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신곡 27(억새, 블루스 록) : 은빛 바람의 블루스 Blues of the Silvery Wind
꽃을 주제로 이어온 연작의 여덟 번째 발걸음은 화려한 봄의 정원이나 생기 넘치는 여름 화단을 벗어나, 서리 내린 황량한 늦가을 언덕에 닿았습니다. 이번 곡의 주인공인 억새는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관습적인 의미의 꽃과는 사뭇 다릅니다. 꿀벌을 유혹하는 짙은 향기도, 사람들의 시선을 단숨에 사로잡는 선명한 색채도 지니지 않았습니다. 대신 억새는 모든 잎이 떨어지고 계절의 화려함이 식어버린 뒤에야 비로소 차가운 은빛 이삭을 흔들며 자신만의 존재감을 드러냅니다. 그 모습은 만개라기보다는 소멸에 가깝고, 탄생의 기쁨보다는 한 시절을 매듭짓는 서글픈 배웅을 닮아 있습니다.
이 노래는 '끝'과 '허무', 그리고 손아귀를 빠져나가는 '시간'의 잔상을 다룹니다. 우리는 언제나 붙잡으려 애쓰며 살아갑니다. 뜨거웠던 사랑의 감정, 찬란했던 청춘의 계절, 잊고 싶지 않은 순간들을 기억 속에 단단히 묶어두려 하지만, 시간이라는 매정한 바람 앞에서는 그 모든 집착이 한 줌 모래처럼 흩어져 버립니다. 온몸으로 바람을 맞받아치며 하얗게 바스러지는 억새의 실루엣에서 미련을 털어내지 못해 괴로워하는 인간 내면의 깊은 흉터를 보았습니다. 피어났다는 사실조차 증명하지 못한 채 겨울 속으로 침전해 가는 식물의 숙명은, 지나간 시간 앞에 무력한 우리의 실존과 궤를 같이합니다.
이러한 쓸쓸함과 정념을 담아내기 위한 그릇으로 '블루스 록(Blues Rock)'을 택한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귀결이었습니다. 정제된 팝 멜로디로는 메마른 바람의 비명을 온전히 담아낼 수 없었습니다. 오버드라이브가 걸린 거친 빈티지 슬라이드 기타의 흐느낌, 가슴을 무겁게 짓누르는 12/8박자 셔플 리듬, 그리고 위스키에 젖은 듯 메마르고 긁히는 창법만이 억새가 온몸으로 뿜어내는 '처절한 허무'를 소리로 치환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절규하듯 치솟는 코러스와 울부짖는 기타 솔로는 단순한 슬픔의 배출이 아니라, 부질없음을 인정하면서도 끝끝내 꺾이지 않으려는 나약한 존재의 마지막 몸부림입니다.
결국 억새가 바람에 털어내는 것은 집착과 기억의 무게입니다. 아무것도 남지 않은 빈 하늘을 마주할 때 비로소 우리는 비워냄으로써 완성되는 계절의 섭리를 깨닫게 됩니다. 모질게 부는 바람 속에서 홀로 흔들리는 은빛 이삭처럼, 삶의 차가운 황혼이나 이별의 길목에 서 있는 모든 이들에게 이 투박한 블루스 곡이 서글픈 위안이자 묵직한 배웅의 노래로 가닿기를 바랍니다.
꽃 신곡 27-1 M(억새, 블루스 록) : 은빛 바람의 블루스 Blues of the Silvery Wind
https://youtube.com/watch?v=3CPNf6A_KvY&si=xF6cqzMYbWNR31TB
‘은빛 바람의 블루스 Blues of the Silvery Wind’ 가사
Verse 1
가을 끝자락 언덕 위, 붉던 잎들은 다 져버리고
서리 내린 메마른 언덕에 홀로 선 은빛 군대
화려했던 계절의 불꽃은 재가 되어 식어가는데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온몸으로 비명을 질러대네
Verse 2
붙잡으려 뻗어본 손가락 사이로 시간은 모래처럼 새고
황혼빛 노을마저 차갑게 식어 그림자를 길게 눕히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흔들리는 저 하얀 머리칼
타버린 계절의 끝에서 너는 누구를 배웅하고 있나
Chorus
바람아, 더 세게 불어라, 이 허무를 마저 털어내려무나
차라리 부러질지언정 뿌리째 흔들리는 억새의 노래
지나간 건 다 부질없고, 남은 건 부서진 기억뿐인데
달콤했던 봄날의 약속은 은빛 먼지가 되어 흩어지네
Verse 3
누군가 속삭였던 영원은 한철 바람보다 가벼웠고
가슴팍 깊이 박힌 흉터만 시리도록 차가운 허공을 보네
피어난 적도 없는 것처럼,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바람 부는 대로 고개 숙인 채 계절의 끝을 건너가
Chorus
바람아, 다 쓸어가라, 미련마저 하얗게 털어내려무나
차라리 꺾여버린 채 겨울의 밤 속으로 가라앉게
지나간 건 다 환상이고, 붙잡을 기억조차 희미한데
억새꽃 하얗게 바스러져 텅 빈 하늘 속으로 사라지네
Outro
바람만 분다…
시간은 가고…
남은 건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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