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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기지식 질문 스크랩 베토벤의 피아노 음악세계 1
파랑토깽이 추천 0 조회 47 08.12.18 21:14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 베토벤의 피아노 음악세계





***** 베토벤 피아노 음악의 새로움 *****
젊은 스승 하이든의 의표를 찔러 남몰래 공부했다고 주장하는 작곡가 솅크(Schenk)는 이 청년 피아니스트와의 첫 만남을 경탄 어린 어조로 다음과 같이 술회하고 있었습니다.



"몇 개의 음을 내팽개치듯 치고 나서 베토벤은 이번에는 깊은 정서를 담은'영혼의 회화'를 그려나갔다. 갖가지 모티프의 아름다움을 그려 뚜렷이, 아주 매력적으로 엮어나가는 재주를 지녔으며, 나는 끊임없이 고도의 주의력을 발휘해 듣고 있었다. 자신의 창작 속에 몰입한 그는 소리의 마력과 젊음의 정열을 가지고 대담한 태도로 격한 정서를 표현하기 위해 먼 조를 다루었다. 충격적인 격양 상태에 내 모든 감수성은 크게 공명하여 무너지고 말았다. 이어 그는 교묘한 조옮김을 사용하여 여러 가지 변화를 구사하여 천상의 선을 다다랐다. 이것이 바로 그의 작품에 자주 보이는 높은 이상이다. 그는 비르투오소(Virtoso)적 성격을 멋지게 표출한 뒤 달콤한 음악을 슬프고 우수에 찬 소리로 만들고, 다시 애정 어린 감동으로 변화시켜 드디어 환희에 넘치는 거의 해학적인 경지에 다다른 것이다. 음형 하나하나는 다 나름의 성격과 두드러진 정서를 띄었고, 그 속에 베토벤 자신의 느낌이 순수하게 나타나 있었다. 더구나 계속되는 아르페지오로 힘을 분산시키는 -이는 듣는 이로 하여금 졸음을 느끼게 할 뿐이다-따위는 도저히 들을 수 없었다. 환상을 소라로 바꾸는 데 최고의 '정당함'마저 있었다. 밝은 대낮, 넘쳐흐르는 빛과도 같았다."

이 솅크의 전언이 베토벤 피아노 음악의 특성을 매우 잘 나타내주고 있습니다. 베토벤은 화성과 악식을 타파하려는 혁명가는 아니었으나, 그의 음악이 듣는 이에게 주는 효과는 일찍이 그 예가 없던 것이었으며, 피아노라는 악기에서 전혀 새로운 소리와 의미를 표현해 내었습니다. 베토벤 당시 피아노는 아직 프레임이 나무로 되어 있었고 헤머도 펠트가 아니라 사슴 가죽으로 싸여 있었습니다. 음량도 오늘날처럼 크지 못한데다 음역 또한 오늘날의 88건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었지요. 그럼에도 피아노를 베토벤 시대에는 표현이 풍부한 악기로 일반적으로 여겨졌고, 그 표현력 면에서 쳄발로와 모차르트 시대 피아노 사이의 차이가 휠씬 컸습니다. 피아노는 이제 타협과 예의 바름을 특징으로 하는 로코코의 어법을 모르는 '자유'를 본질로 하는 악기가 되었으며, 표현의 복잡함, 고독의 우주성을 획득한 것입니다.



물론 피아노가 갖는 이렇듯 풍부하고도 자유로운 특성이 베토벤에 의해 단번에 발견되고 고심 끝에 개척된 것이 아니며 그 이전에 어느 정도 발달해 있었습니다. 오히려 그 기계적 특성에서나 작곡 기법에서나 베토벤의 악상을 가장 자유로이 표현할 수 있는 악기로서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고도 할 수 있겠지요.



