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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 밖으로
중복날 아침이다. 어제는 폭우를 쏟아 붓던 상하이 하늘이 오늘은 맑다. 전철 10호선 첫차를 타고 홍챠오역으로 향했다. 귀국을 한 달 남짓 남겨두고 중국의 10대 명산 가운데 하나로 알려진 저장성 원저우(温州) 북부에 자리한 옌탕산(雁荡山)을 찾아보기로 했다.
홍챠오 기차역에 도착해서 신분 확인 데스크와 엑스레이 검색대를 통과해서 역사 안으로 들어섰다. 평일이라 그런지 여느 주말과는 달리 조금은 한산해 보인다. 06:57에 상하이를 출발하여 선전(深圳) 북역까지 가는 고속열차 허시에호(和谐号) D2287에 올라 옌탕산으로 향한다. 옌탕산역에는 11시 전에 도착할 것이다.
허시에호(和谐号, Harmony호)는 2004년 독일, 프랑스, 일본 등의 고속열차 기술을 도입하여 중국이 자체 생산한 고속열차로 서로 다른 플랫폼을 기반으로 개발되어 호환 및 연결성이 떨어져 운영과 유지관리가 어렵고 효율성도 낮다고 한다. 이에 중국은 2012년 성능과 기능이 개선된 고속열차 개발 착수하여 2017년 6월 26일 베이징-상하이 노선 양방향 운행을 시작함으로써 '푸싱호(复兴号)' 시대를 열게 된다.
허시에와 푸싱은 최고 속도가 각각 시속 350km, 400km인데, 허시에는 좌석 정보 표시 기능이 없고, 내구 연수도 20년 정도로 푸싱호보다 10년 정도 짧으며, 푸싱호와 달리 무료 와이파이 네트워크 기능도 없다고 한다.
상하이를 벗어난 열차는 진산(金山) 북역, 쟈싱(嘉兴) 남역 등에 정차하며 남쪽으로 달린다. 회색빛 흐린 하늘 아래 낮은 주택들을 품은 끝없는 초록초록한 평원이 차창을 스쳐 지난다.
대학 동기 단톡방에 Y가 올려준 신문 스크랩 중 "보람과 긍지가 하늘까지 닿는다."는 '오늘의 운세' 란 글귀가 '중국 10대 명산 중 하나'를 탐방하러 가는 기대와 설렘을 단적으로 대신해 주고 있는 듯하다.
중국인들은 기분이 좋을 때 흔히 '카이씬(开心)'이라고 말한다. '마음이 열린다.' 쯤으로 해석이 되는데, 먼길을 달려 망망한 바다를 마주하게 되거나 천신만고 끝에 산봉우리에 올라 일망무제 전경을 접할 때 무심결에 내뱉게 되는 "가슴이 툭 트인다"는 말과 일맥상통하는 표현이다.
저장성의 성도인 항저우로 들어서자 멀찍이 산군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항저우 동역과 남역을 거치면서 헐렁하던 열차 객실은 빈 좌석이 거의 없이 만석으로 가득 찼다. 샤오싱(绍兴)과 닝보(宁波)를 지나고 닝하이(宁海), 린하이(临海) 등을 거쳐서 타이저우(台州) 북역으로 들어서기까지 열차 차창 밖으로 높고 낮은 산군들이 연이어 스쳐 지난다.
휴대폰에 "7월 15일부터 21일까지 유언비어 등 인터넷 루머 단속 홍보 주간"이라는 상하이 공안국의 문자 메시지와 함께 "여행질서 준수와 문명·건강·녹색·평화 관광"을 당부하는 닝보 문여국(文旅局)의 메시지가 날아들었다. 중국에서 열차를 타고 이동할 때면 경유하는 지역을 홍보하는 문자 메시지를 받는 것은 예사로운 일이다.
원링(温岭) 역에 잠시 정차했던 열차가 다시 출발한 지 채 10여 분도 되지 않아 옌탕산역(雁荡山站)에 도착했다. 차창 밖으로 희뿌연 안개에 잠겨 있는 옌탕산이 눈에 들어온다. 열차에서 내려 역사를 빠져나와 역사 옆 버스 승강장에서 옌탕산 풍경구 여행자센터까지 운행하는 무료 셔틀버스에 올랐다. 승객 셋을 태운 버스는 십여 분 후 옌탕산을 향해 출발하여 10여 분만에 여행자센터에 도착했다.
주말을 앞둔 평일 정오 무렵이라 그런지 널찍한 여행자센터는 근무하는 직원들이 여행자들보다 더 많이 눈에 뛸만큼 썰렁하다.
따롱치우(大龍湫) 폭포, 링옌(靈岩), 링펑(靈峰) 등 크게 대여섯 곳으로 구분된 옌탕산 풍경구 입장권은 A, B노선 티켓으로 구분되어 있다. 네 곳을 둘러 볼 수 있는 170위엔짜리 티켓 대신 풍경구 전역을 3일간 둘러볼 수 있는 200위안짜리 티켓과 풍경구 곳곳을 연결해 주는 셔틀버스 탑승권 40위안을 지불했다.
