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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200년전의 가르침
요가수행의 가르침
제 1장. 요가의 목표
1-1. 이제부터 요가에 대한 가르침을 시작한다.
요가라는 말은 결합하다는 뜻
영어로 소나 말에 멍에를 씌우다라는 뜻의 yoke는 산스크리트의 요가에서나온 말.
요가는 유한한 현상세계의 배후에 있는 실상, 곧 신성과 결합하기 위한 여러 방법가운데 하나.
완전한 요가의 상태에 도달하면 신성과 합일이 이루어짐.
요가수트라의 주석가 중에서 고전적인 인물인 보자는 파탄잘리가 쓴 요가라는 말의 개념을 참나가 아닌 현상세계에서 참나인 실상을 떼어 내고자 하는 노력이라고 정의함.
요가 수행자를 요기yogi라 부름.
1-2. 요가란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생각의 흐름을 통제하는 것'이다.
파탄잘리는 이 구절에서 요가의 목표를 제시함.
명민한 수행자라면 이 한구절만으로 충분함.
나머지 경구들은 모두 이 구절에 대한 설명에 불과함.
의식의 작용이 통제된다면 요가의 목표에 도달함.
1-3. 그러면 사람은 자신의 진정한 본성에 머무르게 된다.
마음의 호수가 잔잔해지면 진정한 자기자신이 누구인지 누구였는지 누구일 것인지를 알게됨.
마음에 파도가 일고 있으면 진정한 그대인 보는 자의 모습을 제대로 보지 못함.
그대의 참나(주인공)을 보려면 그대의 주인공을 비추는 거울인 그대의 마음이 완전히 잠잠해져야 함.
1-4. 다른 때 곧 요가의 상태에 있지 아니한 경우에는 생각의 흐름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상태에 머문다.
내 몸은 내가 아니라 내 것이다.
내마음은 내가 아니라 내것이다.
1-5. 생각의 흐름은 다섯가지 형태로 나타나는데, 고통스러운 것과 고통스럽지 않은 것으로 나누어진다.
요가를 수행하기 위해 생각의 흐름을 고통스러운 것과 고통스럽지 않은 것으로 나누는 것은 중요함.
모든 생각의 흐름이 일시에 통제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
고통스럽지 않은 생각의 흐름을 일으키면 고통스러운 생각의 흐름이 잠재워짐.
분노, 두려움, 죄책감 등을 사랑, 기쁨, 평화 등에 대한 생각의 흐름으로 대체할 수 있음.
1-6. 생각의 흐름은 '올바른 앎, 그릇된 앎, 언에에 의한 망상, 잠, 기억'이라는 다섯가지 형태를 띈다.
1-7. 올바른 앎이란 '직접적인 지각과 추론과 경전의 증거를 통해 얻는 앎'을 말한다.
직접 경험이 확실한 앎을 얻는 한 방법
올바른 앎을 얻는 다른 방법으로 추론이 있음.
직접경험한 것도 아니고 추론을 통해 얻는 것도 아니지만 깨달은 자의 언어, 경전을 통해 얻는 앎이 있음
1-8. 그릇된 앎이란 '대상의 참다운 본질에 기초를 두지 않는 앎'을 말한다.
요가 문헌은 밧줄을 뱀으로 착각한 것을 그릇된 앎의 비유로 제시함.
어둠속에서 밧줄을 보고 뱀으로 착각하여 마음에 두려움이 생기는 것을 말함.
1-9.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해 말하거나 들을때 마음속으로 그리는 그림(심상)이 언어에 의한 망상이다.
사람이 무엇에 대해 듣는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나 실제로 그런 것이 없다. 그릇된 앎의 경우에는 뱀으로 착각한 밧줄이라도 있었다. 그러나 언어에 의한 망상은 아무것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어떤 말에 대해 나름대로 생각을 갖는다.
1-10. 잠이란 '무에 대한 생각의 흐름'을 말한다.
잠속에서도 생각의 흐름은 멈추지 않음.
