판 예언 말씀 중에 갑자기 여호와를 향한 찬양이 울려 퍼집니다.
15-19절은 10:12-16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7-10장에서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성전에 보내셔서 설교하게 하셨습니다. 바알을 숭배하는 그들에게 심판을 내리신다고 경고했습니다. 그 설교의 마지막 부분인 10:12-16에서 “우상은 아무것도 아니며 하나님이 징벌하실 것이요,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그 백성의 참된 기업이다”고 노래했습니다.
이제 그 경고에 불순종하여 성전은 파괴되고 백성은 바벨론으로 포로가 되어 있을 때, 과거의 성전에서의 찬양이 위로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의 완악함 가운데서 하나님을 찬양한 예레미야의 찬양은 이제 징계받는 백성들이 바벨론의 억압 가운데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찬양이 될 것입니다.
바벨론의 권력과 그들이 섬기는 우상과 신상을 하나님은 벌하실 것입니다. 오직 이스라엘이 경배하는 여호와 하나님이 만물을 만드신 분이요, 이스라엘의 “산업”(히브리어-나할, 헬라어-클레로노미아)입니다.
비록 약속의 땅을 잃어버린 포로된 백성이지만, 하나님 그분이 모든 안정과 축복의 근원이라 고백합니다. 그 고백 가운데서 포로기의 백성들은 회복의 날을 기다렸습니다. 때가 되면 그 땅으로 돌아가서 그 땅을 기업으로 누리게 하실 것입니다.
3. 바벨론이 행한 대로 심판을 당할 것(20-26절)
바벨론은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였습니다. 많은 나라를 파괴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메대-페르시아에 의해 동일하게 당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땅, 시온에 행한 것 때문에 하나님이 그들의 대적이 되어 심판하십니다.
4. 하나님이 여러 나라를 불러서 바벨론을 심판하심(27-32절)
“땅에 깃발을 세우며 나라들 가운데에 나팔을 불어서 나라들을 동원시켜” 바벨론을 공격할 나라들을 하나님이 불러 내십니다. “동원시켜”(27절), “준비시켜”(28절)는 ‘거룩하게 구별하라’(카다셔)는 뜻입니다.
페르시아와 메대는 그들의 탐욕에 따라 바벨론을 공격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섭리 가운데 그들을 하나님의 거룩한 일을 위한 직분자로 사용하십니다. 구약 성도들이 다시 성전에 와서 하나님께 경배하고 거룩한 삶을 살도록 하는 일에 이방 나라를 쓰십니다.
5. 하나님의 백성의 기도와 하나님의 응답(33-40절)
33절,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바벨론을 추수하듯이 치실 것입니다.
1) 하나님의 백성의 기도(34-35절)
시온의 주민과 하나님의 백성들이 기도하라고 초대합니다. 나의 육체를 먹은 바벨론의 잔인함이 바벨론에 돌아가기 원합니다.
2) 여호와의 응답(36-40절)
여호와께서 보복하겠다고 응답하십니다. 바벨론이 황폐하게 되어 야생동물이 거할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혐오의 대상과 탄식 거리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당한 일을 똑같이 당하게 하실 것입니다(9:11, 18:16). 그들을 도살장에 끌려가는 가축처럼 만들 것이라 약속하십니다.
6. 바벨론의 멸망을 인한 찬양(41-49절)
바벨론을 멸망시키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들은 사람들은 찬양합니다. 앞으로 바벨론이 멸망될 때 이 노래로 찬양할 것입니다.
41-44절: 바벨론의 멸망을 보는 사람들은 그들의 멸망을 이렇게 탄식할 것입니다. 유프라데스 강의 강물로 땅에 물을 대며 경제적 문화적 발전을 자랑하던 그 나라는 더 강한 나라에 의해 멸망할 것입니다. 거기에 사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나 여호와 하나님”이 바벨론의 우상 벨(마르독 우상의 다른 이름)을 그 거짓된 우상을 섬기던 바벨론에서 벌할 것입니다. 바벨론의 멸망은 그들이 섬기는 우상과 그 뒤에 있는 마귀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입니다.
45-49절: 바벨론의 멸망을 말씀하시는 여호와께서 그분의 백성을 향하여 얼굴을 돌리고 위로하십니다. “너희는 바벨론으로부터 나오라. 여호와의 진노로부터 피하라!” 6절에서 한 말을 반복합니다. 바벨론의 포로로부터 다시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오라고 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장소의 이동이 아니라 영적인 이동입니다. 바벨론이 극단적으로 보여 준 우상 숭배와 인간 자신을 자랑하는 그 교만으로부터 벗어나야 합니다.