각 풍경구는 입장권의 큐알코드 또는 안면인식 시스템을 통해서도 입장이 가능하다. 참 편리하다는 생각과 함께 자못 꺼림칙하다는 생각도 감출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예약해 둔 객잔에서 먼 곳에 위치한 따롱치우(大龙湫) 풍경구부터 객잔 쪽으로 거슬러 오며 둘러볼 요량이다.
옌탕산 품속으로
대형 버스에 탑승해서 병풍처럼 높이 솟은 기암 사이로 난 계곡 옆 도로를 따라 삼절폭포 입구를 지나고 링옌 징취(灵岩 景区) 입구에서 내렸다. 미니 버스로 환승하여 계곡 깊숙히 고도를 높여 가다가 좁은 터널도 지나며 따롱치우 징취(大龙湫 景区) 입구에 도착했다.
검표소 안면인식 화면에 얼굴을 비추니 마음속 의구심을 단박에 면박을 주듯 회전문이 길을 내어 준다. 그 초입에 옌탕산의 형성과정, 안탕산 공원 개요, 이 산에 서식하는 동물 등을 설명하는 안내판이 있어 관람객의 이해를 돕는다.
2005년 세계지질공원과 2007년 국가 5A급 풍경구로 각각 지정된 옌탕산은 저장성 원저우(温州市)와 타이저우시(台州市) 경내에 위치한 면적 약 299km²의 공원으로 중국 '삼산오악(三山五岳)'의 하나로 알려져 있다.
삼산은 고대 중원지구(中原地区)를 일컫는 화하(华夏)의 명산을 말하는데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설이 있다. (1) 중국 고대 신화 전설 속의 히말라야 산맥, 쿤룬 산맥, 톈산 산맥 (2) 도교 전설 속의 봉래, 방장산, 영주(瀛洲) (3) 오늘날 황산, 루산(庐山), 옌탕산을 각각 삼산이라 일컫는다. 오악은 통상 태산(泰山)' 화산(华山), 형산(衡山), 숭산(嵩山), 항산(恒山)을 이른다.
안탕산의 기이한 첩첩 봉우리와 괴석비포(怪石飞瀑) 등 절경은 약 1억 4천만 년 전 태평양 판과 아시아 판의 충돌로 인한 마그마의 유출과 4기 화산 폭발을 거치며 형성되었다고 한다.
이 곳엔 표묘(豹猫), 봉황 머리 매(凤头鹰), 붉은머리 푸른 까치(红嘴蓝鹊), 벌거숭이 다람쥐(赤腹松鼠) 등도 서식하는데, 맑은 계곡물과 울창한 수목과 더불어 도마뱀도 간간이 눈에 띈다.
계곡을 따라난 길을 오르면서 계곡 좌우를 옹위하고 있는 기암괴봉들의 모습이 하나씩 눈에 들어온다.
여인이 아기를 품고 있는 모습이라는 포아봉(抱儿峰), 가위를 거꾸로 세워놓은 듯한 모양의 가위봉(剪刀峰) 고목을 쪼며 먹이를 찾는 형상의 딱따구리봉(啄木鸟), 가늘게 우뚝 솟은 돛대봉(桅杆峰), 그 옆 곧고 높게 솟은 나무 숲 사이로 보이는 펼친 돛 모양의 일범봉(一帆峰), 곰이 암벽에 기대어 선 모양의 곰바위(熊岩) 등 모두가 암봉 형상에 걸맏는 그럴듯한 이름들이다.
그 계곡 정점 앞을 막아서는 천길 암벽 위에서 물줄기를 쏟아내는 따롱치우 폭포가 맞이한다. 비단결처럼 펼쳐진 폭포수를 올려다보거나 물에 손을 담그는 등 폭포 주변 순진무구한 표정의 관람객들은 모두 어린 아이로 돌아간 듯 보인다.
왼편 기슭의 관폭정(观瀑亭)에 오르면 폭포와 그 아래 물웅덩이 전체를 한눈에 들어온다. 폭포 앞 징검다리를 건널 때 물보라와 바람이 얼굴을 때린다.
상하이에는 폭우가 쏟아졌다는 얘기가 들려오는데, 이곳은 일기 예보와는 달리 비도 오지 않고 따가운 햇볕도 없는 날씨다. 이마에서는 땀이 비오듯 뚝뚝 떨어지지만 절경을 감상하는 흥취는 남다르다.
계곡 반대편 쪽 길로 접어들어 폭포를 뒤로하고 되돌아 내려오는 길은 올라올 때 관망했던 암봉들 밑을 지나며 그 모양새들을 반추해 보기에 좋다. 딱따구리봉 아래 회랑을 지날 때 계곡 물소리가 귀청을 때리며 마음의 빗장을 완전히 허물어 버린다.
