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의 집 세우기 (신명기 25:5~10)
율법 가운데 이런 내용이 왜 들어가야? 형제가 여럿 있는데 하나가 죽었다면. 마침 아들을 낳지 못하고 죽었다면 다른 형제가 그 아내- 형수일수도 제수일수도 - 취해서 죽은 형제의 이름을 잇게 한다.
만약 거부했다면 이스라엘 사회 가운데서 신발 벗긴 자. 얼굴에 침 뱉고 신발 벗기고 형제의 집 세우기를 즐겨 아니했다 신 벗김 받은 자의 집이다 치욕을 감당해야.
경제가 어려운데 이런 한가한 얘기를 듣고 있어야? 21세기에 말도 안되는 얘기. 결혼할 때 내 개인 의사 묻지 않고. 형제가 죽었는데 형수가 아이가 없어서 네가 형수랑 결혼해서 아이 낳고 그 아들은 형 이름으로 대 잇는 것. 사귀던 여자가 있어도
형수가 무지 예쁘면 혹시나 모르는데 지금 애인 있고 형수는 이미 중고나라. 나는 브랜드가 좋은데. 과거. 근대 이전 사회만 해도 결혼이란 것은 가문의 일이기 때문에 당사자의 주체적 의사는 안중요. 결혼과 동시에 그집 귀신. 가문을 잇기 위한 용도로 결혼이 사용.
주체 사상. 가문 필요 없다. 내 자유 내 사랑이 중요. 지금 상황에서 가문 집안 번성 위해 결혼 말도 안되지만. 재벌들은 그렇게 하기도. 이런 말씀 자체가 오늘날 어떻게 적용해야? 말씀대로 해야?
율법을 연구한 사람들이 복음을 알지 못하니까 이런 말씀 적용하기에는 무리 있다. 빼고. 오늘날 사회에 적합한 도덕규범 수용. 이런 말씀 자체를 신약시대에도 어떻게 적용할지 몰라서. 마22 23 부활이 없다 하는 사두개인들이 그날 예수께 와서 물어 이르되
24 선생님이여 모세가 일렀으되 사람이 만일 자식이 없이 죽으면 그 동생이 그 아내에게 장가 들어 형을 위하여 상속자를 세울지니라 하였나이다 우리 중에 칠 형제가 있었는데 맏이가 장가 들었다가 죽어 상속자가 없으므로 그 아내를 그 동생에게 물려 주고~
일곱째까지 그렇게 하다가 최후에 그 여자도 죽었나이다. 그런즉 그들이 다 그를 취하였으니 부활 때에 일곱 중의 누구의 아내가 되리이까. 어려운 문제. 이미 죽은 아내를 그리워하지만 죽은 아내는 어떨까. 천국에 가도 자의식이 있다?
자의식이 있다면. 땅에 있을 때 그대로 내 남편 아내가 있다면. 그럼 그 사람도 나를 그리워하겠네? 천국 갔는데도 땅에 둔 자식들 보고 싶고. 그러면 그게 천국이 될 수 있나. 모든 눈물 닦아지고 슬픔 없는 곳인데.
천국 들어간 사람 입장에서. 형수는 남편 사랑. 남편도 아내 사랑. 죽은 남자가 천국들어갔다면. 하나님 입장에서는 이새끼 천국 안좋아하네 마누라만 좋아하네 다시 보내야? 형수는 율법대로 하자면 다시 둘째를 취해서 아이를 낳아야 하니까. 정이 들었는데 또 죽어버림...
첫째 문제. 우리 개인의 주체성은? 나는 누구를 사랑하는데 왜 엉뚱한 사람과 살아야? 둘째는 이미 천국 들어간 사람의 자의식은?
첫째 문제. 나는 그를 사랑했으나 그는 죽고.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결혼해야 되는데 율법대로 안하면 지옥가고. 성경에서 우리 개인의 자유는 없다. 많은 사람들이 나의 운명을 묻는다. 타로 사주 보고. 성경에서 우리 개인의 운명은 없다
확정된 운명 하나밖에 없다. 예수 그리스도의 운명에 휘말린다. 그 분의 팔자 운명을 위해 다같이 묶여있다. 결국 시형제들과 쭉 결혼함으로 형제 집 세우기. 7 그의 형제의 이름을 잇는다 열두 지파 다윗 예수로 집약.
