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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고장 강릉(江陵)
<8> 강릉단오제(江陵端午祭)-3
평창군 대관령면(옛 도암면) 횡계리 대관령 근처 산속의 골짜기에는 강릉단오제의 주신들을 모신 것을 비롯하여 그 외에도 많은 무속신(巫俗神)들도 모시고 있는 것으로 보면 신들의 명당(明堂)인 모양이다.
국사성황당 / 산신당 / 국사여성황사(강릉 홍제동) / 대관령 용정(龍井)
평창군 대관령면(옛 도암면) 횡계리 대관령 근처 산속의 골짜기에는 강릉단오제의 주신들을 모신 것을 비롯하여 그 외에도 많은 무속신(巫俗神)들도 모시고 있는 것으로 보면 신들의 명당(明堂)인 모양이다.
조그마한 암자인 대관령 국사성황당(강원도 기념물 54호)에는 국사성황(범일국사)과 그의 부인 국사여성황(경방댁)이 함께 모셔져 있고 근처에는 김유신 장군을 모신 산신당(山神堂)도 있는데 이것도 강원도 기념물 54호로 지정되었다. 국사여성황(경방댁)은 대관령 성황사에 국사성황(범일국사)과 함께 모셔져 있지만, 친정집이 있던 경방댁(강릉시 홍제동)에도 사당(舍堂)이 있고 그 안에도 처녀 모습의 경방댁이 모셔져 있다.
전해오는 구전으로, 강릉 경방(홍제동)에 살던 양반댁 정씨는 과년한 딸이 있었는데 어느 날 밤 아버지 꿈에 국사성황(범일국사)이 나타나 딸과 혼인을 하고 싶다고 하자 아버지는 사람이 아닌 서낭신(城隍神)과는 결혼을 허락할 수 없다고 하였다. 이튿날 저녁, 과년한 딸이 곱게 화장을 하고 노랑 저고리에 다홍치마를 입고 마루에 앉아 있는데 갑자기 호랑이가 나타나 업고 달아나서 난리법석이 났다고 한다.
그 서낭신이 정씨 처녀를 데려다 아내로 삼은 혼배일(婚配日)이 음력 4월 15일이고 해마다 이날이 되면 두 분을 합사(合祀)하는 의례인 대관령 여성황봉안제(女城隍奉安祭)가 대관령과 홍제동 국사여성황사(國師女城隍祠)에서 거행되는데 홍제동에 있는 국사여성황사는 2009년 건립되었다.
홍제동 국사여성황사(國師女城隍祠)에서 봉안제(奉安祭)를 올린 후 대관령에서 모셔온 신목(神木)과 세 신령(神靈)의 위패(位牌)를 남대천(南大川) 굿당으로 모시는 화려한 영신(迎神) 행사가 진행된다.
4월 15일, 국사여성황봉안제(國師女城隍奉安祭) 이후 본격적인 강릉단오제(江陵端午祭)가 시작되는 제3 단오이다.
구산 서낭제(邱山 城隍祭) / 학산 서낭제(鶴山 城隍祭) / 국사 여서낭당(國師 女城隍-홍제동)
단오제의 절차를 보면 4월 15일 이후, 대관령 산신(김유신 장군)과 대관령 국사성황(범일국사)의 위패를 모시고 대관령 옛길을 따라 내려오다 대관령 아래 구산(邱山)에 있는 성황당(城隍堂)에서 서낭제를 올린다. 그곳에서 점심을 먹은 다음 범일국사의 고향인 학산(鶴山)으로 와서 다시 서낭제를 올리고 홍제동 국사여성황사(國師女城隍祠)에서도 봉안제(奉安祭)를 올린다.
그 후, 음력 5월 3일에 강릉 남대천(南大川) 가설(假設) 굿당으로 모시고 와서 영신제(迎神祭)를 지내는 절차를 밟는다.
그 밖에도 대관령 산신당 부근에는 칠성(七星) 대감을 모시는 칠성당(七星堂/작은 비석만 세워져 있고 촛불과 향을 드리는 곳), 용왕신(龍王神)을 모시는 용왕당(龍王堂)도 있는데 비석과 우물(井)만 있다. 그러나 이곳은 연중 내내 무속인(巫俗人)들이 찾아와 치성을 드리는 곳으로 유명하니 무속인들의 성지(聖地)라고 할 것이다. 무속인은 무당(巫女)으로 불리는데, 무속 춤과 비는 사설 등을 스스로 익힌 세습무(世襲巫)와 무속에 전혀 관심도 없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신이 내려 무속인이 된 강신무(降神巫)로 나눌 수 있는데 어느 쪽이 더 나은 무속인인지는 모른다고 한다.