링옌(靈岩; 영암) 풍경구
13:40경 따롱지아 풍경구에서 버스로 링옌(靈岩; 영암) 풍경구로 이동했다. 링옌은 링펑(灵峰; 영봉), 따롱치우(大龙湫)와 함께 옌탕산의 3절(三绝)로 불리는데, 이 풍경구는 병하장(屏霞嶂), 영암사(灵岩寺), 천주봉(天柱峰), 병기봉(展旗峰), 소롱추(小龙湫; 샤오롱치우), 용비동(龙鼻洞), 탁필봉(卓笔峰), 와룡곡(卧龙谷) 등 수많은 볼거리를 감추고 있다고 한다.
링옌 풍경구 검표소 옆 관리사무소에 배낭을 맡겨두고 입구로 들어서서 계곡 옆길을 따라 올랐다. 입구에서 머지 않은 곳 우측에 서하객(徐霞客, 1586-1641년)의 석조 동상이 자리한다. 명나라 때의 인문 지리학자요 여행가로 <서하객유기(徐霞客游記)> 를 남긴 그도 이곳을 여러 차례 다녀갔다고 한다.
조금 더 발길을 옮기니 계곡 옆 기암 절벽에 둘러싸인 너른 공터에 자리한 영암선사(灵岩禪寺)의 아담한 대웅보전이 눈에 들어온다. 이 사찰은 북송 때인 979년 개창되고 1998년 재건되었다고 하는데, 규모가 크고 기교가 심한 여느 중국의 사찰의 건축 양식과는 달리 단순 소박하여 주위 경관과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웅전 외에 별다른 부속 건물이 없는 링옌스(灵岩寺)에서 관람객의 발을 붙잡는 것은 따로 있다. 링옌스 우측 270미터 높이 천주봉(天柱峰)에서 사찰 마당을 가로질러 건너편 전기봉(展旗峰)으로 수백 미터 높이에 연결된 줄을 타고 건너가는 묘기가 오후 2시와 4시 하루 두 차례 펼쳐지는 것이다.
마침 오후 두 시쯤이라 영암사 주변 벤치, 공터, 건물 계단 등 조망이 좋은 곳을 많은 사람들이 차지하고 묘기를 지켜보고 있다. 천주봉의 천길 절벽 아래로 늘어뜨린 밧줄을 타고 밑으로 내려오며 약초를 채집하는 모습이나 두 봉우리 사이에 연결된 줄을 타고 건너는 모습은 지켜보고만 있어도 정신이 아찔하고 오금이 져려온다. 정작 줄 타는 사람보다 줄 타는 사람을 바라보는 관람객들 모습도 볼만하다.
사람들이 줄타기 묘기에 눈을 팔고 있는 동안 샤오롱치우(小龙湫)를 둘러보려고 바삐 발길을 계곡 윗쪽으로 옮겼다. 일기 예보와는 달리 구름만 끼었을 뿐 비가 오지 않고 햇빛도 없는 숲속 계곡길이라 공기가 서늘함이 느껴지지만 몸은 온통 땀범벅이다.
유문암이 단열작용으로 암석이 붕락되어 형성되었다는 탁필봉(卓笔峰)은 이름 그대로 뾰족한 펜을 거꾸로 세워놓은 모양이다.
조금 더 오르니 협곡 사이에 산정 V자 모양 능선에서 천길 아래쪽으로 물줄기를 힘차게 내리꽂는 샤오롱치우 폭포가 나타났다. 비상하는 용이 물을 들이키는 형상이라는 이 폭포의 높이는 따롱치우 폭포의 절반쯤인 70여 미터라고 한다.
한동안 넋을 놓고 폭포를 바라보다가 폭포 위로 난 잔도에 사람들 모습이 보여 아래쪽 진입로로 휘돌아 수직 절벽에 놓인 잔도 계단을 따라 폭포 위쪽으로 올라갔다.
절벽에 난 잔도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니 정신이 아찔하다. 수직으로 깎아지른 암벽에 기대어 폭포 아래로 설치된 엘리베이트는 운행을 멈추었고, 그 뒤쪽으로 발밑이 훤히 내려다 보이는 와룡곡 유리 잔도가 기다리고 있다.
잔도 끝에는 폭포수의 수원이 되는 용구호(龙口湖; 롱커우후)와 와룡담(卧龙潭; 워롱탄)이 초록빛 맑은 물을 머금은 채 관람객을 맞이한다.
롱커우후 한가운데 수면 위에는 순백의 불상이 연화대 위에 자리하는데 그 모습이 신비롭다. 비단 잉어들 유유히 노니는 초록빛 워롱탄의 물은 청량해 보이는 그 모습처럼 차갑고, 15여 미터 높이 폭포를 부채살처럼 아래쪽으로 펼치며 한기가 도는 바람을 일으킨다.
