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기행, 김정인회원
삼성의 뿌리를 찾아서(1), 의령 호암 이병철 회장 생가 탐방
삼성그룹 퇴임임원 동우회 회보, SAMSUNG forever, 2019년 봄, 100호 기념 특집호
호암생가 안채, 백두대간 지리산의 지맥 마두산 끝자락에 멀리 남강이 역수하며, 가까이는 노적암이 감싸주는 명당 터에 자리잡았다.
지난해는 삼성이 창업된 지 80년이 되는 해였다. 성우회 사진반에서는 삼성 창립 80주년을 맞아 ‘삼성의 뿌리를 찾아서’ 첫 번째로 출사로 2018년 5월, 의령에 있는 호암 이병철 회장의 생가를 찾았다.
이 회장은 <호암자전>을 쓰면서 제일 먼저 가계의 뿌리와 고향 땅을 소개하고 있다. 이 회장의 16대조는 약 500여 년 전 조선왕조 연산군 시대 은거지인 의령 중교리로 낙향하였다. 백두산에서 시작한 백두대간이 덕유산 남동쪽에서 마지막으로 뻗어 내린 큰 산맥인 지리산은 금강산, 한라산과 함께 삼신산의 하나로 꼽힌다. 이 지리산 지맥 마두산 기슭 중교리에 경주 이씨 가문이 자리 잡았다.
삼정솥 바의에 내려앉은 의령
의령을 지나는 남강의 한 가운데에는 솥 모양을 닮은 바위가 3개의 발을 내리고 있는데, 이 바위를 삼정(三鼎) 솥 바위라고 부른다. 함안의 어느 도인이 이곳을 지나면서 이 솥 바위를 보며, 반경 20리 안에 삼정승에 버금가는 부자가 끊이지 않을 것이라고 하였다. 전설이 현실이 되어서 삼성, LG, 효성의 창업자가 이곳에서 태어났다.
남강의 솥바위, 삼성, LG, 효성의 3대 기업 창업주가 3개의 발을 뿌리내린 솥 모양의 바위 주변 동네에서 태어났다.
의령은 풍수적으로 양의 기운이 강하다. 의령을 감싸고 있는 전체 산맥 형상이 황소를 닮은 형상이다. 이곳의 물길은 서출동류(西出東流)한다. 우남강, 좌낙동강으로 남강이 서쪽에서 발원해서 산청과 진주를 거쳐서 경북 고령에서 내려오는 낙동강과 합류한 후 창녕, 밀양, 양산, 부산으로 흘러간다. 서출동류하는 물은 아침 일찍 동쪽에서 떠오르는 기운을 받는데다 일조량이 풍부하여 아주 귀한 물로 본다. 이 기운으로 귀인들이 많이 태어났다. 삼영그룹 이종환 회장이 의령에서 태어났고. 신성모 독립운동가, 진대제 장관, 곽재우 장군, 허남식 부산시장, 이만기 씨름 선수 등도 의령 출신이다.
호암 이병철 회장이 태어난 생가는 1851년 이 회장의 조부 홍석 옹께서 잡은 곳이다. 이병철 회장은 1910년 2월 12일 경남 의령군 정곡면 중교리에서 4남매의 막내로 태어났다. 이 회장은 5세가 되면서 조부가 세운 문산정에서 한학을 배웠다. 11세가 되자 큰 인물이 되어야 하니 신식 공부를 하는 학교를 가야겠다고 건의하여 지수초등학교, 수송초등학교, 중동중학교를 거쳐 일본 와세다 대학 경제학부에서 공부하였다.
호암 생가는 호암 선생의 조부께서 전통 한옥 양식으로 손수 지었으며, 호암 선생은 유년 시절과 결혼하여 분가하기 전까지 이 집에서 보냈다, 일자형 평면 형태로 지어진 안채는 남서향의 평평한 땅 위에 자리 잡고 있으며, 그동안 몇 차례의 증*개축을 거쳐 은은하고 고고한 멋을 풍기는 오늘의 모습으로 단장 되었다.
호암 생가 대문, 대문을 들어서면 좌로는 사랑채가 보이고 앞으로는 노적암 부자바위가 마주한다. 안채와 광채는 안쪽으로 깊숙이 숨어 있다.
현재의 생가는 안채, 사랑채, 대문채, 광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아담한 토담과 바위벽으로 둘러싸여 외부와 구분되고, 주위로는 울창한 대나무 숲이 조성되어 운치 있는 경관을 연출하고 있다.