***** 피아노 음악의 자유와 고독 *****



쿠르트 팔렌은「세계음악사」에서 "베토벤작품 전반에서 늘 느껴지는 것은 요약하자면 자유와 고독"이라 쓰고 있거니와, 이 두 특질은 악성 베토벤의 작품 표현에서 느껴질 뿐만 아니라 그의 작곡 과정 속에서도 뚜렷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곧, 자유란 자신의 의지를 가로막는 어떤 것도 배제, 타파해 나가려는 강한 의지이며, 고독이란 그 자신 하나의 세계, 하나의 우주의 크기에까지 다다랐음을 뜻합니다. 이러한 특질을 갖는 매체형식으로 베토벤이 처음에는 피아노를, 뒤에는 관현악을 사용했음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 까닭에, 교향곡 제2번을 쓰기 전에 피아노 소나타의 반수 이상이 이미 완성되어 있었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에릭 블롬도 지적하듯 제11번, 작품 22를 비교해 보면 그 표현의 깊이에서 교향곡이 소나타를 따르지 못합니다. 현악 4중주도 이 시기에는 전통 서법에 얽매여 있으며, 그 뒤 오랜동안 이 장르는 손대지 않는 채 방치되고 있었지요.



베토벤은 이렇게 피아노 속에 자신의 우주성을 자유로이 표현하려 했으나 이는 어디까지나 독주악기로서의 피아노에 한한 이야기입니다. 적어도 베토벤 초기에 피아노가 들어있는 실내악이나 협주곡에서는 피아노 독주 부분이 그의 악상을 대담하게 뛰놀게 하거나 진지한 세계를 구성하고 있지 않습니다. 다른 악기가 끼어듦으로써 오히려 표현의 자유가 제약된 삶인지도 모릅니다. 가장 베토벤적이라 일컬어지는 [크로이처] 소나타나 [황제] 협주곡에서 조차 피아노 소나타와 같은 심원하고 고립한 우주의 구성은 불가능했던 것이었는지도 모르지요.



***** 표현의 고전적 성격 *****
피아노가 얼마나 베토벤의 주관 표현에 적합한 악기였던가는 오히려 놀라운 면마저 있다. 역동적인 셈여림 표현, 특히 스포르짠도의 이용이 그 가장 특징적인 면모일 것이다. 그러나 베토벤이 피아노로 표현하러 한 것은 어떤 '정서상태'는 아니다. [비창]이니 [고별]이니 하는 이름도 그대로 새기거나 특별한 중요성을 부여하거나 해서는 안된다. 여기에 표현된 것은 어디까지나 음악으로서의 우주성, 음악으로서의 자유의지이며 이는 연주할때도 주의해야할 점입니다.

예컨대 베토벤은 아름다운 선율선을 노래하듯 써나갈 줄 알았으나 이는 낭만적 분위기를 표출하기 위함이 아니었으며, 전형적인 피아노 서법의 반주를 쓸 때조차 음 하나하나를 확실히 연주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녹아드는 듯한 분위기의 표현은 쇼팽이나 리스트 같은 작곡가대에 비로소 가능했지요. 연주기록으로 판단하는 한, 베토벤은 음을 길게 끄는 페달의 사용도 드물었습니다. 물론 악보에 나타나지 않는 페달사용도 어느 정도 허용이 되겠지만, 몇몇 연주가들이 하듯 페달 사용이 지나쳐 음을 망치고 혼탁하게 하는 것은 베토벤의 의도를 저버리는 일일 것입니다.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만큼 작곡자가 그 의지를 솔직하고 또 강인하게 표현하려 하고 있는 음악은 없습니다. 따라서 그의 소나타는 아무것도 더함이 없이 악보가 지시하는 바에 충실하게 연주해야만 한다. 그러나 바로 베토벤의 이 주관성 때문에 그의 피아노 소나타는 연주하기 가장 어려운 작품의 하나이기도 할 것입니다.





***** 악기의 한계 *****
피아노는 베토벤의 성격에 잘 어울리는 악기이며 베토벤도 또 이 악기의 특성을 매우 잘 즐겨 사용했지만, 그의 악상의 위대함은 이 악기만 가지고는 충분히 표현되지 않는 것은 아닌가 하는 느낌이들 때 또한 없지 않습니다. 피아노가 갖는 아름다움을 잘 발휘했다는 점에서는 베토벤보다 클레멘티가 나은 지도 모르지요. 에릭 볼름도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가운데는 피아노 음악으로서는 특히 우수하다 할 수 없는 것도 많이 있다".고 하고 있습니다. 베토벤의 피아노는 관현악을 암시하는 경우가 많은데 관현악의 장대함을 표현하려 하는 작곡자의 의도가 베어 들어간 결과라 하겠습니다.