롱커우후에서 워롱탄으로 오르는 길에 유려한 황룡 그림이 그려진 '와룡곡(卧龙谷)' 표지석이 자리한다. 그 이름처럼 이 협곡은 암봉들 사이 좁은 틈새에 갇힌 황룡이 승천하려 몸을 꿈틀대며 몸부림치면서 비늘로 암벽을 마구 긁어 놓은 형상처럼 기이하기 그지없다.
샤오롱치우 폭포 부근 암벽에는 높이 40m, 너비 10m, 깊이 30m의 용비굴(龙鼻窟), 네모형 기둥 형상으로 높이 100여 미터의 독수봉(独秀峰) 등 볼거리가 수두룩하다. 사방으로 카메라를 들이대도 각기 다른 모습을 담아낼 방도가 없을 듯 하다.
한 쌍의 얕은 동굴에는 '제공활불(济公活佛)'이라는 이름을 붙여 놓았다. 제공(1131-1209년)은 국청사에서 출가한 남송 때의 스님으로 계율에 얽매이지 않고 술과 고기를 좋아하며 미친 듯이 행동했지만 학문이 깊고 선행을 베풀며 덕을 쌓아 활불로 불리는 고승이라고 한다.
계곡 위 아래쪽 관람객들 모습은 보이지 않는데 서로 주고받는 목소리나 탄성은 계곡에 갇혀 증폭되어 또렷하게 들려온다.
내려가는 길 곁사지로 난 계단을 200여 미터를 올라 용비동(龙鼻洞)을 둘러보았다. 승천하려던 용이 마지막 몸부림을 치면서 콧바람을 내쉰듯 갈라진 암벽 아래 콧구멍처럼 뚫린 지형이 그 이름에 걸맞다.
우시에서 4일 여정으로 단체 투어를 왔다는 초로의 여성도 용비동의 모습이 궁금했나 보다. 롱커우후 위 정자에서 아래쪽 동행들을 향해 일장 탄사(歎詞)를 읊조리던 초로의 남성은 진화(金华)에서 단체여행을 왔다고 했다. 저장성이나 장쑤성 등 인근에 사는 사람들은 이렇듯 천하절경이 지척에 있으니 한 번쯤 찾지 않을 까닭이 없어 보인다.
천주봉 쪽으로 되돌아 내려오다가 영암사 뒤쪽에 연화동(莲花洞)과 총명동(聪明洞) 갈림길에 이정표가 있어 2km 여 지점에 있다는 연화동 쪽으로 길을 잡았다. 산길 왕복 4km는 만만찮은 거리라 그 중간쯤 산 언저리 모퉁이에 자리한 하객정(霞客亭)까지 올라 솔솔 부는 바람에 한동안 땀이 흥건한 몸을 맡겼다. 과한 욕심은 번거로움을 낳고 때론 화를 부르니 연화동(莲花洞)으로 향하는 마음을 접고 발길을 돌린다.
링옌(靈岩; 영암) 풍경구 출구를 빠져나와 승강장에서 16:45경 셔틀버스에 올랐다. 영봉 방향 조양동 입구 부근 마을에서 내려 예약을 해둔 객잔에 짐을 내렸다.
객잔 부근 식당에서 간단히 저녁을 든 후 걸어서 영봉(灵峰) 풍경구에 도착하니 오후 여섯 시 반경이다. 이 구역은 야간 투어 프로그램을 운영해서 밤 늦은 시각까지 개방을 한다고 한다. 자못 어떤 프로그램인지 궁금증이 인다.
검표소에서 안면인식 후 입구로 들어서니 계곡 앞쪽에 한 쌍의 죽순이 솟아 있는 듯한 모습의 높이 80여 미터의 쌍순봉이 맞이한다. 그 뒤 첩첩 암봉들이 희미한 안개 구름을 걸친 모습이 잠시잠깐 사이에 인간계의 경계를 넘어 선계(仙界)로 들어선 느낌이다.
계곡에 걸린 1902년 건립된 아치형 돌다리 과합교(果盒桥)는 건너지 못하게 낮는 목재 문을 잠궈 놓았다. 그 아래 연초록 빛깔 맑은 물이 고인 계곡에는 어린 아이들을 동반한 가족 나들이객이 물놀이를 하고 있다.
닭 두 마리가 목을 빼들고 버틴 모습이라는 두계봉(头鸡峰)을 지나 500여 미터 거리 합장봉으로 향한다. 이어서 화산 분출시 두꺼운 유문암 층이 형성된 봉우리라는 약 백 미터 높이의 초운봉(超云峰)이 눈에 들어온다.
과합정에서 바라보는 코끼리 코처럼 생긴 길쭉하게 높이 솟은 암봉 상비암의 형상도 일품이다.
