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지고명령
"하루에 두 번씩 일정하게 싸더나를 수행하는 사람은 죽는 순간 그의 마음에 분명히 뻐러머 뿌루셔가 떠오를 것이며 해탈을 확실히 얻을 것이다. 따라서 아난다 마르기는 하루에 두 번씩 싸더나를 반드시 수행해야 한다. 이는 바로 뻐러서 뿌루셔의 말씀이다. 져머와 니여머가 없는 싸더나는 헛된 수행에 불과하다. 따라서 뻐러머 뿌루셔의 말씀은 져머와 니여머를 또한 지키라는 것이다. 이 말씀을 따르지 않는 것은 자신을 여러 생의 원치 않는 고통 속에 버려두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아무도 이 같은 고통을 받지 않고 누구나 뻐러머 뿌루셔의 사랑 안에서 영원한 평안을 누릴 수 있도록 아난다 마르기는 모두를 지복의 길로 인도하고자 노력해야 한다. 이는 아난다 마르기 본연의 의무이다. 이와 같이 다른 사람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는 것은 싸더나의 소중한 일부분이다. "
-- 슈리 슈리 아난다무르띠 --
“사다나를 하루에 두 번씩 규칙적으로 수행하는 사람은 죽는 순간에 분명히 뻐러머 뿌루셔를 의식할 것이며 그의 해탈은 확실히 약속 받고 있다.”라는 말이 지고명령에 있다. 뻐러머 뿌루셔는 절대자, 영원자요, 생활의 목표다. 요가에는 “마음은 대상을 쫓아 그 형상을 짓는다.”라는 말이 있다. 그러므로 마음을 영원한 자, 무한자에 집중하게 되면 우리의 마음이 그처럼 무한해지고, 영원해질 것이다.
사람이 죽기 직전 떠올리는 생각은 살아 생전 가장 아끼고 가장 많이 생각하던 것이다. 물질에 집착했던 사람은 물질을 떠올릴 것이고, 하느님을 사랑했던 사람은 하느님을 떠올릴 것이다. 살아있을 동안 애착을 둔 것이 하느님 하나라면 죽는 순간 그 사람은 분명 하느님을 떠올릴 것이다. 그리고 죽는 순간의 바로 그 생각이 다음 생을 결정한다.
“그의 해탈은 확실히 약속 받고 있다.”라는 말을 살펴보자. 몸-마음 평형주의 원리에 의하면 마음은 그 잠재적인 힘을 표현하기에 가장 적합한 몸을 찾는다. 그리하여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마음이 절대자를 향하게 되면 그러한 몸을 얻게 된다.
지고명령에 이런 말이 있다. “... 진실로 이는 뻐러머 뿌루셔의 명령이다.”라는 말이 있는 이와 같은 것들은 인간의 규범이나 제도적인 헌법이 아니라 우주의 법칙이며 하느님의 法이다. 모든 것을 만들어 내셨으며 모든 것을 키우시고 통제하시다가 거두시는 뻐러머 뿌루셔의 法인 것이다. 이 명령은 우주의 모든 존재들에게 공통적으로 해당되는 법칙이며 규범이다. 이를 위하여 이 시간 이곳에 인간의 몸을 받고서 태어났다. 이것을 바가바드 달마라고 한다. 즉, 神法이요 宇宙法이다. 이를 어기는 사람은 사람이라 할 수 없고 동물이라 할 것이다. 아니 동물보다도 못한 존재라 할 것이다. 동물은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에 못하지만 능력이 있으면서도 수행하지 않는 인간은 동물보다 더 못하다고 할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다운 삶을 산다는 것은 곧 이 우주의 법이며, 하느님의 법인 바가바드 달마를 따라야 한다.
“쟈마와 니야마가 없는 사다나는 헛된 수행에 불과하다.” 야마와 니야마는 세속에 집착하지 않고 道를 이루도록 도움을 주는 도덕률이다. 속세의 허다한 물질에 마음을 빼앗겨 천지사방으로 마음이 흩어진다면 더 높은 정신적 차원을 향한 수행은 불가능하다. 쟈마와 니야마는 규칙이 아니라 우주의 에너지가 어떻게 흐르는가에 대한 투철한 이해에 기반한 규범이다. 이 원칙대로 살아간다면 소란함에서 조용함으로 마음이 옮겨갈 것이다. 이러한 도덕률에 따르기 힘든 사람일수록 세속에 그만큼 강하게 얽매여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자마와 니야마에는 10가지가 있다.
자마(Yama)
1. 아힘사: 행동과 말과 마음으로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
2. 사티야: 남에게 도움이 되는 참된 몸가짐, 참된 말가짐, 참된 마음가짐.
3. 아스테야: 남에게 속한 것을 손으로도 마음으로도 훔치지 않는다.
4. 브라마 차리야: 주위의 모든 것들을 신의 모습으로 대한다.
5. 아파리그라하: 사치하고 현란하지 아니하며, 검소하고 소박한 생활을 한다.
