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담스님의 금강경 강설 - 105
原 文
若復有人 聞此經典 信心不逆
其福勝彼 何況書寫受 持讀誦 爲人解說
解 義
그런데 다시 또
어떤사람이 이경전을 듣고서
「아, 그럴 수 있겠다.
응무소주 이생기심
(應無所住 而生其心)의 진리가 확실히 있겠다.
그래서 우리는 필경 생사를 면하고 해탈하여
참 자유한 인간이 한 번 되겠구나.」하여
이 금강경을 듣고서
마음에 하나도 거슬리지 않았다면,
곧 완전히 이해가 되고 납득이 되어서
확실한 신심만 낸다고 하더라도
그 복이 아까 무량백천만겁으로
하루에 삼항하사의 모래 수와
같은 몸으로 중생을 위해서
보시한 복 보다 더 크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물며 이 경전을 쓰기도 하고
또 요새 말로 하면 인쇄도 해서
여러 사람에게 보시하고 번역하고
강의도 하는 경불사(經佛事)도 하고 한다면,
요전에도 어떤 여신도(女信徒)
한 분이 자기 환갑(還甲)에
유마경(維摩經)을 번역만 해 놓고
출판하지 못했던 것을 큰 돈을 들여서
천 부를 출판해 가지고 각계 각 학교
도서관에 전부 돌리고 선남 . 선녀와
불교 안 믿는 사람에게 까지
보시를 했는데 이것도 정말 큰 복입니다.
경을 전부 다 쓰면 말할 것도 없지만
손으로 써 보기도 하고 그렇지 않으면
4구게 한 줄이라도 다 쓰면 좋고
더욱 더 해서 손가락에 피극를 뽑아서
종지에 담아 놓고 흘린 피를 가지고
다 쓰고 짜고 짜다 피가 안나오면
다른 손가락을 베어서 피를 또 짜 가지고
법화경 일곱권을 쓰고 화엄경 팔십 권도 씁니다.
이렇게 금강경이나 대승 법문을 듣고
마음에 거슬리지 않으면 총명해서 그랬던지
신심이 지극해서 그랬던지 그 복이
아까 그렇게 한량없이 많은 몸뚱이로
보시해서 지은 복 보다도 더 많다고 했는데
하물며 수지독송해서 또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이런 법회산림(法會山林)을 하고
강의(講義)도 하고
경전 간행도 해서 얻어지는 복이야
더군다나 말할 게 있겠느냐고 하신 것입니다.
청담스님이 함께 정화운동에 참여할 것을
간절히 권유했지만 성철스님은 산중 수행승으로 남았다.
그것은 이 땅에 선풍을 일으키는 일이었다.
청담스님이 그릇을 제조했다면
성철스님은 그 내용물을 만들었음이었다.
정화운동 기간에 두문불출했던
성철스님을 두고 여기저기서 시비를 걸어올 때
이를 막아준 이도 청담스님이었다.”
출처::김택근의 성철 스님 평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