계곡을 타고 선선한 바람이 솔솔 불어 땀에 젖은 얼굴의 열기를 식혀준다. 이정표가 각각 500, 100, 300미터 지점에 자리한다는 관음동(观音洞), 오동각(五洞), 영봉고동(灵峰古洞) 방향은 길을 차단해 놓았다. 저녁 일곱 시가 넘어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니 관람객의 안전을 위한 조치일 터이다.
계곡 오른편으로 난 길을 따라 발걸음을 재촉하자니 발 밑으로 차가운 기운이 느껴지진다. 길옆에 '풍동(风洞)'이라는 표지판 아래 바위 절벽 갈라진 틈새에서 에어콘 바람처럼 차가운 바람이 밀치고 나온다. 한동안 그 앞에 쭈그리고 앉아 열기를 식혔다.
진입로를 차단해 놓은 영봉고동 입구에 다다를 즈음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관음동 은은한 종소리와 불경 암송 소리가 빗소리에 섞여 잔잔히 흐를뿐 문은 굳게 닫혀 있다. 이마에 흐르는 땀을 손으로 씻어 내며 출구로 향한다.
언제 몰려 올라왔는지 관음동 아래 공터에는 삼삼오오 모인 사람들이 어둠에 잠긴 봉우리들을 올려다 보며 해설사의 설명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계곡 좌측 내려가는 길에서 어둠에 잠긴 건너편 봉우리들을 조망하면서 해설사로부터 봉우리에 담긴 얘기를 듣는 영봉 야간 투어를 하는 모습이다.
각각의 봉우리들이 잘 조망되는 곳마다 커플봉(情侶峰), 목동 훔쳐보기(牧童偷看), 잠자는 미인(睡美人), 할미봉(婆婆峰), 시아버지봉(公公峰), 과일상자 삼경(果盒三景), 황혼의 로맨스(黄昏恋), 연대관음(莲台观音), 소녀 마음을 열다(小女开怀), 수성송객(壽星送客) 등 각양각색 이름의 푯말이 서있는데, 해설사들은 각각의 봉우리에 곁들여 놓은 그럴듯한 스토리를 들려준다.
조양동 아침 산행
어제 마춰둔 알람이 5시 반경 잠을 깨웠다. 향령두(响岭头; 샹링터우) 마을 객잔 앞을 휘둘러 선 암산을 올라 능선을 따라 한 바퀴 휘돌아 영봉(灵峰; 링펑) 풍경구 입구 쪽으로 내려설 요량이다. 간단히 세수를 하고 객잔을 나서니 대여섯 명 러너들이 객잔 앞 도로를 달리며 나보다 훨씬 이르게 하루를 시작했다.
깎아지른 듯 솟은 옥인봉(玉印峰)과 대상암(大象岩) 절벽 아래 안긴 마을을 지나 암봉 위 어디쯤엔가 있을 조양동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나선형 도로를 지나 계단으로 들어선지 채 5분도 되지 않아 도교 사원 조양원(朝阳院)이 자리하는데 막다른 길이라 아래쪽으로 되돌아와 길을 바로 잡았다.
이른 아침이라 지키는 사람이 없는 검표소를 지나 계단을 오르자 조양동(朝阳洞; 차오양동) 동굴이 눈앞에 나타났다. 실눈같은 폭포수가 하늘을 반쯤 가리며 안으로 깎여 들어간 절벽 천정에서 아래쪽 연못으로 떨어져 내린다. 조양(朝阳)의 남쪽에 위치하며 입구가 동쪽을 향하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는데, 동굴이라기 보다는 움푹 들어간 절벽이라고 표현하면 적당할 듯 한 형상이다.
조양동 좌측으로 난 계단길을 따라 조천문 쪽으로 향한다. 바람에 실비가 섞여 흩뿌리는가 싶더니 이내 멈춘다.
반듯한 대리석 계단이 끝나며 암벽을 깎아 만든 계단이 나타난다. 급경사에 미끄러워 보이는 계단길은 위험해 보이지만 튼튼한 난간이 있어 다행이다. 지팡이를 하나씩 들고 계단길을 내려오는 두 명의 장년 남성과 서로 인사를 나누고 서로 조심하라는 말을 건네며 길을 비켜갔다.
폭포 윗쪽 천애절벽 난간에 의지하여 아래쪽 동편을 마주하니 눈 아래 산줄기들 틈에 안긴 객잔촌과 그 너머 멀리 평원과 어우러진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서하객이 "천하기수 해상명산(天下奇秀 海上名山)”이라고 찬사를 보낸 이유를 알만하다.
하늘은 잔뜩 찌푸렸지만 비는 내리지 않아 다행이지만 이마에서는 땀이 비오듯 흐르고 온몸도 땀으로 흥건하다. 다시 돌아서니 까마득한 절벽 위 산정쪽은 아득해 보이지만 길을 다잡고 발길을 재촉한다.