만년의 베토벤이 피아노의 성능상의 한계와 맞서 고투해야만 했음은 당시 이미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사실이었던 듯합니다. 거장으로 유럽에 이름을 펼친 베토벤에게 피아노 제작자들은 자사가 제작한 악기를 사용하게 하려 앞 다투어 피아노를 헌정했습니다. "피아노 제작자들이 다투어 찾아온다. 내게 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나선다".고 베토벤은 이미 1802년의 한 편지에 적고 있지요. 게다가 영국의 브로드우드 사가 헌정한 피아노에는 귀가 잘 들리지 않는 베토벤을 위해 소리를 확대하는 특수 장치가 달려 있었다고 합니다. 또 빈의 그라프 사는 특별히 베토벤을 위해 높은 음역의 현을 4개씩으로 하고 뚜껑이 앞을 향해 열리도록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피아노가 얼마만큼의 이로움을 베토벤에게 주었는가 보다 우리는 그의 못쓰게 된 귀가 그의 만년 피아노 양식에 음향에서나 정신에서나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 점에 주의해야 할 것입니다.


***** 즉흥정신 *****
베토벤이 작곡에 임할 때 숙고에 숙고를 거듭했음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특히 피아노 곡에서는 즉흥정신 또한 살아 숨쉬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이 즉흥과 완성된 작품 사이의 밀접한 관련에 대해서는, 베토벤의 벗이었던 바이올니스트 아멘다에 관한 기록이 시사하는 바가 있습니다.



"어느 날 저녁 베토벤은 피아노 앞에 앉아 멋진 즉흥연주를 해 보였다. 아멘다는 끝까지 남아 있었다. '순간적으로 태어난 듯 훌륭한 음악이 다음 순간 없어져 버린다는 것은 아무래도 아쉬운 일이야'. 그러자 베토벤은 '그건 자네가 잘못 생각한 거야. 나는 방금 친 곡을 그대로 되풀이 할 수 있네'.라고 대답하더니 피아노 앞에 다시 앉아 방금 연주한 곡을 한 군데도 틀리지 않고 그대로 연주해 보였다".

베토벤의 피아노 음악을 이해하는데 이 사실은 커다란 의미를 갖고 있다고 여겨집니다. 피아노야말로 이 즉흥성에 걸 맞는 악기였습니다. 베토벤은 이미 어려서부터 피아노 연주를 시작했고, 열 세 살에 작곡한 [선제후] 소나타의 헌사에는 "소생은 4살때부터 줄곧…"이라는 문구가 보인다. 고트프리트 피셔는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습니다.


『Beethoven's Father』

"아버지는 어린 베토벤을 피아노로 끌고 갔다. 베토벤은 작은 의자 위에 올라서서 피아노를 쳤다. 이 광경은 우리 시장 빈데크씨도 본 적이 있다."

베토벤의 아버지는 베토벤을 이렇게 타일렀습니다.

"또 어떻게 그런 형편없는 음악을 함부로 치고 있는 거야? 거듭 말하는데 아빠는 그런 건 참을 수 없어. 악보를 보고 치세요. 안 그러면 아무리 쳐도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없어요.

이것은 피셔가 베토벤의 본에서의 소년 시절에 남긴 기록입니다. 그렇다면 베토벤은 어린 시절부터 이미 즉흥 연주를 좋아했음에 틀림없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작품에는 변주곡으로 되어 나타나는 것도 당연한 일이겠습니다.



베토벤이 맨처음 피아노 곡으로 펴낸 것이[드레슬러] 변주곡 입니다. 여기에 이미 뒤에 그의 창작이 가장 중요한 요소라 할 만한 것이 눈에 띄는데.. c단조, 행진곡풍 리듬, 정확한 변주곡 형식들이 여기에 이미 들어 있습니다. 피아노 소나타 작품2의 세곡이 나올때까지 베토벤은 여섯곡의 변주곡집을 출판했습니다. 소나타 작품26이 '안단테 콘 바리아지오니'로 시작하고 있는 것은 전통과의 단절을 뜻합니다. 1802년 무렵의 양식 전환은 작품34와35의 두 변주곡이 갖는 '새로운 양식' 가운데 가장 뚜렷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더욱, 서른 두 곡의 피아노 소나타의 거대한 체계를 마무리 지은 다음에도 우리는 [디아벨리] 변주곡이라는 대작을 만나 볼 수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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