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바로 살아라(Do the Right Thing) : 현장을 역동적으로 재현한 브루클린의 ‘인종전쟁’ 24시간
스파이크 리(Spike Lee) 감독
뉴욕의 하워드 비치에서 한 흑인 청년이 살해된다. 범인은 젊은 백인 청년들. 인종이 다른 것을 문제삼아 살인한 ‘증오범죄’의 전형적인 경우였다. 이미 “그 여잔 그걸 가져야만 해”라는 영화로 블랙 아메리칸 시네마의 새장을 열었던 스파이크 리는 <똑바로 살아라>라는 논쟁적 영화로 이 사건에 즉각 개입했다.
이탈리아계, 푸에르토리코계, 한국계, 유대계들이 모여 사는 브루클린의 베드퍼드 스타이베산트 지역. 어느 무더운 여름날, 이탈리아계 미국인이 경영하는 피자가게와 한국계가 주인인 식료품점 주변 동네에 살고 있는, 각기 다른 인종적 배경을 가진 주민들이 24시간 동안 벌어지는 인종전쟁에 말려든다.
영화는 일거리를 찾지 못한 채 무리를 지어 거리를 배회하는 흑인 청년들과 푸에르토리코인들, 역시 하릴없이 술만 마시는 노인들을 통해 어수선한 거리 풍경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거기서 인종문제를 제기하는 영화적 형식이 새롭다. 기울어진 카메라 앵글과 도발적인 원색, 역동적으로 사용된 랩과 팝송에 일종의 펑크 스타일이 부분적으로 가미된다. 다큐멘터리적 스타일과 펑크적인 것이 결합된 이 새로운 형식은 젊은 관객들에게 인종문제를 전달하기 위한 효과적인 장치로 보인다.
피자가게 종업원 무크로 출연한 이 영화의 감독 스파이크 리는 일종의 메신저처럼 각기 다른 인종의 입장을 피자를 배달하듯 관객들에게 전한다. 그 전언에 따르면, 증오범죄적 태도에서 자유로운 인종은 없다. 백인 경찰, 흑인계, 이탈리아계, 한국계 모두가 서로를 경멸하고 저주한다.
저중산층 유색 인종들이 백인중심주의가 만들어낸 인종차별이라는 지배적 이데올로기를 피라미드식으로 재생산하는 셈인데, <똑바로 살아라>에서 흑인과 이탈리아계의 대립은 결국 방화, 구타, 살인으로 치닫는다. 물론 이 사건은 누적된 인종 갈등이 폭발한 것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이미지’가 직접적인 계기가 된다는 점이다. 살의 피자가게에 붙어 있는 사진들이 알 파치노 등 이탈리아계뿐임을 발견한 흑인청년 고객은 살에게 말콤 엑스나 마틴 루터 킹 같은 흑인 영웅의 사진으로 바꿔 붙이라고 요구한다. 그리고 이 요구를 살이 거절하자 곧바로 피자가게를 보이콧하고 파괴하기 시작한다. 영화의 종반부, 타버린 벽 위에 나붙은 말콤 엑스와 킹의 사진은 이제 이미지를 지배할 수 있는 힘을 흑인들도 가져야 함을 의미한다.
이후 대서사극 <말콤 X>(1992)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이 영화는 사실 이중적 효과를 노리고 있다. 즉, 인종 갈등의 현장을 역동적으로 재현함과 동시에 아프리카계 미국인들도 이제 영화나 사진과 같은 재현 양식을 조종하고 지배할 수 있는 힘을 갖추어야 한다는 영화감독다운 제안을 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것은 결국 이미지 재현의 형식과 내용을 결정짓는 지배적 이데올로기에 대한 싸움이기도 하다.
실제로 스파이크 리의 작업 이후에 존 싱글턴, 마리오 반 피블스, 어네스트 디커슨과 같은 흑인 감독들은 인종들 사이의, 그리고 흑인들 내부의 갈등을 아프리카계 미국 젊은이들의 하위 문화적 코드들을 통해 강력하게 재현하고 있다. 또 레슬리 해리스, 줄리 대시와 같은 흑인 여성 감독들은 여기서 더 나아가 인종문제와 여성문제를 동시에 제기하고 있다.
ㅡ김소영
<줄거리>
뉴욕의 할렘가, 이태리인 피자 가게에서 일하는 무키는 여자 친구와 아기를 위해 묵묵히 돈을 벌어야 한다. 브룩클린의 다른 흑인들은 여름의 찌는 무더위 속에서 거리를 배회하며 자신들의 독특한 행동만 계속한다. 우연찮게 발생한 이태리인과 흑인들의 충돌, 조용하던 무키의 분노가 폭발하면서 피자 가게는 난장판이 되고 불이 난다. 소방대원들은 물줄기를 불타는 가게가 아닌 흑인들에게 쏘고, 사건의 진상조차 조사하지 않고 무조건 흑인들을 구타, 연행하는 경찰, 경찰의 폭력에 의해 라디오 하임은 사랑과 증오가 얽힌 눈으로 죽어가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