얼마지 않아 이정표가 오른편 산허리로 난 길을 가르킨다. 거대한 병풍처럼 우뚝 선 암벽 조양장(朝阳嶂)을 좌측에 끼고 돌아 허리 높이 돌로 쌓은 흔적이 남아 있는 채성 유적지(寨城遗址)로 올라섰다. 큰 돌들로 험한 암산 요지 쌓은 얕은 성인데 어느 누가 누구를 방어하기 위해 쌓은 것인지 알 길이 없다.
점점 더 가팔라지는 계단길과 함께 고도가 높아지면서 안개비를 인 산군 사이로 바다가 더 가까이 더 넓게 다가온다.
오랫동안 사용 흔적이 없어 보이는 공공화장실 아래 이정표가 산정 쪽 200미터 지점 오로전(五者巅)과 조천문으로 길을 갈라 놓는다. 경사진 산길 200미터는 결코 만만찮은 거리이지만 자칭 산행 애호가로서 정상을 외면하기 어렵다.
가을바람처럼 서늘한 미풍, 산새들의 유쾌한 지저귐, 풀벌레들의 합창을 친구 삼아 발길을 옮긴다. 힘겹게 올라선 해발 약 400미터 능선마루에는 아무런 표지석도 없어 좌측에 송곳처럼 뽀족하게 곧추 솟은 봉우리가 금구봉(金龟峰)이 아닐까 짐작만 해볼 뿐이다.
우리나라 산의 이정표와는 달리 중국 유명 산들의 이정표에는 등산로를 현 위치의 고도나 정상까지의 방향과 거리 등에 대한 내용은 없는 것이 일반적이다.
한편, 우리나라의 국립공원들은 가급적 인공시설을 더하지 않고 자연 그대로의 모습대로 보존하고자 한데 비해, 중국의 국가급 풍경구들은 출입구를 제외한 사방을 틀어막아 놓고 입장료를 받고 출입을 허용하며, 케이블카, 버스, 엘리베이트 등 각종 이동수단을 이용해서 주요 볼거리를 둘러보도록 해놓았다.
이러한 차이는 우리가 산을 찾는 이유가 '산행(山行)'인데 비해 중국에서 산을 찾는다는 것은 필시 산의 경관을 둘러보러 가는것, 즉 '관산(觀山)'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유명 관광지마다 인산인해를 이루는 인구 대국 중국에서 우리나라 국립공원과 같은 시스템을 적용한다면 산 전체가 통제불능 상태에 빠져들지도 모를 일이다.
능선 너머 비온 뒤 무성히 자란 죽순처럼 솟아있는 암봉들의 숲을 한동안 조만한 후 갈림길로 되돌아 내려와서 조천문 쪽으로 길을 재촉했다.
조천문은 인공으로 만든 건축물이 아니라 곧추 선 암봉들이 하늘을 가릴듯 둘러서 있는 지점으로 객잔이 있는 마을로 내려가는 환산(環山) 등산로와 영봉 경구(灵峰景区) 입구 쪽으로 내려서는 갈림길이다.
그 가운데 동쪽을 향해 돌출한 암릉길로 들어서니 "기가 막힌다"는 말로 밖에 표현할 수 없는 진경이 사방으로 펼쳐진다. 누구나 이곳에 한 번 올라본다면 서하객이 옌탕산은 표현하기 어렵다고 고백하듯 기술한 이유를 알수 있을 것이다.
세상 명산을 모두 찾아 보았지만, 그중 이곳 경관은 기록하기 어렵구나.
四海名山皆过目,就中此景难图录
_서하객 <옌탕산 유기(雁荡山游记)>
태산이나 황산처럼 산수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산들과는 달리, 마그마의 작용과 화산 폭발로 인한 용암의 분출, 그 위에 수천 수만 년 침식의 시간이 더해 빚어낸 추상화처럼 기기묘묘한 이 산을 몇마디 말로써 표현하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바람에 휩쓸릴까 두려운 마음에 난간을 부여잡는다. 갈림길로 되돌아 나와 끝이 보이지 않는 협곡의 가파른 계단을 따라 영봉 경구 입구 쪽으로 내려간다.
협곡을 옹위하고 솟은 암봉 중 오른 편 암봉 하나는 창문처럼 몸통에 구멍이 뻥 뚫려 있는데 이름하여 '천창(天窗)'이다. 두 암봉 어깨에 걸려 있는 둥근 큰 바윗돌 아래를 지나 영봉 경구 입구로 내려서니 산행을 시작한 지 두 시간 반이 지났다.
여전히 이른 아침이라 인적이 드문 영봉징취 입구로 들어섰다. 도움이 필요하냐고 묻는 관광해설사에게 손사래를 치며 사양하고 계곡 윗쪽으로 걸어가며 어제 밤에 수박 겉핥듯 둘러보았던 경관들을 밝은 하늘 아래서 재차 살펴보았다.