그런 점에서 우리 구원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에 다 같이 휘말려 구원된다. 하나님 입장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만 구원. 구원했더니 그 속에 이 땅에 있을 때. 이름 의미없다. 그건 우리 존재가 있은 이후 뒤늦게 붙인 이름. 사회에 존재하기 위해.
우리 이름은 중요하지 않고 우리 존재의 기원. 예수 그리스도 이름 잇기 위해 존재로 끌려나온 자들이기 때문에 굳이 우리 개인의 이름에 큰 비중 둘 필요 없다. 형제 이름을 이스라엘 중에 잇는다. 예수 그리스도 이름 속으로 합류.
형제 하나 죽음. 밑에 애들이 형의 이름 잇기 위해 형수를 취함. 네가 형수와 결혼해서 낳은 아들은 형의 아들. 우리 이름의 결말은 없는 것. 예수 그리스도 잇기 위해 우리 운명 팔자 합류.
우리 인생에서 남기는 모든 것은 결국 맏아들 되신 예수 그리스도 이름이 된다. 백명된 교는 누구의 열매? 내 열매 되면 형제 이름 잇는 게 아니고 내 이름 잇는 거라 불법. 불법을 행하는 자라 지옥.
우리가 만드는 모든 결실은 형제의 이름의 결실. 맏아들 되신 예수 그리스도 이름의 결실. 우리가 구원 받았다, 누구의 힘? 내 노력 내 이름으로 구원받았다면 불법.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구원되었다. 우리 구원도 그 이름의 결실.
근대사상이 들어오며 주체의식이 깨어나서 너나없이 개인의 자유 주장. 사실 근대 이전만 해도 가문의 이름 씨받이. 아들 없으니까. 그 여자 애 아니고 그 집안 아들. 개인의 자유 따위는 개나 줘버리고. 가문의 이름이 중요.
부족의 이름 국가의 이름. 지금 들어와서 개인의 자유 주체성을 가장 강조. 그러나 엄밀히 말해 개인의 존재성 부정. 십자가 복음 오게 되면 나라는 주체성을 늘 주님께서 파괴. 엄밀히 성경 들여다보면 반자유주의적. 우리 개인 운명따위 없다.
나는 사랑하는 여자 있는데 그 여자랑 결혼해야 되는데 왜 형수랑 결혼해야? 그러면 너는 이스라엘 아니야. 단독자 되어 단독으로 지옥. 우리 개인의 이름으로 천국 가는 것 아니다. 우리 이름 아니고 예수 이름으로 천국.
애니메이션 악의 하인. 왕비의 이름으로 죽음. 예수 그리스도의 운명과 우리 운명이 뒤바뀌는. 예수는 우리 대신 죽고 우리는 대신 죽으신 예수 이름으로 사는 것. 따라서 우리 개인적 운명은 지워지고 개인적 주체적 삶도 날아간다.
형제들이 왜 내가 형수랑 결혼해야? 나는 독립적 인생 살거다 하면 이스라엘에서 끊어진다. 성령은 우리에게 밀려와서 우리 개인적 주체적 삶을 십자가에서 못박는다. 우리 인생 주인 우리 아니라는 사실을 날마다 확인시키신다.
이 땅에 있을 때 나랑 사이좋게 지낸 사람인데 죽었다. 천국 들어가면 우리 자의식은 남아있다. 다 알고 있지만 차이는 이 땅의 삶이 하나의 드라마. 어떤 배우들은 드라마 찍고 한동안 캐릭터에 몰입되어 못 빠져나온다.
그런것처럼 일단은 드라마. 드라마에서 부부였는데 드라마 끝나고 한달 뒤에 만나 여전히 부부인것처럼 하면. 끝났으면 벗어나야. 천국은 이 땅에서 존재했던 모든 존재의 형태가 사실은 예수 그리스도 나타내고 증거하기 위한 하나의 모형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것.
