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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詩>> 강동수 시인의 신작소시집 해설
감추어 둔 혹은 갇힌 것을 통한 갈등과 현실의 소통
-강동수의 시
김진광(동시인 / 시인)
강동수 시인이 운영하는 가게 ‘월드스튜디오’에 들렸다가 신작소시집 해설을 부탁 받았다. 예전에『월간문학』을 비롯한 잡지에서 월평이나 서평을 써 준적은 더러 있지만, 나는 평론가가 아니라 갑작스런 부탁에 당황했지만, 지역의 월간 『두타시낭송집』과 동인지를 통해서 그의 문학성을 잘 알고 있었기에 허락하였다. 대체로 시인들이 보내온 시집을 읽거나 서평을 쓸 때면 즐겁기보다 괴로운 편이 많은데, 씨의 시를 읽으면 참신한 발상과 표현, 문학적 장치, 시의 의미성에서 늘 독자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아 즐겁다. 읽는 독자가 즐겁다는 것은 성공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허락된 본 지면의 범위 내에서 소시집에 발표되는 작품 외에 작가 주변 얘기를 좀 더 하고자한다.
이번에 발표되는 5편의 시를 ‘감추어 둔 혹은 갇힌 것을 통한 갈등(꿈)과 현실의 소통’면에서 살펴보고자한다.
벽지를 대신한 빛바랜 신문지는 세월의 추를 돌려놓고
삐꺽거리는 나무계단을 타고 오르면
갇혀있던 침묵의 시간들이 손을 내민다
좁은 공간을 감싸고 있는 언어들
갇힌 공간에서 느끼는 자유는 얼마나 이율배반적인가
저 계단을 내려서면 목을 죄는 시간들이
번뜩이는 눈빛으로 너와 나의 거리를 만든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생각들이 계단의 높이만큼 멀다는 생각
나 자신을 가두어두고 침묵하는 사이
생은 남몰래 키를 키우는 곰팡이처럼
시간의 줄기를 뽑아 올리고 있었다
공간에서 공간으로 시간이 넘어갈 때
산 너머에 걸린 해가 붉게 울부짖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 「다락방」부분
시 「다락방」은 <오래도록 침묵을 강요당하던 공간을 / 하늘아래 숨겨두었다>로 시작하는 작품으로 ‘감추어둔 공간’임을 말한다. 다락방은 나만의 공간이다. 벽지를 대신한 빛바랜 신문지가 세월의 추를 돌려놓으면, 공간에 갇혀있던 침묵의 시간, 언어들이 일어선다. 거기에서 아이러니하게 자유를 느낀다. 시적자아의 꿈의 공간과 그 아래 목을 죄는 현실과 거리에는 삐꺽거리는 좁고 불안한 나무계단이 놓여있다. 어두운 곳에서 자라야 하는 콩나물 같은 운명의 생(生)을 남몰래 키우는 곰팡이는 시인의 생각을 키우는 꿈을 키우는 공간 배경이기도 하다. <공간에서 공간으로 시간이 넘어갈 때 / 산 너머에 걸린 해가 붉게 울부짖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는 시의 기승전결의 ‘전’에 해당한다. 꿈과 현실의 사이가 아직 갈등의 골이 높은 개인의 문제에서 노사간의 대결, 건강한 자와 장애인의 처우와 사회인식,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자 등 사회문제로 확대를 시도하고 있다. <저문 강가에 잿빛으로 남겨진 그림자를 남겨두고 / 산마루를 지나 사라지는 새 한 마리 / 생의 단원이 / 절판된 책처럼 지나가고 있었다>는 이 시의 끝부분으로, ‘새’는 시적자아를 비롯한 사회에서 못 가진 자, 소외된 자이며, 작가는 격한 상황의 처리를 되도록 차분하게 독자들에게 의미를 전달하는 분위기 설정을 비롯한 문학적 장치를 하고 있다. 이 작품을 통하여 가진 자들이 못 가진 자, 소외된 자들을 위하여 사회적 소통이 필요함을 일깨워 준다.
산을 뛰어넘던 시간들이 바람으로 달려와 내 허리띠를 잡아끌 때지리멸렬한 기억들을 접어 파도 끝에 묻어두고한줄 날실처럼 누워있는 수평선으로 바다에 구획을 긋는다. 파도의 국경선을 넘나드는 갈매기가너울파도의 발신지를 찾아 배회하는 방파제 끝에서 나는 아직도 남아있는 생의 암호를 해독중이다심해의 깊은 곳으로부터 솟아오르는 욕망의 몸부림으로 세차게 밀고 당기는 파도의 끝자락을 끌어다시간의 동굴 속에 가둔 밤이면잠 못 이룬 별들이 걸어와 바다에서 오랜 시간 밀회를 즐기다 떠나온 곳으로 돌아간다.