계곡 앞 쪽에 우뚝 선 쌍순봉을 쳐다보며 과합교 앞을 지나 오른편으로 난 계단길을 따라 석굴 통로를 지나 영봉고동(靈峯古洞) 입구로 올라섰다. 영봉 고동은 원래 사찰이 있던 곳으로 600년경 산이 붕괴되면서 일곱 개의 동굴이 서로 연결된 형태를 띠게 되었다고 한다. 내부에는 연못처럼 물이 고인 운무동(雲霧洞), 불상을 모신 호운동(好運洞) 등을 거쳐 동굴 속 계단을 따라 오르면 암봉 허리에 자리한 조망처 동요대(东瑤台)와 서요대(西瑤台)가 나온다.
동요대에 올라서서 계곡 건너편 암봉 중턱에 자리한 사찰에서 흘러나오는 불경 소리를 들으며 시원히 불어오는 바람에 한동안 몸을 맡겨 본다.
고동(古洞)을 통해 아랫쪽 계곡으로 내려섰다. 어젯밤 그 입구에서 발길을 돌렸던 관음동이 두 암봉이 합장하듯 마주하고 솟은 합장봉(合掌峰) 품속에 안겨 있다. 높이 270여 미터 합장봉은 희끄레한 어둠녘에 보면 그 모습이 변화무쌍하다고 한다.
올려다보면 한 쌍의 통통한 젖가슴과 닮아 '쌍유봉(双乳峰)'이라 불리기도 하고, 달리보면 치파오(旗袍)를 입은 날씬한 소녀로 변해 '상사녀(相思女)'라고 불리기도 한다고 한다.
합장봉은 그 가운데 높이 113미터 바닥 폭 14미터 깊이 76미터의 움푹 들어간 반동굴을 품고 있는데, 그 안에는 9층으로 이루어진 사원이 들어서 있다.
끝이 없을듯 높고 가파르게 이어진 계단을 올라 동굴 정점에 다다르니 한가운데 관음보살상을 중심으로 크고 작은 금빛 불상들이 암벽 곳곳에서 자리한 작은 불국토가 나타난다. 마음이 동하여 아래쪽 입구에서 준비했던 향에 불을 사르고 합장을 했다. 암벽 위에서 떨어지는 암반수를 받아 둔 음용대에서 물 한 모금 들이키고 관음동에서 되돌아 내려왔다.
풍경구 출구 부근에는 본격적으로 몰려들기 시작하는 관람객들이 눈에 많이 띈다.
객잔촌으로 돌아와서 숙소 부근 식당에서 볶은밥에 가지 볶음을 시켜 달게 늦은 아침을 들고 객잔으로 돌아왔다. 어제 오후부터 오늘 오전까지 쏟은 땀이 가히 몇 되박은 될 듯하다. 몸도 많이 지친 탓에 객잔에서 땀을 씻고 휴식을 취한 후 오후에 경구(景区) 한 곳 정도만 더 둘러보기로 마음을 정했다. 마음이 이처럼 느긋한 것은 하루를 일찍이 시작했기 때문일 터이다.
팡동 풍경구(方洞景区)
정오경 객잔에서 퇴실하고 나서 셔틀버스에 올라 링옌(灵岩)에서 내린 후 작은 버스로 갈아타고 링옌(灵岩) 풍경구 서편에 자리하는 팡동(方洞) 풍경구로 향했다. 버스는 가파른 암봉의 비탈진 기슭으로 난 길을 타고 올라 암봉의 중턱 쯤에 자리한 해발 400여 미터 남짓 팡동 풍경구 주차장에 내려준다.
징취(景区) 검표소로 가는 계단으로 접어드니 높이 300여 미터의 '금대장(金带嶂)'이 띠와 같은 암층을 가로로 꿰질러 차고 아래 위로 암벽을 이루고 있다. 암장(巖漿)이 흐르면서 형성된 유문암층으로 지표에 용결된 응회암 화산쇄설과 공중에서 떨어진 화산재가 쌓이면서 그 접점에 띠가 형성된 것이라 한다.
암벽의 흉부쯤의 높이에 자리한 검표소 주변에는 편의점, 아래쪽까지 연결된 케이블카 탑승장, 화장실 등이 자리한다. 검표소로 들어서서 경사가 느슨한 절벽을 깎아서 낸 길을 얼마간 지나고 나면 천길 수직 절벽 허공 위에 놓인 수 백여 미터 잔도가 굴곡진 암벽을 따라 이어진다.
아래위 천애절벽에 놓인 잔도는 관음봉(观音峰), 금귀영객(金龟迎客) 등 여러 봉우리와 각종 형상에 빗대어 이름을 붙인 암봉들을 하나씩 보여 주며 발 아래로 산군에 안긴 마을들을 그림같이 펼쳐 보인다.