전쟁의 소문으로 인해 두려워하지 말라고 위로합니다. “민족들이 서로 싸우며 전쟁의 혼란이 있지만,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이 바벨론의 우상과 신상을 심판하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하늘과 땅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이 바벨론으로 말미암아 기뻐 노래하리니.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 악한 나라의 멸망은 온 세상, 온 우주에 기쁨과 찬양의 날입니다.
마태복음 24:6에서 예수님께서도 성도들에게 말세에 여러 전쟁의 소문을 듣더라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때문에 많은 민족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지만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을 것이라고 격려하셨습니다(마 24:10, 13). 이 혼란들은 그리스도께서 구름을 타고 영광으로 오시는 날을 향해 나가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마 24:30).
고난 가운데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들은 이 땅에서 하나님을 멸시하는 바벨론과 같은 우상 숭배적인 정치, 경제, 문화를 파멸시킬 날을 소망합니다. 계시록은 성도들이 그날을 바라고 감사 찬양하도록 격려하십니다(계 18:20, 19:1-3).
7. 바벨론의 완전한 패망을 예언(54-58절)
바벨론의 부르짖는 소리를 생생하게 들려줍니다. 침략자들이 물같이 밀려와서 멸망시킬 것입니다. 이 군대는 만군의 여호와라 일컫는 하나님이 보복하기 위해 불러오신 군대입니다.
“백성들의 수고는 헛될 것이요 민족들의 수고는 불탈 것인즉.” 그 약속이 성취되어 하나님의 백성이 이스라엘 땅에 돌아와 성전을 재건할 때, 하박국 선지자도 같은 말로 백성을 격려할 것입니다.
“민족들이 불탈 것으로 수고하는 것과 열국이 헛된 일로 곤비하게 되는 것이 만군의 여호와께로서 말미암음이 아니냐? 대저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하리라.”(하박국 2:13, 14)
바벨론의 멸망, 나아가 그 당시 세계 나라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인류가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고 하나님 없이 행한 모든 수고들을 심판하는 것입니다. 앗수르를 멸망시키고 이집트를 누르고 세계를 제패하던 바벨론의 멸망 안에서 온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봅니다.
불경건한 인류에 대한 심판은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할” 새 하늘과 새 땅을 엽니다. 구약의 경건한 성도와 신약의 성도들은 바벨론 포로의 고난 가운데 참고 나아가 영원히 여호와를 찬양할 것입니다.
8. 바벨론에 대한 심판을 기록한 책을 유프라데스 강에 던져 넣음(59-64절)
59절: 바벨론에 대한 이 예언은 시드기야 왕 4년 (주전 593년)에 이루어진 것입니다. 바벨론이 예루살렘 성전을 일부 약탈하고 2차 포로로 백성들을 잡아간 주전 597년 이후, 4년째 되던 해입니다. 예루살렘의 집들과 성전을 불태우고 백성들을 3차 포로로 잡아갈 주전 586년보다 9년 전입니다.
60-63절: 시드기야 왕 때, 바벨론에 대해 반란을 일으키기 위해 에돔, 모압, 두로, 시돈 왕이 예루살렘에 모였습니다(27:3). 그 음모를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알고서는 시드기야 왕을 바벨론으로 소환한 듯합니다. 스라야는 왕의 시위 대장으로 예레미야의 비서 서기관 바룩의 형제였습니다.
예레미야는 바벨론에 대한 예언의 말씀을 기록한 책을 스라야에게 줍니다. 바벨론 땅에 가서 예언의 말씀을 읽고 책을 돌에 매어 유브라데스 강에 던지라고 합니다. 책이 강 밑으로 가라앉고 다시 일어나지 못하듯이 바벨론이 멸망할 것이라고 합니다. 여호와께서 그 땅에 사람과 짐승이 살지 못하리라고 하신 말씀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합니다.
계시록 18:21에서도 바벨론의 멸망에 대한 노래의 끝에 한 힘센 천사가 큰 돌을 바다에 던지며 바벨론의 멸망을 예언합니다.
64절: 예레미야의 예언의 말이 마쳤습니다. 예언 책의 끝입니다.
믿고 복종할 일
거대한 세계제국 바벨론을 통해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을 징계했습니다. 그러나 바벨론도 악하므로 그들도 심판하십니다. 바벨론은 페르시아에 의해 멸망하게 하고 하나님의 백성은 그 땅으로 회복시켰습니다.
바벨론은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자기를 높이는 모든 시대의 인간의 조직과 세력을 상징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그들의 죄 때문에 포로로 가 있는 바벨론의 악한 곳으로부터 떠나라고 명령하셨습니다(6, 45절).
그 바벨론 포로의 후손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습니다(마 1장). 우리 위해 십자가에서 희생하실 고난 받는 종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를 예언하던 이사야 53장도 그리스도를 영접하기 위해 “바벨론을 떠나라” 고 권고했습니다. “너희는 떠날찌어다 거기서 나오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찌어다”(사 52:11).