-「바다」부분
「바다」역시 <바다를 산 아래에 감추어 둔 적이 있다 / 수시로 월경 (越境)하여 / 산의 경계를 허무는 파도>(1연)로 시작하는 작품으로 ‘감추어둔 공간’임을 말한다. 동해안 바다와 삼척 정라항구가 내려다보이는 산기슭에 시인의 집이 있어 거기서 태어나 성장했다. 그의 집은 ‘나릿골’ 근처인데 한참 어황이 좋던 시절에는 외지 사람들까지 오징어를 잡으러 몰려들어서 늘 술 취한 사람들이 싸움을 해서 ‘난리골’이라고도 부르며, 집들이 갯바위의 따개비처럼 산 쪽으로 붙어 있었고, 집들이 ‘다락방’이라 해도 틀린 말을 아니다. 지금은 혼자 살던 어머니가 얼마 전에 돌아가서 빈집이지만, 어부였던 아버지와 가난한 어머니와 유년의 바다의 꿈을 거기에 감추어두고 있다. 씨는 그곳에 어머니가 살던 때처럼 꽃밭을 가꾸고 감자밭을 가꾸겠다고 하며, 시와 삶의 일치를 위해 노력하는 시인이며, 어머니나 고향의 이미지를 가진 바다를 통하여 유년의 꿈을 만나고, 어머니와 아버지를 만나는 통시적 동일성(diachronic identity)을 추구한다. 동일성을 몽상하고 불변적인 것을 인생의 가치양상으로 찾으며, 여기서 시적 존재 근거를 또 하나 확보한다.
위의 시는 3연으로 되어 있으며, 위의 「바다」부분은 2연에 해당한다. ‘파도’는 과거와 현재, 바다와 육지와 산의 경계를 수시로 지우는 도구로 사용되기도 한다. ‘갈매기’는 그리움과 꿈의 발신지를 찾아 날아다닌다. 꿈은 이따금 ‘너울성파도’에 휩쓸려 꿈속에서 교통사고처럼 현실로 튕겨 나온다. 그걸 해독하기 위하여 갈매기가 파도를 쫓아다니며, 시인도 아직 살아가야할 삶의 암호를 해독하는 작업을 한다. 원초아의 가슴 속에서 솟아나는 인간의 욕망을 안고 고뇌한다. 해독이 어려운 현실의 아픔의 소통을 위해 시인은 ‘시간 동굴’의 공간을 설정한다. 동굴 속으로 갈등(꿈)을 소통하는 별들이 내려와 바다와 밀회를 즐기다 돌아간다. 이 시의 3연은 <부표처럼 떠있는 바위 위에 / 피곤의 날개를 접는 갈매기들 / 길 잃은 새들이 돌아올 때까지 / 등대는 아직 불면중이다>로 끝부분에 해당된다. ‘길 잃은 새들’은 꿈을 찾아 바다로 떠난 시적자아 혹은 현실의 어부다. 아직 돌아오지 않는 그들을 위하여 등대는 불을 켜들고 잠을 못 들고 있다. 등대와 바다는 어머니의 원형적 이미지라 할 수 있겠다. 씨의 시의 주 소재인 바다는 원형적 이미지로서 모든 생의 어머니, 영혼의 신비와 무한성, 죽음과 재생, 무궁과 영원, 무의식 등을 상징한다.
집에서 건너다보면 늘 보이던 풍경 / 굴뚝 두개 검은 연기 두 개 /몸속 깊은 곳에서 울분처럼 뽑아 올리던 / 검은 연기로 / 화력발전소는 붉은색을 살짝 감추고 있었다. / 밤새 도둑고양이처럼 마을을 다녀간 / 흔적은 여기저기 널려있었지만 / 검은 색으로 덧칠한 건물은 늘 말이 없었다.
-중략(2연)-
검은 탄(炭)을 나르던 철길에 / 붉은 녹물이 흘러내리고 / 언제부터 사라졌는지 기억도 희미한 / 건물은 이제 보이지 않지만 /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사라진 동네에 /가슴에 까만 재가 내리는 날이면 / 사람들은 가끔 자기를 불태워 / 밤마다 마을을 다녀가던 / 검붉은 색 발전소를 그리워한다.