잠이란 적극적으로 무를 체험하는 상태임.
잠과 생각의 흐름이 멈춘 요가 상태를 혼동해서는 안됨.
1-11. 기억이란 '인지했던 대상이 잊혀지지 않고 다시 의식의 영역으로 떠오르는 것'을 말한다.
기억은 일종의 2차적 생각의 흐름.
직접적인 지각이 일으키는 생각의 흐름은 좀더 작은 생각의 파문을 연속적으로 일으킴.
잠이라고 하는 생각의 흐름 역시 잔물결을 일으키는데 그것이 꿈임.
기억이란 마음속에 인상을 남겼던 것이 때가 되어 의식의 표면으로 떠오르는 것을 말함.
과거의 인상은 때로는 원할때, 또 때로는 원하지 않아도 떠오름.
기억은 꿈과 몽상이라고 하는 두가지 형태로 의식표면에 떠오름.
꿈은 자고 있는 동안 떠오르는 기억이며, 몽상은 깨어있을때 떠오르는 기억임.
마음을 비우고 내적인 평화에 들기 위해서는 다섯가지 생각의 흐름을 통제해야 함.
1-12. 이들은 훈련과 집착하지 않음으로써 통제된다
1-13. 훈련이란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생각의 흐름을 지속적으로 통제하기 위한 수행을 반복하는 노력을 말한다.
1-14. 오랫동안 쉬지 않고 정성을 다해 훈련해야만 확고한, 흔들리지 않는 경지에 이른다.
1-15. 집착하지 않음이란 '보고 들은 것을 갈망하지 않도록 스스로를 억제하는 것'을 말한다.
1-16. 가장 높은 경지의 '집착하지 않음'은 아트만(푸르샤)에 대한 깨달음을 통해 만물이 아트만의 일시적인 나타남인 줄 알아 아무것도 갈망하지 않게 될때 이루어진다.
수치심, 죄책감, 무의욕, 슬픔, 두려움, 욕망, 분노, 자만심 등의 부정적 감정 알아차림과 놓아버림
바가바드 기타는 그런 경지를 이렇게 말함.
'물은 쉬지 않고 바다로 흘러가지만 바다는 결코 흔들리지 않는 것처럼
마음속으로 욕망이 끊임없이 흘러들지만 동요하지 않는 자는 평안을 얻는다.
모든 욕망을 벗어 던지고 아무런 갈망도 없이 행하는 사람
나와 내것이라는 생각조차 버린 자는 평안(평화)에 이르나니'
1-17. 하나의 대상에 집중함으로써 얻어지는 삼매에는 집중하고 대상의 이름과 형태, 질과 그런 것을 아는 앎이 따로 떨어져 분별되고 대상의 내적인 본질을 통찰하는 관조와 평안과 기쁨과 순수한 자아의식이 동반된다.
이러한 삼매를 생각이 있는 삼매 '유상삼매'라고 함.
바가바드 기타에서는
'사트바의 빛과 라자스의 활동, 그리고 타마스의 망상이 생겨도 그것을 싫어하지 않으며 그것들이 사라져도 갈구하지 않는 사람은 세가지 구나를 초월한 자이다. 그는 초연하게 앉아서 구나들로 인해 동요하지 않으며 구나들이 그저 작용하고 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생각을 흔들림없이 간직하고 즐거움과 괴로움을 하나로 보는 사람은 아트만의 내적고요속에서 평안한 쉼을 얻는다'
유상삼매의 4단계
첫번째 단계, 심삼매(분별삼매) - 집중하고 있는 대상의 이름과 형태와 질과 그에 대한 앎이 따로 떨어져 분별되는 것은 마음이 어떤 외적인 사물에 완전히 집중하고 있을때 도달하는 상태.
두번째 단계, 사삼매(초분별삼매) - 마음이 외적인 형태를 뚫고 들어가 사물의 내적 본질인 오유를 통찰하는 상태에 도달.