풍수지리에 의하면, 이 집은 곡식을 쌓아 놓은 것 같은 노적봉 형상을 하는 주변 산의 기가 산자락 끝에 위치한 생가 터에 혈이 되어 맺혀 있어 그 지세가 융성할 뿐 아니라, 멀리 흐르는 남강의 물이 빨리 흐르지 않고 생가를 돌아보며 천천히 흐르는 역수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명당중의 명당이라고 한다.
생가를 수호하고 있는 노적암
이번 생가 답사 중 가장 특이 한 곳은 바로 청룡 끝자락 노적암이었다. 어떻게 해서 이런 바위가 생가를 감싸주고 있을까? 천 리를 달려온 용이 이곳에 멎으면서 생가 쪽으로 회오리치며 강한 기운을 전달하여 주고 있다. 그래서 주말이나 정초가 되면 수많은 사람이 정기를 받고자 이곳을 찾아온다. 이 바위는 그냥 바위가 아니고 보이는 시각에 따라 여러 모양으로 보인다. 조부 때 천석꾼을 하였고 바위 앞에 방앗간이 있었다고 한다.
바위에서 많은 형상을 찾을 수 있는데, 시루떡을 쌓아 놓은 형상, 밭 ‘전(田)’자 형상도 있고, 나락 가마니도 보인다. 창고에 재물을 쌓아둔 것 같은 모양이다. 주판알도 보인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와서 소원도 빌고 만지기도 한다.
바위에는 동물이 3마리가 있다. 거북이는 눈을 뜨고 사랑채를 바라보고 있있고, 두꺼비는 사랑채를 지키고 있으며, 자라가 개나리 앞에 목을 내밀고 있다. 이것들은 다 부(富)의 상징이고 긍정적인 동물이다.
필자도 이곳에 올 때마다 다양한 형상의 바위 모습을 보았는데, 지난 연말에 이곳에 왔을 때는 더욱 특별한 모습을 보게 되었다. 이전까지 한번도 보지 못했던 모습, 사람 얼굴 모습이 보인 것이다. 시루떡 바위 옆에서 부처님의 모습을 한 얼굴 바위,, 주판알 바위 옆에는 사람의 형상을 한 얼굴 바위를 볼 수 있었다. 이곳 동네 사람들은 마두산을 호암산이라고 부르는데, 노적암에 얼굴 모양이 나타났으니 이제는 호암 바위라고 불러야겠다.
시루떡을 쌓아 놓은 형상의 바위, 떡 바위 옆에 부처를 달은 얼굴바위가 나타났다.
빙그레 웃고 있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이번 답사에서 처음으로 나타났다. 마두산을 이곳 주민들은 호암산이라고 부르는데, 이제는 이 바위를 호암바위라고 불러야겠다.
그리고 마당에 감나무가 있다. 감은 식사 대용도 되고, 간식용으로도 먹는다. 감나무에는 문무충효절(文武忠孝節)등 오절이 들어 있다. 잎이 넓어서 글씨 연습하기에 좋으므로 문(文)이 있고, 그 재질이 단단하여 화살촉 재료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무(武)가 있으며, 열매의 겉과 속이 같아 표리부동하지 않다고 하여 충(忠)이 있다. 또 감은 홍시가 되면 속이 연하고 그 맛이 달기 때문에 노인들이 좋아하여 효(孝)가 있으며, , 서리가 내리는 늦가을까지 가지에 매달려 있어 절개가 있다고 하였다. 이러한 정신이 충과 효, 나라사랑으로 이어졌다.
아는 것을 실천하는 것이 힘이다.
이 회장의 부인 박두을 여사는 댜구 출신이다. 삼성의 본거지가 대구인데 삼성상회도 여기서 시작하였다. 박두을 여사는 사육신의 한 분인 박팽년의 후손이다. 부인이 살아 계실 때에 집안 장학금을 만들어 성적표만 내면 장학금을 베풀었다고 한다. 이 회장의 어머니는 안동 권씨이고 친정이 서울이다. 중동중학교에 갔는데, 서울에 외가집이 있었다. 지수초등학교는 100년 전통을 가진 학교다. 둘째 누님이 그 동네로 시집가서 거기에서 학교에 다닐 수 있었다.
이 회장 댁은 옛날부터 덕을 많이 베풀었다. 어머니 대에도, 할아버지 대에도 덕을 많이 베풀었다. 어린아이가 태어나면 미역과 보리쌀을 나누어 주었고,, 혼인하는 사람에게는 양단을 주었다. 초상이 나면 삼배를 끊어 주었다. 아는 것이 힘이 아니고, 아는 것을 실천하는 것이 힘이라는 믿음이 이어져 내려왔다. 70대 중반 할머니 말로는 둘째 아들을 낳고 미역하고 보리쌀을 직접 받았다고 한다. 집안에 우물이 2개가 있었는데 바깥 우물은 마을 주민을 위한 배려였다고 한다.
