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2.06 토 07:40
용담호 물안개
전북 100명산 완등을 향한 92번째 발걸음, 이번 목적지는 진안의 천반산이었습니다.
자전거를 차에 싣고 이른 아침 진안으로 향하는 길. 용담호를 지날 때쯤 차창 밖으로 마주한 풍경은 그야말로 '환상' 그 자체였습니다. 수면 위로 깔린 하얀 물안개는 호수를 집어삼킬 듯 피어오르고 있었다.
용담호를 에두르는 64km 환상 드라이브 코스도 유명하지만, 또 하나의 매력은 몽환적인 물안개인 것 같다.
상향마을 할머님들이 타주신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커피
동향면사무소 대신 조금 더 산에 가까운 상향마을회관에 주차했습니다. 라이딩 준비로 분주한 아침, 회관으로 '출근'하시는 할머님 두 분을 만났습니다. 넉살 좋게 인사를 건네고 염치 불고하고 부탁드린 믹스커피 한 잔. 할머님들이 흔쾌히 타주신 그 커피는 용담호의 물안개만큼이나 따뜻하고 달콤했습니다. 고마운 마음을 담아 챙겨온 대봉시 곶감을 나누어 드렸는데, 시골 마을의 정이 오가는 이 짧은 순간이 라이딩 전 최고의 에너지 보충이 되었습니다.
"난 쬐끔밖에 안 먹었어" – 89세 할머님의 귀여운 자부심
커피를 마시며 연세를 여쭤보니 놀라운 대답이 돌아옵니다. "잉, 97이여" 하시는 할머님 옆에서, 다른 할머님은 "난 쬐끔밖에 안 먹었어, 89이여". 89세가 '쬐끔'이 되는 이 마법 같은 대화에 한바탕 웃음꽃이 피었습니다. 100세를 앞둔 할머님들의 정정한 모습과 유머를 보니, 오늘 제가 오를 600고지 천반산은 그저 나지막한 언덕처럼 느껴질 만큼 큰 기운을 얻었습니다.
까칠한 천반산, 하지만 마음은 훈훈하게
마을의 정을 뒤로하고 시작된 천반산 길. 예상대로 멜바와 끌바가 이어지는 까칠한 코스였지만, 힘들 때마다 회관 할머님들의 유쾌한 농담이 떠올라 절로 미소가 지어졌습니다. 400고지 임도를 지나 주능선을 타다 걷다 반복하며 도달한 92번째 정상. 이번 완등은 상향마을 할머님들의 응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 같습니다.
▲09:37 응달의 눈은 녹지 않았다.
▲400고지 임도의 이정표에서 먹재까지 이어지는 짧은 오르막은 진안고원길 13구간의 일부분이다.
정상까지 올랐다가 되돌아 내려와 임도 갈림길에서 서쪽 장독바위까지 이어지는 길 역시 진안고원길 13구간이다.
천반산 라이딩은 진안고원 13구간과 약2.5km 정도 겹칩니다.
▲ 임도 끝- 멜바 끌바 시작
▲먹재는 진안과 장수를 잇는 길목이자, 숲이 너무 울창해서 햇빛이 '먹'고(가리고) 들어오지 않는, 그야말로 Dark & Gloomy한 숲길의 경계입니다. 즉, '먹' 구름이 낀 듯 그늘진 재라는 뜻이죠!
저의 생각은 힘들게 임도에서 300미터 멜바를 지고 올라왔더니... 숨은 턱 끝까지 차고! 다리는 후들거리고! '아, 배고파서 못 걷겠다! 일단 앉아서 뭐라도 '먹' 자!' 그래서 이 벤치에 앉아 에너지 보충(먹방)을 하고 다시 출발하는 '먹방 재충전 고개'라는 뜻에서 먹재가 된 것이 아닐까요!
진실은 저 너머에! 어쨌든 이 아름다운 길은 등산객들에게 에너지 보충의 휴식처가 되어주는 것은 확실합니다!
원래는 숲이 빽빽해서 햇빛이 잘 안 들어 어둡고 그늘진 고개라서 ‘먹재’인데, 겨울철이라 앙상한 나뭇가지의 숲은 햇빛만 쨍쨍하니 상황이 완전 반전됩니다.
▲능선을 따라 오르내리며 페달링할 때, 쭉쭉 뻗은 굴참나무들이 양옆에서 응원하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데크 계단만 오르면 곧 정상인 줄 알았는데, 150미터를 더 가야 한다.
천반산은 조선 중기의 정치가 정여립과 깊은 관련이 있는 역사적 장소이다. 정여립은 기축옥사(1589)라는 조선 최대의 옥사 사건의 중심 인물이다, 천반산 정상은 깃대봉이라 불리는데, 정여립이 무사들을 훈련시키며 이곳에 대동이라는 깃발을 꽂았다고 전해집니다.
망바위(망을 보던 자리),
뜀바위(말을 타고 뛰어넘었다는 전설),
말바위(바둑을 두었다는 장소),
장군바위(연설대 역활을 했던 곳),
송판서굴(은신처로 알려진 굴),
죽도 그리고 의암바위(목욕과 식사 전설이 깃든 바위) 등 그의 활동과 전설이 천반산 곳곳에 남아 있다.
얼마 전 내포역사인물길 2코스에서 백월산 산혜암으로 오르는 임도 중간에 있던 홍가신청난비가 떠올랐습니다.
홍가신은 정여립과의 친분 때문에 수원부사직에서 파직당한 억울한 피해자였습니다.
▲천반산의 이름은 산의 모양이 소반(밥상)처럼 평평하고 넓게 생겨 붙여졌다고 합니다.
▲천반산 정상에서 마이산을 조망할 수 있다.
그 외에 여러 산에서도 다른 각도에서 마이산을 조망할 수 있다.
△운장산 △구봉산 △지장산 △대덕산 △부귀산 △덕태산 △내동산 등의 정상부다.
▲정상 찍고 내려가니, 이제는 먹재가 아니라 갈재다.
숨차게 올라올 땐 간식이 필요했는데, 내려갈 땐 집밥이 기다리니 갈재가 딱 맞다.
▲장독바위과 밭에 재배하고 있는 이름모를 작물, 천향로 도로를 따라 구신마을의 술창고인데 야외 테이블에서 보는 계곡과 포도나무가 인상적이었다.
▲청송식당은 안 먹어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먹어본 사람이 없다는 맛집이란다.
천반산 라이딩은 잊어버릴지언정, 청송식당의 인기 메뉴 추어탕은 잊고 싶지 않다.
첫댓글 눈이 살짝 덮힌게 고마운~
쬐금먹은 나이가 89세인~
내려오면 급경사를 오를땐 모르는~
만사에 고마움을 ^^
90차 백련산 글램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