세번째 단계, 환희삼매(관조삼매) - 이 상태는 대상이 아니라 대상을 인식하는 내적인 능력 또는 마음 자체에 집중하여 관조할때 찾아옴.
네번째 단계, 아상삼매(초관조 삼매) - 순수한 자아의식으로 마음자체에 집중하는 것이 깊어지면 두려움이나 욕망에 물들지 않는 순수한 자아에 집중할 수 있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나는 이런 사람도 아니고 저런 사람도 아닌 있는 그대로의 나일뿐이라는 깨달음이 옴.
1-18. 의식속에 대상에 대한 생각은 털끝만큼도 남아있지 않고 오직 불에 탄 씨앗처럼 잠재인상만이 남아있는 상태인 또 다른 삼매가 있다. 끊임없이 일어나는 생각의 흐름을 집착하지 않는 마음으로 주시하는 훈련을 거듭할때 이러한 삼매상태에 도달한다.
유상삼매에 도달한 다음에는 더 위대한 삼매 곧 의식자체에 집중함으로써 도달하는 무상삼매를 성취할 수 있음. 무상삼매는 완전한 요가상태임. 무상삼매에 도달한 수행자는 객관적인 대상과 그에 대한 앎으로 이루어진 프라크리티 차원을 초월하여 미분화된 우주의식인 아트만속에 진입함.
1-19. 집착하지 않는 마음이 수반되지 않는 삼매, 곧 삼매속에 무지가 남아 있다면 육체를 떠난 영들의 상태에 도달하거나 자연의 힘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잘못에 빠진다.
1-20. 진정한 구도자는 믿음을 가지고 힘을 다해 노력하며 주의깊은 명상과 통찰력을 통해 삼매상태에 이른다.
1-21. 열심히 수행하는 자는 요가상태(무상삼매)에 빨리 도달한다.
1-22. 열심에도 느긋함이 있고 용맹스러움이 있다. 그리고 그 중간정도의 열심도 있다. 그에 따라 요가상태에 도달하는 데에도 빠르고 늦음이 있다.
1-23. 이슈바라(자재신)에 대한 전적인 헌신을 통해서도 삼매상태에 도달할 수 있다.
신에 내맡김을 제외한 모든 사적동기 놓아버림
1-24. 이슈바라는 무지와 무비로 말미암아 고통으로 더럽혀지지 않고 카르마의 영향을 받지 않는 지고한 영이다.
바가바드 기타
'음식을 먹든지 예배를 드리든지 그대의 모든 행위를
나에게 바치는 제물로 삼아라.
그대가 누구에게 무엇을 주든지
또 무슨 약속을 하든지
모두 나에게 하듯 하라'
1-25. 그(이슈바라)에게는 무한한 지혜의 씨앗이 있다.
1-26. 그는 태고적 스승들보다 먼저 존재하는 스승이다. 왜냐하면 그는 시간의 제약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1-27. 그를 표현하는 신비한 소리는 '옴'이다.
1-28. 수행자는 이 소리의 의미에 정신을 모으고 반복해서 되뇌어야 한다.
1-29. 이 수행을 계속하면 내적인 자아에 대한 깨달음이 생기고 아트만에 대한 깨달음을 방해하는 모든 장애물이 파괴된다.
요한복음
' 태초에 말씀이 계셨습니다.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하셨고 그 말씀이 곧 하느님이었습니다'
리그베다
'태초에 브라흐만이 있었고 말씀이 그와 함께 있었다. 그 말씀은 참으로 지고한 브라흐만이었다'
1-30. 집중하지 못하거나 집중해도 오래 머무르지 못하면 질병, 정신적인 무기력, 회의, 열정의 결핍, 게으름, 감각적인 즐거움에 대한 갈망, 그릇된 견해, 탄식 등이 따라온다. 이런 것은 모두 깨달음의 장애가 된다.
1-31. 위와같이 마음이 혼란스러우면 괴로움, 낙담, 육체의 동요, 거친 호흡이 뒤따른다.