- 「붉은색 발전소가 있던 자리」부분
시인의 집에서 바라보면 동해바다와 정라진 항구 외에도 육지 쪽으로 붉은색을 칠한 화력발전소가 보였다. 굴뚝 두개에서 나오는 연기는 감정이입이 된 ‘몸속 깊은 곳에서 뽑아 올리는 울분’으로 개인적 혹은 사회적 갈등으로 볼 수 있다. 생략한 2연의 ‘봉분처럼 심장이 멎어’ 지금은 발전소 건물을 철거한 자리에 선박회사건물이 지어졌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새 건물이 들어섰지만, 유년의 추억이 담긴 건물을 시인은 가슴속에 감추어 두고 있다. 발전소는 지역주민의 일터가 되고 삼척에서 생산되는 무연탄을 이용하여 전기를 생산하여 도움이 되지만, 지역의 일반 주민들에게는 항구근처에 쌓아놓은 탄의 가루와 굴뚝의 연기와 함께 나오는 탄재가 마루 위와 흰 빨래에 가난처럼 소리 없이 내려앉곤 하였다. 산업사회의 시설물을 통하여 유년을 숨겨 두고 만나며, 바다가 보이는 고향 마을을 늘 잊지 않고 변치 않는 시인의 가슴이 통시적 동일성(diachronic identity)을 추구하고 있다. 시인은 가슴에 감추어둔 갈등이나 꿈을 그렇게 소통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좀 욕심을 내보면, 현대의 산업사회로 인한 인간의 오염문제를 좀더 오버랩 시켰으면 작품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녀의 머리채를 휙~ 잡아채며 결별을 선언했다 / 한 달간의 동거가 끝이 났다 / 인공눈물도 없이 작별의 손 흔들며 기약도 없이 / 그녀를 보내는 12월의 마지막 밤 / 새로운 결심을 하고 새로운 결의를 도모하고 / 눈꽃은 눈물같이 흩날리며 골목길에 흩뿌리고 / 첫눈이 만드는 새로운 길을 따라 걸어가는 길 //
새로운 여인을 돈을 치루고 데려오는 길에 / 제 몸에 불을 놓으며 전신주에 기대어있는 자판기 / 부서지지 않는 낙엽 한 잎을 밀어 넣으며 / 빗물처럼 쏟아지는 일회용 커피를 받아마셨다
-「플라토닉 러브」부분
플라토닉 러브(platonic love)는 플라톤적인 사랑으로, 관능적·육체적이 아닌 정신적 사랑. 확대 해석 한다면, 오늘날 실제적이 아닌 일회용 인스턴트 사랑도 이 범주에 넣을 수 있겠다. 이런 오늘날의 일회용 사랑을 비판하는 장치로 달력 속의 여인들을 설정한 발상이 참신하다.
시의 시작 부분 ‘그녀의 머리채를 휙~ 잡아채며 결별을 선언했다 / 한 달간의 동거가 끝이 났다’는 실제 한 달 동안 동거하던 방안의 달력을 뜯어낸 행동의 시적 표현이다. 여인과의 결별 설정이 년 말인 12월 마지막 밤이며, 함께하던 여인을 보내면서 바로 새로운 결의를 우리들은 도모한다. 2연에서는 새 달력 속의 새로운 여인을 데리고 오는 길에 자판기의 일회용 커피를 마신다. 달력속의 함묵적인 계약 사랑을 일회용 인스턴트식품으로 확대해석이 가능하다. 시의 마지막 부분인 <방안의 빈 공간을 차지하고 / 함박웃음 짓는 그녀를 바라본다 / 발끝에서 반짝 빛나는 명찰 / 2011년 1월 / 불안한 동거가 시작된다>는 1년간의 계약으로 새로운 여인과의 동거가 다시 시작된다. 아니다, 한 달에 한 여인과 결별하고 또 한 여인을 다시 맞는다. 시적자아를 비롯한 남자들이여, 얼마나 행복한가, 아니면 불행한가? 요즘 들어 좀 줄어들었다하지만 결혼하는 젊은이들의 30~40%가 이혼을 한다고 한다. 결혼 후의 이혼문제는 자녀문제, 교육문제, 사회문제로 확대되고 있다. 그런데 노인들도 심심찮게 황혼이혼을 한다. 수명이 늘다보니, 부부사이의 완충작용을 하는 자녀들을 키울 때는 몰랐는데, 둘만의 많은 시간을 갖다보니, 예전에는 못 느끼던 것들이 보이고 나이가 들면서 작은 것에도 자꾸 섭섭해진다. 달력속의 ‘갇힌 여인’을 통하여 오늘날 일회용 사랑, 계약 동거의 사회 갈등과 현실을 드러내어 비판하며, 그 소통의 길을 찾고 있다.