관노가면희(官奴假面戱) / 남대천변 강릉 단오 야간축제 / 영신(迎神) 행렬
신(神)들을 모시고 남대천 굿당으로 오는 영신(迎神) 행렬을 보면, 신목(神木)을 모신 제관이 맨 앞에 서고 뒤따라 꽃으로 뒤덮인 화개차(花蓋車) 안에 위패를 모시고 그 뒤를 제관(祭官)과 무녀(巫女)들이 따르며, 그 뒤를 관노가면희(官奴假面戱) 춤꾼들과 농악대가 흥겨운 가락에 맞춰 춤을 덩실거리며 따른다. 다시 그 뒤를 청사초롱에 불을 밝혀 들고 따르는 시민들과 시내를 한 바퀴 돈 다음 단오장 가설신당(假設神堂)으로 가서 위패(位牌)를 모시고 영신제(迎神祭)를 올리면 비로소 본격적인 단오굿이 시작된다. 강릉단오제의 진행을 세분(細分)하여 본다.
음력 3월 20일부터 시작하여 5월 6일까지 약 50일간에 걸쳐 진행되는 강릉단오제는 절차상 제1 단오부터 제8 단오까지로 세분되어 진행되며, 예전에는 음력 3월 20일에 제례상에 올리는 신주(神酒)를 담갔다고 한다.
①초단오(初端午-제1단오/4월 1일) - 헌주(獻酒)와 무악(巫樂)을 연주. 4월 5일 신주(神酒) 빚기 시작
②재단오(再端午-제2단오/4월 8일) - 헌주(獻酒)와 무악(巫樂)을 연주.
③제3단오(4월 15일) - 대관령 산신제와 대 국사성황제 봉안, 신목(神木) 모시기, 홍제동 봉안제(奉安祭)
④제4단오(4월 27일) - 무당굿 시작
⑤제5단오(5월 1일) - 위패를 단오장으로 모시는 화개(花蓋) 행렬 및 무당굿, 그리고 관노가면극 공연
⑥제6단오(5월 4일) - 무당굿과 관노가면극
⑦제7단오(5월 5일) - 무당굿과 관노가면극
⑧제8단오(5월 6일) - 산신과 국사서낭 봉송(奉送), 행사를 마무리하는 소제(燒祭) 행사
강릉단오제는 단오굿과 관노가면극을 중심으로, 그네, 씨름, 줄다리기, 윷놀이, 궁도 등의 민속놀이와 각종 기념행사가 함께 벌어지는 흥겨운 행사이다.
관노가면희(官奴假面戱)는 강릉 관아(官衙)의 노비(奴婢)들이 가면을 쓰고 놀던 놀이라고 하는데 조선 시대부터 300여 년간 전해 내려오다가 일제강점기에 맥이 끊기지만 강릉시에서 다시 옛 기록을 살펴 되살려 냈다고 한다.
그 연희는 다섯 마당(五科場)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간략히 소개해 보면.....
첫째마당 : ‘장자마리’- 가면을 쓴 관노 2명이 나와 해학적인 춤을 추며 마당을 정리,
둘째마당 : ‘양반과 소매각시의 사랑’- 양반 탈을 쓴 광대와 소매각시의 사랑 춤,
셋째마당 : ‘시시딱딱이의 훼방’- 험상궂은 탈을 쓴 시시딱딱이가 양반과 소매각시의 사랑을 훼방,
넷째마당 : ‘소매각시의 자살소동’- 실망한 소매각시가 양반의 긴 수염에 목매달아 죽으려는 자살소동,
다섯째마당 : ‘양반과 소매각시의 화해’- 오해가 풀리고 화해하자 구경꾼들도 함께 몰려나와 춤판 한마당.
그 밖에, 내가 보았던 단오제 한시경연대회(漢詩競演大會)를 잠시 회상해 보면,
경포호숫가에 세워진 경포대(鏡浦臺) 정자각의 앞마당에는 갓을 쓰고 한복 두루마기를 입은 어르신들이 줄을 맞춰 앉아 있는데 앞에는 벼루와 먹, 붓과 한지를 가지런히 놓고는 눈을 지그시 감고 있다. 곧이어 징소리가 울리며 운자(韻字)를 건 긴 대나무 장대가 올라오는데 내가 보았던 것은 바다 해(海)였다. 앉아 있던 어른들은 운자(韻字)를 쳐다본 후 다시 눈을 감고 몸을 앞뒤로 흔들며 시상(詩想)을 떠올린다. 시상이 떠오른 어른들은 서둘러 벼루에 물을 붓고 먹을 간 후 한지를 펼치고 시구(詩句)를 써 내려간다. 오언절구(五言絶句)도 있고 칠언율시(七言律詩)도 있고... 형식은 자유다.