1-32. 하나의 진리에 마음을 모으는 훈련을 통해 마음의 혼란을 없앨 수 있다.
1-33. 다른 사람의 행복을 기뻐하고 불행을 안쓰럽게 여기며 덕스러운 행동을 좋아하고 악에 물들지도 않고 증오하지도 않는 마음을 닦으면 마음의 평화가 찾아온다.
파리는 쓰레기를 찾고 꿀벌은 꿀을 찾는다. 나는 파리의 습관을 버리고 꿀벌의 습관을 좆으리라. 나는 다른 사람의 잘못을 찾는 버릇을 버리고 그들의 좋은 점만 보리라.
'존재하는 모든 것에 선의를 가져라'
1-34. 숨을 내쉬는 것과 숨을 멈추는 것으로도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다.
요가에 대한 올바른 정보를 갖고 있지 못한 사람들은 요가를 단순한 숨쉬기 훈련 또는 복잡한 자세를 취하는 훈련정도로 여긴다. 숨을 멈추고 물구나무서기를 하는 것이 요가라고 오해하는 것이다. 그들이 말하는 요가는 이른바 '하타 요가'다. 하타요가는 영적인 목표를 성취하고자 하는 구도자들로 하여금 영적인 수행에 앞서 영적인 수행에 적합한 온전한 몸을 만들도록 하기 위해 고안된 요가다.
영적스승들 중에는 육체에 마음을 빼앗길 우려가 있다고 해서 하타요가를 반대하는 사람들도 많다.
1-35. 어떤 대상에 대한 초감각적 지각능력이 생기는 것도 마음을 고요히 하는데 도움이 된다.
파탄잘리는 영적인 수행의 진보를 위해서 '초감각적 지각능력'이 계발되는 것이 좋다고 한다. 요가수행자가 인체의 어떤 특수한 부분에 정신을 집중하면 초감각적 지각능력이 생긴다고 한다. 혀끝에 집중하면 맛에 대한 초감각이 생기고 입천장에 집중하면 색에 대한 초감각이 생긴다. 또 혀의 몸통에 집중하면 색에 대한 초감각이 생기고 혀뿌리에 집중하면 소리에 대한 초감각이 생긴다.
1-36. 모든 근심을 초월한 내면의 빛을 응시하는 것으로도 집중상태에 이를 수 있다.
고대 요기들은 배와 목사이에 영적인 의식센터가 잇다고 믿었다. '가슴의 연꽃'인데 깊은 명상속에서 그 의식센터를 각성시킬 수 있다고 믿었다.
찬도기야 우파니샤드
'몸은 브라흐만의 도성이다. 몸에는 가슴이 있으며 가슴속에 빛나는 연꽃 모양의 작은 집이 있다. 그 집안에 찾고 구하고 실현해야 할 그 무엇이 거한다. 이 작은 집, 곧 가슴의 연꽃속에 거하는 자 누구인가? 무엇을 찾고 구하고 실현해야 할까? .... 브라흐만은 찬란한 영광 중에 가슴의 연꽃속에 거한다. 가슴의 연꽃은 육체의 일부분이 아니다. 가슴의 연꽃 속에 거하는 브라흐만은 인간의 행위, 나이, 죽음, 슬픔, 배고픔, 목마름 등의 영향을 받지 않는 영원한 자유자이다'
문다카 우파니샤드
'그는 바퀴살이 축에서 만나는 것처럼 모든 신경이 만나는 가슴의 연꽃속에 거한다. 옴인 그에 대해 명상하는 자는 어둠의 바다를 쉽게 건널 수 있으리라. 찬란하게 빛나는 가슴의 연꽃속에 욕망에 사로잡히지 않고 나누어질 수도 없는 브라흐만이 거한다. 그는 순수하다. 그는 모든 빛의 빛이다. 그를 아는 자들만이 그에게 도달한다'
1-37.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진 깨달은 영혼에 대해 명상하는 것으로도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다.
