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봉 봉수대]
알람 소리가 울리기 전에 눈을 떴다. 평소보다 한 시간 빠르다. 몸을 이리 뒹굴 저리 뒹굴 하다 이불을 걷어내고 침대를 빠져나온다. 새벽 시간 등산복으로 갖춰 입고 집을 나선다. 현관을 벗어났을 때 차가운 바람이 귓전을 때린다. 단지 진입로를 따라 바쁘게 걸어 큰 도로 신호등 있는 건널목을 건넛산 초입으로 들어선다. 몇 달 만에 오르는 산이다.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아파트 단지 옆 공원만 산책하다가 돌아갔는데 오늘은 먼 길을 나섰다.
등산로 주변은 잘 정리되어 있다. 길 주변은 한 발정도 옆까지 풀이 베어지고 가지런히 다듬어져 넉넉한 마음으로 길을 오른다. 이전과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계속해서 봐 왔던 나무들이 몸통이 굵어지고 키가 자랐다. 떠오르는 햇살과 함께 불어오는 바람은 몸을 움츠리게 만든다. 산으로 올라갈수록 경사는 가파르다. 상체를 수그리고 걷는데 호흡은 연신 입으로 숨을 내뱉는다. 목까지 차오른 가래는 입 바깥으로 기침과 함께 길바닥에 팽개친다. 평탄한 길에 이르러서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양지 바른쪽 진달래는 가지 끝자락에 손톱 크기로 분홍빛 꽃망울을 내밀어 봄을 알린다.
오르막길이 반복된다. 등산로 따라 긴 숨을 헐떡이며 발을 내딛는데 운동을 게을리한 표시가 역력히 드러난다. 아파트 주변 산책은 산책일 뿐 산행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듯하다. 아미산 정상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한다. 꼭대기에는 봉수대가 화강석으로 둘려 복원되어 있다. 이곳은 맑은 날 멀리 거제도 연안과 일본 대마도까지 눈에 담을 수 있다. 가까이는 쥐 섬과 모자 섬이 손에 잡힐 듯 들어온다. 봉수대는 나라에 위급한 상황이 발생하거나 변란이 일어났을 때, 그 사실을 낮에는 연기로 밤에는 횃불로 신호하여 중앙으로 알리는 옛 통신 시설의 하나다. 응봉 봉수대는 전국 5개 봉수대 중 직봉 제2로 기점으로 여기서 한낮에 올린 봉수는 양산과 경주, 안동을 거쳐 해지기 전에 최종 집결지인 서울 남산 봉수대에 도착하는 게 원칙이었단다.
멀리 떠오르는 햇살에 넘실거리는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일출과 일몰의 정경과 그 옛날 왜구들이 무수히 드나들어 노략질하던 두려움의 시간을 떠올려본다. 우뚝 솟은 콘크리트 건물들은 자연의 조화와는 아랑곳없이 산자락 아래의 시야를 막고 있다. 바닷가 해안선의 오밀조밀함은 그림에서 만나볼 수밖에 없다. 봉수대를 뒤로하고 계단을 따라 내리막길로 접어든다. 멀리 동네 풍광이 눈에 싸인다. 새롭게 들어선 주택이 색깔을 더해준다. 언덕배기를 지나 연결된 구릉지에는 두꺼운 동아줄을 경계 삼아 황톳길이 이어진다. 맨발 걷기가 전국적으로 널리 퍼지고 있는 만큼 등산로 소나무 숲속에 반질반질하게 다진 황톳길은 걸어보지 않고, 보는 그것만으로도 저절로 건강해지는 기분이다.
처음 보는 사람이지만 맞은편에서 오는 등산객과 인사를 건넨다. 체력 단련장이 가까워진다. 기합 소리가 들려오고, 운동 기구에는 여러 명이 제각기 힘을 집중한다. 처음 접하는 기구부터 수십 종의 운동 기구가 설치되어 있다. 이전에 보아왔던 때보다 더 많은 종류가 놓여 있다. 그만큼 많은 사람이 찾는다는 방증이 아닐까. 근육을 단련하기 위한 상체 운동과 하체 단련 기구를 종류별로 조작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나무에 걸린 시계를 바라보는데 벌써 한 시간이 지났다. 운동하는 사람 중에는 얼굴이 익숙한 사람도 더러 있다. 꾸준하게 산을 오르내리며 운동을 이어가고 있는 모양이다. 둘레길 숲은 산을 가까이 끼고 있는 사람들에게 여유와 활력을 가져다준다. 사람들은 저마다 편안한 장소가 따로 있다. 스트레스를 덜고 마음을 다잡을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듯 이곳 산은 나에게 새로운 기운과 쉼터로서 편안함을 안겨 준다. 즐거움이 샘솟고 에너지를 안고 있는 기분이다.