생가 방문 후 동네 앞산에 올라가서 중교리 동네 전체 국세를 조망하였다. 땀을 뻘뻘 흘리며 앞산에 올라가니 한눈에 동네의 국세가 보였다. 마두산 자락이 뻗어 와서 마지막 자락에서 청룡의 맥이 낚싯바늘 같이 돌아주고, 좌우로는 청룡 백호의 능선들이 겹겹이 감싸준다.
산에서 내려와서 마을 건너에 있는 사당을 들렸다가 종중 대표의 안내를 받아 앞산 너머에 있는 문산정과 최근에 조성한 문중 제단을 보고 남강의 솥 바위와 지수초등학교를 찾았다. 지수 초등학교 교정에는 이 회장이 심은 소나무가 가목으로 자라 있었다. 지수 초등학교를 보고 나서 국도를 타고 대구까지 와서 고속도로에 올랐다.
심성(三星), 크고 강력하고 영원하다!
1938년 3월 1일 이병철 회장이 28세에 사업을 시작하면서 회사 이름을 삼성(三星)으로 정했다. 1은 양이요, 2는 음이요, 3은 1의 양과 2의 음이 합하여진 완전수이다. 동양에서 3은 완전수로 우리 민족이 가장 좋아하는 숫자다. 삼신산, 삼정 솥 바위 모두 3자가 들어갔다.
3은 오행으로 보면 목을 상징한다. 목은 계절로는 봄이요, 시간상으로는 아침이요, 방위로는 동쪽이다. 삼성의 ‘三’은 큰 것, 많은 것, 강한 것을 나타낸다. ‘星’은 밝고, 높,고 영원히, 깨끗이 빛난다는 의미가 있다. 산대 회장은 <호암자전>에서 ‘크고 강력하고 영원하다’는 의미를 담아서 ‘삼성(三星)’이라 이름 지었다고 밝히고 있다.
삼성의 창업 정신은 事業報國, 人材第一, 合理追求이다. 나라가 어려울 때 사업을 시작하였고, 사업을 통하여 국가에 이바지함을 경영 이념으로 삼았다. 이 회장은 미국 보스턴 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으면서 사업 보국에 대하여 설명하였다.
“기업의 존립 기반은 국가이며, 기업은 국가의 사회 발전에 공헌해야 한다. 기업 경영성과로 세금, 헌금, 배당 등으로 분배되어야 하며, 국가 운영의 기틀를 닦으면서 기업 자체의 유지*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이 사회적 봉사이다”고 하였다.
나라 경제가 어려운 지금, 다시금 삼성의 사업보국 정신이 나라 발전의 초석이 되기를 바란다. 선대회장 생가를 방문하면서 새로 나타난 큰 바위 얼굴이 어쩐지 이 회장의 분신처럼 느껴졌다. 삼성의 발전이 나라의 발전 근간으로 지속되기를 기원한다.
선대 회장 생가 앞에서 사진반 화원들과 기념촬영
첫댓글 호암 바위..정말 신기합니다~!!
의령의 이병철회장의 생가를 방문하여 집을 보니, 여느 양반집이나 사대부 또는 대감집과 전혀 다른 배치를 알수있다. 여느 대감집이나 양반집같으면 -자,ㄱ자,ㄴ자,ㄷ자, 또는 ㅁ자 형태의 집배치를 볼수 있는데, 전혀 다른 배치를 해 놓았다. 달랑 2채의 집이 앞집과 뒷집이 삐딱하게 어긋나게 배치되어 자리잡고 있다. 많은 풍수사들이 집 뒤의 바위 노적암이나 곡식을 쌓아놓은 모양의 산을 지적하는 것을 보았지만, 이 집의 삐딱한 배치를 얘기하는 풍수사는 보질 못했다. 대문의 위치도 한쪽에 치우쳐 있고 물이 빠져나가는 방향에 배치되어 있다. 집을 왜 이렇게 배치했을까? 저는 일일이 확인하고 당시 풍수사가 제대로 알고 그랬구나!!
집을 지을 당시 풍수를 잘 아는 분이 배치에 영향을 미친 것을 알수 있었습니다. 그져 놀라울 따름이었습니다. 궁금하시면 저에게 연락 주십시요. 전화주시면 언제든지 (전화 010-9221-6143) 친절히 알려드리겠습니다. 오랜만에 들어와 댓글 남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