붓다, 그리스도, 라마크리슈나와 같은 성자들의 마음상태
1-38. 꿈속에서 경험한 일이나 깊은 잠속에서 경험한 것에 대해 명상을 해도 마음이 고요해진다.
1-39. 자기 마음에 끌리는 신적인 형상이나 상징에 집중하는 훈련으로 마음의 고요를 얻을 수 있다.
1-40. 요기의 마음은 아주 미세한 것부터 엄청나게 큰것까지 통제할 수 있다.
여기서 요기란 단순한 요가수행자가 아니라 마음이 흩어지지 않은 상태로 어느 한점에 집중할 수 있는 힘을 이미 얻은 사람을 가리킨다.
1-41. 마치 투명한 보석이 곁에 있는 꽃의 빛깔에 의해 물들듯이 생각의 흐름이 멈추면 마음은 집중하고있는 대상과 하나가 된다. 알려지는 대상, 아는 과정, 아는 자(자아의식)가 모두 집중을 통해 하나가 될 수 있다. 이렇게 집중하고 있는 대상과 하나가 된 상태를 삼매라고 한다.
1-42. 마음이 어떤 대상에 집중함으로써 대상과 하나되는 힘이 생겼을때 대상을 가리키는 말과 그 대상의 형태, 질, 그리고 대상에 대한 앎이 별개로 작용하는 상태를 사비타르카 삼매(분별심있는 삼매)라고 한다.
파탄잘리는 1-17에서 네종류의 유상삼매 '분별삼매, 초분별 삼매, 관조 삼매, 초관조 삼매'를 언급했다.이 구절은 그 중 분별삼매에 대한 설명이다.
1-43. 깊은 기억이 깨끗하게 비워져서 대상을 가리키는 말(이름)과 그 대상의 형태와 질에 대한 분별심이 사라지고 앎만이 홀로 빛나는 상태를 니르비타르카 삼매(초분별 삼매)라고 한다.
1-44. 현상의 원인이나 그렇게 되도록 만드는 힘과 같이 미묘한 것을 대상으로 집중할 경우에도 두종류의 삼매에 도달한다. 곧 대상을 관조하는 상태인 사비차라 삼매와 관조함마저도 넘어선 니르비차라 삼매에 도달한다.
1-45. 모든 미묘한 대상에 대한 명상은 만물의 근본원인인 프라크리티에 가서 끝난다.
1-46. 지금까지 언급한 삼매는 '씨 있는 삼매(유종삼매)'라고 한다.
유종삼매에 도달한 사람은 완전한 자유에 그만큼 가까이 접근한 것이다.
1-47. 니리비차라 삼매(초관조 삼매)에 도달하면 마음이 순수해진다.
1-48. 이 상태에서는 마음이 진리로 채워진다.
1-49. 추론과 경전연구를 통해 얻는 앎도 앎은 앎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높은 차원의 앎이 있으니 곧 삼매상태에서 얻는 앎이 그것이다. 삼매상태에서 얻는 앎은 추론과 경전의 가르침을 넘어선다.
파탄잘리는 여기서 두종류의 앎에 대해 언급한다. 첫째는 감각과 이성을 통해 얻는 일반적인 의미의 앎이고 둘째는 감각과 이성을 통하지 않고 직접 얻는 초의식적인 앎이다.
1-50. 니르비차라 삼매상태에서 마음속에 생기는 인상은 과거에 쌓인 모든 삼스카라(잠재의식)를 지워버린다.
이 단계에 도달하면 그대는 깨달음을 얻은 성자인 지반묵타가 된다. 지반은 살아있는 사람을 뜻하고 묵타는 자유로움을 뜻한다. 그러므로 지반묵타는 자유롭게 사는 사람을 가리킨다.
1-51. 니르비차라 삼매상태에서 생긴 인상마저도 지워지면 모든 생각의 흐름이 사라진다. 그런 상태를 '씨없는 삼매(무종삼매)'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