푸른 숲과 바다를 함께 할 수 있어 반갑다. 밀려왔다 사라지는 파도를 내려다본다. 가끔 오가는 어선들은 항구를 중심으로 이어진다. 흰 물살을 내뱉으며 나아가는 배는 물거품과 멀어진다. 배를 따라 날갯짓하는 갈매기는 먹이 사냥에 소리조차 높다. 방파제를 끼고 곡선을 그리던 작은 배는 어느새 시야를 벗어나, 항구 밖 점점이 이어지는 작은 섬 사이로 사라졌다. 만선의 꿈을 안고 먼바다로 나아갔으리라. 저마다의 희망을 헤아려본다.
여유롭게 둘레 길을 따라 발걸음을 옮긴다. 지난가을에 옷을 벗은 참나무와 밤나무는 몸통이 가벼워 보인다. 빛바랜 이파리는 바닥에 몸을 엎드렸다. 땅과 하나가 되는 차례를 기다린다. 큰 나무 아래는 넓고 넓은 평온 지대다. 나뭇가지의 기운에 끼어들 틈이 없다. 모두 한 색깔인데 오직 작은 풀 사이에 양치식물의 대표인 고사리류가 파랗게 자신을 뽐내고 있다. 나무에는 아직 눈도 생기지 않은 산속에 싱그러운 빛깔로 눈길을 사로잡는다. 나무 사이로 옅은 햇살이 내려앉는다. 마음이 여유롭게 다가온다. 길가 오솔길 따라 기다란 돌무더기를 바라본다. 어른 키 높이보다 높게 쌓아 올린 무더기는 생뚱맞기까지 하다. 어디서 이런 돌들이 모이게 된 것인지 궁금할 따름이다. 그 옛날 자연 현상에 따라 큰 바위가 쪼개지고 굴러서 모인 돌이 새삼스럽다.
등산로는 다시 넓어진다. 작은 자갈을 깔아 촉감이 달리 와닿는다. 둘레 길을 만들면서 유사시 임도로 활용하려는 듯 사륜구동 자동차가 다녀도 될 듯싶다. 곳곳에 세워진 이정표는 발걸음을 재촉하게 만든다. 지나는 사람은 없을지라도 한갓 작은 조형물조차 작은 의미를 찾는다. 주택지와 연결된 산언저리에는 개간해서 일군 텃밭에 쪽파와 겨울초가 자란다. 언 땅에 뿌리를 내리고 버티고 견뎌왔으리라. 잡초를 뽑고 퇴비를 넣어 정성을 다한 밭 주인의 모습이 밭이랑에 나타나는 듯, 굵고 넉넉한 채소를 부러운 눈으로 만난다.
산책로에서 뒤돌아선 채 산을 올려본다. 갈 때는 그냥 지나쳤던 구릉지에 하얗게 핀 매화꽃이 계단으로 이어져 있다. 떠들썩한 축제장을 찾지 않아도 꽃구경하는 자유로움을 준다. 자연은 언제나 변함없이 한곳에 머물러 있다. 다만 사람들이 그 자연을 인지하지 못하고 품에 안지 못할 뿐이다. 자신들이 편리한 대로 이용하고 함부로 팽개치는 일상이 반복되었다. 자연이 온전하게 보존되는 곳에 사람들도 건강하게 지낼 수 있다. 멀리까지 이야기할 것도 없지 않을까.
우리 주변은 여러 가지로 오염된다. 자원을 재활용하는 것 또한 오염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의 하나다. 산은 많은 것을 사람들에게 안겨준다. 삭은 나뭇가지와 낙엽이 영양분이 되어 나이테를 더해 간다. 가까이 있는 자연부터 보전해 가는 내가 되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