잔도의 절벽 안쪽으로 '팡동(方洞)'이라는 사묘(寺庙)를 조성해 놓았는데, 입구로 들어서서 계단을 올라 전각 안으로 들어서니 '호공대제(胡公大帝)' 신상이 자리하고 있다. 저장성 융캉현(永康县) 출신의 북송 시기 걸출한 정치가로 청렴하고 근면한 행정으로 백성의 존경과 사랑을 받았던 호측(胡则, 963-1039)을 천년이 지나도록 '대제'로 추앙하여 기리고 있는 것이다.
잔도 위 100여 미터 종 처럼 움푹 파인 '금종조(金钟罩)'와 관우가 청룡언월도로 절벽을 단칼에 갈라놓은 듯 발아래 천길 절벽이 한눈에 들어오는 '관도동(关刀洞)'을 지날 때는 절로 오금이 저려온다.
절벽 안쪽으로 둥그렇게 움푹 파들어간 제법 너른 반동굴의 쉼터 겸 매점이 자리한다. 그 앞 난간에 기대어서 마을을 내려다보니 마치 26년 전 찾았던 스위스의 작은 마을 뮈렌에서 산 아래 계곡의 마을을 굽어보던 기억이 오버랩되며 떠오른다.
공작 바위(倒側孔雀), 인면상신(人面象身), 바다사자(海獅), 졸고 있는 원숭이(睡猴), 철권봉(铁拳峰), 관음좌 연대(觀音坐蓮台) 등을 알리는 이정표를 스쳐 지나자 뚝 끊어진 절벽 양쪽을 잇는 출렁다리가 천길 높이에 걸쳐져 있다.
이 철색교(铁索桥) 출렁다리는 한 번에 100명의 무게를 지탱할 수 있다는 안내문처럼 튼튼해 보이지만 족히 백여 미터가 넘어 보이는 다리를 건너자니 머리카락이 쭈볏쭈볏 곤두선다. 이럴 때 '인디아나 존스' 등 어드벤쳐 영화에서 꼭 등장하는 출렁다리 하판 낡은 나무가 부스러지는 장면이 떠오르곤 하니 난감하다.
철색교를 건너니 절벽 벽면을 타고 찔끔찔끔 물이 내려오는 진주폭(珍珠瀑) 아래 물웅덩이에는 거북 등 위에 삼장법사와 손오공 삼 형제가 서역으로 불경을 얻으러 가는 장면을 묘사한 조각상이 한동안 눈길을 잡는다.
이정표가 가리키는 경천호(景天湖) 쪽으로는 사람들 발길이 뜸하다. 마을 풍경이 모습을 감추기 시작하는 지점인 경관대(观景台)에 한 전 올랐다가 팡동 경구 검표소 쪽으로 발길을 돌려 옌탕산 탐방 일정을 맺기로 했다.
검표소를 빠져나오면서 전자 계수기를 보니 "62,650人"이라는 숫자가 보인다. 궁금증이 일어 검표원에게 그 숫자가 언제부터 입장한 관람객 숫자인지 물어 보니, 그녀도 명확한 답을 주지 못한다.
오후 13:50경 팡동 경구 승강장을 출발한 미니버스가 산기슭으로 난 길을 굽이 돌며 달려서 금새 링옌 경구 정류장에 도착했다. 큰 버스로 환승 후 여행자 안내센터에서 내려 다시 셔틀버스로 옌탕산역으로 이동했다.
중국 삼산오악(三山五岳)의 하나요 십대 명산 중 하나로 서하객이 "빼어남이 천하 으뜸(天下奇秀)”이라고 칭송했던 옌탕산을 짧게 둘러보았지만, 실로 '관산'과 '산행'을 겸하기에 적격인 숨어 있는 보물같은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코로나가 물러나고 한국과 중국 간을 운행하는 항공노선이 속속 복원되는 가운데, 지난 6월에는 한국 인천공항과 원저우(温州) 간 직항 항공노선도 복원되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조금 덜 날려진 산이지만 산행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꼭 찾아보라고 권하고 싶은 명산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기차표를 세 시간 정도 앞당겼지만 여전히 출발 시각까지는 두어 시간이 남았다. 기차역 화장실에서 땀을 씻고 셔츠를 갈아 입으니 한결 기분이 나아진다. 정차하는 열차가 많지 않은 탓인지 대합실 안은 한산하다가 열차 시각이 가까워지자 비었던 좌석이 빈틈 없이 가득 찼다.
차비를 더 지불하고 시각을 앞당기면서 좌석이 없는 '무좌(无座)'로 바뀌었다. 예닐곱 곳 정차하는 곳마다 자리를 옮겨다니는 번거로움을 감수해야 할 형편이다. 항저우 남역부터 빈좌석이 없어 상하이 홍차오역까지 지친 몸을 객실 연결 칸 벽면에 의지할 수밖에 달리 방도가 없다. 옌탕산 탐방의 감흥은 말로 표현하기 난해하여 미려한 추상화처럼 오래도록 곰곰 곱씹어야 할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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