고린도후서 6:17은 그리스도의 피로 죄용서 받아 의롭게 된 성도들에게 이 이사야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세상의 더러움으로부터 나와서 자신을 거룩하게 지키라고 권면합니다.
신약의 교회도 이 바벨론과 같은 세상에서 악과 싸우며 고난 가운데 하나님 나라를 세우고 있습니다. 지금 시대는 형식적으로는 자유가 많아지는 듯하지만 사실상은 영적인 바벨론 포로됨이 더 심해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자기 쾌락과 물질적 풍요를 우상으로 삼아 무슨 일이든지 하고 있습니다.
인류 번성의 기초가 되는 가정, 결혼, 출산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그 현상의 중심에 있는 정신은 바벨론의 우상 벨과도 같습니다. 벨은 원래 없는 것이지만 우상의 뒤에는 마귀가 있습니다. “우상은 무엇이라 하느뇨 대저 이방인의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고전 10:19, 20).
우리는 믿지 않는 자들과 같은 공간에 살고, 친구가 되고, 동업자가 되도록 하나님이 우리를 두셨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으로부터 떠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정신성과 마귀적 영적 경향으로부터 우리를 근본적으로 분리합니다.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고, 그분의 말씀은 우리의 삶의 경계를 정해 줍니다. 마음대로 창조적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이 정해준 길로 걸어가며 우리의 창조성을 사용합니다. 말씀이 바로 좁은 길입니다.
세상은 우리가 자기들과 같이 행동하지 않는 것을 이상히 여겨 비난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세상의 악한 길로 가지 않습니다. 우리도 음란과 정욕과 방탕과 우상 숭배를 한 지난날이 족한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벧전 4:2, 3).
우리 개인, 가정, 교회가 바벨론의 악에 참여하였기 때문에 주님이 우리를 바벨론 포로와 같은 고난을 받게 하셨으면 달게 받으면서 회개하고 돌아갑니다. 그러나 우리의 고상한 삶 때문에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벧전 4:14)
우리가 자랑하는 벤처기업, 국방, 정치, 문화, 그 모두에는 바벨론이 스며들어 있음을 압시다. 인류의 성취를 자랑하는 사람들로부터 어느 정도 거리를 둡시다.
바벨론을 멸망시킨 페르시아의 군대를 메뚜기/황충(51:14, 28 참고 46:3, 얄라크, 아크리스)에 비유했습니다. 계시록 9:3, 6절은 같은 황충이 전쟁의 말과 같은 모습으로 온 땅을 괴롭게 할 것이라고 합니다. 바벨론의 고통은 그리스도 없는 세상이 그 악 가운데 당할 고통을 미리 보여 줍니다. 세상은 악 때문에 고통하지만, 하나님의 심판으로 멸망할 것입니다.
계시록 18장은 하나님을 대적하여 높아진 인간 중심의 세상, 그 바벨론은 멸망할 것이며, 그 멸망에 대해 노래합니다. “화 있도다! 큰 성, 견고한 성 바벨론이여!(10절) 하늘과 성도들과 사도들과 선지자들아, 그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라.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그에게 심판을 행하셨음이라.(20절)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및 땅 위에서 죽임을 당한 모든 자의 피가 이 성중에서 발견되었느니라.”(24절)
“그의 심판은 참되고 의로운지라. 음행으로 땅을 더럽게 한 큰 음녀(바벨론)를 심판하사 자기 종들의 피를 그 음녀의 손에 갚으셨도다.”(계 19:2) 이 찬양과 함께 하늘에서 내려 올 새 예루살렘에서 우리는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살 것입니다.
우리는 새 하늘과 새 땅을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성령 안에서 이미 맛보고 있습니다. 그 나라가 완전히 이루어질 소망 가운데 이 옛 하늘과 옛 땅에서 교회와 가정과 직업과 모든 활동에서 새 나라의 삶을 살아갑시다.
세상에 대해 우리는 근본적으로 비관적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 가운데서 삼위 하나님이 섭리로 일하시고 새 하늘과 새 땅을 누룩처럼 자라게 하시므로 우리는 근본적으로 낙관론자입니다. 슬픈 세상을 천국 소망 때문에 기쁘게 살아갑니다. 예수님께서 먼저 가신 좁은 길을 우리도 유쾌하게 걸어가도록, 주께서 우리 모두에게 빛과 힘을 주시길 기도합니다.
1. 오늘 말씀을 통해 계시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 찬양합시다. 2. 하나님께서는 내게 무엇에 순종하라 하십니까? (회개, 감사, 사랑, 섬김 등) 하나님을 떠나 있는 이 세상에서 불신자들과 어울려 살면서도 비관적으로 되지 않고 “낙관론자”가 될 수 있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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