니야마(Niyama)
1. 사오차: 마음과 몸과 주위 환경을 늘 깨끗하게. 더러움을 멀리하고 아침이슬보다 청아한
깨끗함으로.
2. 산토사: 매사에 감사하고, 만족하고, 평화를 갖는다. 헛된 욕심을 버리고 해맑은 호수 속의
텅 빈 하늘을 즐긴다.
3. 타파: 스스로의 몸을 수고로이 하여 이웃의 고통과 눈물을 덜어준다. 그대의 몸과 마음을
불살라 깜깜한 어둠을 밝힌다.
4. 스와디야: “우주가 한 가족”이라는 영적인 내용을 가진 글과 말들을 마음깊이 새긴다.
5. 이슈와라 프라니다나 : 언제 어디서나 신을 생각하고 그리워하며 그 분에게 나아간다.
내 모든 것을 사랑하는 님에게!
“이 명령을 따르지 않는 것은 자아를 동물 생의 고통 속으로 던져 버리는 것이니 ... ” 만일 우리가 달마의 길을 따르지 않는다면 다시 숱한 세월을 동물의 생으로 되돌아가야함을 밝히고 있다. 위에서 말한 바대로 죽을 때의 마음에 따라서 우리는 다시 태어난다. 죽는 순간의 한 생각이 우리가 태어날 곳과 태어날 시간을 결정한다. 죽은 뒤 몸은 땅으로 되돌아가고, 마음은 살아가면서 행한 온갖가지 정신적-신체적 행동에 대한 반작용으로서 쌓인 채 또다시 그러한 반작용들을 가장 잘 실현할 수 있는 몸을 찾아 나선다. 어떠한 형태이든지간에 한번 쌓인 반작용은 물질적인 형태로 표현되지 않는 한 마음은 표현의 수단을 찾아서 헤맨다.
우리가 지상명령을 쫓아 산다면 해탈은 보장되어 있다. 이는 마음이 탄생과 죽음의 굴레에서 벗어남을 의미한다. 그러나 수행하면서 통제력이 약해서 과거의 동물적인 성향이 강하게 드러나게 된다면 다음 생에는 그러한 심리적 갈망을 표현하기에 적합한 동물의 몸을 다시 받게 된다.
물질적인 것 이외의 것에 대해서는 관심이나 이해가 전혀 없이 오로지 물질적인 것에 탐닉하는 사람들을 생각한다면 위에서 말한 것들을 짐작하는데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먹고 마시고, 자고, 번식하는 것 이상에 의미를 두지 않는 욕망의 노예들은 그야말로 인간의 탈을 뒤집어쓴 짐승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일단 동물의 처지로 전락하게 되면 사정이 매우 달라진다. 인간과 달리 동물은 의식적인 노력을 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동물에서 인간으로 태어나기 위해서는 수많은 세월이 흘러야 한다. 몇 겁동안 동물의 생을 살지 모른다. 겁이란 1천만년을 가리키는 산스크리트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지구와 우주에서 인간의 몸을 받고 태어난다는 것이 얼마나 귀중한 기회인가를 잘 알아야 한다. 인간의 몸을 받기 위하여 그토록 오랜 세월을 보냈는데 어떻게 이 귀한 기회를 낭비하고 더더구나 다시 동물 생의 처지로 전락하도록 두겠는가?
“아무도 이와 같은 고통을 받지 않고 뻐러머 뿌루셔의 영원한 기쁨을 누릴 수 있도록 ...” 대부분 인류가 고통으로 시름하고 있는데 홀로 영적인 발전을 통하여 행복한 생을 누리겠다는 것은 매우 이기적인 생각이다. 과거 요기(요가수행자)들은 수행하기에 적합한 환경을 찾아서 산과 숲을 찾았다. 그러나 그러한 시절은 이미 지나갔다. 진실로 영적 깨달음을 갈구하는 자는 전체 인류를 내버려둔 채 홀로 즐거움을 맛보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영적 진보는 전체 인류의 진보와 맞물려 있다. 그러므로 남처럼 보이는 다른 사람들을 영적 길로 인도하여 더불어 함께 나아가는 것은 인간정신의 향상과 진보를 의미한다. 전 인류와의 하나된 전진이야말로 개개인의 영적 발달에 거대한 도움이 되는 우주적 힘의 발전으로 이어진다.
집단명상이 끝난 뒤 다함께 지상명령을 암송하면 다함께 그 의미를 새겨볼 수 있어 더욱 좋다. 지상명령을 따르는 것은 개인과 사회를 위한 중요한 것이므로 언제나 마음에 새기는 것이 좋다.
첫댓글 나마스까~!
16포인트 13번째 -지고명령 에 관한 내용중 "지고의 말씀"부분을 수정해서 올립니다.
'지고의 말씀' 이외 부분은 2006년 3월 26일 작성하신
"13번째-지고명령" 자료를 그대로 옮겨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