나도 학생 글짓기 대회에 참석했었는데 입상을 못했지만, 한시 경연대회를 볼 수 있었던 것도 복이었다.
그 밖에도 활쏘기(國弓)대회, 서커스, 마술(요술) 쇼 등 강릉단오제는 볼거리가 무궁무진하다.
내가 어렸을 때(1950년대 초)는 말과 코끼리가 등장하는 동물서커스도 있었는데 우리 어머니는 말광대(曲馬團)라고 하시던 기억이 난다.
마술(魔術)쇼도 재미있었는데 나의 기억으로 입장료가 매우 싸서 돈을 내고 입장한 적이 있었다.
먼저 변사(辯士)가 나와 한참 청산유수로 떠든 후 젊은 아가씨가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무대 위로 나온다. 아가씨는 무척 예쁘게 생겼는데 관객들에게 공손히 인사를 하더니 한 손은 아래로, 다른 손은 가슴을 가린다. 변사는 또 청산유수로 읊어대는데 불빛이 조금 흐릿해지는가 싶더니 아가씨의 옷이 점점 희미해진다.
그러더니.... 옷은 완전히 보이지 않고 알몸뚱이의 아가씨가 한 손은 사타구니를, 다른 손은 가슴을 가리고 있다. 관객들은 깜짝 놀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는데 또다시 불빛이 약간 어두워지며 다시 몸뚱이가 희미해지는가 싶다가 갑자기 뼈가 보이기 시작한다. 눈구멍이 두 개 뻥 뚫린 해골에다 팔다리뼈는 물론, 앙상한 갈비뼈까지 분명하게 보인다.
아가씨가 약간 움직이는지 해골도 움직이고....
다시 변사가 고저장단을 넣어 청산유수로 중얼거리자 차츰 빛이 밝아지는가 싶더니 살이 살아난다. 또다시 나체로 바꾸었다가 다시 옷이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하더니 조금 지나자 처음 보았던 완전한 모습으로 바뀐다.
아가씨는 가벼운 미소를 머금더니 두 손을 앞으로 모으고 공손히 절을 하고는 무대 뒤로 사라진다.
가장 중심이 되었던 민속놀이의 한가지로 농악경연대회도 있었는데 내 어릴 적에는 마을마다 농악대(農樂隊)가 있었기에 가능했지만, 지금은 마을마다 없으니 시범으로 공연하는 정도이다.
인기가 있었던 것으로는 씨름대회를 꼽을 수 있었는데 한쪽에는 우승 상품인 황소 한 마리가 매어져 있었는데 전국에서 씨름꾼들이 모여들었다. 또 그네타기도 인기가 많았는데 내 어렸을 적 1등을 하면 2돈짜리 금반지가 상품으로 걸려있어 단오 20일쯤 전이면 마을마다 그네를 매는 것이 유행이었다. 마을 처녀들이 열심히 그네를 연습하고 단오날 대회에 나가면 그네 발 받침 뒤에 줄을 매달아 얼마나 높이(멀리) 올라갔는지 길이를 측정하여 상품을 주었는데 우리 누님은 1등이 자신이 있다고 나가더니만 빨랫비누 1장을 타왔던 적이 있다.
요즈음은 ‘단오부채 만들기’, ‘창포물에 머리감기’, ‘수리취떡 만들기’ 등이 있고 난장(亂場)이 벌어진다.
한 가지 더 첨언(添言)한다면 축구를 빼놓을 수 없는데 예전부터 강릉은 축구의 고장이라 이를 만큼 축구를 사랑하는 고장이었다. 단오 때면 매년 강릉상고(현 제일고)와 강릉농고(현 중앙고)의 시합이 벌어졌는데 승부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싸움이 벌어지기 일쑤였고, 싸움이 없는 해에는 어르신들이
‘에이, 올해는 싱겁게 끝났네...’ 하며 서운해 하시던 모습도 기억난다.