그 사실을 모르게 되면. 천국 들어간 사람은 안다. 드라마 속에 있는 사람 아내 그리워하지만 천국 들어간 사람은 이 땅의 애틋함으로 대하지 않는다. 저 사람 왜 저렇게 어리석지. 연기 배역에서 빨리 벗어나야지
우리 삶의 모든 배역은 예수 그리스도 이름 증거하기 위한 장치. 미장셴. 구조. 마치 이 땅 부부관계가 영원한 것처럼 착각. 29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했다. 부활때에는 장가도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의 천사들과 같다.
천국에는 혼인이 없다. 결혼제도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신부되는 교회를 보여주는 하나의 모형. 역할극처럼 주어지는 것. 우리 사랑 영원하지 않다. 이혼 삼혼 사혼... 나중에 치매 오면 잊어버리고. 해로한다고 잘산단 보장 없다.
혼인이라는 것은 이 땅에 있을 때만 유효. 그것도 우리 개인의 행복 위해 주신 것 아니다. 그런데 개인의 행복 위해 결혼 생각한다면 착각. 행복이 무엇인지 알수는 없잖아요 당신없는 행복이란. 이 노래 부르고 이혼.
혼인은 영원하지 않고 우리 개인의 행복을 위해 주신 것도 아니다. 자기 행복을 위한 결혼이 끝까지 행복? 결혼을 통해 행복 기대하지 말자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교회를 보여주기 위한 하나의 역할극. 설정을 누리면 된다. 진지하게 진짜 내 남편 부인인 것처럼 올인...
예수님과 교회 보여주기 위한 하나의 그림자로 주어진 것이 결혼. 거기서 감히 개인적 행복 뽑아먹으려 한다면. 존 덴버 애니 송 부르고 이혼. 자기 개인 행복 바라보고 모든걸 꾸려나가지만 성경은 정반대.
우리 삶의 이면의 알맹이 예수님. 때가되면 튀어나오는데. 우리 껍질을 깨고 튀어나온다. 나라는 껍질은 깨져야 정상. 나의 유지하고 싶은 존재 형태가 깨질 때 내 인생은 내 것이 아니었구나 결국 예수 그리스도 영원하심 나타내는 배역으로 존재. 나라는 존재형태 끝까지 유지 못하고 깨지고 결국 죽음
그렇게 우리 존재 사라지고 남은 마지막 알맹이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나의 나 된 것은 주의 은혜였다. 이 껍질 깨고 남은 자체가 예수가 남을 때. 바울 똑같은 씨를 뿌렸는데 무 배추.... 우리는 다 씨. 우리 속에 뭐가 든지 모른다.
이 씨가 결국 죽고나서 예수 그리스도라는 알맹이가 튀어나오지 않으면 지옥 백성. 부활 이후 존재하는 자아의 형태는 이 땅 모든 것 삶 전체를 하나의 그림자로 아는 상태로 영원한 세계에 존재.
천국에서의 존재형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존재. 이땅 모든 것은 그림자. 마치 배우가 배역 돌아보듯. 이 땅 관계 너무 목맬 것 없고 주님 주신 관계성 속에서 관계맺고 살면 그뿐. 애초부터 우리 행복을 염두해두고 만드신 적 없다. 그런데 웬일인지 부모 직장 형제 있다면 감사.
개인의 주체성 주님 무시해버리고 결혼해. 왜? 형제 이름을 이어야지. 그 형제 이름이 마지막에 예수 그리스도. 이거 없으면 영생 구원 없어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구원. 그 속에 예수가 숨어있는 것. 예수 그리스도가 그들을 몰아붙여 형제 이름 잇는
우리 삶이 주님 주신 배역으로 이해될 수 있기
우리 개인 행복한 미래 위해 주께서 말씀 주신 것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세워지는 새로운 형태의 나라 위해 이 땅 삶 주신 것을 늘 새롭게 바라보게 하여 주옵소서 언젠가 풀처럼 꽃처럼 떨어질 인생 예수 안에서 주어진 이 배역 돌아보고 살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