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마오름의 갱도진지의 자리에 선 교육장,
평화박물관
제주 제주시 한경면 청수리 1166 / 064-772-2500
www.peacemuseum.com
제주의 아픔이 서린 자리,
일제강점기, 우리네 젊은이들의 피와 땀으로
일본의 지하요새가 만들어 졌다.
당시, 강제 노역에 동원된 아버지의 아픔을 전하고자
아들이 세운 살아있는 교육장이다.
가마오름 갱도진지,
일제강점기, 1945년 3월, 일본은 제58군 사령부를 창설하여 <결7호작전>이라는 이름으로 연합군과의 전쟁에 대비한 진지를 만들게 된다.
그리고 그 시절 제주의 젊은이들은 모두가 이곳으로 끌려와 강제노역을 당했다. 그 중 이성찬옹이 당시 21세의 나이로 2년6개월간 강제조역을 한자리에서 어린 아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뛰어 놀던 자리다. "그 근처에는 가지말"라는 어른들의 말씀에도 뛰어 노는 재미에 빠져 있던 아들은 훗날, 그 자리가 숫한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이 쓰러져 갔던 현장이며, 자신의 아버지가 그 현장에 있었음을 알게 된다.
그 자리의 지하요새를 평화교육의 살아있는 현장으로 개방하고, 전시관을 세우니 철없던 아들, 제주평화박물관의 이영근 관장이다.
가마오름 땅굴진지는
제주 최대규모의 미로형으로 총길이가 2km에 이르며 출입구만 33곳에 이른다. 워낙에 긴 땅굴로 4구간으로 구분되며, 지하는 전체가 거미줄처럼 형성되어 있다. 3층구조로 가마오름 전체가 땅굴의 요새화로 이루어졌다 생각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중 제1구간인 340m구간을 복원하여 일반인에게 개방하고 있다. 땅굴의 내부는 당시의 현장을 그대로 보존하여 강제노역으로 시달린 제주 젊은이들의 피비린내를 그대로 느낄수 있도록 했다.
또한, 가마오름의 동굴을 돌아 보고 나면 전시실을 만나게 된다.
전시실에는 1937년부터 1944년 사이의 일본 정보국과 조선총독부등이 발간한 주보와 통보등이 전시 되어 있으며, 국어독본등 태평양전쟁과 관련된 세계 각국의 뉴스가 실린 일본찬 신문등 전시책자들도 전시 되어 있다. 당시 일본군의 정신대 모집과 창씨개명의 과정등이 담긴 자료들도 있으며, 당시 일본군의 사진들로 땅굴 구축시의 도구와 군수품등이 전시 되어 있다.
동시에 12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영상관도 자리한다.
크기별로 3개의 시설로 DVD영상을 상영하는 곳이다. 당시 이 것에서 징용으로 끌려와 강제 노역을 한 장본인들과 목겾자들의 증언을 들을 수 있으며, 종군기자가 촬영한 당시의 실제 상황을 볼 수도 있다.
결7호작전(決7號作戰),
일본이 일으킨 전쟁에 제주도를 희생양으로 내 몬 전쟁이다.
일본이 준비한 본토방어 작전이다. 태평양 전쟁으로 수세에 몰린 일본이 일본 본토 사수를 위해 일본내에 6기와 제주도1개지역으로 나누어 결호 작전을 준비하였는데, 7번째 자리인 제주도의 작전을 결7호작전이라 부른다. 그러니까 쉽게 말해 제나라 지키자고 남의 땅에서 피를 부르고자 했던 것이다. 제주도는 일본의 전략적 가치로 매우 중요한 자리로 미군에 의해 제주도를 점령 당하게 되면 일본으로 들어가는 물자가 끓기게 되기에 전쟁을 치룰수 있는 능력이 사라지는 상황까지 가게 되니 미군이 상륙할 것으로 보이는 제주도를 작전의 거점으로 삼게 된다.
이 피말리는 소용돌이 속에 가마오름의 땅굴진지가 만들어 지게 된것이다.
일본군 최강이라는 제111사단이 관할하였으며, 사단 사령부를 애월읍 발이악에 두고 2개의 대대가 한경면 저지에 주둔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구축하게 된 진지가 바로 가마오름 땅굴 진지다.
당시의 진지 구축에는 제주도의 젊은이들이 동원 된다. 곡괭이 한자루로 버티며 파 나간 땅굴의 깊이가 오름 전체에 거미줄처럼 엮여 있다. 못 먹고, 못입고 곡괭이 자루 하나만으로 노역을 하던 이들, 수 많은 젊은이들이 처참하게 쓰러져 간 현장이다. 비명 소리마저 밖으로 세어 나올수 없는 미로의 땅굴, 들어가 일주일 뒤에 보이지 않는 다면 이미 죽은것이라며 장사를 지낸 자리다. 당시의 처참함을 어지 짐작이나 할수 있겠는가,
누군가는 그렇게 말한다. <용서는 하되 잊지는 말아야 한다>고, 그러나 실제 용서 자체가 되지 않는 뼈시린 과거가 우리에겐 있다.
붉게 물든 뜨거운 피가 흐르고 있으며 보이면 이가 갈릴 정도의 일제의 야만성에 관광객만 보아도 치가 떨린다. 그들의 웃는 모습은 가식적으로만 보이는 것은 길손의 생각일뿐일수 도 있겠으나, 마음 가짐이야 어디 가지 않는다.
이영근 관장님은 말한다.
"평화박물관은 한, 일간의 관계를 불편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전쟁의 비참함을 돌아보고 그 속에서 "평화"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하는 곳이다.
과거의 비참한 역사를 되풀이 하지 않도록 "평화"를 위해 주변국들과 함께
손을 맞잡고 함께 만들어 가는 계기를 마련하기 위함이다." 라고..
이영근 평화박물관장님
시원한 미소속에 목소리가 쩌렁쩌렁하시다.
사비를 털아 세운 평화 박물관, 그러나 관광에만 의존하는 제주의 특성으로 평화박물관은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이에 관장님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박물관장 외에도 다른 일을 하고 계신다 한다.
이렇게 중요한 일, 제주의 것, 아니 전 세계에 내어 놓아야 할 자랑스러운 곳인데, 제주자치도는 대체 뭐하는 곳인가 싶다.
가마오름의 땅굴진지를 만들어 놓았다.
당시, 일본군들의 제주도 주둔한 모습이다.
요즘은 제주로 수학여행을 가게 되면 학생들이 필히 방문하는 곳이라 한다.
특히 일본 학생들과 일본인들의 방문이 꾸준히 믈고 있다 한다. 그리고 이 프랑카드,
저마다 평화박물관을 둘러보고 마음에 새겨진 것을 짧은글에 담는다.
이영근 관장님은 이 프랑카드의 길이가 5km가 될때, 서울 청계천이나 광화문 광장에 전시하고 싶다는 포부도 밝혔다.
by 박수동
첫댓글 평생 반성하는 일본... 평생 섭섭한 대한... 언제까지 이 구도가 ... 머 어째뜬 쟤네는 좀 반성하긴 해야 됩니다.ㅋ
쉽게 풀어질만한 일은 아니지. 절대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