눈 내린 길을 따라 민속박물관에 갔었다 / 유리창 너머에 묶여있는 기억들 / 그 속에 폭설을 지나온 결빙된 신발 한 짝이 누워있다 / 졸참나무며 눈을 맞은 듯 눈부신 은사시나무 사이를 걸어 / 외딴집으로 향하던 발걸음 / 그때 / 동박새 곤줄박이는 신발도 없이 종종걸음으로 / 제집을 찾아간다 / 동박새 지나간 자리마다 바람이 걸려 넘어지고 / 넘어진 바람의 흔적을 지우며 걸었던 신발 한 컬레 / 이제 바람도 침범치 않는 유리관 속에서 / 침묵의 시간을 붙들고 있다 / 박물관을 나서면 도로의 경계선을 지우며 / 낙하하는 눈 / 적막한 세상을 걸어가야 할 또 하나의 / 신발을 찾아나선다 // 먼 산에서부터 천천히 어둠이 눈을 치우고 있다
-⌜설피(雪皮)전문⌟
이 시는 박물관의 ‘유리관에 갇힌 설피(雪皮)’를 소재로 쓴 작품이다. 시인은 박물관의 설피를 만나기 위하여 눈 내린 상상속의 길을 따라나선다. 설피는 옛날을 기억하며 눈길을 앞서 걷고, 그 뒤를 시인이 몽상 속에서 따라 간다. 졸참나무숲을 지나 은사시나무숲을 지나 먼 외딴집을 향한다. ‘그때 / 동박새 곤줄박이는 신발도 없이 종종걸음으로 / 제집을 찾아간다 / 동박새 지나간 자리마다 바람이 걸려 넘어지고 / 넘어진 바람의 흔적을 지우며 걸었던 신발 한 컬레’가 장면으로 삽입된다. 겨울 추위에 맨발인 산속 작고 힘없는 이미지의 동박새와 곤줄박이도 따라나선다. 의인법을 사용한 이 부분의 삽입이 분위기와 시의 상승작용을 한다. ‘박물관을 나서면 도로의 경계선을 지우며 / 낙하하는 눈’에서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삼세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역할을 내리는 눈이 맡아준다. 시의 끝부분에서 시적자아는 세상을 걸어가야 할 새로운 신발 - 즉, 길을 찾아나서는 것이다. ‘유리관에 갇힌 설피(雪皮)’를 통한 사물 의인화로 독자도 환상 속의 눈길을 걸어가는 착각을 느끼며, 또한 옛 것에 대한 그리움과 내가 걸어가야 할 현실 소통 로를 찾아 나선다.
지금까지 씨가 근래에 쓴 시 5편을 개략적으로 살펴보았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감추어 둔 혹은 갇힌 것’을 소재로 작품을 썼다. 현실에서 소외된 힘없는 작은 것이나 잊힌 것을 소재로 하고 있다. 씨는 현실의 소외를 말하되 감정을 절제하며 논리가 아닌 다양한 시적 장치를 할 줄 아는 시인이다. 갇힌 것을 소재로 다룬 ‘플라토닉 러브’는 오늘날의 우리들 현실을 반작용으로 받아들인 모더니즘 계열의 도시시라 볼 수 있으며, 일회용으로 물신화된 세계에 의해서 자아가 훼손되는 점을 경계 혹은 비판하고 있다. 소설 같은 서사는 이야기가 지배적이지만, 서정시는 자연이나 사물 따위의 인간 주변적인 것을 인간사와 혼합시켜 대조감정을 자아낸다. 여기서 인간사의 극대화, 극소화에 따라 작품이 크게 달라진다. 현대시 작법에서는 자연보다 인간사(서사)를 극대화하여 인간사에 불합리한 것을 자연적 질서에 대비시켜 대조감정을 느끼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씨는 이 점을 알고 시를 쓰고 있는 삼척이라는 지방에 살고 있으면서도 한 달에 한 번 이상 서울에 상경하여 문학교류를 하는 등 눈과 귀는 세상을 향해 열어놓고 좋은 작품을 쓰고 있는 후배 시인이기에 즐겁게 작품을 함께 감상해 보았다.
■김진광 시인
․『소년』(1980) 및『現代詩學』(1986) 추천
․ 시집 『모시나비』외 7권, 산문집 2권 등
․ 월인문학상, 한국동시문학상, 이육사문학상 등 다수 수상
․ 현재, 하장중고등학교 교장, kjk0221@hanmail.net
* 사진은 첨부파일로 별도 보냄
첫댓글 교장선생님, 시평 하시느냐고 수고하셨습니다. 많은 부분이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