40년대 초부터 시작되었다는 강릉농고(農高/현 중앙고)와 강릉상고(商高/현 제일고)의 축구정기전인 ‘강릉 농상(農商) 축구정기전’은 우리나라 축구 발전사에 큰 획을 그은 것으로 알려졌으며 특히 큰 인기를 끌던 것이 재학생들의 일사불란(一絲不亂)한 카드섹션이었다.
카드섹션 응원이 너무나 유명했는데 나는 나중 서울에 살면서 고려대와 연세대의 정기전인 고연전(高延戰)을 보았더니 강릉 농상 축구정기전의 응원을 보는 것과 똑같았다.
농상(農商) 정기전은 해마다 단오에 열렸는데 승패를 두고 너무 다툼이 많아서 언젠가부터 중단되기도 했다. 나는 농고 안에 창설되었던 관동중학교에 1회로 입학했는데 매년 단오 때마다 우리도 농고 응원전에 참가해야만 했다. 방과 후, 운동장에 모여 응원훈련을 했는데 학생들이고, 선생님들이고 열심이었다.
중학교 3학년 때였던가, 내가 여장(女裝)을 하고 강릉 시내를 줄지어 행진하던 기억, 또 농상 축구정기전이 열리면 갓을 쓴 영감님들도, 심지어 머리 하얀 할머니들조차도 장바구니를 옆에 놓고 관중석을 차지하여 항상 관중석이 만원을 이루고는 했다. 지금은 주로 먹거리 난장(亂場) 터로 변한 느낌인데 강릉 각 마을마다 채알(遮日/천막)을 치고 마을 이름을 써 붙여놓았다. 그 동네 사람들은 들어가면 음식을 꽁짜(무상)로 먹을 수 있다.
강릉단오제(端午祭)는 우리나라에서 단오제 중 가장 성대하게 치러지는, 가장 역사가 오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단오제로 꼽을 수 있는데 조금 더 여담(餘談)을 덧붙여 본다.
단오제가 열리는 장소는 남대천 변에 우뚝 솟은 남산공원 아래 모래사장인데, 주변이 지금은 아파트단지로 변한 곳도 있지만, 예전에는 내가 살던 학산(鶴山)에서 내려오다 안땔골로 빠지지 말고 도깝재 쪽으로 더 내려오다가 현 경포중학교 옆을 지나 내려오게 된다. 이 언덕 위에 질긴 댕댕이풀이 무성하여 댕댕이꿈(꾸미)이라 부르던 오솔길이 있었는데 따라 내려오다 보면 갑자기 절벽이 되어 흙베리라고 했다. 그 밑에 작은 못(池/새발소)도 있었고, 이 주변까지 제법 넓은 개천가 모래밭인데도 단오가 열리면 온통 사람들이 몰려들어 비켜설 수가 없을 정도로 북적거렸다. 속초(束草), 사천(沙川), 주문진(注文津), 안인(安仁), 옥계(玉溪) 등 주변 동해안의 사람들이 모여드는 것은 물론, 대관령 넘어 진부(珍富), 속사(束沙), 봉평(蓬坪) 등지에서도 대관령을 걸어 넘어 구경꾼이 몰려들었다.
내가 살던 학산을 비롯한 주변의 마을들은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과 강아지들이 마을을 지키고 젊은이들은 몽땅 단오장(端午場)으로 몰리니 마을이 온통 텅텅 비었다.
항상 싸움질이 벌어졌던 농상(農商) 축구정기전은 언제인가 강릉시장이 중단하여 주민들이 너무나 서운해하던 기억이 새롭다. 나중 주문진수산고(注文津水産高)를 합쳐 삼파전(三巴戰)으로 부활한다.
서커스(Circus/원형경기장) 공연도 비슷했는데 스토리(Story)가 가미(加味)된 신기한 공연으로, 언제였던가 해외 서커스단이 와서 공연하던 기억도 있다.
너무나 유명한 민중예술 집단인 남사당(男寺黨)패도 참가했는데 ①풍물(風物), ②버나(막대기로 대접 돌리기), ③살판(땅재주), ④어름(줄타기), ⑤덧뵈기(탈놀이) ⑥덜미(꼭두각시놀이) 등을 공연도 했다.
먹거리 중 수리취떡(車輪餠)이 유명했는데 쑥의 일종인 구설초(狗舌草/일명 솜방망이)를 쌀가루와 섞어 쪄내서 둥그런 떡을 빚고 수레바퀴 모양의 문양을 찍은 떡(쑥떡)이다.
사람이 소곤거리면 쑥덕공론(空論)이라고 했는데... 쑥떡쑥떡~~ 쓸데없는 중얼거림? 맛있는 쑥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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